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당하는 할머니들 '도대체 왜?'

“저항? 늙은이가 뭔 힘이 있다고…”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성범죄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은 분노로 가득하다. 성범죄는 ‘영혼을 할퀴는 행위’라고 할 정도로 피해자의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남기기 때문이다. 잇따라 발생한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가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가운데 상대적으로 물밑에 가라앉아있는 노인 대상 성범죄에 대해 <일요시사>가 조명해 본다.

한국은 전 세계서 가장 빠르게 '늙고 있는' 나라다. 지난 3월, 통계청이 내놓은 ‘2015년 한국 사회 지표’를 보면 지난해 우리나라 총 인구 5062만명 가운데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13.1%를 차지했다.

고령사회 진입
문제 폭발 직전

통계청이 예측한 바에 따르면 2040년에는 노인 인구가 전체의 32.3%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30여년 뒤에는 전체 인구 3명 가운데 1명이 현행 복지법상 노인(65세 이상)인 사회로 접어들게 된다. 이처럼 노인 인구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지만 이들의 삶은 빈곤과 학대, 범죄, 자살 등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전 세계 노인빈곤율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노인의 절반 정도(48.6%)가 상대적 빈곤 상태에 빠져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타 국가와 비교했을 때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다. 상대적 빈곤을 겪는 노인이 늘어나면서 우울증 등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비중 또한 커졌다. 이는 노인자살률 증가라는 극단적인 상황으로 이어졌다.

2014년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70세 이상 노인의 자살률은 10만명당 116.2명이었다. 최소 5.8명에서 최대 42.3명인 다른 나라와 비교해 최대 20배나 높다.


노인빈곤율 1위 노인자살률 급증
대상 범죄 늘어나는데 대책은 없어

문제는 빈곤, 정서적 불안정, 자살 등 고통받고 있는 노인들이 범죄에도 무방비하게 노출돼 있다는 점이다. 이 중 여성 노인에 대한 성범죄는 특히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통계 수치나 대책 마련을 위한 전문가들의 논의를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언론에 공개된 경찰범죄통계에 따르면 60세 이상 피해자를 상대로 한 강간, 강제추행 등의 성범죄는 2012년 304건, 2013년 417건, 2014년 445건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이 중 여성 노인을 상대로 한 범죄건수는 2012년 297건, 2013년 394건, 2014년 419건으로 전체 범죄 건수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 성범죄 신고율이 10% 미만이라는 것을 감안하고, 여성 노인들에 대한 사회적 시선을 고려하면 공개된 피해자의 숫자는 극히 일부일 수 있다.

사단법인 한국여성의전화가 지난 2012년 11월 진행한 ‘여성노인성폭력 토론회’서 서재인 쉼터소장과 신상희 가정폭력상담소장이 발표한 발제문에 따르면 여성 노인은 성폭력 범죄에서 가장 매력적인 범죄 대상으로 꼽힌다.

▲첫 번째 표적 이유 = 여성 노인의 상대적으로 허약한 신체적 특성이 자기 방어와 도주를 어렵게 하기 때문에 가해자에게 손쉬운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고령의 독거노인
표적되기 쉬워


2015년 10월, 80대 여성 노인을 상대로 50대 남성이 저지른 엽기적인 성폭행 사건은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한다. 사건의 가해자인 김모씨는 서울 중랑구 망우동서 만취한 상태로 치매에 걸린 80대 할머니 A씨를 따라가 마구잡이로 폭행을 가했다.

김모씨는 심한 폭행을 당해 완전히 정신을 잃은 A씨를 보고도 범행을 멈추지 않았다. A씨의 하의를 벗긴 후 중요 부위에 물체를 집어넣는 끔찍한 짓을 자행한 것이다.

