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이 바꾼 일상 ‘천태만상’

대한민국 주인은 국민이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냄비 근성. 우리 국민들의 국민성을 표현할 때 자주 나오는 말이다. 쉽게 끓어오르고 쉽게 식는 냄비의 특성처럼 이슈에 따라 빠르게 달아올랐다가 금방 외면해버린다는 뜻으로, 보통 부정적인 뉘앙스로 사용된다.

지난 10월29일 1차 집회를 시작으로 지난 3일 6차에 이른 촛불은 ‘냄비 근성’을 비웃듯 더욱 크게 타오르고 있다. 대한민국은 촛불집회 전과 후로 나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매주 역사를 쓰고 있는 상황이다. 촛불이 바꾼 일상, 대한민국을 들여다봤다.

집회를 주최한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이하 국민행동)은 지난 3일,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6차 촛불집회에 전국 232만명이 참가했다고 밝혔다. 이번 집회는 대통령 퇴진을 외치며 촛불집회를 시작한 이래 가장 많은 인파가 모였고, 헌정사상 가장 큰 규모로 진행됐다.

가족 연인 학생↑
연말모임 광장서

매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토요일 집회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일 지를 두고 격론이 벌어진다. 정치 상황, 날씨 등을 고려해 ‘전주보다 감소’ ‘유지’ ‘증가’ 등 의견이 나온다. 언론 역시 촛불집회 참여 예상 인원에 따라 정치권에 가해질 압박, 사회 변화 등을 언급한다.


촛불로 가득한 광화문 광장의 전경이 월요일 조간신문 1면을 채운 지도 한 달이 넘었다. 100만명이 광장으로 뛰쳐나온 3차 집회 후 한풀 꺾일 것이라고 진단했던 몇몇 정치인들은 점점 늘어나는 촛불에 주눅이 든 상태다. 과거 광장에서만 울리던 외침이 일상 속으로 들어오면서 촛불의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동창회를 광화문서 하기로 했다는 글이 심심치 않게 올라오고 있다. 아이디 fe***씨는 지난 2일 한 커뮤니티에 ‘저희 동창회 연말모임 광화문입니다. 25명 참석’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친구들과 광화문서 모이기로 했다는 내용이었다.

30대 직장인 한모씨는 “친구들과 금요일에 송년모임을 하고 토요일에 함께 집회에 가기로 했다”며 “광화문이 2차 송년회 장소가 될 것 같다”며 웃었다. 20대 대학생 장씨는 매주 토요일 광화문서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한다.

장씨는 “처음 집회에 가자고 했을 땐 싫어했지만 지금은 데이트 코스로 굳어졌다”며 “연인과 함께 온 사람들이 정말 많은 것 같다”고 놀랐다. 지난달 12일, 3차 촛불집회 당시 사회를 맡았던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한 언론과 인터뷰서 “밑바닥 민심 보셨잖아요. 동창회, 동호회를 광화문서 합니다”라고 말했다.

시민들 가운데 집회나 시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도심에서 열리는 대규모 집회를 보고 ‘빨갱이들’ ‘데모하는 놈들’ 등의 말이 여과 없이 언론 인터뷰로 나올 정도였다. 1∼6차 촛불 집회는 그런 의미에서 대다수 시민의 인식을 바꿔 놓았다.

전문가들은 촛불집회가 6차에 이르는 동안 광장은 ‘만남의 장’ ‘자기치유의 장’ ‘축제의 장’ 등으로 발전했다고 진단했다.

정의석 지역사회심리건강지원그룹 모두 대표는 <광주일보>에 기고한 칼럼서 “이번 촛불집회는 외적으로는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정치적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내적으로는 양극화되고 불안하고 외로운 한국사회서 경험한 상처들을 어루만지는 국민 치유의 장”이라고 분석했다.


자녀의 손을 잡고 나온 부모, 부모님을 모시고 나온 자녀 등 가족 단위 참가자들은 집회를 구성하는 인원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초등학생이 자신의 의견을 말하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크게 호응해주는 광경은 이제 새삼스럽지 않다.
 

노동조합위원장, 시민단체 회원, 대학교 학생회장, 정치인 등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광장의 발언대도 중·고등학생, 아주머니, 할머니, 할아버지 등 각계각층의 구성원에게 개방되고 있다.

