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당구연합회 비리 복마전

직원이 빼 먹고 간부도 빼 먹었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인 물은 썩는다’ 오랫동안 변화가 없던 집단 내부에서 문제가 터져 나올 때 자주 나오는 말이다. 집단에서 썩은 곳이 발견되면 내부 사람들은 자정을 위해 힘쓴다. 범위가 넓을 경우엔 외부에서 환부를 도려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일련의 행위들은 사후처리에 불과할 뿐이다. 썩은 부분이 발견되기까지 걸린 시간이 길수록 피해를 받는 이들은 늘어난다. 국민의 세금이 들어간 집단이라면 그 피해자는 국민이 된다.

 
 
(구)국민생활체육 전국당구연합회(이하 당구연합회)가 극심한 내홍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관계자에 따르면 횡령 등 문제로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국고 지원이 2분기에 이어 3분기도 삭감된 상태다.
 
터질 게 터졌다
감시시스템 없어
 
지난 3월 당구연합회와 대한당구연맹(이하 당구연맹)은 사단법인 대한당구연맹(이하 (사)대한당구연맹)으로 통합됐다. 상급단체인 대한체육회(이하 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이하 국체회)가 통합되면서 하급단체도 변화를 겪은 것이다. 
 
두 단체의 통합 과정은 순탄치 못했다. 특히 당구연합회는 성원 미달로 해산 총회가 두 번이나 무산됐다가 세 번째에 가서야 간신히 단체 해산 절차를 밟을 수 있었다. 
 
당구연합회의 내홍은 지난해부터 불거졌다. 월간지 <스포츠 당구>를 둘러싼 논쟁부터 사무처 직원들의 비리, 횡령 등 비위 의혹이 당구연합회를 뒤흔들었다. 그 중 몇가지는 사실로 확인돼 관련자들이 징계를 받았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전국당구연합회 비리 관련 조사결과 통보’ 자료에는 문체부 산하 스포츠비리신고센터가 조사한 사무처 직원들의 비위 사실이 낱낱이 드러나 있다. 특히 협회 통장으로 관리됐어야 하는 대회 참가비를 사무국 직원들의 개인통장으로 받아 임의로 유용한 사실이 확인돼 충격을 주고 있다. 
 
조사 결과서에 따르면 대회 관련업무를 담당했던 전 사무처 과장 A씨는 2009년부터 당구연합회에서 주최, 주관하는 전국대회 참가비를 자신의 계좌로 입금 받아 대회비로 집행했다. A씨가 개인계좌로 참가비를 받은 대회는 2009년부터 확인된 것만 46개에 달한다. 2015년 12개, 2014년 9개, 2013년 9개, 2012년 3개, 2011년 5개, 2010년 4개, 2009년 4개 등이다. 
 
A씨는 문체부 조사에서 2009년 7월28일부터 개인계좌로 참가비를 받아 집행했다고 진술했고, 거래 내역서 조사 결과 이 같은 사실이 확인됐다. 조사 과정에서 문체부 스포츠 비리신고센터 조사관이 개최 계획, 결과보고, 정산내역 등 대회 관련 자료를 요구했으나 A씨는 “작성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관련 자료가 없다”고 밝혔다. 
 
 
횡령·비리·공금 유용 ‘비리 백화점’
4000만원 빼돌렸는데 ‘파면’으로 끝
 
이에 조사관들이 당구연합회 홈페이지의 대회 관련 공지사항과 참가비 입출금 내역서, 관련자 진술 등을 종합해 확인한 결과, A씨가 3개의 개인계좌로 참가비를 입금 받아 대회비로 집행하고 남은 잔액 가운데 4300여만원을 횡령한 사실이 드러났다. A씨 역시 조사 결과를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해당 계좌에서 공금을 수시로 인출해 용돈, 개인 채무, 신용카드 대금, 통신비, 교통 범칙금 등을 납부하는 데 사용했다. 특히 전 사무처장 B씨의 아내에게 차량 할부금으로 6회에 걸쳐 200여만원을 보내주는 등 협회에서 공금으로 다뤄야 하는 돈을 사적으로 유용한 사실이 밝혀졌다. 
 
여기에 A씨의 추가 횡령 혐의도 더해졌다. A씨는 2014년 9월 자신이 속칭 카드깡을 해준 업체 대표로부터 300여만원을 받았다. 또한 다른 당구용품 업체로부터 2009년과 2010년 각각 500여만원, 520여만원을 받는 등 3600여만원 상당을 추가로 받은 사실이 확인됐다. A씨는 이 돈에 대해 “빌린 것”이라고 진술했지만 상환했다는 증빙 자료가 없어 조사관들은 횡령이 의심된다는 의견을 냈다.
 
