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대한체육회 상납 의혹

로비 통했나…비리 봐줬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일요시사>는 지령 1062호에서 ‘대한레슬링협회 30억 미스터리’를 보도하면서 대한레슬링협회의 난맥상에 대해 짚었다. 상급 기관인 대한체육회는 팔짱만 끼고 있다. 과거에도 대한체육회는 대한레슬링협회에서 불거졌던 문제점들을 여러 차례 방관한 의혹이 있다. 이뿐만 아니다. 대한체육회 직원들이 대한레슬링협회의 전 간부로부터 정기적으로 로비를 받은 의혹이 제기됐다. 자연스레 대한체육회가 대한레슬링협회에서 사고가 터질 때마다 눈감아 준 게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대한체육회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소관의 공공기관이다. 대한체육회는 국내 가맹 경기단체에 국고 보조금을 지원하는 상급기관이기도 하다. 가맹 경기단체를 관리 감독할 의무와 권리가 있다.

다들 모르쇠

대한레슬링협회도 이 가맹 경기단체 중 하나다. 그런데 대한레슬링협회의 비리는 끊이질 않는다.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대한체육회는 이를 방관하고 있는 형국이다. 과거 대한레슬링협회에서 일어난 3가지 사건이 있다. 이 사건들의 중심에는 레슬링계에서 실세로 불리는 대한레슬링협회의 전 간부 김모씨가 있다. 김씨는 대한체육회 직원들에게 로비한 의혹이 있는 장본인이기도 하다.

▲ 박혜자 더불어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 후신) 의원은 지난 2014년 10월24일 문화체육관광부 종합감사에서 대한레슬링협회가 대한체육회장의 직인을 도용해 지도실적증명서를 허위로 발급한 후보자가 한국체육대학의 교수로 임용된 사실을 밝혀냈다. 당시 이 지도실적증명서를 발급한 사람이 바로 김씨다.

2013년 서울경찰청 특수수사과에서 작성한 ‘김OO(김씨) 등에 대한 횡령 등 피의사건에 관하여(중략)’ 진술조서에 따르면 경리담당 A씨는 “(대한레슬링협회 지도자 실적으로 넣은 것에 대해) 저는 안 된다고 했는데, 김OO이 넣어 발급해 주라고 해서 발급해 준 것”이라고 진술했다. 김씨 역시도 직인 발급을 지시한 사실에 대해 인정한 바 있다.


그런데도 대한체육회는 직인을 도용한 김씨에 대해 어떤 조사도 하지 않았다. 대한체육회는 “법원 송파경찰서 및 서울경찰청 감사원 등에서 여러 차례 조사가 진행된 바 있으나 현재까지 문제가 없이 처리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김씨는 그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레슬링협회 간부 공금으로 금품 제공
유흥주점 등 사적으로 협회비 접대도

▲ 최모씨는 제32대 대한레슬링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그런데 다수 레슬링인들은 최씨의 당선이 애초에 무효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에는 두 가지의 근거가 존재한다.

첫째 최씨가 ‘대한체육회 가맹경기단체 규정 제15조(동일인의 겸직 제한) 제2항’에 의거해 무효라는 것. 최씨는 대한레슬링협회 회장 선거에 나갈 당시 서울시레슬링협회 회장이었다. 위 규정에 따르면 최씨는 대한레슬링협회 회장을 나가기 위해서는 서울시레슬링협회 회장직을 사퇴해야 하지만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둘째 대한레슬링협회 회장에 출마하려면 각 시·도 레슬링협회장 3인의 추천서가 필요하지만, 최씨는 이른바 '셀프 추천'했다. 최씨는 3인의 추천서를 경기·제주·서울레슬링협회장에게서 받았다. 서울시레슬링협회장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었다. 그런데도 대한체육회는 최씨를 대한레슬링협회장으로 인준해줬다.

문제 의식을 느낀 레슬링인들은 대한체육회에 이런 사실에 대해 민원을 제기했지만 “대한레슬링협회의 판단에 따른 것”이라며 책임을 떠넘겼다. 하지만 현재 대한체육회 관계자의 관점은 달랐다. 이 관계자는 “겸직 제한에 의거해 그분(최씨)이 사임하거나 직무 정지했어야 하는 게 상식적”이라고 말했다. 최씨의 셀프 추천에 대해서는 “본인의 인사에 대해 본인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게 돼 있다”며 “규정을 넘어 이것은 양심의 문제”라고 말했다.