일상으로 파고든 집회
회차 거듭될수록 진화
송년 모임도 거리에서

지난달 5일, 1차 대구 시국대회 무대에 오른 송현여고 조모 학생은 “평소라면 자습실 책상에 앉아 역사책을 읽으며 11월 모의고사를 준비했을 것”이라며 “허나 저는 부당하고 처참한 현실을 보며 이건 정말 아니라는 생각에 오늘 살아있는 역사책의 현장에 나오게 됐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 학생은 “56년 전, 1960년 2월28일 대구 학생들이 불의와 부정을 규탄해 민주주의를 지켰듯 우리 대구 시민들이 정의의 기적을 일궈야 할 때”라며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민주주의여 만세!”로 발언을 마쳤다. 대구 시민은 학생의 당찬 발언에 아낌없는 박수 갈채를 보냈다.

촛불집회 구성원이 다양화된 데에는 비폭력·평화 시위 기조가 크게 작용했다. 6차 촛불 집회에 전국서 232만명의 시민이 대통령 퇴진을 외쳤지만 경찰에 연행된 사람은 0명이었고 충돌도 없었다. 6차 집회 때는 법원이 청와대 경계 100m 지점인 효자치안센터까지 행진을 허용했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은 청와대 100m 이내 집회를 금지하고 있다.

집회 행렬이 청와대 100m 앞까지 간 것은 건국 이래 처음으로, 법원으로서 이례적인 판단을 내렸다는 평가도 나왔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촛불 행렬은 청와대서 1.3㎞ 떨어진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 앞에 멈췄다. 이후 900m(3차), 500m(4차), 200m(5차)로 집회를 거듭할수록 점차 청와대와 가까워졌다. 매주 조금씩 북상한 민심이 청와대 코앞까지 온 것이다.
 

촛불집회에 모인 민심은 박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참가자들의 대부분은 분노를 가슴에 품고 있다.

현재까지 집회에 네 번 참여했다는 40대 강모씨는 “우리가 박 대통령에게 권력을 준 건 나라를 잘 이끌어 달라는 뜻이었지, 일반인과 나눠가지라는 게 아니었다”면서 “너무 화가 나 참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막 수능을 끝낸 고3 학생 이모양은 “수능을 보기까지 정말 엉덩이가 아프도록 공부했다”면서 “그 사이 누군가는 잘못된 방법으로 명문대에 갔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일각에선 시민들의 분노 수위가 임계점에 다다랐다는 말도 있다. 6차 집회서 그간 등장하지 않았던 횃불이 나왔고, 대통령에 대한 구호도 하야, 퇴진, 탄핵, 체포, 구속 등으로 수위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참가자들은 평화 시위 방식을 굳건히 고수하고 있다. 충돌을 미리 방지할 수 있도록 서로를 독려하는 것은 물론 경찰을 보듬어 안아주는 방식으로 시위를 이끌어가고 있다.


지난해 11월, 민중총궐기 당시 경찰은 고 백남기 농민을 향해 직사 살수했다. 백씨는 머리에 큰 부상을 입은 후 깨어나지 못한 채 지난 9월25일 세상을 떠났다. 백씨의 사망으로 공권력에 대한 시민의 불신은 극에 달했다.

촛불 집회 1차 참가자 수가 2만명서 1주일 만에 20만명으로 폭발했을 때 시민들은 공권력의 탄압이 자행되지 않을까 우려했다. 실제 2차 집회까지만 해도 살수차 등장 여부가 관심을 모았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살수차에 물을 공급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세웠지만 공권력에 대한 공포가 남아 있던 때였다.

평화·비폭력
의경 안아주기도

지난달 7일, 2차 집회 직후 이철성 경찰청장은 기자간담회서 “경찰이 동원할 수 있는 인력은 3만명에 불과한데 10만∼20만명이 모이고 시위가 격화될 경우 막을 수 있는 한계가 있다”며 “최후방에서 불가피하게 살수차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 바 있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현재 이 청장의 우려는 기우가 됐다. 오히려 이 청장은 지난달 21일 기자간담회서 19일 4차 집회에서 집회 참가자들이 붙인 꽃 스티커를 떼지 말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시민들이 경찰 버스에 붙인 꽃 스티커는 평화 집회의 상징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달 26일, 5차 집회 때 서울 종로구 통인동 사거리서 선두에 서있던 집회 참가자 20여명은 두 팔을 벌려 대치 중이던 의경들을 끌어안았다. 이들은 “추운 날씨에 고생하는 경찰이 무슨 죄냐. 다 같은 국민이다”며 시민들의 말에 의경들은 어리둥절하다가 이내 입가에 웃음을 매달았다.
 

