<단독> 특검이 최경환 노리는 진짜 이유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7.01.16 09:41:05
  • 호수 109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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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2000억에 닿은 정권실세 입김 '후~욱'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최순실 게이트에서 바짝 엎드리고 있는 기업이 있다. 바로 KB금융지주다. 현재 현대증권 고가 인수와 관련해 특검에 고발된 상태. 이 인수전서 정권 실세의 그림자가 아른거리고 있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당시 인수전에 개입한 정권실세로 최경환과 최순실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KB금융지주(이하 KB금융)의 현대증권 1조2000억원 고가 인수 의혹 핵심은 이것이다.

복수의 재계·사정기관 관계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새누리당 최경환 의원이 경제부총리였던 당시 KB금융의 대우증권 인수를 막았으며, 현대증권을 고가로 인수하게 만들었다. 이로 인해 현대그룹 A 회장은 현대상선의 자구책을 마련했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한진해운은 법정관리에 이르게 됐다.

당시 경제부총리
‘큰 그림’ 누가?

그렇다면 왜 최 의원은 KB금융의 대우증권 인수전을 막았으며, 어떻게 현대상선은 자구책을 마련할 수 있었을까. 이런 일련의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보다 더 ‘큰 그림’을 그려볼 필요가 있다.

시계를 2015년으로 되돌려보자. KB금융은 그동안 대형 증권사 인수에 총력을 쏟았다. 대형 금융사지만 그에 걸맞은 증권사를 갖지 못해서다. 대형 증권사들이 M&A시장에 나올 때마다 인수전에 뛰어들었지만 매번 고배를 마셨다.


KB금융이 대형 증권사를 인수해 KB투자증권과 합병한다면 자기자본 5조원대의 업계 1위 증권사를 거느리게 되는 셈이다. 전체 자산서도 KB금융은 신한금융을 앞지르게 된다. 한 마디로 KB금융의 대형 증권사 인수는 숙원사업이다. 이 때문에 KB금융은 2015년 10월 산업은행 계열사 대우증권이 매물로 나올 당시 인수전에 총력을 기울었다.
 

그 일환으로 당시 경제부총리였던 최 의원과 동문인 대구고 출신 증권맨을 대거 영입했다. 최 의원과 대구고 동기인 김윤태 산업은행 부행장을 KB금융데이터시스템 사장으로 영입, 대구고 출신인 전병조 대우증권 전무를 KB증권 부사장으로 영입한다.

증권가 관계자는 “KB금융은 대우증권이 매물로 나오기 직전부터 김앤장과 안진회계법인 등으로 인수자문단까지 꾸렸다”고 말했다.

현대증권 고가 인수 의혹
배경에 정권 차원 개입?

한 마디로 대우증권 인수 의지가 확실했다는 것.

대부분 증권가에선 KB금융이 유리한 고지에 있다고 점쳤다. 하지만 KB금융은 대우증권 인수에 실패했다. 당시 매각 입찰에 참여한 3곳 중 가장 낮은 가격(KB금융-2조1000억원 미래에셋증권-2조4500억원, 한국투자증권-2조2000억원)에 응찰해 인수전이 수포로 돌아갔다.

당시 증권가에선 인수 후보자 중 가장 막강한 자금력을 보유한 KB금융의 배팅이 시장 예상에 한참 못미쳐 의아해했다.


그런데 KB금융의 낮은 입찰가 배후에 최 의원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인수전 사정에 정통한 한 금융권 관계자는 “경제부총리였던 최 의원이 재작년 12월 즈음에 산업은행 관계자를 만나 ‘KB금융이 인수하지 못하도록 하라’라는 청와대 고위관계자의 증언이 있다”고 말했다.

또 사정기관 관계자 역시 “KB금융이 대우증권 인수전서 정권실세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 외에도 <일요시사>가 입수한 투기자본센터의 고발장에 따르면, 최 의원이 “KB금융은 다음 기회를 갖도록 하라”고 적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KB금융이 의도적으로 낮은 입찰가를 제시했다는 의견도 다분하다.
 

