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 달라진 박근혜 대권행보<밀착탐구>

<대물>이 박근혜야? 박근혜가 ‘대물’이야?

 
“여러분 정치인은 미워해도 정치를 버려서는 안 됩니다. 정치를 사랑해주시기 바랍니다.” 지난주 종영된 고현정, 권상우 주연의 SBS 수목 정치드라마 <대물>. 대한민국 최초로 여성 대통령을 등장시켰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극중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었던 서혜림(고현정 분)은 5년 임기를 마치면서, 국민에게 ‘정치를 사랑해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불의의 사고로 남편을 잃은 서혜림은 국가를 남편과 자식처럼 생각하는 정치인이 됐다.

선거 저변에 깔린 시대정신 읽어야 청와대 입성
‘경제’ 아닌 ‘복지’로 포문 연 박근혜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007년 대선 당시, ‘경제 성장’을 핵심 키워드로 꼽았다. 이 대통령은 후보자시절 본인을 ‘경제대통령’으로 칭하며, “지난 10년간 무너진 나라경제를 되살리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분배를 강조한 진보정권 10년의 경제 지표에 실망한, 중도 및 서민 계층의 지지를 바탕으로 당선됐다. ‘경제 살리기+물가안정’이라는 구호에 표를 준 것이다. 이렇듯 역대 대선에서 승리한 대통령 당선자들은 저변에 깔린 시대정신을 간파하고, 그것을 ‘선거 캐치프레이즈’로 활용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내세운 ‘구시대 정치 청산’도,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내세운 ‘3김 정치 청산’보다 파괴력이 있었다.

사실상 대선 출정식
이대로 2012년까지 갈까

드라마 <대물>의 주인공인 서혜림은 드라마에서 “대한민국의 존재 이유는 국민의 행복”이라며, “지금 당장 실현 가능성이 있는 복지예산부터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국가의 대외경쟁력보다 국민 삶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취했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도 차기 대선의 시대정신을 ‘복지’에서 찾았다. 소통과 통합의 국민적 요구에 답하기 위해, ‘경제 성장’이 아닌 ‘복지’라는 키워드를 꺼내든 것이다. 지난 20일 오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박 전 대표가 주최한 ‘사회보장기본법 전면 개정안 공청회: 한국형 복지국가 건설’은 대선 출정식 같은 분위기였다. 축사를 맡은 박희태 국회의장은 “존경하는 유력한 미래권력인 박근혜 전 대표가 한국형 복지의 기수로 오늘 취임하시는 날”이라며 차기 대권 도전을 기정사실화했다.

연평도 포 사격 훈련으로 서해안은 긴장감이 돌았지만, 행사장은 여야 의원 70여명을 포함해 900여명에 가까운 인원이 참석해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행사 시작 30분 전부터 1층 좌석 모두 차버릴 정도였고, 자리를 찾지 못한 사람들은 서둘러 2층에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준비했던 정책자료집 1000권도 동났다. 박 전 대표는 인사말에서 “바람직한 복지는 소외계층에게 단순히 돈을 주는 게 아니라 그들의 꿈을 이루고 자아실현을 이루게 해주는 것인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국민들의 생애 주기에 필요한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해 사각지대를 없애야 한다”면서 법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같은 돈을 써도 국민들이 복지를 체감할 수 있도록 틀을 바꿔야 한다. 각자 평생의 단계마다 필요한 ‘맞춤형’ 복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했다. 3분간의 연설에 박수가 6차례 나왔다. 공청회에서 선보인 박근혜표 복지 개정안은 4장 35항의 현행법을 7장 42항으로 확대한 것이다. 지금처럼 현금만 지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일부 현금지원은 하되 교육이나 고용 등에서 공정한 기회를 보장받을 수 있는 복지로 전환하는 게 주요 내용이다. 또 각 부처로 흩어져 있는 복지 관련 정책이나 예산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를 만들어, 복지 중복이나 누수를 막을 수 있는 방안도 제시했다.