사무처 직원의 공금 유용 혐의도 나왔다. 사무국 직원 C씨는 2012년 2월경부터 2014년 12월경까지 11개의 포켓볼 전국대회 참가비를 개인계좌로 받아 A씨에게 보내 대회비로 사용하게끔 했고, 이 중 10여만원을 개인적으로 유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후 C씨는 10만원을 상환했다. 
 
문체부는 사무처 직원들의 비위 사실을 바탕으로 당구연합회의 부적정한 회계 처리에 대해 지적했다. 당구연합회 회계규정을 보면 모든 수입은 당구연합회 명의 계좌로 은행에 예금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A씨와 C씨는 확인된 것만 총 57개 대회에서 참가비를 개인계좌로 받았으며, 7년간 단 한 번도 대회 집행 이후 남은 잔액을 당구연합회의 수입으로 입금하지 않았다. 
 
수상한 사무처장 
부당수익 의혹
 
또한 당구연합회는 아무 근거 없이 A씨에게 차량 보조금과 업무 활동비 등 명목으로 2010년 3월부터 2012년 1월까지 매월 50만원씩 지급했고, 2012년 2월부터 2015년 12월까지는 매월 20만원씩 지급했다. 당구연합회가 6년간 A씨에게 2000만원이 넘는 돈을 임의로 지급한 셈이다. 이에 대해 A씨는 “2010년도 이사회에서 차량 보조금 및 급여보조금 명목으로 매월 50만원씩 지급하기로 의결했다”고 주장했다.
 
2012년에는 당구연합회 형편이 어려워져 사무국에서 자체 조정해 20만원씩 지급 받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2010년 이사회에서 의결한 내용에는 특정 직원에 대한 보조금 지급 관련 내용이 없었고, 근거나 증빙 자료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문체부는 사무국 직원들이 후원금이나 후원물품을 되파는 방법으로 공금을 횡령했다는 추가 제보를 받긴 했으나 증빙 자료가 없고, 직원들이 혐의를 모두 부인해 확인이 안 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관련자들에 대한 형사고발이 필요하며, 사법 당국의 수사가 진행되면 추가 혐의가 드러날 것으로 본다고 판단했다. 문체부 조사 결과 A씨는 중징계에 해당하는 파면 조치를, C씨는 경고 조치를 받았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문체부 스포츠 비리신고센터는 전 사무처장인 B씨에 대한 진정서를 받았지만 조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B씨가 조사 당시 이미 당구연합회 자체 진상 조사를 거쳐 파면 당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또한 B씨에게 걸려있던 업무상 배임, 사문서 위조 등으로 인한 고소·고발 조치가 지난 3월 취하되면서 그에 대한 진실은 베일에 가려져 있는 상태다. 사무처 직원들의 경우 일부나마 비위 혐의가 확인된 점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지난해 9월4일 문체부에 접수된 진정서에 따르면 B씨는 <스포츠 당구>를 발행하면서 광고 수익을 횡령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고발인은 진정서에서 B씨가 잡지를 발행해온 13년간 약 32억5000여만원에 달하는 광고 수익을 횡령·착복한 의혹이 있으며, 이로 인해 단체에 심각한 손해를 끼치는 배임 행위를 했다고 주장했다. 

 
 
B씨는 2000년 당구연합회가 창립될 무렵부터 최근까지 약 16년간 당구연합회 사무처장으로 근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논란이 된 <스포츠 당구>는 2002년 5월부터 발행됐다. 가장 문제가 되는 지점은 <스포츠 당구>가 협회지인지, 개인지인지 여부다. 잡지의 성격에 따라 B씨에게 쏟아지는 의혹의 크기가 달라지기 때문에 이는 중요한 쟁점 사안으로 떠올랐다. 

사무처 비위 사실 드러나
수시로 인출해 사적 유용

국체회는 당구연합회에 진정서에 대한 자체 진상조사를 지시했다. 이에 당구연합회는 진정서가 접수된 지 1주일 만인 9월11일 1차 징계위원회를 열어 B씨가 받고 있는 의혹에 대해 논의했다. 당초 1차 징계위원회는 B씨의 복무규정 위반에 대한 징계를 논하는 자리였다.
 