당시 경제부총리였던 최 의원은 ‘경제대통령’이자 친박 실세로 무소불위 권력이었다. 산업은행의 대우조선해양 지원과 중진공 보좌관 채용 외압 등이 현재 최 의원이 받고 있는 비리 의혹이다. 여기에 KB금융 대우증권 인수전 개입 의혹까지 추가됐다.

다른 인수전도
그들의 그림자

이 같은 의혹들에 대해 최 의원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최 의원 측 보좌관은 “그것(의혹들)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다. 의원님은 현재 연락이 두절돼 전달해드리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왜 최 의원은 KB금융의 대우증권 인수를 방해했을까. 여기서부터는 최씨와 현대그룹 A 회장이 등장한다. 먼저 A 회장은 현대엘리베이터의 최대주주로서 현대상선을 보유하고 있다. 현대상선은 현대증권의 모회사(지분 22.43%)다.

몇 년 전부터 조선, 해운업 불황으로 해운사들이 극심한 위기를 맞았다. 현대상선도 마찬가지였다. 자구책 일환으로 A 회장은 현대증권 매각을 결정했다. 2015년 6월, 일본계 PE인 오릭스가 현대증권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으나 무산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부가 2015년 10월28일에는 현대상선을 한진해운과 합병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A 회장은 이를 거부했지만 자칫 선대회장부터 이어져 온 현대그룹 핵심기업이 없어질 위기에 처한 것. 따라서 현대상선을 살리기 위해서는 현대증권을 적극적으로 인수할 의향이 있는 기업이 필요했다.

현대상선은 지난해 2월, 자구계획으로 현대증권 지분 매각을 재결의했다. 이에 최 의원의 압력으로 대우증권 인수전에 실패한 의혹이 있는 KB금융이 현대증권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같은 해 4월 KB금융은 현대증권을 1조2500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현대상선과 체결했다.

문제는 2015년 오릭스와 협상 당시 매각가가 6500억원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1년이 채 되지 않아, 매각가가 두 배나 뛴 셈이다.

복수의 재계 관계자는 “당시 오릭스 매각이 무산된 것도 6500억원이 비싸서다. 그런데 KB금융이 1조2500억원이나 제시한 것은 납득이 안 됐다”고 이구동성했다. 이 때문에 당시 금융권 안팎에선 현대증권 고가 매각 의혹이 일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현대증권 입찰 후 차순위 입찰가를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다 2위 입찰자 한국투자증권이 1조1000억원을 발표했다”며 “이것도 KB금융이 비싸게 입찰한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물타기'란 소문도 무성하다”고 말했다.


현대증권의 리스크도 산적했다. 증권가에선 현재 검찰서 수사 중인 부산 해운대 엘시티(LCT) PF 부실 대출과 홍콩의 부실 해외법인 등의 실사가 제대로 이루어졌는지도 의문이라는 시각이다.

지난해 11월16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서 야당 의원들은 현대증권과 KB금융지주의 인수·합병 과정에서 최순실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실제로 A 회장과 최씨의 인맥은 얽히고설켜 있다.

먼저 A 회장은 이화여대 이사다. 최씨와 국정 농단 의혹이 있는 우병우 전 민정수석 장모 김장자씨가 다니던 이화여대 최고경영자과정인 알프스도 수료했다. 우 전 수석은 변호사 시절 현대그룹 비자금을 관리한 의혹이 제기된 ISMG코리아 B 대표의 횡령사건 변호를 맡기도 했다.

또 최순실 게이트로 구속된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한때 현대증권 사외이사(2008년 10월~2011년 12월)로 일했다. 현재 현대증권 사외이사 겸 감사위원에 취임한 최모씨 역시 안 전 수석과 가깝다. 두 사람은 대구·경북(TK) 출신으로 성균관대 동문이다. 같은 시기에 성균관대 교수로 재임한 인연까지 있다.

