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당하는 할머니들 '도대체 왜?'

“저항? 늙은이가 뭔 힘이 있다고…”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성범죄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은 분노로 가득하다. 성범죄는 ‘영혼을 할퀴는 행위’라고 할 정도로 피해자의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남기기 때문이다. 잇따라 발생한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가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가운데 상대적으로 물밑에 가라앉아있는 노인 대상 성범죄에 대해 <일요시사>가 조명해 본다.

한국은 전 세계서 가장 빠르게 '늙고 있는' 나라다. 지난 3월, 통계청이 내놓은 ‘2015년 한국 사회 지표’를 보면 지난해 우리나라 총 인구 5062만명 가운데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13.1%를 차지했다.

고령사회 진입
문제 폭발 직전

통계청이 예측한 바에 따르면 2040년에는 노인 인구가 전체의 32.3%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30여년 뒤에는 전체 인구 3명 가운데 1명이 현행 복지법상 노인(65세 이상)인 사회로 접어들게 된다. 이처럼 노인 인구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지만 이들의 삶은 빈곤과 학대, 범죄, 자살 등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전 세계 노인빈곤율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노인의 절반 정도(48.6%)가 상대적 빈곤 상태에 빠져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타 국가와 비교했을 때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다. 상대적 빈곤을 겪는 노인이 늘어나면서 우울증 등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비중 또한 커졌다. 이는 노인자살률 증가라는 극단적인 상황으로 이어졌다.

2014년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70세 이상 노인의 자살률은 10만명당 116.2명이었다. 최소 5.8명에서 최대 42.3명인 다른 나라와 비교해 최대 20배나 높다.


노인빈곤율 1위 노인자살률 급증
대상 범죄 늘어나는데 대책은 없어

문제는 빈곤, 정서적 불안정, 자살 등 고통받고 있는 노인들이 범죄에도 무방비하게 노출돼 있다는 점이다. 이 중 여성 노인에 대한 성범죄는 특히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통계 수치나 대책 마련을 위한 전문가들의 논의를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언론에 공개된 경찰범죄통계에 따르면 60세 이상 피해자를 상대로 한 강간, 강제추행 등의 성범죄는 2012년 304건, 2013년 417건, 2014년 445건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이 중 여성 노인을 상대로 한 범죄건수는 2012년 297건, 2013년 394건, 2014년 419건으로 전체 범죄 건수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 성범죄 신고율이 10% 미만이라는 것을 감안하고, 여성 노인들에 대한 사회적 시선을 고려하면 공개된 피해자의 숫자는 극히 일부일 수 있다.

사단법인 한국여성의전화가 지난 2012년 11월 진행한 ‘여성노인성폭력 토론회’서 서재인 쉼터소장과 신상희 가정폭력상담소장이 발표한 발제문에 따르면 여성 노인은 성폭력 범죄에서 가장 매력적인 범죄 대상으로 꼽힌다.

▲첫 번째 표적 이유 = 여성 노인의 상대적으로 허약한 신체적 특성이 자기 방어와 도주를 어렵게 하기 때문에 가해자에게 손쉬운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고령의 독거노인
표적되기 쉬워


2015년 10월, 80대 여성 노인을 상대로 50대 남성이 저지른 엽기적인 성폭행 사건은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한다. 사건의 가해자인 김모씨는 서울 중랑구 망우동서 만취한 상태로 치매에 걸린 80대 할머니 A씨를 따라가 마구잡이로 폭행을 가했다.

김모씨는 심한 폭행을 당해 완전히 정신을 잃은 A씨를 보고도 범행을 멈추지 않았다. A씨의 하의를 벗긴 후 중요 부위에 물체를 집어넣는 끔찍한 짓을 자행한 것이다.