복수의 레슬링인들은 ‘사실상 김씨가 최씨를 회장으로 만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씨와 최씨는 절친한 사이로 알려졌다. 2013년 김씨는 자신이 맡고 있던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중앙위원회 청년분과위원장직에 최씨를 추천하기까지 했다.


▲ 김씨는 지난해 9월 레슬링협회 공금횡령 혐의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김씨는 사직서를 내고 퇴사했다. 김씨는 10년간 근무하며 중간에 퇴직금을 정산 받았다. 현재 퇴직금 반환이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14년 12월28일 가맹 경기단체에 “형사 기소시 직위해제 조항을 경기단체 직원에 대해서도 적용” “그 밖에 경기단체별 사무규정에 포함되어야 할 내용(징계 절차, 징계 종류, 징계 감경 사유 등)을 규정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당시 김씨는 공금횡령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던 시기였다. 위 지침대로라면 대한레슬링협회는 징계위원회를 열어 김씨를 징계했어야 했다. 파면될 경우 김씨는 퇴직금을 받는 데 상당한 불이익이 따른다. 그런데도 대한레슬링협회는 김씨에게 어떤 징계도 내리지 않고 사직서를 받고 퇴사시켰다.

대한체육회 관계자는 “경기단체 사무국 직원이 유죄판결을 받을 경우 징계위원회를 열어야 한다”며 “사직서를 받을 수 없으며, 해임이든 파면이든 마땅한 징계를 받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퇴직금에도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된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한체육회는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다.

횡령 혐의 유죄 받았는데…
파면커녕 퇴직금까지 정산

위 사례들만 봐도 그 동안 김씨로 인해 불거진 대한레슬링협회의 난맥상을 확인할 수 있다. 레슬링인들은 하나같이 "대한레슬링협회의 비리가 끊이질 않은 것은 이미 자정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런데도 관리 감독할 의무가 있는 대한체육회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게 레슬링인들의 주장이다. 대한체육회에서 대한레슬링협회를 관리단체로 만들어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이와 맞물려 대한체육회 직원들이 대한레슬링협회로부터 정기적으로 로비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경찰청 특수수사과에서 작성한 김씨에 대한 ‘피의자신문조서’에 따르면 김씨는 대한레슬링협회 간부 김모 전 전무이사와 2009년부터 2012년까지 대한체육회 직원 15명에게 수십만원 상당의 상품권과 현금을 제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뿐만 아니라 유흥주점 등 사적으로 협회비 수백여건을 규정에 맞지 않게 사용했다.

김씨는 진술조서에서 “협회의 운영과 직접 관련이 있는 (대한체육회) 직원들에게 감사의 뜻으로 1년 1회 50만원과 30만원 상풍권을 준비해 나눠줬다”고 진술했다. 진술조서에 나온 ‘정보비 상품권 지급 현황’을 보면 대한체육회 체육진흥본부장 B씨 등 15명이 김씨와 김 전 전무이사에게 30만∼50만원 상당의 상품권을 받아온 것으로 나와 있다.
 

이 문건에 따르면 B씨는 총 140만원 상당의 금품을 김씨에게 받았다. 이에 대해 B씨는 “그 기간 나는 서울에 없었다. 김씨를 알기는 하지만 결코 받은 사실이 없다. 대한체육회 감사에서도 문제없이 끝났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런 사실에 대해 제대로 답변하지 않았다. 김씨는 “사람 그만 괴롭혀라. 전 회장이 더 잘 아니깐 그 사람한테 물어보라”고 답했다.

누가 거짓말?

일각에서는 김씨가 협회의 비리를 무마시키기 위해 평소 로비를 한 게 아니냐고 지적하고 있다. 그 동안 대한레슬링협회의 비리를 지속적으로 제보한 김성순씨는 “김씨와 대한체육회 직원 중 하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반드시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 동안 대한레슬링협회 관련한 민원을 대한체육회에 넣어도 아무 소용없었다”며 “당시 민원에 답변한 담당 직원이 하나같이 김씨에게 상품권을 받아온 사람들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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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