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터는 검찰 딜레마

‘제자리 맴맴’ 이러다 또 흐지부지?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오랫동안 내사했다. 속전속결로 끝내겠다.”

검찰이 대대적인 롯데그룹 압수수색을 벌인 직후 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검찰은 수사 초기부터 롯데 총수 일가의 비자금 조성 등을 겨냥한 수사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검찰이 수사한 지 두 달이 된 지금. 롯데그룹의 수사는 점점 산으로 가고 있다.

대략적으로 대기업 수사는 이렇게 진행된다. 먼저 검찰에서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 동안 수사 물망에 오른 대기업에 대한 첩보를 수집한다. 이를 내사(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몰래 조사)라고 한다. 이후 내사를 토대로 혐의 입증에 충분하다고 판단되면 검찰은 수사시기를 조율한다.

자신하더니…
소문난 잔치?

지금까지 이런 메카니즘을 통해 대기업 수사가 이루어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렇게 진행된 대기업 수사의 칼끝은 대부분 총수들을 향한다. 지금까지 이런 칼끝을 비껴간 대기업 총수들은 거의 없다.

롯데그룹 수사 역시도 검찰의 통상적인 수사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검찰은 지난해부터 롯데그룹 비자금 사건을 내사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은 지난 6월10일 롯데그룹 6개 계열사에 대한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시작했다.


당시 압수수색에는 서울중앙지검 전체 인력(600여명)의 3분의 1 이상이 참여했으며,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집과 사무실 등이 대상에 포함됐다. 서울중앙지검 특수4부, 첨단범죄수사1부, 방위사업수사부 등 3개 부서의 검사 20명가량이 수사에 투입됐다. 최근 몇 년 새 보기 드문 대규모 수사팀이었다.

법조계서는 오랜 시간 롯데 비자금 사건을 내사해 온 만큼 수사 속도가 늦춰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수사가 진행된 지 두 달이 지난 지금. 검찰의 롯데 수사가 난항을 겪고 있다.

현재 롯데그룹에 대한 검찰 수사 과정에서 구속영장이 잇따라 기각되는 등 수사에 제동이 걸린 모양새다. 롯데 일가를 '정조준'하기 위한 핵심인물 구속과 진술 확보가 사실상 어려워지면서 검찰 수사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지난 9일, 서울중앙지법 박사랑 판사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과 배임수재 혐의를 받고 있는 롯데건설 상무 박모씨와 상무보 최모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박 판사는 “현재까지 수집된 증거자료 등에 의한 주요범죄혐의 소명정도 및 이에 대한 다툼의 여지, 피의자의 주거 가족 등 사회적 유대관계 등을 종합하면 현 단계에서 피의자를 구속해야 할 사유와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박씨 등은 롯데건설을 통해 하도급 업체와의 거래 과정에서 공사대금 일부를 돌려받는 수법으로 20억원대 비자금 조성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당초 박씨 등을 구속한 뒤 자금 사용처와 그룹 차원의 지시가 있었는지 여부 등을 조사할 예정이었지만, 영장이 기각되면서 수사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앞서 강현구 롯데홈쇼핑 대표이사가 롯데홈쇼핑 재승인 로비 의혹과 관련해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도 기각됐다.


맴도는 수사 뚜렷한 성과 없어
오너 주변인들만 툭툭…헛발질?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손영배 부장검사)는 강 대표에게 방송법 위반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 증거인멸 교사 등의 혐의를 적용해 영장을 청구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법 성창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지난달 19일, 검찰이 방송법 위반 혐의 등으로 청구한 강 대표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성 부장판사는 “현재까지의 수사 진행 경과와 주요 범죄 혐의에 대한 소명 정도, 다툼의 여지 등에 비춰볼 때 현 단계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기각 사유를 밝혔다.

 

검찰은 강 대표가 작년 미래부의 롯데홈쇼핑 재승인 심사 때 일부 허위사실이 기재된 사업계획서를 제출해 재승인 허가를 취득한 혐의(방송법 위반)가 있다고 봤다.