김모씨는 신체적, 정신적으로 약한 상태에 있던 피해자를 잔인하게 유린했다. 해당 사건을 담당한 검찰 관계자는 가해자의 범행에 ‘입을 다물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2012년 경기도의 한 요양원서 40대 남성 사회복지사가 일으킨 성폭행 사건도 비슷한 사례 가운데 하나다. 당시 사회복지사 김모씨는 약에 취해 움직이기 힘든 상태에 있던 61세의 여성 입소자 B씨를 상대로 2012년 7월부터 8개월 넘게 상습적으로 주1~2회씩 범행을 저질렀다. B씨는 뇌수술을 받아 거동도 불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는 가족도 없이 기초생활수급비만으로 생활했던 터라 사건이 알려지면 요양원서 쫓겨날까 봐 신고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가해자는 이런 B씨의 상황을 악용, 사건의 전말이 밝혀진 이후에도 “서로 좋아서 한 일”이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두 번째 표적 이유 = 여기서 여성 노인 상대 성범죄의 또 다른 특징이 드러난다. 혼자 살고 있거나 보호자가 없는 여성 노인이 범죄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피해자의 집에서 범행이 이뤄질 경우 목격자가 없을 가능성이 높은데, 이는 사건이 알려지더라도 법정에서 피해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가해자 입장에선 ‘신체적, 정신적으로 약한 존재에게 보는 사람도 없는 상황에서 위해를 가할 수 있는 범죄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다.

위험에 무방비 노출
신고 못하고 속앓이

한국여성의전화에서 2006년부터 2012년까지 언론에 보도된 여성 노인성폭력 사건 39건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이 중 27건이 피해자가 혼자 살고 있는 집에서 발생했다.

2012년 8월, 서울 강북구 미아동에선 78세 할머니 C씨가 옷이 벗겨진 채로 숨진 채 발견된 일이 있었다.

경찰수사 결과 가해자 노모씨는 귀화한 방글라데시 출신의 30대 남성으로, 휴대전화 관련 사업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씨는 C씨의 집 현관문이 열려있는 틈을 타 침입, 성폭행하고 목을 졸라 살해한 것으로 조사결과 드러났다. 노씨는 2013년 1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피해자 C씨는 20년 넘게 혼자 살면서 폐지를 모아 생활비를 마련했던 기초생활수급자였다.

앞서 같은 해 1월에는 경기도 의정부시에서 만취 상태의 30대 남성이 혼자 사는 70대 할머니 D씨의 집에 침입, 성폭행을 하려다 저항하자 주먹으로 폭행해 숨지게 한 사건도 있었다. D씨는 살해당한 다음날 독거노인 돌보미에 의해 발견됐다.


▲세 번째 표적 이유 = 보통 사람들이 여성 노인을 보면 대부분 엄마, 아내, 할머니 등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여성 노인을 하나의 인격체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누군가와 관계된 존재로 여기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여성 노인은 여자도 남자도 아닌 무성적 존재라는 시각이 발생한다. ‘세상에는 여성, 남성 그리고 아줌마가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이 같은 시각을 방증한다.

여성 노인을 바라보는 보편적 통념은 성범죄를 당한 피해자들이 신고를 꺼리는 하나의 요소로 작용한다. 아동이나 청소년은 평소와 다른 언행, 상담 등에서 피해 사실이 드러나는 경우가 있지만 여성 노인은 상대적으로 그런 일이 적은 편이다.

자기방어 약해
거의 신고 꺼려

한국여성의전화 자료집에 따르면 여성 노인들은 성범죄 피해를 입는 경우, 딸을 통해 대리상담을 하는 경우가 있다. 2012년 7월 성폭행 피해를 입은 피해자 딸의 대리상담 사례를 보면 “엄마가 사회복지사에게 강간을 당했다. 나는 고소하고 싶은데 엄마는 동네 소문나는 것도 걱정되고 묻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크다고 하신다”는 내용이 있다.

