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천외’ 교도소 탈출 백태

도망가면 뭐하나 다 잡혔는데∼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영화 <쇼생크 탈출>의 백미는 주인공 앤디가 악명 높은 쇼생크 감옥을 탈출한 후 팔을 벌리고 비를 맞는 장면이다. 18년간 돌망치로 벽을 파낸 주인공의 집념은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겼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탈주범들은 경찰에게 붙잡히거나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방식으로 탈주의 끝을 맞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감옥의 담을 넘으려는 탈주범들의 기상천외한 탈주 노력을 살펴봤다.

연쇄살인범 정두영이 탈옥을 시도하다 교도소 직원들에게 붙잡힌 사실이 알려졌다. 대전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정씨는 8월초 교도소 작업장에서 몰래 만든 4m 높이의 사다리를 이용해 탈옥을 시도했다. 정씨는 사다리를 이용, 교도소 내 3곳의 담 중 2곳을 뛰어넘고 마지막 담을 넘는 과정서 발각됐다.

연쇄살인 정두영
사다리로 담 넘어

정씨는 지난 1999년 6월부터 2000년 4월까지 부산과 경남 등지서 강도·살인 행각을 벌였다. 정씨는 철강회사 회장 등 9명을 둔기 등으로 잔혹하게 살해했다. 정씨는 검거된 이후 잔인한 살해 수법의 이유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내 안에 악마가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답해 세간을 놀라게 했다.

재소자의 교도소 탈주 시도는 잊을 만하면 한번씩 터져 나온다. 이들의 시도는 정씨의 사례처럼 탈주 과정서 발각되기도 하고, 희대의 탈주범 신창원처럼 탈주 성공 후 도주극을 벌인 경우도 있다. 경찰과 대치 끝에 탈주범의 자살로 마무리된 사례도 몇 차례 있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외치며 탈주극을 벌인 지강헌 사건도 그 중 하나다. 당시 지씨는 500만원을 훔친 죄로 징역 7년에 보호감호 10년 등 총 17년형을 선고받았다.


1988년 10월8일 지씨를 포함한 12명의 미결수들은 교도소 이감 과정서 미리 준비한 흉기로 수갑을 풀고 호송버스를 탈취했다. 지씨의 탈주극은 인질극으로 이어졌다.

지씨 일행은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의 한 가정집에 침입, 가족을 인질로 잡고 경찰과 대치하던 중 2명이 머리에 총을 쏴 자살했다. 지씨는 유리조각으로 목을 그어 자살을 시도했으나 경찰이 쏜 총을 맞고 과다출혈로 숨졌다.

탈주범의 자살로 탈주극의 전말이 온통 베일에 가려진 사건도 있다. 살인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박봉선은 역시 살인 혐의로 징역 15년을 받은 신광재, 폭력 초범이었던 김모군과 함께 탈옥을 도모했다. 감옥 쇠창살을 자르고 교도소 담벼락을 넘는 등 세 사람의 탈주 방식은 대범했다.

실사판 쇼생크 탈출? 현실은 달라
탈주범들 대부분 한 달 내 붙잡혀

1990년 12월27일 이들은 감방 창문에 설치된 철책 2개를 쇠톱으로 자르고 사물함으로 쓰던 선반으로 사다리를 만들어 4.5m 높이의 교도소 담을 넘었다. 세 사람의 행각은 이틀 만에 경찰의 감시망에 걸렸다.

박씨와 신씨는 경찰의 포위망이 좁혀오자 탈주 당시 경찰에게 빼앗은 총으로 자살했다. 공범이었던 김모군은 경찰에 연행됐으나 단순 공범 수준이어서 아는 바가 없었다. 두 사람의 자살로 직경 2㎝의 쇠창살이 어떻게 잘렸는지, 어떻게 수시로 복도를 오가는 교도관의 눈을 피했는지 등은 영원히 미스터리로 남았다.

무기수로 수감 중이던 재소자가 귀휴제도를 통해 교도소 밖으로 나갔다가 잠적 후 자살한 사례도 있었다.강도·살인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홍승만은 2015년 4월 귀휴 허가를 받고 나갔다가 연락이 끊겼다.