김모씨는 신체적, 정신적으로 약한 상태에 있던 피해자를 잔인하게 유린했다. 해당 사건을 담당한 검찰 관계자는 가해자의 범행에 ‘입을 다물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2012년 경기도의 한 요양원서 40대 남성 사회복지사가 일으킨 성폭행 사건도 비슷한 사례 가운데 하나다. 당시 사회복지사 김모씨는 약에 취해 움직이기 힘든 상태에 있던 61세의 여성 입소자 B씨를 상대로 2012년 7월부터 8개월 넘게 상습적으로 주1~2회씩 범행을 저질렀다. B씨는 뇌수술을 받아 거동도 불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는 가족도 없이 기초생활수급비만으로 생활했던 터라 사건이 알려지면 요양원서 쫓겨날까 봐 신고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가해자는 이런 B씨의 상황을 악용, 사건의 전말이 밝혀진 이후에도 “서로 좋아서 한 일”이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두 번째 표적 이유 = 여기서 여성 노인 상대 성범죄의 또 다른 특징이 드러난다. 혼자 살고 있거나 보호자가 없는 여성 노인이 범죄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피해자의 집에서 범행이 이뤄질 경우 목격자가 없을 가능성이 높은데, 이는 사건이 알려지더라도 법정에서 피해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가해자 입장에선 ‘신체적, 정신적으로 약한 존재에게 보는 사람도 없는 상황에서 위해를 가할 수 있는 범죄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다.

위험에 무방비 노출
신고 못하고 속앓이

한국여성의전화에서 2006년부터 2012년까지 언론에 보도된 여성 노인성폭력 사건 39건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이 중 27건이 피해자가 혼자 살고 있는 집에서 발생했다.

2012년 8월, 서울 강북구 미아동에선 78세 할머니 C씨가 옷이 벗겨진 채로 숨진 채 발견된 일이 있었다.

경찰수사 결과 가해자 노모씨는 귀화한 방글라데시 출신의 30대 남성으로, 휴대전화 관련 사업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씨는 C씨의 집 현관문이 열려있는 틈을 타 침입, 성폭행하고 목을 졸라 살해한 것으로 조사결과 드러났다. 노씨는 2013년 1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피해자 C씨는 20년 넘게 혼자 살면서 폐지를 모아 생활비를 마련했던 기초생활수급자였다.

앞서 같은 해 1월에는 경기도 의정부시에서 만취 상태의 30대 남성이 혼자 사는 70대 할머니 D씨의 집에 침입, 성폭행을 하려다 저항하자 주먹으로 폭행해 숨지게 한 사건도 있었다. D씨는 살해당한 다음날 독거노인 돌보미에 의해 발견됐다.


▲세 번째 표적 이유 = 보통 사람들이 여성 노인을 보면 대부분 엄마, 아내, 할머니 등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여성 노인을 하나의 인격체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누군가와 관계된 존재로 여기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여성 노인은 여자도 남자도 아닌 무성적 존재라는 시각이 발생한다. ‘세상에는 여성, 남성 그리고 아줌마가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이 같은 시각을 방증한다.

여성 노인을 바라보는 보편적 통념은 성범죄를 당한 피해자들이 신고를 꺼리는 하나의 요소로 작용한다. 아동이나 청소년은 평소와 다른 언행, 상담 등에서 피해 사실이 드러나는 경우가 있지만 여성 노인은 상대적으로 그런 일이 적은 편이다.

자기방어 약해
거의 신고 꺼려

한국여성의전화 자료집에 따르면 여성 노인들은 성범죄 피해를 입는 경우, 딸을 통해 대리상담을 하는 경우가 있다. 2012년 7월 성폭행 피해를 입은 피해자 딸의 대리상담 사례를 보면 “엄마가 사회복지사에게 강간을 당했다. 나는 고소하고 싶은데 엄마는 동네 소문나는 것도 걱정되고 묻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크다고 하신다”는 내용이 있다.

2012년 3월 언론에 보도된 사건을 보면 경남 거창서 62세 K씨가 2010년 집에 침입한 일용직 노동자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내용이 있다. 그런데 가해자는 다음날에도 또 K씨를 찾아가 범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자식들에게 부끄러워서라도 신고를 못할 거라 생각했다는 것이다.

