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청와대-페이퍼컴퍼니 커넥션 추적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6.12.05 10:20:19
  • 호수 10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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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회사에 VIP 행사 맡겼다

[일요시사 취재1팀] 최현목·박창민 기자 = 사무실이 없다. 직원도 없다. 그 흔한 홈페이지도 없다. 보통 이런 회사를 ‘페이퍼컴퍼니’라고 한다. 이른바 유령회사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청와대가 이런 수상한 회사와 거래한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청와대가 정부 부처에 이 업체와 거래하라고 지시한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A사는 그 동안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 영빈관서 치러진 수많은 행사를 도맡은 행사 대행 용역회사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 ‘2015년 교육정보화종합시상식 행사 운영의 수의계약 사유서’에 따르면 “VIP(박 대통령) 행사 경험이 풍부한 본 업체(A사)와 수의 계약을 진행하게 됨”이라며 “실적이 우수하며, 정부부처 VIP행사 관련 다수 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바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은 교육부 산하 준정부기관이다.

청와대 행사 싹쓸이
부러움의 대상

실제로 <일요시사>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A사는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청와대 영빈관서 있었던 ‘어린이날 청와대 초청행사’(2015년 5월5일 청와대) ‘제3차 규제개혁 관계 장관 회의’(2015년 5월6일 청와대 주최) ‘제9회 장애인기능올림픽 선수단 축하 오찬’(2016년 4월19일 장애인고용공단) ‘바이오 산업생태계, 탄소자원화 발전전략 보고회’(2016년 4월21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등의 행사를 도맡았다.

A사는 이외 다수의 청와대 관련 행사를 진행한 것으로 보여진다.

A사가 진행한 행사는 모두 수의계약으로 이루어졌다. 국가·지방자치단체 등이 체결하는 모든 계약은 경쟁입찰이 원칙이다. 하지만 예외 조항이 있다.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제26조(수의계약에 의할 수 있는 경우)에 따르면 5000만원 이하인 물품의 제조·구매·용역 그 밖의 경우에 해당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A사가 청와대와 각 부처에서 수주한 금액은 1000만원서 1600만원 사이기 때문에 수의계약 요건에 해당된다.

업계에선 A사가 부러움의 대상이다. 고정적으로 청와대와 각 부처에서 일감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행사 대행 업계의 한 관계자는 “공공기관의 일감을 고정적으로 받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이처럼 청와대 일을 많이 한 업체는 보기 드물 것”이라고 말했다.

전직 청와대 관계자 역시 수의계약으로 한 업체에게 이렇게 많은 일감을 주는 것은 석연치 않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수의계약으로 특정 업체만 쓰는 것은 특혜라고 의심하기 딱 좋다. 이 때문에 청와대 수의계약을 하는 담당자가 이런 의심을 안 받으려고 서로서로가 조심하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어떻게 맡았나?
누가 밀어줬나?

그런데 A사가 ‘페이퍼컴퍼니’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 흔한 홈페이지도 없다. 인터넷에는 A사와 관련된 정보도 거의 찾을 수 없었다. 이외에도 A사의 견적서에 나와 있는 주소와 세금 계산서에 나온 주소도 일치하지 않다. 직원도 없다. 이쯤 되면 서류상으로 존재하는 페이퍼컴퍼니로 의심해볼 만하다는 게 중론이다.

먼저 <일요시사>가 입수한 A사의 견적서에 따르면 회사 대표로 P씨가 등재돼 있다. 그런데 회사 주소지는 A사의 이사로 등재돼 있는 Y씨의 집. 견적서에 나온 A사의 주소는 경기 김포시 김포대로 355-1 번지로 돼 있다.
 

하지만 이 주소에는 허름한 주택만 있을 뿐 사무실로 보일만한 곳은 없었다. 등기부등록부에 따르면 지목은 임야로 돼 있는데, 사실상 적절치 않은 곳에 회사 주소가 등록돼 있는 셈이다.


석연치 않은 점은 또 있다. 견적서에 기재돼 있는 A사의 사업자 번호 141-00-00000를 인터넷에 검색하면 애견 쇼핑몰 O사가 등장한다. 홈페이지의 O사 주소지는 경기도 파주시 상지석동 745-7번지로 돼 있다.