2012년 3월 언론에 보도된 사건을 보면 경남 거창서 62세 K씨가 2010년 집에 침입한 일용직 노동자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내용이 있다. 그런데 가해자는 다음날에도 또 K씨를 찾아가 범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자식들에게 부끄러워서라도 신고를 못할 거라 생각했다는 것이다.

한국여성의전화 서재인 쉼터소장은 “여성 노인들은 정조를 지키는 것이 생명을 지키는 것이며 여성으로서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라 여겨졌던 시대에 살았다”며 “이런 이들에게 성폭력은 극도의 수치심과 공포를 준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들은) 피해에 집중해 사건을 해결하려는 의지보다 동네에 소문이 나고, 자식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까 봐 드러내기를 주저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여성 노인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환기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여성 노인에 대한 성범죄가 없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심이 부족하기 때문에 피해가 없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것이다.

당해도 끙끙
소문날라 쉬쉬
 

2012년 당시 자료집을 준비했던 한국여성의전화 관계자들은 토론회를 준비하면서 여성 노인 성폭력에 대한 자료가 거의 없어 애를 먹었다. 세계적으로 유례 없는 속도의 고령화사회(65세 이상의 인구가 총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7% 이상인 사회)서 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가 총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4% 이상)로 향하고 있는 지금, 더 늦기 전에 여성 노인 성폭력 예방을 위한 대안 마련과 그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노인 성폭행 문제’ 2012년 평택 피해자 자살사건 전말
가해자 활보에 극단적 선택

2012년 10월, 국내 한 병원서 치료를 받던 도중 30대 간호조무사에게 성폭행 피해를 입은 60대 여성이 집에서 투신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 A씨는 “한 여성의 인격과 미래를 파괴한 가정파괴범이 이에 대한 죗값을 받아야 함에도 법 절차는 제가 기댈 곳이 없었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악몽이 시작된 건 지난 8월이었다. 피해자는 8월10일 오른쪽 다리 하지정맥 수술을 받기 위해 B병원에 입원했다. 그러다 12일 압박붕대가 풀려 처치를 받기 위해 갔던 2층 석고처치실에서 간호조무사인 C씨에게 성폭행을 당한 것이다. A씨는 처치 도중 자꾸 여성의 중요 부위를 만지는 B씨에게 그만하라고 화를 냈지만 B씨는 A씨의 입을 강제로 막기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A씨는 틀니 하나가 부러지고 중요부위에 열상, 타박상 등 상해를 입었다. 사건 당시 A씨는 좌측 손은 장애 4급, 우측 손에는 링거 주사를 맞고 있었고, 오른쪽 다리는 하지정맥 수술 때문에 저항이 어려운 상태였다. A씨는 성폭행 피해를 인지하고 가족들에게 얘기했고, A씨의 남편은 가해자 B씨에게 자인서를 쓰도록 했다. 자인서 하단 부분에는 (자인서를 쓴 것이) 강제가 아니었다는 것을 확인한다는 내용과 함께 B씨가 친필 서명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가해자의 태도가 돌변했다. 자인서를 강제로 썼다고 번복하고 피해자가 자신을 유혹했다는 식으로 몰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사건을 분석한 평택성폭력상담소 김지숙 소장은 병원 측의 태도, 경찰수사 과정, 검찰수사 과정, 법원 등에서 여성 노인 성폭력 사건에 대한 문제점이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여성 노인 성폭력과 관련해 내놓은 자료집에 따르면 평택 사건에서는 담당 검사가 총 4번 바뀌었고, 그 과정에서 피해자의 현장 검증이 두 차례 이뤄졌다고 한다.

사건 가해자가 범행을 하지 않은 것을 입증하는 게 아니라, 피해자에게 피해사실을 입증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A씨는 극도의 수치심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법원이 가해자에 대한 구속 영장을 기각하자 A씨는 큰 불안감을 느꼈고, 이는 자살로 이어지는 계기가 됐다는 지적이 있다.