한국여성의전화 서재인 쉼터소장은 “여성 노인들은 정조를 지키는 것이 생명을 지키는 것이며 여성으로서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라 여겨졌던 시대에 살았다”며 “이런 이들에게 성폭력은 극도의 수치심과 공포를 준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들은) 피해에 집중해 사건을 해결하려는 의지보다 동네에 소문이 나고, 자식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까 봐 드러내기를 주저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여성 노인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환기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여성 노인에 대한 성범죄가 없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심이 부족하기 때문에 피해가 없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것이다.

당해도 끙끙
소문날라 쉬쉬
 

2012년 당시 자료집을 준비했던 한국여성의전화 관계자들은 토론회를 준비하면서 여성 노인 성폭력에 대한 자료가 거의 없어 애를 먹었다. 세계적으로 유례 없는 속도의 고령화사회(65세 이상의 인구가 총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7% 이상인 사회)서 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가 총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4% 이상)로 향하고 있는 지금, 더 늦기 전에 여성 노인 성폭력 예방을 위한 대안 마련과 그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노인 성폭행 문제’ 2012년 평택 피해자 자살사건 전말
가해자 활보에 극단적 선택

2012년 10월, 국내 한 병원서 치료를 받던 도중 30대 간호조무사에게 성폭행 피해를 입은 60대 여성이 집에서 투신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 A씨는 “한 여성의 인격과 미래를 파괴한 가정파괴범이 이에 대한 죗값을 받아야 함에도 법 절차는 제가 기댈 곳이 없었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악몽이 시작된 건 지난 8월이었다. 피해자는 8월10일 오른쪽 다리 하지정맥 수술을 받기 위해 B병원에 입원했다. 그러다 12일 압박붕대가 풀려 처치를 받기 위해 갔던 2층 석고처치실에서 간호조무사인 C씨에게 성폭행을 당한 것이다. A씨는 처치 도중 자꾸 여성의 중요 부위를 만지는 B씨에게 그만하라고 화를 냈지만 B씨는 A씨의 입을 강제로 막기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A씨는 틀니 하나가 부러지고 중요부위에 열상, 타박상 등 상해를 입었다. 사건 당시 A씨는 좌측 손은 장애 4급, 우측 손에는 링거 주사를 맞고 있었고, 오른쪽 다리는 하지정맥 수술 때문에 저항이 어려운 상태였다. A씨는 성폭행 피해를 인지하고 가족들에게 얘기했고, A씨의 남편은 가해자 B씨에게 자인서를 쓰도록 했다. 자인서 하단 부분에는 (자인서를 쓴 것이) 강제가 아니었다는 것을 확인한다는 내용과 함께 B씨가 친필 서명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가해자의 태도가 돌변했다. 자인서를 강제로 썼다고 번복하고 피해자가 자신을 유혹했다는 식으로 몰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사건을 분석한 평택성폭력상담소 김지숙 소장은 병원 측의 태도, 경찰수사 과정, 검찰수사 과정, 법원 등에서 여성 노인 성폭력 사건에 대한 문제점이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여성 노인 성폭력과 관련해 내놓은 자료집에 따르면 평택 사건에서는 담당 검사가 총 4번 바뀌었고, 그 과정에서 피해자의 현장 검증이 두 차례 이뤄졌다고 한다.

사건 가해자가 범행을 하지 않은 것을 입증하는 게 아니라, 피해자에게 피해사실을 입증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A씨는 극도의 수치심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법원이 가해자에 대한 구속 영장을 기각하자 A씨는 큰 불안감을 느꼈고, 이는 자살로 이어지는 계기가 됐다는 지적이 있다.