하지만 A 회장은 최순실에 대해 “한 번도 본적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어쨌든 KB금융이 현대증권을 고가 인수한 덕분에 현대상선은 법정관리를 면하게 됐다. 반면 최씨와 악연이 있던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한진해운은 법정관리를 면치 못했다. 정치권 안팎에선 “최씨의 요구를 거절한 조 회장에 대한 보복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여기저기…
안 엮인 데 없다

해운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5월 구조조정 초기만 해도 현대상선보다 한진해운의 회생 가능성을 보다 높게 점쳤다. 두 회사 모두 유동성 문제가 심각했으나 선대 규모나 해운업계서의 입지 등 면에서 한진해운이 우위를 보여서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이 펴낸 보고서에는 현대상선과 한진해운 중 하나를 살린다면 한진해운을 살리는 것이 유리하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후 상황이 급변하면서 한진해운에 불리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현대상선은 현대증권을 고가에 매각하면서 재기 카드를 쥐었다. 비슷한 시기 한진해운은 내년까지 1조2000억원의 운영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현대상선과 달리 처분할만한 자산도 마땅치 않았다.

현대상선은 6월 용선료 협상을 마무리한 데 이어 해운동맹 가입 사전단계인 공동운항 양해각서를 체결하면서 자율협약 조건을 모두 이행했다. 한진해운은 운영자금 조달을 위한 자구안을 마련한 뒤 정부에 3000억원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했으나 거부당했고 결국 지난해 8월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최순실에 밉보인 한진해운
“어려워지더니 결국 망하더라”

당시 조 회장이 최씨의 민원을 거절했기 때문에 보복당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장승환 한진해운 육상노조위원장은 “한진해운이 좌초하게 된 배경에 보이지 않는 모종의 압력이 있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조 회장이 최근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부터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 사퇴 압박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의혹의 눈길이 거세지고 있다.

정치권서도 비슷한 의혹이 제기됐다.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조 회장이 매출액과 비교해 적은 10억원을 미르재단에 냈는데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가게 된 것도 돈을 조금밖에 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있다”고 주장했다.

재계 순위가 한진그룹보다 낮은 LS(15억원), CJ(13억원), 두산(11억원)보다 적은 금액을 내는 바람에 최씨에게 밉보였다는 것이다.

현재 최순실 게이트를 수사 중인 특검팀서도 이와 관련된 사항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 지난달 30일, 시민단체 투기자본센터는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과 관련해 '한진해운 법정관리' 책임을 물어 박 대통령과 최씨 등을 특검팀에 고발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또 다른 사정당국 관계자는 “특검팀에선 현재 들어오는 모든 제보를 검토하고 있다”며 “수사가 빠듯하지만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고 말했다.

얽히고 설킨
정치인과 기업인

KB금융은 이 같은 의혹에 대해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KB금융 관계자는 “대우증권 인수전에 외부의 압력이 있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다 이사회서 결의한 것이다. 현재 이사진들 중에선 외부 입김으로 움직일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 "앞서 투기자본감시센터가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을 비롯한 윤경은 KB증권 대표(당시 현대증권 대표)를 고발했지만 사건은 각하 처분됐다"고 말했다. 

<cmp@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ISMG B 대표 특검수사 관전 포인트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뇌물죄 입증을 위한 조사에 착수했다. 특검은 이를 입증할 주요 연결고리로 '현대그룹 비선실세'로 불렸던 ISMG B 대표를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황씨는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과는 미국 위슨콘신대 동문, 황씨 아들은 장시호씨로부터 승마 상담을 받은 연결고리도 있다.

B 대표는 ‘현대그룹 비선실세’라 불렸던 인물이다. 현대그룹의 주요 결정을 막후에서 좌우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B 대표는 2014년 1월 100억원대 비자금 조성 의혹에 연루돼 기소됐는데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이 사건을 몰래 변론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특검은 당시 변호사였던 우 전 수석이 청와대 민정비서관으로 내정된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우 전 수석이 비서관 내정 이후에 사건 무마를 조건으로 수임료를 되돌려 주지 않았다면 뇌물죄가 될 수 있다.

실제로 특검은 황 전 대표 재판 관계자들과 접촉해 관련자료를 요구하는 등 사전조사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진다. 특검은 이와 함께 B 대표가 최순실씨를 배경 삼아 KB투자증권과 현대증권의 인수합병 과정에 개입했다는 첩보도 입수해 진위를 파악 중이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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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