임직원 급여를 과다 지급한 뒤 일부를 되돌려받거나 회삿돈으로 상품권을 구입해 현금화하는 ‘상품권깡’ 등으로 9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도 영장 범죄사실에 담겼다.

강 대표는 롯데피에스넷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회사에 80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와 검찰의 압수수색을 전후로 주요자료를 파기하도록 지시한 혐의 등도 받고 있다. 검찰은 롯데홈쇼핑이 조성한 비자금 일부가 재승인 로비 목적에 사용한 정황을 잡고 자금 흐름을 추적해 왔다.

숨은 키맨들
해외 추적 관건

이처럼 검찰의 영장이 계속 기각되면서 수사는 난항에 빠졌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검찰이 이렇다 할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자 무리하게 수사를 진행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실상 전 계열사에 대해 압수수색을 진행하는 초강수를 둘만큼 고강도 수사를 진행해왔던 검찰이 잇따른 제동으로 당혹스러운 입장에 처하게 됐다.

그래서 그럴까. 검찰은 아직도 신 회장에 대한 이렇다할 혐의를 찾지 못한 채 주변만 맴돌고 있는 형국이다. 특히 애꿎은 롯데가 여인들에게 불똥이 튀고 있다. 신 총괄회장의 장녀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이 구속된 데 이어 신 총괄회장과 사실혼 관계인 서미경씨에 대한 검찰 소환조사가 임박하면서 롯데가 여인들의 수난이 이어지고 있다.

 

먼저 검찰은 신 이사장을 횡령과 배임수재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롯데가 중 첫 번째 기소자다. 하지만 당초 법조계에서 예상했던 비자금 의혹 등에 대한 추가 단서는 사실상 얻어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방위사업수사부(박찬호 부장검사)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및 배임, 업무상 횡령, 배임수재 혐의로 신 이사장을 지난달 26일 구속기소했다. 아울러 검찰은 신 이사장의 배임수재 액수인 35억원에 대한 범죄수익 환수를 위해 본인 소유의 아파트, 토지를 대상으로 법원에 추징보전 명령을 청구했다.

검찰에 따르면 신 이사장은 2007년 2월부터 올해 5월까지 롯데백화점과 면세점 입점과 관련해 총 35억3000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신 이사장은 롯데백화점 내 초밥 매장이 들어갈 수 있도록 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업체 A사 측으로부터 14억7000만원을 수수했다. 이 과정에서 A사는 전국 롯데백화점에 19개 매장을 냈고, 신 이사장은 4개 매장의 수익금 일부를 매달 정기적으로 현금으로 받아 챙겼다.


면세점과 관련해선 브로커 한모(구속 기소)씨를 통해 정운호(구속 기소) 네이처리퍼블릭 전 대표에게서 “매장 위치를 목 좋은 곳으로 바꿔주면 매출액의 3%를 주겠다”는 제안을 받고 2013∼2014년 6억6000만원을 받았다. 그러다 한씨와의 사이가 틀어지자 2014년 9월부터는 자신이 실제 운영하는 유통업체 B사를 통해 8억4000만원을 수수했다.

비자금서 탈세로
혐의점 못 잡아

신 이사장은 다른 화장품 업체에서도 입점을 대가로 지난해 5월부터 약 1년간 5억6000만원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유통업계의 대모’로 불리던 그는 롯데그룹 유통 계열사 경영에 참여한 것 외에 아들 명의로 B사 외에 인쇄업체 U사, 부동산 투자업체 J사를 세워 실질적으로 지배·운영했다.

이를 이용해 2006년 1월∼2011년 12월 B사와 U사에서 이사나 감사로 이름만 올려놓고 실제로는 일하지 않는 딸 3명에게 급여 명목으로 총 35억6000만원을 지급하기도 했다.