SNS에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촛불집회 사진을 보면 의경이 시민들의 집회 인증샷을 찍어주는 광경을 자주 볼 수 있다. 의경과 팔씨름을 하는 집회 참가자의 모습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영국 로이터 통신은 “주말 집회는 평화롭게 진행되고 있으며 일종의 대형 공공축제 같은 모습”이라고 전했다. 중국 신화통신은 “한국 국민이 평화롭고 축제 형태로 집회의 새 장을 열었다”고 강조하는 등 외신도 평화적인 집회 분위기에 찬사를 보냈다.

봉사 나눔 배려
스마트 집회도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은 지난달 1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서 “촛불은 촛불일 뿐이지 바람이 불면 다 꺼진다. 민심은 언제든 변한다”고 말해 거센 비판을 받았다. 집회 참가자들은 김 의원의 말에 스마트폰과 LED 촛불을 들어 보이며 눈·비가 몰아쳐도 꺼지지 않는다며 반박했다.

실제 지난달 26일,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전국서 190만명이 촛불을 들었다. 참가자들은 ‘순순촛불’ 등 각종 촛불 앱으로 주변을 환히 밝혔다. 바람이 불어도 촛불은 꺼지지 않는다는 것을 시민들이 증명했다.

스마트폰, SNS의 발달은 집회도 ‘스마트’하게 변화시키고 있다. 박항 카이스트 부총학생회장은 ‘카이스트 대오 위치 보기’ 앱을 만들었다. 광장에 나부끼는 수많은 깃발로는 대오를 찾기 어려운 학생들의 불편함을 보고 고안했다.

박씨가 만든 앱은 대오 인솔자의 GPS(위성위치확인시스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지도에 표시해 주는 방식이다. ‘집회출석’ 앱도 있다. 집회 당일 광화문 반경 2km 안으로 들어오면 자동으로 출석체크가 된다.

이외에도 공권력감시대응팀과 진보네트워크센터서 만들어 배포한 집회 시위 매뉴얼에는 처음 집회에 참가하는 사람들을 위한 준비물, 법률 등이 담겨있다. 화장실, 응급시설, 촛불, 피켓 배포 장소의 위치를 알 수 있는 편의시설 안내 앱도 등장했다.
 

집회에 직접 참여하지 못한 시민들을 위한 앱도 있다. ‘오천만 촛불’은 개인사정이나 근무, 육아 등으로 집회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촛불 사진을 SNS에 공유하면 참석 인원으로 체크해 해당 지역별로 분류했다. 그렇게 몰린 인원이 37만명에 달했다. 페이스북, 유튜브 등 각종 인터넷 생중계 채널에도 시민들이 몰렸다. 이들은 현장 참가자들에게 응원 메시지를 보내는 등 뜨겁게 호응했다.

정치에 대한 관심↑
의원에 카톡 제보도

외국에 살고 있는 국민들도 온라인 촛불을 켜는 등 국내서 일어나는 일에 큰 관심을 보였다. 미국 LA에 거주 중인 문모씨는 “매주 한국서 열리는 집회에 관심을 갖고 있지만 참여할 수 없어 안타깝다”며 “일단 카카오톡 프사(프로필 사진)를 촛불로 해놓고 교민들끼리 진행하는 촛불집회에 나갈 예정”이라고 했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나눔과 봉사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지난달 26일, 새마을금고 광화문 본점 근처에선 한 상인이 추운 날씨에 집회에 참가한 시민을 위해 따뜻한 물을 제공했다.

지난 3일, 김진태 의원의 지역구인 강원도 춘천에선 무료 ‘하야 커피’를 주는 푸드트럭이 등장 시민들의 호응을 얻었다. 핫팩, 방석, 촛불, 종이컵 등을 무료로 나눠주는 시민의 손길이 집회가 거듭될수록 늘어나고 있다. 지난달 13일, 박원순 서울시장은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쓰레기봉투를 여러 장 사서 시민들에게 나눠주고 있는 사람을 봤다며 글을 올렸다.