당시 당구연합회 회장 D씨는 B씨의 무단결근, 회장 불신임 하극상 등에 대해 징계위원회를 소집한 상태였다. B씨는 진정서가 접수되기 전날인 9월3일 사직서를 제출했으나 진정서 건이 불거지면서 수리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B씨는 이 자리에서의 소명 발언을 통해 “저는 <스포츠 당구>가 완벽하게 개인지라고 생각한다”면서 “개인으로 등록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협회지로 알고 있다”고 했다. 또한 “<스포츠 당구>가 협회지였다면 지난 십 몇 년간 국체회에 예·결산이 다 잡혔어야 했는데 그런 적이 없다”면서 “대의원들이나 이사님들이 한 번도 이의 제기를 한 적이 없다는 게 개인잡지라는 방증”이라고 주장했다. 
 
B씨가 줄곧 편집인으로 있던 <스포츠 당구>는 약 13년간 제호가 세 번, 등록사항이 여섯 번이나 바뀐 파란만장한 역사를 거쳤다. <스포츠 당구>의 첫 제호는 <당구소식>이었다. 당시 발행인은 전임 회장이었던 E씨였고, 발행소는 당구연합회 주소였다. 이후 제호가 <스포츠 빌리아드>로 바뀌는데 이때 발행소 주소가 연합회와 관계없는 곳으로 변경된다. 
 
고발인은 그 당시기 B씨가 <스포츠 당구>를 사유화하려 했던 1차 시도였다고 설명했다. 그 근거로 서울시가 <스포츠 빌리아드>에 발행정지 2개월 처분을 내린 것을 들었다. 서울시는 2008년 <스포츠 빌리아드>가 신문 등의 자유와 기능 보장에 관한 법률(신문법) 제19조에 의한 필요적 게재 사항 중 발행처를 임의로 변경·게재해 발행한 사실에 대해 행정처분을 진행했다.
 
그러자 B씨는 2008년 <스포츠 당구>라는 제호로 잡지를 다시 등록하기에 이른다. 이때는 발행소 주소를 당구연합회로, 발행인은 전임 회장이었던 E씨로 했다. 이후 지난해 4월 신임 회장인 D씨가 자신을 발행인으로 잡지를 재등록하는 등 등록사항이 변경된 것을 제외하면 8월 초까지 <스포츠 당구>는 안정기를 맞았다. 
 
<스포츠 당구>
사유화 시도
 
하지만 8월12일 B씨는 돌연 서울 송파구청에 <스포츠 당구> 폐업신고서를 제출했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회장의 직인을 임의로 사용한 것이 드러났다. B씨가 폐업신고서에 기록한 폐업사유는 ‘협회 방침’이었다. 당시 회장이었던 D씨는 펄쩍 뛰었다. 자신은 <스포츠 당구> 폐업에 동의한 적이 없으며, 직인을 내준 사실도 없다는 것이었다.
 
B씨는 약 2주 뒤인 8월말경 서울 강동구청에 자신을 발행인이자 편집인으로 하는 동일 제호의 <스포츠 당구>를 등록 신고했다. B씨의 두 번째 잡지 사유화 시도다. 고발인은 <스포츠 당구>의 등록사항과 제호가 바뀌는 동안 B씨가 매월 2500만원 어치의 광고를 수주해 연간 약 2억∼3억원, 13년간 총 32억원이 넘는 광고 수익을 올린 것으로 추산했다.
 
당구연합회 부회장, 이사 등 임원 3인으로 구성된 진상조사위원회는 B씨와 <스포츠 당구>에 관한 의혹을 약 한 달간 조사했다. 그리고 지난해 10월16일 2차 징계위원회에서 그 결과를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진상조사위원회는 <스포츠 당구>의 성격을 협회지로 결론내리면서 B씨가 광고 수익 등으로 부당 수입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진상조사위원회는 그 근거로 중간에 <스포츠 당구>가 2년(<스포츠 빌리아드> 제호로 발행됐던 시기)을 제외하고 발행소는 당구연합회로, 발행인은 당구연합회 회장으로 발행됐던 점을 들었다. 협회지의 성격이 짙다는 것이다. 진상조사위원회는 또한 B씨가 강동구청에 새로 등록한 잡지에 대한 권리를 가져와야 한다는 의견도 냈다. <스포츠 당구>를 협회지로 결론 내린 이상 모든 권한을 당구연합회가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서울동부지방법원 제21민사부는 당구연합회가 B씨를 상대로 낸 정기간행물발행금지 가처분 신청에서 <스포츠 당구>를 협회지로 볼 근거가 충분하다면서 당구연합회에 권한이 있다고 판결했다. 또한 서울시 행정심판위원회는 B씨가 송파구청에 낸 폐업신고를 무효로 확인해 주면서 <스포츠 당구>는 협회지라는 주장에 힘이 실렸다. 행정심판위원회는 B씨가 진행한 <스포츠 당구>에 대한 폐업신고는 권한이 없는 사람이 폐업신고서를 위조해 진행했기에 이는 무효라고 재결했다. 
 