김 소장은 “노인과 성인여성 피해자에 대한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면서 “특히 의료기관 내 성폭력 발생 시 병원에 대한 제재 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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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국방부 문건이 대규모로 파쇄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조치는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의 지시로 이뤄졌다. 오 전 기획관은 검찰 특수본과 재판서 정보사와 수사2단 인사안의 문제점을 증언했던 인물이다. 자신이 비상계엄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수사에 협조한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올해 초 신년맞이 대청소라면서 문서를 대량으로 파쇄했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국방부 직원들의 말이다. 파쇄된 문건들은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자료라고 한다. 지시자는 오영대 전 국방부 인사기획관이다. 검찰 수사에 협조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으나 실상은 다르다는 게 군 내부자들의 주장이다. 뭘 숨기나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말 취임하면서 시작한 첫 번째 군 개혁은 인사다. 신임 인사기획관에 일반 공무원 출신인 이인구 군사시설기획관을 임용한 건 안 장관이 강조해 왔던 ‘군 문민통제’와도 맞닿아 있다. 인사기획관은 본래 예비역 장성이 맡아왔다. 이 신임 기획관의 전임자였던 오 전 기획관도 예비역 준장 출신이다. 군 내부에서는 국방부에 여전히 12·3 내란 사태에 협조한 군인들이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핵심으로 인사기획관실의 총괄과이자 인사기획관의 일정, 예산 등을 모두 관리하는 인사기획관리과가 언급된다. 다수의 국방부 관계자들은 “오 전 기획관은 물러났지만 책임져야 할 다수의 인물이 아직 자리를 보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부서의 간부들은 전부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다. 과장 김모 대령은 오 전 기획관이 대령이었을 때 소령으로 근무했고, 총괄 이모 중령은 오 전 기획관이 특전사 여단장을 역임했던 1공수여단서 중대장과 707중대장을 거쳤다. 장군인사팀장 김모 대령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수도방위사령관으로 근무했던 시절 비서실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김 전 장관과 가깝거나 육사 출신인 이들이 국방부 인사의 핵심부서인 인사기획관리과에 포진하면서 계엄 실행을 위한 보직 이동이 이뤄진 셈이다. 김 전 장관은 실제 대통령경호처장일 때부터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과 군 인사에 대해 논의했다. 직무에서 배제되지 않은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장관이 모든 책임을 오 전 기획관에게 묻는 형식으로 퇴직을 시켰으니 우리는 지시를 받아 어쩔 수 없이 한 것처럼 조용히 지내면서 정부초기 개혁의 소나기만 피하면 진급 가능’이라며 서로서로 쉬쉬하고 있다고 한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내란 이후인 지난해 12월 중순 오 전 기획관의 지시에 따라 문건 파쇄를 계획했다. 김 전 장관이 물러난 이후 인사기획관리과장 김 대령 및 총괄인 이 중령 외에는 계획되지 않은 대면보고는 금지했고 내부 보안에 심혈을 기울였다. 인사과 간부들 계엄 실패 후 12월 계획···1월 파쇄 “지시자는 검찰 수사 응했던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 한 달여 뒤 이 중령은 모든 과에 ‘신년맞이 대청소’를 하라고 전파했다. TF 자리 배치와 오래된 문건을 정리한다며 유독 인사기획관리과만 복도로 책상을 빼고, 대량 세절이 가능한 세절실을 예약해 엄청난 양의 문서들을 파쇄했다. 여기엔 내란 핵심 파일도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안 장관은 이와 관련해 국회에서 오 전 기획관에게 여러 차례 질문한 바 있다. 당시 오 전 기획관이 당황해하며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퍼지기도 했다. 이 중령은 동영상을 보며 웃는 직원들의 명단과 안 장관에게 제보한 인물을 색출하기 위해 탐문 활동을 벌여 오 전 기획관에게 추정해 보고했다. 