같은 A사 사업자 번호에 두 개의 회사 주소가 존재하는 셈이다. 혹시나 다른 회사가 아닐까 확인했지만, 홈페이지 하단에 에 있는 회사 대표자에 P씨의 이름이 있다. 핸드폰 번호도 일치한다.

그렇다면 진짜 주소는 어딜까. A사의 사업자등록증에 따르면 회사 소재지는 경기도 파주시 운정역길 35-31(상지석동 745-7번지)이다. 그런데 이 주소에는 사무실이라고 보기 어려운 2층 주택이 자리잡고 있다. 이곳 주택의 소유주는 P씨이며, 그가 살고 있는 집이었다.

직원 없고 홈페이지도 없어
수상한 회사와 이상한 거래
부처에 거래 지시한 의혹도

결국 청와대 일감을 받고 있는 업체가 사무실 하나 없는 셈이다. A사의 직원은 대표이사인 P씨와 이사인 Y씨 말고는 없다. 이쯤 되면 사실상 페이퍼컴퍼니라고 봐도 무방하다. 복수의 정치권 관계자들은 “청와대 행사 정도 수의 계약하려면 어느 정도 규모가 될 텐데. 수상한 회사”라고 말했다.

그런데 A사는 견적서를 과도하게 부풀린 의혹도 있다. A사는 주로 행사 제작물 총괄 기획 및 관리를 담당한다. 실내현수막 제작, (실내 현수막) 수정 작업, 현장설치 및 철수, 행사 좌석배치도, 참가자 네임텍(비표)제작, 참석자 명패 제작 및 출력, 회의용 펜접시 세팅, 좌석라벨지 출력 및 소모성 문구류 등을 행사 전반에 필요한 물품 제작 및 보급한다. 회의용 디지털 음향장비 대여 및 철수도 한다.

이중 특히 과다하게 견적서를 부풀린 것으로 보이는 항목은 실내 현수막 제작과 (실내 현수막) 디자인 및 수정 작업, 회의용 음향장비 대여다. 올해 4월21일 청와대 영빈관서 박 대통령이 참석한 ‘바이오 산업생태계, 탄소자원화 발전전략 보고회’(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주제)도 A사가 행사 대행을 맡았다.

A사의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견적서에 따르면 총 1233만원 행사 비용이 들어갔다. 복수의 행사 대행업체에 따르면 이 견적서가 과다하게 청구됐다고 주장했다. 특히 행사 내부 현수막 제작비용과 현수막 디자인 및 수정 작업 비용이 소비자 단가보다 비싸다는 것.
 

견적서에 청구된 현수막 제작비용은 총 77만원이 들어갔다. 이 현수막은 3.4m(가로)X5.7m(세로)의 대형 현수막이다. 업계에선 현수막 제작 단가를 ‘1mX1m=1㎡=1만원’으로 산정한다. 이 계산법을 적용하면 3.4mX5.7mX1만원=19만3800원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아무리 비싸게 잡아도 적정가격은 30만원을 못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A사가 현수막 비용을 과도하게 청구했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사무실 주소
찾아보니 주택

현수막 디자인 작업 비용도 과다하게 청구한 것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 A사는 디자인 작업 비용으로 150만원을 청구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디자인은 질과 시간, 인원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어떻게 작업했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현수막 디자인에만 150만원이 들어간 것은 과한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디자인이라는 것은 산정하는 기준이 없기 때문에 부르는 게 값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때 행사에서 A사는 음향장비 대여로 500만원을 청구했다. 업계에선 이 부분도 과하다고 보고 있다.

또 다른 행사 대행 업계 관계자는 “예산을 아끼려 했다면 충분히 절감할 항목이다. 콘서트도 아니고, 클럽 음향 같이 값비싼 조명장비도 대당 50만원에 대여한다. 2대 만으로도 홀을 충분히 울리고 남는다. 회의에 그런 장비가 필요한 것도 아닌데 과하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박 대통령과 관련된 행사가 있을 때마다 각 부처와 해당 기관에 A사에 행사를 맡기라는 정황도 포착됐다. 특히 보수단체서 박 대통령 예방행사가 있을 당시 청와대 행정자치 비서관실에서 A사를 추천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견적서 주소는 김포
사업자 주소는 파주

<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보수 단체가 주최하는 박 대통령 의전 청와대 지침에 따르면 ‘이벤트 업체 협의(청와대 추천)·기획·A사 010-0000-0000’이라고 명시돼 있다. 이 단체는 청와대 지침대로 A사에 행사 용역을 맡겼던 것으로 전해진다.