김 소장은 “노인과 성인여성 피해자에 대한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면서 “특히 의료기관 내 성폭력 발생 시 병원에 대한 제재 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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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캄보디아 ‘셀허브’ 추적

[단독]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캄보디아 ‘셀허브’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민낯이 드러났다. 주로 수도인 프놈펜 인근과 시아누크빌 범죄 단지가 그들의 주둔지였다. 국내 조직폭력배가 중국 갱단과 결탁해 만든 ‘셀허브’의 경우 피해자만 수십명이다. 이들은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가장했다. 사이트에는 유명인의 사진이 수차례 도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는 사라진 셀허브 엔터테인먼트의 홈페이지. 지난해 7월 <일요시사>가 취재한 이후 대표이사의 이름과 사진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표창장을 받았다며 문서를 위조하기도 했다. 이 기업의 정체는 로맨스 스캠 조직이다. 확인된 피해액만 약 40억원, 피해자는 수십명이다. 한 언론사는 보도자료까지 작성하며 홍보하기도 했다. 조직적 준비 경찰 수사 중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지난 24일, 셀허브 조직원 3명을 각각 구속·불구속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이들은 조건 만남 사이트를 운영한 로맨스 스캠 조직이다. 여성 관련 데이트 상품을 판매하거나 연애 빙자 사기를 일삼았다. 셀허브 조직원이던 A씨는 “연예인 지망생이나 모델과 연락하게 해 준다며 50만원에서 100만원까지 대포통장 계좌에 돈을 입금하게 한 뒤 텔래그램 아이디를 알려주고 연락하게 하는 시스템”이라며 “연결된 여자는 실제 남성이고 한국에서 조직폭력배로 활동하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이 조직은 지난해 3월 캄보디아 범죄 밀집 지역인 태자 단지에서 인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같은 해 5월 사이트를 개설해 조직원들에게 민간인 협박, 중국어 통역 등의 역할을 맡기고 수십명으로부터 약 40억원을 뜯어냈다. 같은 해 7월 <일요시사> 취재가 시작되자 이 조직은 셀허브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의 이름을 ‘김현숙’에서 ‘박소희’로 변경하고 유명인의 사진을 수차례 도용했다. 유 전 장관에게 표창장까지 수여받았다며 피해자들의 의심을 피하려는 꼼수도 서슴지 않았다. A씨는 “조직에서 탈출하려는 사람은 밤새 맞거나 강제로 마약을 투약당하기도 했다. 조직폭력배 출신 한국 사람들이 간부고 일반 조직원은 교민 사이트를 통해 ‘한 달에 500만~1000만원을 벌 수 있다’는 거짓말에 속아 일하게 된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건은 서울경찰청이 수사하기 이전인 지난해 7월부터 강서·영등포·구로경찰서 등에 여러 고소장이 접수됐었다. 하지만 수사는 원활하지 않았다. 주요 혐의자가 해외에 거주 중이거나 피의자 특정이 어려운 게 난관이었다. 수사를 담당했던 한 경찰 관계자는 “캄보디아 프놈펜에 주요 혐의자들이 거주한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지난해부터 공조를 요청했으나 캄보디아 당국이 비협조로 일관했다”며 “고소인분들이 ‘왜 안 잡냐’ ‘내 돈 어떻게 하냐’는 등 불만이 많으셨다. 매번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캄보디아가 협조하지 않으면 조치가 불가능했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3월부터 조직원 모집…태자 단지서 모의 ‘유인촌 표창장’ 걸어 놓고 ‘정상 기업’ 홍보 막막했던 수사는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면서 풀리기 시작했다. 