이들은 모두 오 전 기획관으로부터 승진추천, 성과상여금, 각종 포상 등 인사상 불이익을 본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이 문건을 파쇄한 이유는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내란 당일 오후 10시가 넘은 시각임에도 퇴근하지 않고 사무실에 있던 오 전 기획관의 지시를 받은 이 중령은 각 과의 총괄 담당자들을 소집해 ‘계엄 선포가 됐는데 선제적으로 인사 관련 조치를 왜 안 하냐’ ‘합참에는 계엄사령부가, 지작사령부에는 지역계엄사령부가 곧 창설될 텐데 각 군 본부 및 지작사와 인사 지침을 협의해 계엄령 취지에 맞게 배포하라’고 강조했다. 특히 오 전 기획관은 계엄 해제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 테이블을 통과했음에도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서 이 중령에게 “(계엄이) 해제되긴 했는데 다시 시행될 수도 있으니 빨리 계엄사 창설 지원을 위한 인사 조치를 완성하고 지작사 병력에 대한 휴가 지침 및 통제 등 건의 사항을 받아보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 전 기획관은 내란 직전까지 김 전 장관의 의중에 따라 군 인사를 반영했다. 최근 내란 특검팀이 군 장성급 인사 자료 확보에 나선 것도 이에 관해 들여다보기 위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검팀은 최근 국방부 장군인사팀과 육군본부 장군인사실 등을 압수수색해 해당 부서 내 인사 관련 파일 등을 확보했다. 정치권에선 지난 2023년 11월과 지난해 4월 이례적인 인사가 이뤄졌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진급에 절박한 군 인사들을 계엄 실행 세력으로 활용했단 의혹이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윤석열정부 장군 인사는 특이하고, 이례적인 경우가 유독 많았다”며 “인사를 통해 군을 장악하고, 내란을 준비했다는 의혹 관련 특검의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3차 계엄 대비 문건 없애” 증거 인멸 국회서 해제 불구 지작사와 인사 논의?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은 지난 2023년 11월 인사에서 소장에서 중장으로 진급했다. 박안수 전 계엄사령관은 ‘75주년 국군의 날 행사기획단장 겸 제병지휘관’ 등 한직에서 2023년 10월 육군참모총장에 발탁됐다. 지난해 4월엔 지휘부에 이어 작전본부 인사가 이어졌다. 원천희 당시 육군 소장이 4차 진급으로 합참 정보본부장으로 승진했고, 이승오 소장은 군단장을 거치지 않고 합참 작전본부장으로 진급했다. 안찬명 당시 육군22사단장은 임명 5개월 만에 합참 작전부장으로 보직을 옮겼다. 통상 사단장은 1년 반~2년가량 보직을 맡는다. 군 안팎에서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왔던 이유다. 경질 위기이던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은 유임됐다. 그는 지난해 6월 정보사 군무원의 블랙요원 명단 국외 유출 사건 및 박민우 전 정보사 100여단장과의 갈등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신원식 전 안보실장은 지난해 8월 국회에서 “후속 조치를 강하게 할 생각”이라고 언급했지만, 다음 달 본인이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는 군 관계자에게서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이 장군들 인사에 대해 논의했고 오 전 기획관에게 전달됐다”는 진술을 확보한 바 있다. 위기감을 느낀 오 전 기획관은 특수본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기 시작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오 전 기획관의 특수본 진술조서를 보면 그는 “신원식 (전 국방부) 장관이 저와 원천희 국방부 정보본부장에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보직해임·정보사령관 교체 검토를 지시했으나 지난해 9월6일, 김 전 장관이 취임하면서 문 전 사령관에 대한 ‘현 보직 유지’를 지시했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이해하기 어려운 인사였다”고 했다. 앞뒤 달랐다 오 전 기획관은 “(문 전 사령관이 박 준장으로부터 고소당한 혐의가)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지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인사 조치는 없었다”며 “공론화된 문제고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는데도 이렇게 유야무야 넘어가는 일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