‘숨은 조력자’
스터디그룹 5인방
 
박 전 대표는 지난 2007년 경선 후 피치 못할 사정이 없는 한 빠지지 않는 모임이 하나 있다. 지난 6·2 지방선거 당시 대구 달성에서 선거 운동을 지원하다가 이 약속이 잡혀 급거 상경했을 정도다. ‘박근혜표’ 복지를 다듬은 스터디그룹 5인방 얘기다. 신세돈(숙명여대 경제학), 안종범(성균관대 경제학), 김영세(연세대 경제학), 김광두(서강대 경제학), 최외출(영남대 행정학)교수가 팀원이다. 이번 공청회를 계기로 박 전 대표의 정책 브레인들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박 전 대표는 연말이나 연초 각 분야 정책을 공개할 계획인 만큼, 이 과정에서 정책 브레인들이 자연스럽게 더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표의 복지 아젠다를 통한 정계 일선 복귀 신호탄은 연착륙한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표가 내놓은 ‘한국형 복지’는 지난 20일 이후, 대한민국 정치권의 화두로 자리 잡았다. 찬반에 대한 양론이 갈리긴 했지만, 이슈 선점 효과가 분명했다. 반대측에서도 내용 자체에 대한 불만보다 예산 확보나 보완책 등에 관한 지적이 많았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대표는 22일 박 전 대표의 한국형 복지 관련해 “주제를 참 잘 잡았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이 대표는 이날 오전 평화방송 라디오 인터뷰에서 “복지국가화가 하나의 시대적 진전이라고 보여진다”며, “복지국가가 어떤 식으로 가야 제대로 된 복지국가가 될 수 있는지 논의하는 것은 아주 큰 과제”라고 말했다. 심지어 진보 진영에서도 일견 환영의 목소리를 냈다. 진보신당 노회찬 전 대표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복지 예산을 늘리겠다는 것보다 한 발 더 나아가 시스템을 법률·제도적으로 구비하려는 노력을 했다는 점에서는 높이 평가한다”면서, “하지만 본질에 대한 접근이 부족해, 상당히 보완해야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지원 필두로 야권
연일 박근혜 때리기

민주당에서는 박 전 대표의 본격적 정치 활동 움직임이 포착되자 연이어 집중 포화를 날리고 있다. 복지는 그동안 ‘경제 성장’을 앞세운 보수진영보다 진보진영이 선점해온 이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이미 ‘보편적 복지국가’를 당의 노선으로 선택했고, 무상급식, 무상보육, 무상의료 등 3대 핵심 복지 과제를 선정해 정책으로 다듬고 있다.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21일 “우리가 왜 박근혜 의원을 ‘대표’라고 하느냐. 오늘부터 그냥 의원으로 불러라”말 하면서 “박 의원이 성역화돼 있는데 우리가 인정할 필요는 없다. 왜 박 의원에 대한 비판 논평을 내지 않느냐”며 원내대변인들을 질책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 전병헌 정책위의장은 21일 의원총회에서 “한나라당의 ‘선별적이고 말로만 복지정책’에 침묵하고 감세정책에는 사실상 적극적으로 동조하면서 복지재정 확충을 위한 어떠한 철학과 비전, 대안도 없다”며 “속 빈 강정형 복지정책”이라고 비판했다. 또 24일엔 “복지는 기본적으로 예산을 필요로 하는 것”이라며 “예산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없는 복지는 ‘말뿐인 복지’ ‘빈수레 복지’에 불과하다”고 했다. 조영택 원내대변인은 공청회에서 축사를 통해 박 전 대표를 ‘유력한 미래 권력’으로 치켜세운 박희태 국회의장을 거론하며, “‘근혜어천가’를 부르며 아부의 극치를 보여주면서 국회의장으로서의 위상을 망각한 추태를 보였다”며 “박 의장의 이 같은 처세는 과거 국회의장의 신분으로는 전대미문의 일이며, 동료 국회의원과 국민을 모독하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박근혜, ‘대물’로
가는 힘찬 발걸음

한편 한나라당 내에서도 복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친이계인 신임 심재철 정책위의장은 24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 “복지가 늘어난다는 것은 그에 따른 돈이 늘어난다는 것이고, 결국은 국민들의 세금이 더 높아진다는 얘기”라며 “때문에 복지를 얘기할 때는 그 돈을 어디서 어떻게 준비를 할 것이냐를 반드시 따져서 같이 움직여야 한다. 그 얘기는 감춰놓고 ‘무조건 복지만 잘 해 주겠습니다’라고 얘기하는 것은 좀 솔직하지 못한 태도”라며 박 전 대표의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신임 정책위의장의 비판으로 박근혜표 복지가 한나라당 당론으로 채택되기까지 적잖은 진통이 있을것으로 보인다.

