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공개> 박근혜 사저에 얽힌 비화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6.12.26 09:25:29
  • 호수 109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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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공주’ 있으면 아이들 통제했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일요시사>는 ‘예민공주’로 소문난 대통령의 사저를 찾았다. 사저 바로 옆에는 삼릉초등학교 후문이 있다. 박 대통령이 사저에서 생활했던 당시 초등학생들이 후문 길에 다니지 못했다고 한다. 심지어 학교 측에서는 사저 바로 뒤편에 있던 놀이기구서도 마음껏 놀지 못하게 했다. 왜 그랬을까?

지난 12월19일 오후 1시20분. 서울 강남구 삼성2동에 있는 박근혜 대통령 사저. 날씨가 좋았다. 점심시간 끝물인 탓에 사원증을 목에 걸고 사저 앞을 지나가는 회사원들이 눈에 띄었다. 하나같이 이야기꽃을 피우며, 활기가 넘쳤다.

놀이터에서도
못 놀게 했다

사저로 조금만 가까이 가면 분위기는 금세 바뀐다. 긴장감이 맴돈다. 아무도 사저 앞을 가까이 가려고 하지 않는다. 현직 대통령의 사저인 탓에 경비가 삼엄했다. 조금이라도 사저 가까이 가면 경찰은 매의 눈으로 돌변한다. 거동이 수상하면 민망할 정도로 지켜본다. CCTV도 5대나 보인다. 본능적으로 행인들은 사저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걸어가는 것 같았다. 행인들 중에서는 간간히 손가락으로 사저를 가리키며 뭐라 수군댔다.

사저 주변의 한 건물 빌라 경비소장은 “최근에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산케이신문, 후지TV 등 수 많은 외신기자가 사저 앞에 와서 촬영하고 갔다”며 “히잡을 두른 중동 관광객들이 지나갔는데, 사저를 보며 손가락질했다. 내가 다 부끄럽더라”고 말했다.
 

사저 주변에 둘러싼 담장의 높이는 대략 7∼8m 가량으로 보였다. 밖에서는 집 자체가 보이지 않는다. 담장에는 가시철조망이 설치돼있다. 마당에 빽빽이 자란 활엽수와 대나무가 집을 완전히 가린다. 바람에 으스스하게 흔들리는 대나무 소리서 ‘우주의 기운’이 느껴진다.


박 대통령은 삼성동 사저에서 30년간 살았다. 그런데도 주민들은 하나같이 박 대통령을 한 번도 본적이 없다고 입 모아 말했다. 사저의 높은 담과 보이지 않은 집만큼 박 대통령이 얼마나 이웃과 단절하고 살았는지 미뤄 짐작할 수 있다.

2층 벽돌집인 박 대통령 사저는 서쪽으로는 7층짜리 오피스텔, 북쪽으로는 삼릉초등학교 운동장과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웃한다. 동쪽에는 차량 한 대가 간신히 지날 수 있을 만한 진입로가 있다. 이곳은 삼릉초등학교 후문이기도 하다.

인접한 초등학교 후문 출입 막아
지름길인데…빙 돌아서 정문으로

1994년 삼릉초등학교 졸업생 A씨는 박 대통령과 초등학교 후문에 관련된 일화 하나를 기자에게 들려줬다.

A씨는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학교 측에서 늘 정문 등교를 강권했다”며 “동쪽서 오는 학생은 후문이 지름길인데, 당시 뺑 돌아서 정문으로 등교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것 때문에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 불만이 많았다”며 “당시 학교 측에서는 정문 등교 강권 사유를 정확히 밝히지 않았다”고 귀띔했다.

또 삼릉초등학교 학생들이 놀이터에서도 마음껏 놀지 못했다고 한다.

A씨는 “사저 바로 뒤편에 놀이터가 있었다”며 “특히 정글짐서 많이들 놀았는데 학교 측에서는 ‘조용히 놀아야 한다’고 지침이 내려와 조용히 놀았다”고 말했다.
 