그럼에도 B씨는 여전히 <스포츠 당구>를 개인지라고 주장하고 있다. B씨는 “임원과 대의원의 동의없이 잡지를 13년간이나 계속할 수 있었겠나”라면서 “개인잡지에 협회 이름을 쓴 것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B씨는 “협회에 권한이 조금 있을 수는 있다”는 말을 남겼다. B씨는 현재 가처분 소송을 담당한 서울동부지방법원에 본안 소송을 제기하라는 제소 명령 신청을 해둔 상태라고 밝혔다. 
 
사실 B씨가 <스포츠 당구>를 개인지라고 주장하려면 그간 잡지를 발행하면서 얻은 수익에 대한 소득세, 부가가치세 등 세금을 낸 자료가 있으면 된다. 하지만 B씨는 이에 대해 “(세금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고, 그 부분에서 조금 미흡했던 것 같다”는 답변을 내놨다. B씨는 <스포츠 당구>가 개인지든, 협회지든 자신의 의무를 제대로 하지 않은 셈이다. 
 
B씨는 현재 <큐스포츠>라는 당구 관련 월간지를 발행하고 있다. 지난달 25일까지 <큐스포츠> 홈페이지에는 ‘스포츠당구는 매월 발간되는 당구 관련 월간지로서 전국의 모든 당구장과 동호인, 그리고 선수 및 지도자들에게 매월 무료로 발송되고 있습니다’라는 내용이 기재돼 있었다. B씨는 이를 두고 “<스포츠 당구> 홈페이지를 바꿔 쓰는 바람에 그렇게 됐다”면서 수정 조치를 취한 상태다. 
 
당구연합회 관계자는 “제호만 바뀌었을 뿐 <스포츠 당구> 당시 광고주들이 <큐스포츠>에도 광고를 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스포츠 당구>가 협회지라는 게 중론인데, 왜 그에 대한 후속 조치가 없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문체부는 “스포츠 비리신고센터에 접수된 모든 사안 중 사후 처리가 미흡했던 부분에 대한 재조사를 대한체육회에 지시한 상태”라고 말했다. 하지만 중징계를 지시했는데 경징계로 끝났다던가 하는 정도만 재조사하는 것이지 이미 파면, 해임 등 조치를 받은 사람에 대해서는 별다른 조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당구연합회 관계자는 “이번 사안은 당구연합회 내부에서 불거져 나왔지만 크게 보면 상급 단체의 관리 소홀도 원인 중 하나”라면서 “이번 일을 제대로 털고 가지 못하면 통합 단체인 (사)대한당구연맹에도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후처리 미흡
문체부 재조사
 