그 학생은 33만2000원을 들여 쓰레기봉투 100L 100장, 50L 100장을 산 것으로 알려졌다. 매번 집회 때마다 광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쓰레기 줍는 등 주변을 청소하는 시민들 덕분에 광화문 광장은 집회 이후에도 이전과 다름없는 말끔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시민들의 촛불 퍼포먼스나 피켓 문구 등도 집회의 또 다른 볼거리로 떠올랐다. 3차 집회 때 100만명의 촛불 파도타기는 장관을 이루며 외신에 보도됐고, 5∼6차 집회 때 이뤄진 1분 소등행사는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문구를 실현했다.

촛불집회는 10대 어린아이부터 70대 노인까지 정치에 관심을 갖게 하는 촉매제로도 작용했다.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지난 8일 라디오 프로그램 <KBS 공감토론>에 출연, “저는 촛불민심의 국면에 대해서 전혀 겪어보지 못한 주권재민의 실체하는 힘을 느끼고 있다”면서 “민주주의 역사에서 이 역사의 순간을 보고 있다는 것에 정말로 가슴 떨리는 외경심이나 두려움마저 느낀다”고 말했다.

촛불민심은 최순실 게이트가 열린 이후 중요한 국면마다 정치권을 압박했다. 촛불을 통해 전달된 시민들의 요구에 놀란 정치권은 화답했다. 의회는 시민의 대리인이며 모든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주권재민의 원칙이 현실화된 것이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국회의원의 휴대폰 번호가 무더기로 뿌려졌다. 시민들은 의원들에게 탄핵 관련 입장을 밝히라며 문자나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의원들은 시민 개개인의 요구에 답변을 하느라 진땀을 뺐다. 그동안 민심의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은 의회는 시민의 목소리를 촛불이나 문자, 카카오톡을 통해 직접 듣는 진귀한 경험을 했다.
 

공개된 전화번호는 엉뚱한 방향으로 일을 만들기도 했다. 지난 7일,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주식갤러리에 카카오톡 캡처 게시글이 올라왔다. 주갤러가 올린 캡처에는 2007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의 청문회 영상과 관련 사안을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에게 제보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촛불 이후…
직접민주주의

제보를 받은 박 의원은 이를 영상 자료와 시각 자료로 만들어 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에 참여한 김기춘 전 비서실장을 몰아붙였다.

김 전 실장은 그 때까지 최순실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이라고 주장했다가 증거가 나오자 “기억을 잘 못했다. 내가 최순실을 모른다고 한 것은 전화를 하거나 만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등으로 해명하며 진술을 번복했다.