U사가 ‘일감 몰아주기’ 논란으로 롯데그룹 계열사 인쇄물 물량을 독점하지 못하게 되고, 딸들의 고액 급여가 문제가 돼 사임한 뒤에는 임직원을 허위 등재한 뒤 급여를 빼쓰는 수법이 동원됐다. 이 같은 유령 급여를 계좌로 입금해 자녀들이 생활비 등으로 빼서 쓰도록 한 것으로 조사됐다. 신 이사장은 지난 7일 구속된 이후 혐의사실을 줄곧 부인하는 등 검찰 수사에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롯데그룹 신 총괄회장이 2010년 이전에 셋째 부인 서미경씨 모녀에게 증여한 일본 롯데홀딩스 주식을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차명으로 관리한 정황도 포착했다.


검찰은 “신 총괄회장이 서씨 모녀에게 증여한 롯데홀딩스 주식의 행방을 추적한 결과 페이퍼컴퍼니 ‘경유물산’ 명의로 숨긴 것으로 드러났다”고 전했다. 검찰은 경유물산이 서미경씨의 이름 ‘경’과 딸 신유미씨의 이름 ‘유’를 따서 급조한 페이퍼컴퍼니라는 롯데 관계자의 진술을 확보했다고 한다.

여론도 안 좋은데…역풍 맞을라
검찰 내부 흉흉한 분위기 감지

검찰은 일본 롯데홀딩스 주식 증여 과정에서의 6000억원대 탈세 혐의와 관련해 다음주 중 서씨를 소환 조사키로 하고 변호인과 일정을 협의하고 있다. 검찰은 신 총괄회장의 지시를 받아 페이퍼컴퍼니를 만들고 증여세를 탈루하는 과정에 깊숙이 관여한 롯데그룹 정책본부 관계자들도 사법 처리할 계획이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검찰의 롯데그룹 수사 초점이 비자금 조성에서 탈세 혐의로 바뀌며서 신 회장은 수사 대상에서 빠지고, 신 총괄회장과 서씨 등 현재 롯데그룹 경영권과 상관없는 비핵심 인사들만 검찰 수사의 타깃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그러자 검찰은 현재 그룹 경영권을 쥐고 있는 신 회장도 수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비쳤다. 신 회장이 이번 탈세혐의와 직접적 관련이 없어 검찰 수사를 피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자 이를 부인한 것이다.

하지만 검찰이 신 회장의 혐의를 구체화 하지 않고, ‘가족문제 인데 무관할 수 있겠냐’는 원론적 입장을 내놓은 것으로 당장 신 회장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기는 어려울 거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또 탈세 혐의와 관련한 인물들의 조사가 제대로 이뤄질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신 총괄회장은 95세 고령인데다가 정신 건강 논란도 겪고 있어 검찰이 그를 상대로 강도 높은 조사를 진행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일본에 머물고 있는 서씨도 검찰의 소환 통보에 응할지는 미지수다.

신동빈까지…
아직 멀었다

검찰은 2개월째 롯데그룹 수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계열사 탈세 혐의 일부를 밝혀냈을 뿐, 그룹 차원의 비자금 조성 의혹에 관해서는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정권에 들어 KT, KT&G, 농협, 포스코 등을 수사했지만 회장들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수사가 용두사미가 됐다”며 “이번 롯데 수사도 신 회장을 구속하지 못하면 그 동안의 전례가 되풀이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min1330@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롯데 수사 하이라이트 신격호 여인들 나타날까

6000억대 탈세 혐의로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과 그의 세 번째 아내인 서미경씨가 검찰 수사 선상에 올랐다. 신 총괄회장과 서씨 사이에서 태어난 신유미 롯데호텔 고문도 검찰 조사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신 총괄회장이 서씨 모녀에게 재산을 증여하는 과정에서 탈세가 있었던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서씨가 검찰에 출석하게 되면 1981년 연예계 은퇴 이후 35년 만에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신 총괄회장은 젊은 시절 감수성이 풍부했던 문학소년으로 알려져 있다. 독일의 문학가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1774년에 쓴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감명 받았고 작품의 여주인공 샤롯데(Charlotte)의 이름을 따 회사 이름을 롯데(lotte)로 지었다. 서씨는 신 총괄회장의 ‘샤롯데’라고 부를 정도로 애정을 갖은 것으로 전해진다.