1962년부터 시행된 귀휴제도는 6개월 이상 복역한 수형자가 형기의 3분의 1이 지나고 교정성적이 우수하면 1년 중 20일 내로 귀휴 허가를 받을 수 있는 제도다. 홍씨가 잠적 8일 만에 유서를 남기고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되면서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대도’ 조세형 탈주사건도 빼놓을 수 없다. 전문털이범이었던 조씨는 부유층과 권력층 집만 골라 털어 대도라는 별명이 붙었다. 조씨의 범행은 피해 사실을 극구 숨기려 드는 피해자들의 행태로 더욱 유명세를 탔다.

1982년 검거된 조씨는 1983년 결심 공판날 구치소로 돌아가기 전 구치감 문을 부수고 복도로 나와 환풍기를 뜯고 탈주했다. 조씨는 탈주 후 다섯 차례나 주택에 몰래 침입해 음식, 현금, 옷가지 등을 훔쳤다. 조씨의 도주극은 장충동 주택가서 그를 발견한 한 청년의 신고로 5일 만에 막을 내렸다.

관련 경찰들
여럿 옷벗어

법원서 탈주를 시도한 일도 발생했다. 2000년 1월 특수강도죄로 14년을 복역한 정필호는 호송버스서 재소자 두 사람을 만나 탈주 계획을 전했다. 정씨는 감방 내 방범창틀을 잘라낸 뒤 화장실 시멘트 바닥에 갈아 날카롭게 만들었다.

정씨는 2차 재판기일이었던 2000년 2월24일 춥다는 핑계로 평소보다 훨씬 많은 옷을 껴입고 흉기를 허리춤에 감췄다. 이후 정씨는 광주지법서 교도관이 수갑을 풀어주자 그 틈을 타 흉기로 교도관을 찌르고 도주했다. 낮에는 서울 지역 야산서 은신하고, 밤에는 도심 부근에 내려와 도피 행각을 벌이던 정씨는 탈주 13일 만에 경찰과 격투 끝에 검거됐다.
 

유치장서 온몸에 연고를 바르고 배식구를 통해 탈주한 사례도 있었다. 2012년 9월 강도·상해 피의자였던 최갑복은 대구동부경찰서 유치장서 경찰이 졸고 있는 틈을 타 탈주했다. 최씨는 연고를 발라 몸을 매끄럽게 만든 뒤 가로 45㎝, 세로 15㎝ 유치장 배식구를 빠져나가 대중을 경악케 했다.

신창원·이낙성 희대의 탈옥
경찰과 대치 자살로 끝내기도

최씨가 배식구를 빠져나오는 데 걸린 시간은 30여초 남짓. 이후 그는 2m 높이의 창문에 매달려 창살 사이를 벌리고 1분 만에 도망쳤다. 최씨의 탈주 행각은 미국 CNN이 뽑은 ‘희대의 탈옥 사건’으로 뽑힐 정도로 기상천외했다.

최씨는 탈주 직전 3번에 걸쳐 예행연습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씨의 탈주 당시 근무 중이던 경찰관들은 근무소홀 등의 이유로 징계를 받았다. 최씨는 1990년 7월에도 경찰 호송버스 뒤쪽 쇠창살을 뜯고 탈주했다가 이틀 만에 검거된 바 있다.

대부분 재소자들의 탈주가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짧게 끝나는 것에 반해 탈주 후 1년6개월 이상 도주해 경찰을 놀라게 한 탈주범들도 있다.

신창원은 1997년 1월 부산교도소를 탈옥한 뒤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경찰을 농락해 ‘희대의 탈주범’으로 불린다. 절도 등으로 소년원과 교도소를 들락거리던 신씨는 1989년 3월 공범과 함께 서울 성북구 돈암동의 한 가정집에 침입, 집주인을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6개월간 수배생활 끝에 같은 해 9월 검거된 신씨는 강도치사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탈주 당시 신씨는 1994년 부산교도소로 이감돼 복역 중이었다. 신씨는 노역작업 중 손에 넣은 작은 실톱날 조각으로 4개월에 걸쳐 화장실 쇠창살을 잘라냈다. 당시 부산교도소는 교회 공사를 위해 교도소 외벽 일부가 철거되고 철제 울타리로 대체된 상태였다.