박 의원은 질의가 끝난 이후 “네티즌 수사대와 함께한 일”이라며 SNS를 통해 감사를 표했다. 누리꾼들은 “직접 민주주의의 쾌거” “온오프 합작 성공” 등의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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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갈수록 증폭되는 평택 논란 이제야 공개된 소소한 흔적 쉽게 거두지 못하는 의심 의미심장 세력 교체 과정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소문이 어느덧 사실처럼 인식되고 있다. 명확한 물증이 없는 가운데 파편적인 의혹이 덧씌워진 양상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으며, 흐름을 파악할 만한 유의미한 흔적이 이제야 겨우 나왔을 뿐이다. 증폭된 의혹 뒤편에서 여전히 진실은 빼꼼히 잘 보이지 않는다. 2010년 9월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황해경제자유구역에 자리 잡은 유일한 농산물 가공 업체로, 그간 심심치 않게 밀수 의혹을 받아왔다. 가공 목적으로 수입한 농산물을 가공 없이 시중에 유통시켜 엄청난 차익을 봤다는 꼬리표가 뒤따랐다. 의혹하는 눈초리 선라이즈에프앤티가 취급했던 대다수 농산물이 고관세 품목이라는 점은 이 같은 의혹을 부채질했다. 그간 선라이즈에프앤티는 ▲녹두 ▲콩나물콩 ▲다대기(혼합양념) ▲생강 ▲마늘 ▲참깨 ▲팥 ▲서리태 등 높은 세율이 붙는 고관세 품목을 주로 수입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 예로 콩나물콩의 경우 그대로 들여와 국내에 유통하면 487% 관세가 부과되지만, 콩나물 재배 목적으로 수입하면 27%만 반영된다. 평택세관에 몸담았던 다수의 전직 세관공무원이 기업 출범 및 운영에 관여했다는 점도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었다. 심지어 선라이즈에프앤티 이사진에 포함됐던 특정 세관 출신 임원이 한때 다이아몬드 밀수 사건에 이름이 오르내린 사례도 존재한다. 수년 전부터는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동일선상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해졌다. 선라이즈에프앤티의 밀수 의혹을 수차례에 걸쳐 제기했던 공익 제보자 이성열씨가 재판에 연루되는 과정에서 김건희씨의 모친인 최은순씨가 거론됐던 게 이 같은 흐름에 불을 지핀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정치평론가인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이 최근 ‘평택항’을 언급하자,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은 사실처럼 받아들여질 정도가 됐다. 장 소장은 SBS라디오 <김태현의 뉴스쇼>가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김건희씨 일가의 수상한 물건 수입 의혹과 관련한 이야기를 전했다. 장 소장은 “최은순씨가 주인으로 있는 농수산물 수입업체에서 이상한 것을 들고 오려고 하다가 걸려서 (김건희) 오빠와 김건희씨가 그것을 무마시키려고 여러 가지 이상한 (일들을 했다고 한다)”며 “어떤 물건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부적절한 물건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급기야 선라이즈에프앤티의 폐업이 알려지자, 의혹은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양상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국세청 사업자 과세 유형 조회 결과 지난 10일자로 폐업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폐업자로 조회된 지난 10일은 김건희 특검법이 공포된 시기와 맞물린다. 물론 꾸준히 의혹이 제기된 것과 별개로,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을 입증할 만한 확실한 단서는 없는 상황이다. 특히 주주명부가 지금껏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는 게 의혹과 진실을 구분 짓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일요시사>가 최초 입수한 주주명부는 간접적으로나마 의문을 풀 수 있는 열쇠로 작용할 여지를 남긴다. 의문 해소 첫 단추 2022년 10월 작성된 ‘카리나에프앤티(선라이즈에프앤티에서 2020년 9월 상호 변경) 주주명부’를 검토한 결과 주주는 총 17명, 발행주식은 91만8400주(1주당 5000원)로 확인됐다. 2010년 9월 자본금 5억원으로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수차례 증자를 거쳤고, 해당 시기에 자본금을 45억9200만원으로 늘린 상태였다. 일단 주주명부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대신 경영권 교체 과정이나마 엿볼 수 있을 뿐이다. 법인 등기와 주주명부를 교차 검증한 결과를 토대로 추정하면, 표면상 선라이즈에프앤티 지배 세력은 ‘전직 세관공무원(설립~2018년 중순)→지엔티에이치(~2020년 중순)→킴스에O엔O(~2022년 초순)→동OO앤에스(~2025년 6월)’ 순으로 변경된 흐름이다. 첫 번째 경영권 교체는 ‘펀딩하이 연체 사건’과 함께 발생했다. 펀딩하이는 중국·동남아시아에서 농산물을 수입하는 업체에 돈을 빌려 주고, 투자자들에게 15% 이상 수익을 보장하는 펀딩 상품으로 인기를 끌던 P2P 업체였다. 그러나 펀딩하이는 2018년 6월20일 ‘마늘 시즌2-17차(모집 금액 3억원, 차주 승리산업)’ 펀딩 상품의 연체를 시작으로 ▲세척 당근 시즌2-18차(모집금액 5억원, 차주 지엔티에이치) ▲김치 펀딩 2차(모집금액 1억2000만원, 차주 상아농산) ▲번데기 펀딩 1차(모집금액 1억8000만원, 차주 월량완코리아) 등에서 차주의 투자금 상환 실패를 알렸다. 연체 금액은 ▲지엔티에이치 29억원 ▲승리산업 33억원 ▲상아농산 11억8000만원 ▲월량완코리아 1억8000만원 등 총 75억6000만원에 달했다. 급기야 펀딩하이는 연체율 100%를 찍은 채 영업을 중단했다. 상환 실패 이후 차주 사이에 관련성이 드러났다. 