신 총괄회장과 사실혼 관계인 서씨는 1977년 제1회 미스롯데 출신이다. 10세이던 1969년 영화 <피도 눈물로 없다>에 출연해 본격적인 배우의 길에 접어들었다. 1973년 <방년 18세>, 1974년 <청춘 불시착>, 1975년 <졸업시험> 등에 잇달아 출연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1977년 제1회 미스롯데에 뽑혔고, ‘껌이라면 역시 롯데껌’의 광고 카피를 히트시킨 주인공이 됐고, 당대 최고 스타로 바쁜 스케줄을 소화했다. 1979년 <선데이서울>과의 인터뷰에서 “마음껏 잠 좀 잤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6000억대 탈세 혐의로 수사
서미경·신유미 소환 임박?

서씨는 1981년 돌연 연예계 은퇴를 선언했다. 공식적인 이유는 “유학을 떠나 공부하겠다”는 것이었다. 서씨는 이후 세간의 이목에서 사라졌고, 1983년 신 총괄회장 사이에서 딸 신유미씨를 낳았다. 신유미씨는 1988년 호적에 올라 롯데가에 합류했고, 신 총괄회장은 환갑 넘어 얻은 막내딸을 유독 귀여워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에서는 서씨 모녀가 부동산과 주식 등 1000억원이 넘는 자산을 가진 것으로 보고 있다. 서씨는 서울 서초구 방배동 소재 4층짜리 빌라 롯데캐슬 벨베데레, 강남구 삼성동 지하 5층·지상 15층 규모의 유기타워, 서울 종로구 동숭동의 지하 5층·지상 6층 규모 유니플렉스 공연장,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서래마을에 있는 5층짜리 빌딩 등 알짜 부동산을 여러 개 소유하고 있다.