일각에서는 이번 일을 두고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체육회 산하 단체는 오래 앉아있으면 반드시 때가 탈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서 “상급 단체의 외부 감사는커녕 내부에서도 감사가 뭘 하는지 알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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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갈수록 증폭되는 평택 논란 이제야 공개된 소소한 흔적 쉽게 거두지 못하는 의심 의미심장 세력 교체 과정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소문이 어느덧 사실처럼 인식되고 있다. 명확한 물증이 없는 가운데 파편적인 의혹이 덧씌워진 양상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으며, 흐름을 파악할 만한 유의미한 흔적이 이제야 겨우 나왔을 뿐이다. 증폭된 의혹 뒤편에서 여전히 진실은 빼꼼히 잘 보이지 않는다. 2010년 9월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황해경제자유구역에 자리 잡은 유일한 농산물 가공 업체로, 그간 심심치 않게 밀수 의혹을 받아왔다. 가공 목적으로 수입한 농산물을 가공 없이 시중에 유통시켜 엄청난 차익을 봤다는 꼬리표가 뒤따랐다. 의혹하는 눈초리 선라이즈에프앤티가 취급했던 대다수 농산물이 고관세 품목이라는 점은 이 같은 의혹을 부채질했다. 그간 선라이즈에프앤티는 ▲녹두 ▲콩나물콩 ▲다대기(혼합양념) ▲생강 ▲마늘 ▲참깨 ▲팥 ▲서리태 등 높은 세율이 붙는 고관세 품목을 주로 수입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 예로 콩나물콩의 경우 그대로 들여와 국내에 유통하면 487% 관세가 부과되지만, 콩나물 재배 목적으로 수입하면 27%만 반영된다. 평택세관에 몸담았던 다수의 전직 세관공무원이 기업 출범 및 운영에 관여했다는 점도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었다. 심지어 선라이즈에프앤티 이사진에 포함됐던 특정 세관 출신 임원이 한때 다이아몬드 밀수 사건에 이름이 오르내린 사례도 존재한다. 수년 전부터는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동일선상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해졌다. 선라이즈에프앤티의 밀수 의혹을 수차례에 걸쳐 제기했던 공익 제보자 이성열씨가 재판에 연루되는 과정에서 김건희씨의 모친인 최은순씨가 거론됐던 게 이 같은 흐름에 불을 지핀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정치평론가인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이 최근 ‘평택항’을 언급하자,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은 사실처럼 받아들여질 정도가 됐다. 장 소장은 SBS라디오 <김태현의 뉴스쇼>가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김건희씨 일가의 수상한 물건 수입 의혹과 관련한 이야기를 전했다. 장 소장은 “최은순씨가 주인으로 있는 농수산물 수입업체에서 이상한 것을 들고 오려고 하다가 걸려서 (김건희) 오빠와 김건희씨가 그것을 무마시키려고 여러 가지 이상한 (일들을 했다고 한다)”며 “어떤 물건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부적절한 물건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급기야 선라이즈에프앤티의 폐업이 알려지자, 의혹은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양상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국세청 사업자 과세 유형 조회 결과 지난 10일자로 폐업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폐업자로 조회된 지난 10일은 김건희 특검법이 공포된 시기와 맞물린다. 물론 꾸준히 의혹이 제기된 것과 별개로,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을 입증할 만한 확실한 단서는 없는 상황이다. 특히 주주명부가 지금껏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는 게 의혹과 진실을 구분 짓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일요시사>가 최초 입수한 주주명부는 간접적으로나마 의문을 풀 수 있는 열쇠로 작용할 여지를 남긴다. 의문 해소 첫 단추 2022년 10월 작성된 ‘카리나에프앤티(선라이즈에프앤티에서 2020년 9월 상호 변경) 주주명부’를 검토한 결과 주주는 총 17명, 발행주식은 91만8400주(1주당 5000원)로 확인됐다. 2010년 9월 자본금 5억원으로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수차례 증자를 거쳤고, 해당 시기에 자본금을 45억9200만원으로 늘린 상태였다. 일단 주주명부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대신 경영권 교체 과정이나마 엿볼 수 있을 뿐이다. 법인 등기와 주주명부를 교차 검증한 결과를 토대로 추정하면, 표면상 선라이즈에프앤티 지배 세력은 ‘전직 세관공무원(설립~2018년 중순)→지엔티에이치(~2020년 중순)→킴스에O엔O(~2022년 초순)→동OO앤에스(~2025년 6월)’ 순으로 변경된 흐름이다. 첫 번째 경영권 교체는 ‘펀딩하이 연체 사건’과 함께 발생했다. 펀딩하이는 중국·동남아시아에서 농산물을 수입하는 업체에 돈을 빌려 주고, 투자자들에게 15% 이상 수익을 보장하는 펀딩 상품으로 인기를 끌던 P2P 업체였다. 그러나 펀딩하이는 2018년 6월20일 ‘마늘 시즌2-17차(모집 금액 3억원, 차주 승리산업)’ 펀딩 상품의 연체를 시작으로 ▲세척 당근 시즌2-18차(모집금액 5억원, 차주 지엔티에이치) ▲김치 펀딩 2차(모집금액 1억2000만원, 차주 상아농산) ▲번데기 펀딩 1차(모집금액 1억8000만원, 차주 월량완코리아) 등에서 차주의 투자금 상환 실패를 알렸다. 연체 금액은 ▲지엔티에이치 29억원 ▲승리산업 33억원 ▲상아농산 11억8000만원 ▲월량완코리아 1억8000만원 등 총 75억6000만원에 달했다. 