이 역시도 학교 선생님들은 명확한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이외에도 초등학교 바른생활지도부(일종의 선도부)가 후문에는 서 있질 못했다고도 했다.

이 때문에 졸업생들 사이에선 초등학교가 당시 예민한 박 대통령의 눈치를 본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실제로 초등학교 주변은 뛰어노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들렸다. 등하교 시간에는 학교에서 50∼70m 떨어진 곳에서도 아이들이 시끌벅적 교문을 드나들었다.

남이 쓰던 화장실 변기도 뜯어내고 새 변기를 쓸 정도로 예민하고, 초등학생이 엄마한테 선물로 만든 가방을 “이거 너무 쪼그매서 엄마가 좋아하실까”라고 말하던 박 대통령을 보면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가 시끄럽게 느껴졌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30년 살았는데
주민들과 단절

이 때는 실제로 박 대통령이 가장 예민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은 90년도 초 중반이 자신의 인생 최대 암흑기였다고 말하기도 했다. ‘전두환 5공 시절’은 정통성이 부족한 정부에서 흠을 메우기 위해 독재자인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난하던 상황이었다.
 

1980년 영남대학교 이사장에 올랐지만, 학교 측의 거센 반발로 8년 만에 사임했다. 또 1990년 육영재단 이사장이었던 박 대통령은 동생들과의 이사장 자리를 놓고 다투다가 사임했다. 같은 해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과 박지만 EG그룹 회장은 ‘최태민이 박 대통령을 속이고 있으니 구해 달라’며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쓰기도 했다.

실제로 노 전 대통령은 이 시기에 삼릉초등학교에 방문하기도 했다. 삼릉초등학교는 1985년 개교됐다. 1992년 6월11일 노 전 대통령이 삼릉초등학교 시찰을 돌았다. 컴퓨터 시범학교로 노 전 대통령이 학교 컴퓨터 교육현황을 살펴보는 차원에서 시찰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의 삼릉초등학교 시찰은 보기 드문 일정이라는 평가다. 정치권 관계자는 “아무리 생각해도 총리나 교육부장관이 왔어도 충분할 텐데, 생긴 지 얼마 안 된 초등학교에 대통령까지 오는 건 좀 이례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삼릉초등학교 운동장은 시간이 흐르면서 많이 변했다. 과거에는 사저 바로 뒤편에 철봉 10여개가 늘어 서 있었다. 그 옆에는 정글짐과 미끄럼틀이 자리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자리에 교직원용 주차장이 들어섰다. 정글짐은 사저와 멀찌감치 떨어진 운동장 맨 구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놀이터가 사저로부터 멀어졌다. 박 대통령 사저를 가리는 활엽수는 더욱 빽빽해졌다. 운동장서도 사저가 잘 보이지 않았다.

시끄러운 놀이터 빼는 공사
유별난 박 대통령 눈치봤나

삼릉초등학교 측은 운동장 공원화 사업을 하면서 직원용 주차장을 만들었다고 전했다. 삼릉초등학교 관계자는 “2007년 운동장 공원화 사업을 하면서 운동장이 주민들에게 전면 개방됐다”며 “안전 문제 때문에 후문에 주차장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에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아이들에게 통제하고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말했다.

법원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은 1990년 이 집을 매입했다. 이곳에 오기 전 주소지는 중구 장충동이었다. 집은 2층 구조로 대지는 약 484.8㎡ 규모다. 박 대통령은 1998년 정계 입문 계기가 됐던 대구 달성 보궐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주소지를 대구 달성군으로 옮겼다.
 


하지만 주소지를 대구로 옮긴 후에도 박 대통령은 이 집을 처분하지 않았다. 지난 10월,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가 “박 대통령 퇴임 후 사저 부지를 국정원이 물색하고 다녔다”며 의혹을 제기했을 때 청와대가 밝힌 박 대통령의 퇴임 후 거처도 이 삼성동 사저였다.