서씨는 롯데그룹 핵심 계열사인 롯데쇼핑 지분만 0.1%를 갖고 있어 신 총괄회장 장녀인 신영자 이사장보다 많다. 현재 롯데호텔 고문인 신유미씨는 롯데쇼핑 지분 0.9%, 코리아세븐 지분 1.4%를 보유하고 있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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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갈수록 증폭되는 평택 논란 이제야 공개된 소소한 흔적 쉽게 거두지 못하는 의심 의미심장 세력 교체 과정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소문이 어느덧 사실처럼 인식되고 있다. 명확한 물증이 없는 가운데 파편적인 의혹이 덧씌워진 양상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으며, 흐름을 파악할 만한 유의미한 흔적이 이제야 겨우 나왔을 뿐이다. 증폭된 의혹 뒤편에서 여전히 진실은 빼꼼히 잘 보이지 않는다. 2010년 9월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황해경제자유구역에 자리 잡은 유일한 농산물 가공 업체로, 그간 심심치 않게 밀수 의혹을 받아왔다. 가공 목적으로 수입한 농산물을 가공 없이 시중에 유통시켜 엄청난 차익을 봤다는 꼬리표가 뒤따랐다. 의혹하는 눈초리 선라이즈에프앤티가 취급했던 대다수 농산물이 고관세 품목이라는 점은 이 같은 의혹을 부채질했다. 그간 선라이즈에프앤티는 ▲녹두 ▲콩나물콩 ▲다대기(혼합양념) ▲생강 ▲마늘 ▲참깨 ▲팥 ▲서리태 등 높은 세율이 붙는 고관세 품목을 주로 수입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 예로 콩나물콩의 경우 그대로 들여와 국내에 유통하면 487% 관세가 부과되지만, 콩나물 재배 목적으로 수입하면 27%만 반영된다. 평택세관에 몸담았던 다수의 전직 세관공무원이 기업 출범 및 운영에 관여했다는 점도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었다. 심지어 선라이즈에프앤티 이사진에 포함됐던 특정 세관 출신 임원이 한때 다이아몬드 밀수 사건에 이름이 오르내린 사례도 존재한다. 수년 전부터는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동일선상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해졌다. 선라이즈에프앤티의 밀수 의혹을 수차례에 걸쳐 제기했던 공익 제보자 이성열씨가 재판에 연루되는 과정에서 김건희씨의 모친인 최은순씨가 거론됐던 게 이 같은 흐름에 불을 지핀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정치평론가인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이 최근 ‘평택항’을 언급하자,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은 사실처럼 받아들여질 정도가 됐다. 장 소장은 SBS라디오 <김태현의 뉴스쇼>가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김건희씨 일가의 수상한 물건 수입 의혹과 관련한 이야기를 전했다. 장 소장은 “최은순씨가 주인으로 있는 농수산물 수입업체에서 이상한 것을 들고 오려고 하다가 걸려서 (김건희) 오빠와 김건희씨가 그것을 무마시키려고 여러 가지 이상한 (일들을 했다고 한다)”며 “어떤 물건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부적절한 물건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급기야 선라이즈에프앤티의 폐업이 알려지자, 의혹은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양상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국세청 사업자 과세 유형 조회 결과 지난 10일자로 폐업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폐업자로 조회된 지난 10일은 김건희 특검법이 공포된 시기와 맞물린다. 물론 꾸준히 의혹이 제기된 것과 별개로,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을 입증할 만한 확실한 단서는 없는 상황이다. 특히 주주명부가 지금껏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는 게 의혹과 진실을 구분 짓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일요시사>가 최초 입수한 주주명부는 간접적으로나마 의문을 풀 수 있는 열쇠로 작용할 여지를 남긴다. 의문 해소 첫 단추 2022년 10월 작성된 ‘카리나에프앤티(선라이즈에프앤티에서 2020년 9월 상호 변경) 주주명부’를 검토한 결과 주주는 총 17명, 발행주식은 91만8400주(1주당 5000원)로 확인됐다. 2010년 9월 자본금 5억원으로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수차례 증자를 거쳤고, 해당 시기에 자본금을 45억9200만원으로 늘린 상태였다. 일단 주주명부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대신 경영권 교체 과정이나마 엿볼 수 있을 뿐이다. 법인 등기와 주주명부를 교차 검증한 결과를 토대로 추정하면, 표면상 선라이즈에프앤티 지배 세력은 ‘전직 세관공무원(설립~2018년 중순)→지엔티에이치(~2020년 중순)→킴스에O엔O(~2022년 초순)→동OO앤에스(~2025년 6월)’ 순으로 변경된 흐름이다. 첫 번째 경영권 교체는 ‘펀딩하이 연체 사건’과 함께 발생했다. 펀딩하이는 중국·동남아시아에서 농산물을 수입하는 업체에 돈을 빌려 주고, 투자자들에게 15% 이상 수익을 보장하는 펀딩 상품으로 인기를 끌던 P2P 업체였다. 그러나 펀딩하이는 2018년 6월20일 ‘마늘 시즌2-17차(모집 금액 3억원, 차주 승리산업)’ 펀딩 상품의 연체를 시작으로 ▲세척 당근 시즌2-18차(모집금액 5억원, 차주 지엔티에이치) ▲김치 펀딩 2차(모집금액 1억2000만원, 차주 상아농산) ▲번데기 펀딩 1차(모집금액 1억8000만원, 차주 월량완코리아) 등에서 차주의 투자금 상환 실패를 알렸다. 연체 금액은 ▲지엔티에이치 29억원 ▲승리산업 33억원 ▲상아농산 11억8000만원 ▲월량완코리아 1억8000만원 등 총 75억6000만원에 달했다. 급기야 펀딩하이는 연체율 100%를 찍은 채 영업을 중단했다. 