급기야 펀딩하이는 연체율 100%를 찍은 채 영업을 중단했다. 상환 실패 이후 차주 사이에 관련성이 드러났다. 지엔티에이치와 승리산업에서 대표이사였던 윤석호씨는 두 회사 지분을 각각 60%, 100% 보유 중이었다. 또한 월량완코리아 사내이사로도 등재돼있었다. 연체가 발생한 직접적인 사유는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대상으로 한 지분 투자였다. 지엔티에이치는 펀딩받은 금액을 농산물을 들여오는 데 쓰지 않고,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매입하는 데 활용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이를 계기로 지엔티에이치는 2018년 6월경 주식 16만1400주를 확보한 선라이즈에프앤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확보한 이후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명단에 변화가 목격됐다. 선라이즈에프앤티 초창기부터 함께했던 사내이사와 부친에 이어 회사에 몸담았던 대표이사를 대신해 지엔티에이치가 끌어들인 얼굴들이 등기임원 자리를 꿰찼다. 정작 지엔티에이치는 연체 발생 넉 달 후인 2018년 10월 보유 중이던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에 넘겼다. 펀딩하이 투자자들과의 소송전이 불거지자 중국에 본거지를 둔 우군에 주식을 양도한 모양새였다. 거듭되는 교체 수순 두 번째 경영권 교체는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의 주체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충청권에 본적을 둔 킴스에O엔O는 2022년 10월 기준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10만8200주를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의 친인척이 보유한 주식 13만2800주를 합산하면 우호 주식은 24만주 안팎이다. 기존 지엔티에이치 측 우호 세력(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 16만1400주+마송재 3만주)과 비교해 5만주 가까이 격차를 벌린 셈이다.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대량 매입한 시기는 2020년 중후반으로 추정된다. 이 무렵 선라이즈에프앤티 등기임원 구성이 크게 요동쳤다는 점을 통해 짐작 가능한 사안이다. 실제로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발휘하던 2018년 7월 대표이사에 선임됐던 김정일 대표는 2020년 3월 해임됐다. 2018년 9월 취임했던 또 다른 대표이사 역시 당해 10월을 넘기지 못한 채 사임했다. 공석이 된 주요 등기임원 자리는 킴스에O엔O 측 인물로 채워졌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가 2020년 10월 선라이즈에프앤티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해당 시기에 사외이사, 감사 등 등기임원 전원이 새 얼굴로 교체됐다. 킴스에O엔O에 이어 지배 세력으로 등장한 곳은 식료품 제조업을 영위하는 동OO앤에스였다. 이 회사는 2022년 10월 기준 주주명부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지분율 44.64%)를 보유한 단일 최대주주로 등재돼있다. 여기에 우호 세력(글로O포O 1만주+김성수 2만주+김종봉 788주)의 주식을 합산하면 지분율은 50%에 육박한다. 동OO앤에스는 사실상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인수하고자 만든 업체로 비쳐질 여지를 남긴다. 2022년 2월 출범 당시 자본금 10억원짜리였던 동OO앤에스는 불과 두 달 만인 2022년 4월14일 자본금을 21억원으로 두 배 이상 키웠다. 공교롭게도 동OO앤에스가 설립 이후 8개월 사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투입한 금액은 총 20억5000만원이었다. 이는 동OO앤에스 자본금 21억원이 선라이즈 주식 41만주를 매입하는 데 쓰였을 가능성에 주목하게 만든다. 게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기존 61만8400주였던 발행주식을 2022년 4월22일 91만8400주로 30만주 확대했다. 동OO앤에스가 자본금을 21억원으로 확충한 지 8일 만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가 발행주식을 30만주 늘린 덕분에 동OO앤에스는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주식 41만주를 확보한 형국이다. 동OO앤에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지배하는 위치로 올라설 무렵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구성은 또 한 번 바뀌었다. 동OO앤에스 대표이사가 사내이사, 글로O포O 대표이사가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렸고, 김성수 대표이사가 신규 선임됐다. 이후 김성수 대표는 선라이즈에프앤티 폐업 전까지 자리를 지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되짚어보는 연결고리 한편 일각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는 지엔티에이치 측이 지배력을 상실한 이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나마 킴스에O엔O 혹은 동OO앤에스와의 연관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관여한 직접적인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만약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를 2021년 이후로 특정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항간에 떠도는 마약 적발 여부는 2022년 근방으로 얘기가 오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heaty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