관리는 허술
제보 결정적

신씨의 탈주는 감방 동료 사전 포섭설, 교도소 묵인설이 제기될 정도로 신출귀몰했다. 신씨는 부산교도소에서 오랜 시간 모범수로 지내고, 15㎏ 이상 감량하는 등 탈주를 위해 치밀한 준비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씨가 외부환기통을 타고 공사장서 주운 밧줄을 이용해 공사장 담을 넘어 교도소를 빠져나가는 데 걸린 시간은 1시간30분 정도였다. 교도소 탈주에 성공한 신씨는 화훼농가에 침입, 옷을 훔쳐 입고 택시를 타고 서울로 잠입했다. 2년6개월에 걸친 도주극의 시작이었다.

신씨는 도주 기간 동안 여러 차례 경찰과 맞닥뜨렸지만 유유히 따돌려 ‘다람쥐’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그는 경찰이 쏜 가스총을 맞고도 도주한 적이 있으며, 그 과정서 빌라 5층 높이에서 뛰어내리는 대담성을 보이기도 했다.
 

신씨의 변호사였던 엄상익 변호사는 <신창원 907일의 고백>이라는 책을 통해 그의 탈옥, 검거 순간, 도주 당시 행적 등의 얘기를 담았다. 책에는 신씨가 도주 과정서 다방 종업원, 주유소 종업원 등 15명의 여자들과 동거했으며 절도 행각으로 생활비를 마련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어 화제를 모았다.


신씨의 도주 행각은 집에 방문한 가스수리공 이모씨의 눈썰미 덕분에 막을 내렸다. 이씨는 한 아파트에 가스레인지 수리를 하러 갔다가 신씨로 보이는 남자를 발견했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이씨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1999년 7월 신씨를 검거하면서 그의 도주극은 끝을 맺었다.

신씨가 검거 당시 입고 있던 화려한 티셔츠가 큰 관심을 받는 등 그는 도주극 내내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신씨는 검거 이후 무기징역 외에 22년3개월의 형을 추가로 언도받고 복역 중이다.

보호감호 도중 치핵 수술을 위해 병원에 입원했다가 탈출해 1년7개월 만에 검거된 이낙성 역시 경찰에게는 악명 높은 탈주범이다. 이씨는 1986년 절도 혐의로 처음 체포된 후 1988년 강도·상해 혐의로 12년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2001년 강도 혐의로 또 다시 체포돼 징역 3년에 보호 감호 7년을 선고받았다.

2004년 1월부터 청송감호소서 보호 감호를 받던 이씨는 2005년 4월 경북 안동시 한 병원에 입원했다가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탈주했다. 이후 그는 지하철 2호선 사당역 근처에 내린 후 종적을 감췄다.

이씨가 1년7개월간 자취를 감춘 사이 청송보호소 보안과장이 직위 해제됐고, 이씨의 탈주에 협조한 친구 염모씨가 구속됐다. 또 극히 열악한 수용환경과 이중처벌 논란이 있었던 청송보호감호소가 폐쇄되기도 했다.

경찰은 2005년 6월 전국 10개 경찰서에 이낙성 수사 전담반을 추가 편성했다. 그 이후에도 4개월 이상 도피행각을 벌인 이씨는 같은 해 10월 서울 영동병원에서 체포됐다. 이씨는 검거 당시 윗니 몇 개가 완전히 빠졌고 아랫입술, 턱 등이 찢어지는 부상을 당한 상태였다.

이씨는 ‘정종철’이라는 가짜 이름을 대는 등 신원을 밝히지 않고 있다가 도주했다. 병원 관계자의 신고를 받은 경찰은 근처 은행 지점 앞에서 이씨를 체포했다.

목숨 건 도주
허무하게 막 내려

사망설, 중국 밀항설 등 갖가지 소문이 돌 정도로 철저히 숨어있던 이씨의 도주는 그렇게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이씨는 도주 기간 동안 인력시장을 찾아가 중국집 등에서 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검거 이후 “도주한 것을 후회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최장기 탈옥수' 신창원은 지금?