복지 정책 관련 계속된 친이계의 반발과, 대권 레이스 막판까지 청와대 권력이 살아 괴롭힌다면 박 전 대표는 또 다시 선택의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 사실 박 전 대표 입장에서 현 정부의 모든 부분을 자신이 담고 가기엔 부담이 있다. 그런 이유로 세종시 수정안 관련, 국회 표결에 앞선 토론에서도 ‘소신’ 발언을 했다. 대권을 염두에 둔 박 전 대표 입장에서 분명한 손익계산서가 그 앞에 놓인다면 심각한 고뇌에 빠질 수 있다. 임기 절반을 돈 이명박 대통령은 이전 대통령과 달리 현재 뚜렷한 레임덕 징후는 보이지 않고 있다. 2012년까지 이 대통령이 ‘살아있는’ 권력이라면 박 전 대표와 계속된 신경전을 벌일 수도 있다. 

야권, ‘빈수레 복지’ ‘말 뿐인 복지’ 비판
여권에서 협조 안 하면, 설마 ‘독자행동?’
 

박 전 대표는 2004년 천막당사 시설 탄핵 역풍을 맞은 가운데 당을 지켜냈고, 2007년 대선 예비후보 경선에서 막강한 여론을 등에 업은 이 대통령이 당에서 튕겨 나가지 않게 적절히 조율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SBS 드라마 <대물>의 서혜림처럼 또 다른 조율을 해야될지 모른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불가론’은 지엽적 영향을 줄 수 있지만, ‘한나라당 박근혜 불가론’은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지난 5년간 이명박 정부의 힘 센 보수를 경험한 중도 성향 유권자가, 보수 정권에 등을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얼마전 벌어진 예산안 단독처리와 같은 독단적 행위나, 권력형 비리가 또 다시 터진다면 ‘한나라당은 안 돼’라고 인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박 전 대표가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아 보이진 않는다. 이 대통령이 지난 10월1일 한나라당 소속 의원 전원을 청와대 만찬에 초청한 자리에서 박 전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 정부의 성공과 18대 국회의 성공을 위하여”라는 건배사도 했다. 이런 행보에 ‘변신’이라는 분석이 쏟아졌고, ‘박근혜 불가론’도 자연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박 전 대표와 친이계 모두 셈법이 맞아떨어진 결과라는 분석이다.

박 전 대표는 지난 대통령 후보 경선과 18대 국회를 거치며 절감한 ‘세력 부족’을 타파하기 위해 외연 확장의 필요성을 인식했다. 또한 친이계 의원들도 2012년 4월 총선을 감안하면 유력 대선주자인 박 전 대표와의 갈등은 ‘선수(選數) 쌓기에 도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있다. 예전처럼 강력한 경쟁자가 있다면 ‘박근혜 불가론’이 여러 차례 튀어나왔겠지만, 현재 상황은 많이 다르다. 대선 8개월 전에 치르는 총선을 감안하면, ‘박근혜 저격수’를 자처할 의원도 많지 않다. 2012년 수도권 총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는 어렵다’고 하는 마당에 박 전 대표를 공격한다면, 박 전 대표의 고정 지지표를 잃을 건 뻔하기 때문이다. 자연히 친박계 행사에 친이계 또는 중립 성향 의원들이 참석하는 일도 잦아졌다.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에서 열린 ‘박정희 대통령 93회 탄신제’에 친이계인 강석호 의원이 참석했고, 박 전 대통령 31주기 추도식에도 중립 성향 이범관 의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친이계도 날선 공격
‘이대로 두면 2012년 간다’

박 전 대표는 ‘한나라당 박근혜 불가론’을 불식시키기 위해 콘텐츠 채우기에도 열심이다. 박 전 대표가 복지 외에도 경제, 외교안보 분야에 공을 기울이고 있다. 분야별 다양한 자문그룹을 만나 조언을 받으며 시야를 넓히고 있다. 경제 분야에서 조언을 받는 사람은 당내 경제통인 이한구, 서병수 의원 등으로 알려졌다. 정치권 한 인사는 ‘진보성향의 전문가를 만나 자문하는 등 한층 유연해진 모습’이라고 전했다. 여야 어느 곳에서도 박 전 대표와 겨룰 진정한 대항마가 아직 출현하지 않은 현재, 그는 ‘대물’로 가는 힘찬 발걸음을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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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