지엔티에이치와 승리산업에서 대표이사였던 윤석호씨는 두 회사 지분을 각각 60%, 100% 보유 중이었다. 또한 월량완코리아 사내이사로도 등재돼있었다. 연체가 발생한 직접적인 사유는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대상으로 한 지분 투자였다. 지엔티에이치는 펀딩받은 금액을 농산물을 들여오는 데 쓰지 않고,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매입하는 데 활용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이를 계기로 지엔티에이치는 2018년 6월경 주식 16만1400주를 확보한 선라이즈에프앤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확보한 이후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명단에 변화가 목격됐다. 선라이즈에프앤티 초창기부터 함께했던 사내이사와 부친에 이어 회사에 몸담았던 대표이사를 대신해 지엔티에이치가 끌어들인 얼굴들이 등기임원 자리를 꿰찼다. 정작 지엔티에이치는 연체 발생 넉 달 후인 2018년 10월 보유 중이던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에 넘겼다. 펀딩하이 투자자들과의 소송전이 불거지자 중국에 본거지를 둔 우군에 주식을 양도한 모양새였다. 거듭되는 교체 수순 두 번째 경영권 교체는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의 주체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충청권에 본적을 둔 킴스에O엔O는 2022년 10월 기준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10만8200주를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의 친인척이 보유한 주식 13만2800주를 합산하면 우호 주식은 24만주 안팎이다. 기존 지엔티에이치 측 우호 세력(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 16만1400주+마송재 3만주)과 비교해 5만주 가까이 격차를 벌린 셈이다.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대량 매입한 시기는 2020년 중후반으로 추정된다. 이 무렵 선라이즈에프앤티 등기임원 구성이 크게 요동쳤다는 점을 통해 짐작 가능한 사안이다. 실제로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발휘하던 2018년 7월 대표이사에 선임됐던 김정일 대표는 2020년 3월 해임됐다. 2018년 9월 취임했던 또 다른 대표이사 역시 당해 10월을 넘기지 못한 채 사임했다. 공석이 된 주요 등기임원 자리는 킴스에O엔O 측 인물로 채워졌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가 2020년 10월 선라이즈에프앤티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해당 시기에 사외이사, 감사 등 등기임원 전원이 새 얼굴로 교체됐다. 킴스에O엔O에 이어 지배 세력으로 등장한 곳은 식료품 제조업을 영위하는 동OO앤에스였다. 이 회사는 2022년 10월 기준 주주명부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지분율 44.64%)를 보유한 단일 최대주주로 등재돼있다. 여기에 우호 세력(글로O포O 1만주+김성수 2만주+김종봉 788주)의 주식을 합산하면 지분율은 50%에 육박한다. 동OO앤에스는 사실상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인수하고자 만든 업체로 비쳐질 여지를 남긴다. 2022년 2월 출범 당시 자본금 10억원짜리였던 동OO앤에스는 불과 두 달 만인 2022년 4월14일 자본금을 21억원으로 두 배 이상 키웠다. 공교롭게도 동OO앤에스가 설립 이후 8개월 사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투입한 금액은 총 20억5000만원이었다. 이는 동OO앤에스 자본금 21억원이 선라이즈 주식 41만주를 매입하는 데 쓰였을 가능성에 주목하게 만든다. 게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기존 61만8400주였던 발행주식을 2022년 4월22일 91만8400주로 30만주 확대했다. 동OO앤에스가 자본금을 21억원으로 확충한 지 8일 만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가 발행주식을 30만주 늘린 덕분에 동OO앤에스는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주식 41만주를 확보한 형국이다. 동OO앤에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지배하는 위치로 올라설 무렵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구성은 또 한 번 바뀌었다. 동OO앤에스 대표이사가 사내이사, 글로O포O 대표이사가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렸고, 김성수 대표이사가 신규 선임됐다. 이후 김성수 대표는 선라이즈에프앤티 폐업 전까지 자리를 지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되짚어보는 연결고리 한편 일각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는 지엔티에이치 측이 지배력을 상실한 이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나마 킴스에O엔O 혹은 동OO앤에스와의 연관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관여한 직접적인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만약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를 2021년 이후로 특정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항간에 떠도는 마약 적발 여부는 2022년 근방으로 얘기가 오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heaty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