‘최장기 탈옥수’신창원의 근황이 화제다. 탈주범들은 대부분 탈주 후 한 달 이내에 경찰에 검거되거나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그와 비교하면 신씨의 2년6개월간 도주 행각은 기함할 수준. 신씨가 도주 기간 동안 움직인 거리는 4만㎞에 달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4만㎞는 서울과 부산을 약 50회 왕복한 만큼의 거리다.

그의 탈옥으로 수많은 경찰들이 옷을 벗었다. 경찰은 신씨를 검거하기 위해 헬리콥터를 띄우고 전경을 동원하는 등 총력을 다했으나 번번히 눈앞에서 놓치면서 망신살을 샀다.

신씨가 부산교도소를 탈주했던 1997년부터 가스수리공의 제보로 1999년 검거되기까지 전국이 들썩일 정도로 그에 대한 관심이 컸다. 신씨가 체포 당시 입고 있던 화려한 빛깔의 티셔츠가 대중 사이에서 유행할 정도였다.

신씨는 재검거 된 후 항소심에서 22년6개월형을 추가로 선고받았다. 그는 교도소에서 모범적으로 생활하며 지난 2004년에는 고입검정고시에 합격하기도 했다. 이전까지 신씨의 학력은 중학교 중퇴였다.

신씨는 국가와 교도소장 등을 상대로 4건의 소송을 제기한 적도 있다. 당시 모든 소장을 직접 작성한 것으로 알려져 놀라움을 자아냈다.

2009년 신씨는 자신이 작성한 편지 12통의 발송이 불허되자 교도소장을 상대로 서신발송 불허처분 취소와 300만원의 손해배상금 지급을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그보다 앞서 신씨는 교도소 내 수용자 인성교육의 문제점을 담은 신문기고용 서신 발송이 불허되고 외부 서신 2통을 받지 못한 데 대해 정보비공개 처분취소와 손해배상금 150만원을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두 건의 행정소송은 신씨가 취하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 취하의 이유는 뚜렷하게 알려진 바가 없다.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는 승소를 하기도 했다. 신씨는 “교도소에서 기자 접견을 막고 편지를 외부로 보내주지 않아 피해를 봤다”며 2008년 국가를 상대로 300만원의 위자료를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은 대법원까지 갔다. 1·2심 재판부는 신씨의 정신적 고통을 인정해 일부 승소 판결했고, 대법원은 “소액사건에서는 원심 판결이 대법원 판례에 위배될 때 상고할 수 있는데 원심이 대법원 판례에 상반되는 판단을 했다고 할 수 없다”는 입장을 들어 100만원을 지급하라는 원심을 확정했다.

이와 별개로 신씨가 수감생활 중 디스크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도 500만원을 지급하라는 1·2심 재판부의 판결이 있었다.

