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스러진 달 (28)역할 분담

마지막 만찬을 즐기다

소설가 황천우는 지금까지 역사소설 집필에 주력해왔다. 역사의 중요성,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알고 또 미래를 올바르게 설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이 과정에서 ‘팩션’이란 장르를 만들어냈다. 팩트와 픽션, 즉 사실과 소설을 혼합하여 교육과 흥미의 일거양득을 노리기 위함이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의심의 끈을 놓지 않은 사건을 들추어냈다. 필자는 그 사건을 현대사 최고의 미스터리라 칭함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바로 1974년 광복절 행사 중 발생했던 영부인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이다.

호룡이 석원의 손을 잡았다.

“우리는 그저 자네만 믿네.”

두 사람이 침묵을 지키며 가기를 잠시 석원으로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그야말로 화려한 음식점 앞에 차가 멈추어 섰다. 이어 음식점 종업원으로 보이는 듯한 남자가 차문을 열고 맞이하자 뒤따라 아리따운 아가씨가 나서 두 사람을 안내했다.

안내 받아 도착한 룸에 들어서자 차주선이 반갑게 맞이했다. 석원이 급히 다가가 허리를 90도 가량 꺾어 인사했다.

“오늘 퇴원했다지.”

“위원님 덕분입니다.”

“그동안 병원에 입원하면서 생활하느라 상당히 노고 많았네. 그래서 특별히 이 자리를 마련하였다네.”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석원이 고개 숙여 예의를 표하자 차주선이 봉투를 내밀었다.

“그동안 가족과 떨어져 지내느라 마음고생 심했을 터인데 이번에 함께 여행이라도 다녀오도록 하게나. 그렇다고 긴장은 풀지 말고.”

두툼한 봉투를 앞에 두고 석원이 호룡의 눈치를 살피며 망설였다. 그를 살핀 호룡이 차주선의 시선을 의식하며 애써 눈짓을 주었다. 그러자 석원이 다시 고개 숙이고 조신하게 봉투를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말이야.”

차주선이 석원을 은근한 눈빛으로 주시했다.

“이 자리가 파한 다음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는데 그리 알고 이 자리에서는 그저 마음껏 들도록 하게나.”

“위원님, 무슨 선물인지 말해주실 수 없습니까?”


“이보게, 이 부장. 문 군에게 주는 선물인데 왜 자네가 알려 하는가. 여하튼 이 자리에서 시시콜콜 일 이야기는 하지 말고 그저 한 달 간의 피로를 쭉 풀어내는 자리가 되도록 하세.”

차주선의 힐책 아닌 힐책에 호룡이 표정을 머쓱하게 위장하고는 부러운 시선으로 석원을 주시했다. 그러기를 잠시 후 본격적으로 음식이 들어오고 이어 미모가 출중한 아가씨들이 들어왔다.

술잔이 오고가고 오래지 않아 술기운으로 인해 분위기가 질펀하게 변해갔다. 한순간 차주선이 자리 파할 것을 암시하자 이호룡은 물론 문석원의 표정에 아쉬운 감이 역력하게 묻어나오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에 아랑곳하지 않은 차주선이 자리를 파하고 밖으로 나가자 고급 승용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문 군 타게나.”

석원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내 선물 준비했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러니 일단 타게.”

선물이라는 소리에 잠시 전 상황이 생각났는지 석원이 고개 숙여 예를 표하고 차에 자리 잡았다. 이어 차가 미끄러지듯이 음식점을 빠져나가 도쿄 중심가의 한 호텔로 향했다.

호텔에 도착하자 기사가 메모지 한 장을 건넸다. 물론 한 룸의 번호였다. 호기심에 한껏 들떠 자꾸만 메모지를 살피며 가기를 잠시 후 메모지에 기재된 룸 앞에 멈추어 섰다. 그동안 마신 술이 만만치 않건만 자꾸 마음이 움츠려들자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윽고 배에 힘을 주고 벨을 누르자 잠시 후 문이 열리면서 한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를 보는 순간 석원의 호흡이 일시적으로 멈추어진 듯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서 와요, 석원 군. 내 차 위원께 신신당부하여 이 자리를 마련하였어요.”

석원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우물거리자 여인이 석원의 팔을 잡고 안으로 끌어들였다.

“지도원 동‥‥‥.”

영웅인가 테러리스트인가
'거사' 위한 준비 착착


석원이 어느 정도 정신이 돌아와 말을 한다고는 했는데 제대로 이어지지 못했다.

“오늘 밤은 그냥 영란이라 불러줘요.”

여인, 영란의 손에 이끌려 룸에 들자 테이블 위에 샴페인과 함께 간단한 요리가 준비되어 있었다. 갑작스런 상황 변화에 석원의 술기운이 송두리째 사라진 듯 여전히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이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얼마나 공들였는지 아세요?”

“너무 과분합니다, 지도원 동무.”

이번에는 끝까지 말을 이었다. 그를 살피며 영란이 천천히 글라스에 술을 따라 석원에게 건네고 저 역시 한 잔 들어 침대로 이동했다.