상환 실패 이후 차주 사이에 관련성이 드러났다. 지엔티에이치와 승리산업에서 대표이사였던 윤석호씨는 두 회사 지분을 각각 60%, 100% 보유 중이었다. 또한 월량완코리아 사내이사로도 등재돼있었다. 연체가 발생한 직접적인 사유는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대상으로 한 지분 투자였다. 지엔티에이치는 펀딩받은 금액을 농산물을 들여오는 데 쓰지 않고,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매입하는 데 활용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이를 계기로 지엔티에이치는 2018년 6월경 주식 16만1400주를 확보한 선라이즈에프앤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확보한 이후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명단에 변화가 목격됐다. 선라이즈에프앤티 초창기부터 함께했던 사내이사와 부친에 이어 회사에 몸담았던 대표이사를 대신해 지엔티에이치가 끌어들인 얼굴들이 등기임원 자리를 꿰찼다. 정작 지엔티에이치는 연체 발생 넉 달 후인 2018년 10월 보유 중이던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에 넘겼다. 펀딩하이 투자자들과의 소송전이 불거지자 중국에 본거지를 둔 우군에 주식을 양도한 모양새였다. 거듭되는 교체 수순 두 번째 경영권 교체는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의 주체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충청권에 본적을 둔 킴스에O엔O는 2022년 10월 기준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10만8200주를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의 친인척이 보유한 주식 13만2800주를 합산하면 우호 주식은 24만주 안팎이다. 기존 지엔티에이치 측 우호 세력(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 16만1400주+마송재 3만주)과 비교해 5만주 가까이 격차를 벌린 셈이다.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대량 매입한 시기는 2020년 중후반으로 추정된다. 이 무렵 선라이즈에프앤티 등기임원 구성이 크게 요동쳤다는 점을 통해 짐작 가능한 사안이다. 실제로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발휘하던 2018년 7월 대표이사에 선임됐던 김정일 대표는 2020년 3월 해임됐다. 2018년 9월 취임했던 또 다른 대표이사 역시 당해 10월을 넘기지 못한 채 사임했다. 공석이 된 주요 등기임원 자리는 킴스에O엔O 측 인물로 채워졌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가 2020년 10월 선라이즈에프앤티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해당 시기에 사외이사, 감사 등 등기임원 전원이 새 얼굴로 교체됐다. 킴스에O엔O에 이어 지배 세력으로 등장한 곳은 식료품 제조업을 영위하는 동OO앤에스였다. 이 회사는 2022년 10월 기준 주주명부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지분율 44.64%)를 보유한 단일 최대주주로 등재돼있다. 여기에 우호 세력(글로O포O 1만주+김성수 2만주+김종봉 788주)의 주식을 합산하면 지분율은 50%에 육박한다. 동OO앤에스는 사실상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인수하고자 만든 업체로 비쳐질 여지를 남긴다. 2022년 2월 출범 당시 자본금 10억원짜리였던 동OO앤에스는 불과 두 달 만인 2022년 4월14일 자본금을 21억원으로 두 배 이상 키웠다. 공교롭게도 동OO앤에스가 설립 이후 8개월 사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투입한 금액은 총 20억5000만원이었다. 이는 동OO앤에스 자본금 21억원이 선라이즈 주식 41만주를 매입하는 데 쓰였을 가능성에 주목하게 만든다. 게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기존 61만8400주였던 발행주식을 2022년 4월22일 91만8400주로 30만주 확대했다. 동OO앤에스가 자본금을 21억원으로 확충한 지 8일 만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가 발행주식을 30만주 늘린 덕분에 동OO앤에스는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주식 41만주를 확보한 형국이다. 동OO앤에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지배하는 위치로 올라설 무렵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구성은 또 한 번 바뀌었다. 동OO앤에스 대표이사가 사내이사, 글로O포O 대표이사가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렸고, 김성수 대표이사가 신규 선임됐다. 이후 김성수 대표는 선라이즈에프앤티 폐업 전까지 자리를 지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되짚어보는 연결고리 한편 일각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는 지엔티에이치 측이 지배력을 상실한 이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나마 킴스에O엔O 혹은 동OO앤에스와의 연관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관여한 직접적인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만약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를 2021년 이후로 특정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항간에 떠도는 마약 적발 여부는 2022년 근방으로 얘기가 오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heaty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