국가 등을 상대로 한 소송으로 세간을 깜짝 놀라게 한 신씨는 2011년 11월 독방에서 자살을 기도해 또 한 번 대중의 입에 오르내렸다. 신씨는 11월18일 새벽 4시10분경 교도소 독방에서 고무장갑으로 목을 졸라 자살을 기도했다. 당시 신씨가 머물던 독방에서는 ‘죄송합니다’라는 글이 발견되기도 했다. 정확한 자살 기도 원인은 공개된 바 없지만 부친의 사망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한동안 조용하던 신씨의 근황은 뜻밖에도 이해인 수녀를 통해 전해졌다. 이해인 수녀는 지난 4월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신씨와 연락하며 지낸다고 말했다. 이해인 수녀는 “(신씨가) 시의 매력에 빠져있다더라.다섯 편을 쓰면 제게 보내겠다고 해서 격려해줬다”고 전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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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트럼프발’ 통상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앞서 못 박은 시한은 끝났다. 우리나라는 유예 기간이 끝나기 전날 타결했다. 이제 협상 결과를 두고 계산기를 두드려야 할 때다. 일본과 유럽연합(EU), 그리고 한국. <일요시사>가 세부 내용을 들여다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각국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미국을 상대로 돈을 번, 즉 대미 무역 흑자를 거둔 나라들이 표적이 됐다.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부터 전 세계는 ‘트럼프발’ 통상 전쟁에 휘말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숫자를 외칠 때마다 세계 경제가 요동쳤다. 하루 전 극적 타결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다소 늦게 통상 협상을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지난 6월 조기 대선이 치러질 때까지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탄핵심판 등 대형 정치 이슈가 거듭되면서 미국과 협상을 하고 싶어도 테이블에 앉을 사람이 마땅치 않은 상태였다. 실제 한덕수 전 국무총리나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등이 협상에 나섰지만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제동을 걸었다. 또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 선언, 최 전 부총리 탄핵안 상정 등의 상황이 겹치면서 미국과의 협상은 큰 진전 없이 시간만 흘렀다. 이후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우리나라는 좀처럼 미국 실무진과 접점을 찾지 못했다. 그 사이 트럼프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모든 한국산 제품에 대해 산업별 관세와는 별도로 25%의 일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시한은 지난 1일로 못 박았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FTA 체결로 사실상 무관세 수준이었기에 관세 부과가 현실화하면 경제 전반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자동차나 반도체 등 핵심 수출 품목에 붙는 관세 외에도 비관세 장벽(관세 이외의 수단으로 무역을 제한하는 조치)을 허물라는 압박도 가해졌다. 쌀이나 소고기 등 농·축산물 시장 개방, 정밀 지도 반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이 협상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예상됐다. 국내 상황과 맞물려 쉽게 내주기 어려운 조건들이었다. 일·EU와 같은 15%로 막아 대미 투자는 3500억달러로 협상도 난항을 겪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 통상 협상을 하루 앞두고 출국하려다 미국 측의 취소로 불발하는 일이 일어났다. 앞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방한을 닷새 앞두고 일정을 취소하기도 했다. 미국 고위급 인사들과의 만남이 잇따라 무산되면서 ‘한미 관계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일본과 유럽연합(EU)이 차례로 미국과 협상을 타결하면서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특히 일본의 협상 결과가 공개되면서 우리나라가 최소한으로 맞춰야 할 기준이 생겨버렸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자동차 등 수출 품목이 일부 겹치기에 일본보다 관세가 높아지면 수출 경쟁력이 망가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일본과 무역 협상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일본산 수입품에 부과하는 상호관세는 15%다. 기존 25%에서 10%포인트 줄어들었다. 일본이 미국에 5500억달러(약 759조원)를 투자할 것이고 이 중 90%의 수익을 미국이 받게 된다고도 했다. 동시에 자동차와 농산물을 일부 개방한다는 조건도 달렸다. 지난달 27일에는 미국과 EU가 관세 협상을 타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EU로부터 수입되는 모든 품목에 대해 일괄적으로 1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산 에너지 7500억달러(약 1030조원) 구매 및 대미 투자 6000억달러(약 820조원) 확대 방안을 담은 ‘무역협정 틀’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일본과 EU의 협상 타결로 미국의 협상 전략이 윤곽을 드러냈다. 관세를 낮추는 조건으로 무엇을, 얼마나 내놓느냐가 관건이 된 것이다. 관심이 집중된 부분은 대미 투자액이었다. 애당초 통상 전쟁 자체가 타국이 얻는 대미 무역 흑자를 줄이겠다는 명목으로 시작된 터라 트럼프 대통령은 상대국에 대미 투자라는 일종의 ‘청구서’를 요구한 셈이다. 일본이 5500억달러, EU가 6000억달러를 미국에 각각 투자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리나라에 날아올 청구액에 관심이 쏠렸다. 협상 시한이 다가오면서 언론보도 등을 통해 3000억달러, 4000억달러 등의 추측이 난무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제멋대로’ 외교에 우리나라 협상팀이 휘둘리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 쌀 소고기 지켰다는데 우리나라는 협상 시한을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 한국산 제품에 대한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을 골자로 협상을 타결했다. 일단 일본, EU와 동일한 수준으로 관세 인하를 이끌어낸 것이다. 