이재명정부가 캄보디아를 압박했고 현지에 구금된 한국인 범죄자 겸 피해자 수십명을 국내로 송환했다. 송환된 인원 중 일부는 셀허브 사건과도 연관된 것으로 파악됐다. 정성학 충남경찰청 수사부장은 지난 20일 청내 프레스센터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들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사기) 및 범죄단체 가입 및 활동 혐의로 전원 구속했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부건(총책 가명, 40대 초반, 한국말을 쓰는 외국인 추정) 조직으로부터 확인된 피해 건수는 110건, 피해액은 93억여원에 달했다. 약 100명의 조직원을 거느린 부건은 지난해 중순부터 올해 7월까지 주로 프놈펜 웬치(범죄 단지) 및 태국 방콕 등지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범행을 벌여왔다. 부건 조직은 지난 2018년 중국에서부터 활동을 시작해 그동안 단속을 피하려 태국, 캄보디아 등지로 거주지를 옮겨가며 범행을 계속해 왔다. 이들은 데이터베이스, 입출금 등을 지원·관리하는 CS팀과 광고를 보고 접근한 피해자를 기망하는 로맨스팀, 검찰 사칭 보이스피싱팀, 코인투자리딩 사기팀, 공무원 사칭 노쇼 사기팀 등 총 5개 팀으로 이뤄진 조직체계를 갖췄다. 이들은 가구판매업을 하러 캄보디아에 갔다고 진술했으나 이후 지역 선·후배 권유, 고액 아르바이트 인터넷 광고 등을 접하고 범죄에 연루된다는 걸 알면서도 조직에 가입해 활동한 것으로 조사됐다. 속아서 조직에 들어갔다고 진술하지 않은 이들의 유입 경로는 ▲지인 포섭 29명 ▲인터넷 광고 등 포섭 8명 ▲현지 카지노 포섭 6명 ▲기타 2명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남성 42명과 여성 3명으로 연인도 있었다. 대부분은 20~30대 연령으로 최소 2개월부터 최대 16개월까지 범행에 가담해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조건 만남 사이트 경기북구경찰청 형사기동대도 전기통신금융사기특별법 위반 등 혐의로 피의자 15명 중 11명을 구속 송치했다. 이들은 지난해 8월부터 한 달간 캄보디아 범죄 단지에서 여성을 사칭, 조건 만남 등을 명목으로 피해자들로부터 돈을 가로챘다. 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성 만남 광고를 낸 후 이를 보고 연락해 온 피해자에게 여성인 척 채팅으로 유인했다. 여성을 소개받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개발한 조건 만남 사이트에 회원 가입과 인증을 받아야 한다고 속여 인증을 위한 돈을 요구했다. 3차례에 걸친 인증 절차 과정에서 여러 게임에 성공하면 가입비를 돌려준다고 속여 피해자로부터 1인당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을 받아 챙겼다. 피해자들이 믿을 수 있도록 별도의 만남 인증과 후기글을 남기는 ‘화력방’도 운영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 규모는 피해자 36명, 피해금 16억원 상당이며, 1인당 최대 피해 금액은 2억1000만원이다. 이들은 대부분 20~30대 남녀다. 최초 범죄집단을 구성한 캄보디아 프놈펜 지역 명칭 ‘툴콕’을 의미하는 ‘TK’파로 스스로를 부르며 총책을 정점으로 한 지휘·통솔 체계를 갖췄다. 조직 운영을 총괄하는 총책, 이를 보좌하며 실무 전반과 인력 공급 등을 담당하는 총관리자, 각 파트 팀원의 근태를 관리하고 지시하는 팀장으로 구성됐다. 또 자체적인 조건 만남 홈페이지를 제작하는 개발자, SNS에 광고 글을 게시하는 홍보팀과 광고를 보고 접근한 피해자를 기망하는 로맨스 2개팀으로 역할을 분담했다. ▲상호 가명 사용 ▲근무 중 휴대전화 금지 ▲사진 촬영 금지 ▲야간에는 커튼으로 외부 차단 ▲다른 부서와의 업무 내용 공유 금지 등의 규칙에 따라 생활하기도 했다. 중국 국적 100명 뒷배 이들은 총책이 마련한 건물에서 2인1조로 합숙했는데 프놈펜 툴콕 지역의 13층 건물을 사용하다가 지난 8월, 현지 단속을 피해 센소크 지역 7층 건물로 이전해 범행을 이어오던 중 현지 수사 당국에 의해 검거됐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SNS 구직 광고나 조직원을 통해 범죄단체에 가입했다고 진술했으며 사기임을 알고도 범행을 지속한 것으로 조사됐다. 