또 다른 보수 단체 역시 청와대 지침이 내려가 A사에게 용역을 맡긴 것으로 전해진다. 이럴 경우 해당 기관에선 청와대가 추천한 A사에 행사를 맡기는 수밖에 없다는 게 관계 부처의 설명이다.


그 이유에 대해 오랫동안 청와대 의전실과 업무를 조율했던 한 관계자는 “청와대서 추천한 곳에서 안 했다가 밉보이기 십상이라 (청와대서) 시키는 대로 하는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마치 손님이 행사를 기획하는 꼴이다.

반면 A사에 행사 용역을 줬던 관계 부처들은 청와대 추천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 관계자는 “작년에도 (A사가) 우리행사를 했었다. 알고 있던 업체기 때문에 선정했다. 청와대 행사 경험이 많은 지는 몰랐다”고 말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관계자는 “고용노동부가 추천해줬다. 청와대 오찬 행사 절차가 복잡하다 보니 과거의 업체를 찾게 된다”고 말했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 관계자는 “오랫동안 행사를 꽤했던 업체다. 문제될 게 없는 걸로 알고 있다. 청와대 추천은 없었다”고 말했다.

견적서 부풀린
뻥튀기 의혹도

청와대 역시 해당 부처에 ‘추천한 적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행사는 해당 주무 부처에서 기획한다. 청와대가 관여할 이유가 없다”며 “하지만 주무부처가 경호 문제로 행사 선정이 어려울 경우가 있다. 이때는 몇 군대 업체를 소개해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chm@ilyosisa.co.kr>
<cmp@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A사측 해명과 반박

A사는 청와대가 정부 부처에 행사 대행 일감을 몰아준 의혹을 받고 있다. 또 실체가 모호한 페이퍼컴퍼니 의혹도 사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일요시사>는 A사 관계자와 전화 통화를 통해 해명과 반박을 들어봤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A사가 청와대 관련 행사를 많이 했던데.

▲개인적으로 청와대 일을 한지 25년이 넘었다.  

-페이퍼컴퍼니라는 의혹이 있다.

▲사업자 등록증에 보면 서비스, 영상촬영, 이벤트 대행 등 다 들어가 있다.  

-견적서에 나온 주소랑 사업자 번호 주소와 다른데.

▲사업장 주소는 파주로 돼 있으며, 사무실은 김포로 돼 있다.  

-사무실 같지는 않고 주택이던데.

▲맞다. 사무실로 겸용해서 쓰고 있다.  

-사업자 번호를 검색하니 애견 용품 쇼핑몰이 나오던데.

▲사업자 번호를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니냐?(애견 쇼핑몰은 P대표의 부인이 운영하고 있다. 부업으로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홈페이지도 없고, 청와대 행사를 많이 하는데 업체에 대한 정보가 없다.

▲꼭 홈페이지가 있어야 정상적인 회사 인가? 수십년 간 문제없이 이렇게 해왔다.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어떻게 청와대 일감을 이렇게 많이 받았나?

▲우리는 청와대 행사 특성상 경호나 의전 때문에 매뉴얼이 까다롭다. 그런 매뉴얼들을 가급적으로 많이 해본 업체를 정부 부처에서 선호한다. 나는 부처에 있는 공무원들을 많이 알아서 일을 하는 것이다. 누구의 특혜를 받은 것은 아니다.  

-청와대서 부처에 A사를 추천했다.

▲그런 일 없다. 우리는 청와대 추천으로 일한 사실이 없다. 업무 편의상 각 부처에서 내려보낸 것 같은데, 우리는 부처의 연락을 받고 일을 한 거다.  

-그래도 청와대 일감을 고정적으로 받는 게 쉽지 않을 텐데.

▲우리 말고도 많다. 왜 우리한테만 그런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다. 우리 업체보다 청와대 행사를 더 많이 하는 업체도 많다. 대부분 해당 부처와 유대 관계를 맺고 일을 한 거다.  

-일각에선 견적서를 과다하게 청구했다고 하는데.

▲그 업체들은 청와대 행사를 한 적 없는 업체일 것이다. 디자인도 다 외주 업체에 주는 것이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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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