관심을 모았던 자동차 관세율은 15%, 철강·알루미늄·구리는 기존 관세율(50%)을 유지하기로 했다. 또 반도체와 의약품 관세 부과 시 최혜국 대우도 약속받았다. 다른 나라보다 불리한 관세를 적용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부분도 일본, EU와 같은 합의 내용이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민감한 품목으로 분류됐던 쌀과 쇠고기 등의 개방은 하지 않는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농산물 전면 개방을 언급해 향후 변동 가능성을 지켜봐야 한다. 대미 투자액은 3500억달러(약 490조원)로 결정됐고 1000억달러(약 140조원) 상당의 액화천연가스(LNG) 또는 기타 에너지 제품을 수입하기로 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한국과 일본의 대미 무역 상황은 지난해 기준 각각 660억달러 흑자, 685억달러 흑자로 규모가 유사한 상황에서 일본보다 작은 규모인 3500억 달러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며 “기업이 주도하는 조선펀드 1500억달러를 제외하면 우리 펀드 규모는 2000억달러로 일본의 36%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합의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미국과 조선업 분야 협력을 확대하기로 한 것”이라며 “한미 조선협력펀드 1500억달러는 선박 건조, MRO(유지·보수·정비), 조선 기자재 등 조선업 생태계 전반을 포괄한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협상팀은 조선 협력을 내세운 게 협상 타결의 ‘키’였다고 자평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브리핑을 하며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가 협상 타결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밝혔다.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구호인 ‘매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에서 따온 표현이다. 자동차는 관철 못 해 아쉬운 부분으로는 자동차 관세를 꼽았다. 이전까지 우리나라 자동차는 관세가 0%였다. 2.5%였던 일본과 비교해 근소하게 가격 경쟁력을 가졌다. 하지만 이번 협상 타결로 일본과 똑같은 15% 관세가 결정되면서 자동차 업계는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됐다. 우리나라 협상팀이 끝까지 자동차 관세 12.5%를 요구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 15%’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큰 고비를 하나 넘었다”며 “이번 협상으로 정부는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을 없애고 미국 관세를 주요 대미 수출 경쟁국보다 낮거나 같은 수준으로 맞춤으로써 주요국들과 동등하거나 우월한 조건으로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고 평했다. 협상 결과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 일단 ‘최악은 면했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협상 타결이 이뤄지기 전까지 유예 기간을 놓쳐 관세 25%를 맞을 수도 있다고 우려한 것에 비하면 나름 ‘선방했다’는 의견이다. 동시에 미국이 내민 청구서의 구체적인 부분을 더 살펴야 한다는 신중론도 존재한다. 일본 등은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타결 발표와 실제 합의 내용이 다르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결정된 사항을 즉흥적으로 바꾸는 등 외교 과정에서 ‘오락가락’하는 면모를 보인 적이 여러 차례 있다.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불확실성을 극대화하는 협상 기술을 사용한다는 평이다. 정밀 지도·국방비 등 안보 이슈 백악관서 만나 대통령끼리 담판?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와의 협상 타결 내용을 발표하면서 언급한 정상회담이 ‘진짜’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는 “한국이 투자 목적으로 상당한 금액을 추가 투자하기로 합의했다”면서 2주 내로 이재명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투자액이 발표될 것이라고 했다. 추가 청구서가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 통상 협상에서 논의되지 않은 정밀 지도 반출 문제가 협상 테이블에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지도 반출 등 안보 사안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별도로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지도 반출과 관련해) 우리가 계속 방어해왔다. 추가 양보는 없다”고 말했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3월 <2025 국가별 무역 장벽 보고서>에서 정밀 지도 반출 제한을 한국과의 디지털 무역 장벽 중 하나로 지목했다. 우리나라 정부는 군사기밀 유출을 우려해 정밀 지도의 국외 반출을 막아왔다. 정밀 지도에 해외 기업이 가진 위성사진을 결합하면 국가 안보와 직결된 지도 정보로 완성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정계와 IT업계는 정밀 지도를 반출해야 한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협상에서는 다뤄지지 않았지만 정상회담의 의제로 오를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주한미군 주둔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문제도 거론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들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5% 이상을 국방비 예산으로 잡으라고 압박했다. 우리나라에도 대선 후보 시절부터 방위비 분담금으로 100억달러를 내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하는 등 전방위로 요구한 바 있다. 추가 청구 나올까? 한미 정상회담은 이 대통령의 ‘외교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G7 정상회의에 참석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다. 나토 회의에는 이 대통령 대신 위성락 안보실장이 참석했다. 이번 정상회담이 ‘안보’ 회담이 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딜을 벌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