피의자 대부분은 현지에서 구금된 중에도 총책이 이른바 관작업을 통해 자신들을 석방시켜 줄 것이라는 말만 믿고 대사관의 도움을 거절하고 귀국하지 않았다. 셀허브 사건 간부들은 타 사건에도 연루됐다. 지난 7일 캄보디아 바벳에 인접한 베트남 떠이닌 지역 국경 검문소 인근에서 30대 여성 B씨가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는데, 숨지기 직전까지 셀허브 간부와 같이 있었다. B씨의 사인은 마약 과다 투약이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B씨가 셀허브에서 한국인 명의의 대포통장을 공급해 왔다고 보고 있다. A씨는 “셀허브에서 일할 사람을 모집하는 역할을 했던 B씨인데 통장을 팔려고 캄보디아에 도착한 한국인들을 유인해 범죄 단지로 팔아넘기고 유인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정보·수사기관도 B씨에 의해 범죄 단지에 넘겨지는 피해를 입거나 유흥업소 일을 강요당한 사례를 확인하고 조사 중이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사실상 마약을 강제로 과다하게 투약당한 살인사건이라는 첩보는 아직 확인 중”이라며 “특정 조직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건 현지 경찰도 수사 중인 내용”이라고 말했다. 대개 조직폭력배 출신…지휘는 중국 조직이 맡아 40억 피해액 환수 불가능 “자금 세탁 끝났다” 첫 데이트하던 연인을 치어 여교사를 숨지게 했던 이른바 ‘대전 머스탱 교통사고’의 피의자도 셀허브 조직원으로 확인됐다. 피의자 전모씨는 2019년 2월10일 오전 10시14분 대전 중구 대흥동에서 면허도 없이 외제차를 운전하던 중 인도를 걷던 조모씨와 박모씨를 들이받아 박씨를 숨지게 하고, 조씨에게 중상을 입혔다. 전씨가 대여한 외제차는 불법 대여 차량이었다. 이 차량은 애초 대구에 사는 C씨가 자신 명의로 캐피털에서 월 115만원씩 주는 조건으로 60개월간 대여한 것이다. C씨는 사촌 안모씨와 함께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나모씨가 올린 ‘외제차 저렴하게 빌려줄 사람을 찾는다”는 글을 보고 접근, 한 달에 136만원씩 받기로 하고 대여한 머스탱 차량을 재임대했다. 나씨는 이렇게 빌린 머스탱 차량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활용해 “외제차를 빌려준다”고 광고하며 또다시 대여업을 했다. 전씨는 나씨가 올린 이 글을 보고 일주일에 90만원씩 주기로 약속하고 머스탱을 빌려 운전했다. 매년 확정되는 범죄수익 추징금은 30조원을 넘지만 환수 금액은 1%에도 미치지 않는다. 법무부가 캄보디아에서 보이스피싱과 로맨스 스캠 등의 범죄로 발생한 현지 범죄수익을 국내로 환수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선 법무부는 “캄보디아 내에서 벌어진 범죄 가운데 현재 국내에서 수사 중이거나 재판 중인 사건이 1차 현지 수사 의뢰 대상”이라며 “이후 국내에서 유죄 선고를 받으면 최종적으로 환수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에 따르면 해외에서 발생한 범죄라 하더라도 피해자가 국내에 있고 피해액이 특정될 경우, 우리 정부가 해외에 범죄수익 환수를 요청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2019년 캄보디아와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을 체결해 2021년 정식 발효됐다. 주요 간부들 타 사건 연루 정보기관 관계자는 “범죄자 개인이 아닌 조직을 대상으로 한 범죄수익 환수 사례는 거의 없다. 특히 국내에서 수사와 재판이 끝나야 한다”며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건 좋지만 이미 늦었다. 범죄조직 특성상 이미 코인이나 대포 통장으로 제3국에 은닉하거나 세탁을 하고도 남았을 시간”이라고 지적했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도 “수사가 끝나고 유죄 판결이 나기까지 수년이 걸리는데 환수 절차는 이 모든 사법절차가 종료돼야 가능하다. 특히 조세회피처로 범죄수익을 옮겨놨다면 환수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봤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