“우리 민족의 영웅이 이렇게 소심할 줄이야.”

마치 조롱하듯이 웃으며 내뱉은 영란이 손을 뻗었다. 더 이상 수세에 몰려서는 안 되겠다 생각한 석원이 잔을 들고 영란이 안내하는 침대로 다가가 바로 곁에 자리 잡았다.

“석원 씨, 한동안 제대로 사람 생활 못했다고 들었어요. 그러니 우리 모든 거 잊고 마셔요.”

말을 마침과 동시에 가볍게 잔을 부딪친 영란이 슬그머니 석원의 입술에 키스했다. 그 순간 잠시 동안 사라졌던 술기운이 급격하게 밀려오는지 석원의 가운데에서 기운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석원이 급히 잔을 비워내자 마시는 시늉만 했던 영란이 자신의 잔과 석원의 잔을 침대 한구석에 내려놓고 한 손으로 석원의 목을 껴안고 다른 한 손으로는 꿈틀거리기 시작한 석원의 가운데를 슬그머니 만졌다.

영란의 행동에 석원의 코에서 정체 모를 뜨거운 기운이 영란의 얼굴로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영란이 그를 느끼며 자세를 낮추자 석원의 바지가 뚫어질 듯한 모습이 시선에 들어왔다. 그 부분을 슬쩍 손으로 비벼대던 영란이 몸을 일으켜 석원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하고 자리에서 벗어나 석원의 빈 잔을 채워 가져왔다.

“오늘 밤 내내 석원 군의 사랑을 받고 싶어.”

촉촉이 젖어든 영란의 목소리에 석원의 어깨도 가운데처럼 한껏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를 의식하며 잔을 건네는 영란의 허리를 낚아채듯 끌어당겼다. 이어 잔을 치우고 품에 들어온 영란을 으스러져라 껴안으며 거친 숨을 뿜어냈다.

“가만히 있어봐.”

영란이 가볍게 석원을 밀치고 옷을 벗기 시작했다. 석원의 목으로 마른 침이 넘어가면서 목젖이 심하게 꿈틀거렸다. 전라로 변한 영란이 이번에는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는 석원의 옷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벗기기 시작했다.

석원이 순간을 참을 수 없었던지 혹은 영란의 행위를 도와주기라도 함인지 스스로 옷을 벗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순식간에 전라의 모습으로 바뀌자 석원이 야수의 본능을 드러내 영란을 안아 들어 침대에 가지런히 눕혔다.

“석원 씨, 가만.”

영란이 자신의 위에서 벌겋게 달아오른 석원의 어깨를 살며시 밀치며 석원의 몸 위에 자리했다.

“가만히 있어. 내가 석원 씨를 가질 테니.”

영란이 그윽한 시선으로 석원의 얼굴을 주시하기를 잠시 석원의 귀를 시작으로 혀로 아울러 입술로 말하기 시작했다. 순간순간 석원의 몸이 움찔움찔거렸다.

“어땠어, 석원 씨.”

짧지 않은 시간 깊은 나락으로 떨어졌던 석원의 귀에 달콤한 음악이 들려왔다.

“지도원 동무, 이런 기분 처음입니다.”

순간 영란이 얼굴을 찡그리며 석원의 가운데를 힘차게 감아쥐었다. 석원의 입에서 자연스레 신음이 흘러나왔다.

“지도원 동무라 부르지 말고 영란이라 부르라 했잖아.”

“정말 그래도‥‥‥.”

영란이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으로 치워 놓은 잔을 가져와 석원에게 건네고 가볍게 잔을 부딪쳤다.

“그런데 정말 좋았어?”

“그걸 말씀이라고 해요. 태어나서 이런 기분 처음이에요.”

“나도 이런 기분 처음이야. 사랑을 나누는 일이 이렇게 좋은 건지 지금까지 정말 몰랐어. 그런데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걸까?”

석원이 차마 답을 못하자 영란이 고개 숙인 석원의 가운데를 살살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영란의 기교 혹은 석원의 마음속에 있던 영란에 대한 호기심 탓인지 오래지 않아 언제 그랬느냐는 듯 서서히 기지개켜기 시작했다.

“아마도 영웅과 함께 사랑을 나누기 때문에 더욱 흥분되고 그래서 더욱 맛있는 건지도 모르겠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석원이 차마 대답을 못하자 영란이 손 대신 입을 그곳으로 가져갔다. 이어 입과 이빨로 공략하자 석원의 귀에 그저 영웅이라는 단어만 윙윙거렸다.