2013년 2월25일 박 대통령은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이 사저를 떠났다. 당시 이웃 주민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임기를 잘 마치고 돌아오라’며 박 대통령을 환송했다. 주민들은 태어난 지 한 달 정도 된 암수 진돗개 두 마리를 선물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박 대통령은 모든 권한을 상실했으며, 탄핵 처분을 기다리는 신세가 됐다. 매주 광화문 광장에는 수십만명의 시민이 모여 박 대통령 탄핵을 외친다. 이와 함께 역대 대통령 중 최저 수준의 지지율인 4∼5%를 오가고 있다.

외국 관광객들
집에 손가락질

지금까지 드러난 박 대통령의 민낯은 수많은 국민에게 충격을 안겼다. 대통령의 임기도 다 마치지 못하고 사저로 다시 돌아갈 가능성이 농후하다. 동네 주민들에게 환대받을 수 있을지는 요원하다. 사저에서 20m도 안 되는 거리에 사는 한 주민은 “(박 대통령이) 돌아오면 안 된다. 오면 이 일대 땅값 떨어질 것 같다”며 “지금 주민들 사이에선 박 대통령이 청와대 갈 때 심어준 소나무도 뽑고 싶어 할 정도다”고 말했다.
 

<cmp@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박근혜 ‘변기 집착’ 왜?

세월호 안에서 300명의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는 동안 머리 손질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이 이번엔 유별난 ‘변기 집착’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8일 박 대통령 탄핵 유튜브 생중계방송 ‘민주종편티비’에 출연했다. 송 의원에 따르면 청와대 경호실은 박 대통령이 인천시청을 방문하기 전 시장실의 변기 교체를 요구했다. 송 의원 측은 “변기 커버만 바꾸면 안 되지 않느냐”고 요청했지만, 결국 박 대통령 측은 변기를 뜯어내고 통째로 바꿨다고 전했다. 이어 “변기를 뜯어가더라고 변기를… 깜짝 놀랐어 왜 변기를 뜯어가냐고. 내가 쓰는 변기를 못 쓴다 이거지”라고 말하며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후 송 의원의 폭로를 시작으로 곳곳에서 박 대통령의 변기 집착 제보가 쏟아지고 있다. 지난 15일 손혜원 민주당 의원실의 김성회 보좌관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청문회에선 지저분해서 공개 못한 제보”라며 일화를 공개했다. 김 보좌관에 따르면 제보자는 인천의 한 해군부대에서 복무했던 예비역이다. 제보자는 2013년쯤 박 대통령이 헬기를 타고 군부대를 방문했다고 전했다. 그에 따르면 갑작스럽게 일정에도 없던 군부대에 방문한 이유는 “부대 사령관 집무실의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서”였는데 “박 대통령이 떠난 뒤 사령관 집무실 화장실을 전면 교체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밝혔다.

이는 일주일 뒤 인천에서 아시안게임 관련 행사가 열리는데 그때 박 대통령이 화장실을 방문할지도 모른다는 이유였다. 제보자는 “타일부터 변기까지 싹 갈았다. 책정된 예산이 없어서 다른 예산을 끌어다 전용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작 박 대통령은 오지 않았다고 전했다. 박 대통령의 유별난 ‘변기집착’은 해외 정상회담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지난 4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제4차 핵안보정상회의 당시 각국 정상과 국제기구 대표들의 단체사진에 박 대통령이 빠져 있었다. 이에 회의를 주최한 미국이 “박 대통령을 챙기지 않았다” “한국을 무시했다”는 등 지적까지 나왔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사진촬영에 참석하지 못한 이유가 “정상회담 장소에 있는 화장실에 가지 않고 현지 숙소의 화장실까지 갔다 왔기 때문”이라는 제보가 나와 논란이 예상된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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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