동일이 사무실에서 시계를 바라보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던 중에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자신 또래의 날카롭게 생긴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음호에 계속>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내년 6월 치러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는 단연 서울시다. 서울시에 깃발을 꽂는 쪽이 전체 선거의 승리라 봐도 무관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진보 진영에서는 당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오세훈 대항마’를 자처하는 후보군이 속속 등장했지만, 서울 시민의 마음까지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전국 지역위원장 워크숍에서 제9회 지방선거(이하 지선) 승리라는 목표를 세웠다. 이달 중으로 지선 공천 룰을 확정해 빠르게 선거에 임하겠다는 방침이다. 큰 틀로는 ▲당원 민주주의 실현 ▲완전한 민주적 경선 ▲깨끗하고 유능한 후보 선출 ▲여성·청년·장애인 기회 확대 등 4대 방향이 제시됐다. 출사표 만지작 민주당은 이번 지선의 성격을 ‘완전한 내란 종식’으로 규정했다. 민주당 전국 지역위원장은 워크숍에서 ‘이재명정부 성공과 지선 승리를 위한 더불어민주당 전국지역위원장 결의문’을 통해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받들어 민생회복·내란청산·개혁완수라는 역사적 사명을 반드시 이루어 낼 것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내년 지선서 압도적 승리를 이끌어냄으로서 ‘무능 부패한 국민의힘 지방권력’을 심판하고 ‘진짜 자치분권 균형성장’의 시대를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또한 “이정부 성공을 위해 당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모든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다가오는 지선은 민주당의 책임과 기회의 시험대다. 당의 힘을 모아 이정부의 성공과 지선 승리라는 두 목표를 함께 이뤄낼 것”이라고 밝혔다. 주목도가 높은 서울시장 선거 최종 후보가 되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을 키울 수 있다. 차기 서울시장 임기는 2030년으로 21대 대통령선거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그동안 서울시장은 대선주자로 가는 지름길로 여겨졌던 만큼 정치인으로서 큰 꿈을 꾸는 이들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다. 민주당은 서울시장 선거 본선행 티켓을 놓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원내 의원들의 공식 출마 선언 이후에도 자칭타칭 물망에 오른 진보 인사들이 시기를 재고 있어 다양한 경선 구도가 그려질 것으로 관측된다. 박주민 의원은 민주당 내에서도 가장 먼저 공식 출마 의사를 밝힌 인물이다. 그는 “서울이 ‘맏이’ 역할을 하며 지방 도시들과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일찌감치 선거판을 예열했다. 뒤이어 민주당 서영교 최고위원이 출사표를 던졌다. 조희대 대법원장 저격수를 자처하며 존재감을 키운 그가 이번에는 “서민을 위해 일 잘하는 시장이 필요하다”며 오세운 서울시장 대항마로 나섰다. 서 최고위원은 “(오 시장은) 토지거래허가구역을 무리하게 해제하면서 부동산 폭등을 자초했다”며 “이태원 참사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은 시점에서 큰 책임이 있는 용산구청장에게 서울시 주최 지역축제 안전관리 대상을 주는 등 시민의 요구, 시대의 요구를 전혀 읽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정감사 이후 결단을 내리겠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는 지난달 오마이TV ‘박정호의 핫스팟’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적 중요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할 후보가 서울시를 탈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자리에 과연 제가 적합한 후보인지 고민을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큰 판 향하는 의원들 오세훈만 꺾으면 끝? 지난 조기 대선 당시 ‘민주당 골목골목선대위 서울위원장’을 맡아 서울시 정책 로드맵을 짜는 데 참여한 만큼 출마 명분은 충분하다는 평이 나온다. 마찬가지로 원내 인사인 박홍근 의원과 김영배 의원도 몸풀기에 나섰다. 특히 박 의원은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선 지난해 8월 당시 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사전 논의가 있었던 점을 강조만 만큼 오랜 고심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홍익표 전 의원도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생각하고 준비 중”이라며 도전을 시사했다. 홍 전 의원은 가장 민감한 서울 부동산 문제를 겨냥하는 등 오 시장의 강남권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를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꼽으며 저격에 나섰다. 박용진 전 의원의 출마 가능성도 점쳐진다. 박 전 의원은 “아직 정해진 건 없다”면서도 연일 오 시장을 때리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최근에는 “민주당의 정치가 ‘영포티(젊어 보이려 애쓰는 40대)’ 정치로 전락하지 않도록 몸부림쳐야 한다”며 청년세대와의 통합을 강조하기도 했다. 원외에서는 정원오 성동구청장의 이름이 눈에 띈다. ‘K-브랜드지수’에서 서울시 지자체장 부문 1위 타이틀을 따낸 그는 활발한 SNS 활동으로 두터운 지지층을 보유한 인물이다. “나 서울 시민인데, 구청장님 좀 같이 씁시다” 등 밈(인터넷 유행 콘텐츠)이 온라인에 퍼지면서 팬덤을 등에 업고 민주당 원내 인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지 이목이 쏠린다. 민주당 후보군은 일동 ‘오세훈 때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오 시장의 야심작인 한강버스가 연일 구설수에 오른 데 이어 최근 서울시가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서울 종묘 맞은편에 높이 145m 건물이 들어설 수 있도록 재정비촉진계획을 변경한 것을 두고 맹공에 나선 것이다. 지난 11일 민주당 문화예술특별위원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종묘 재개발 논의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당내 서울시장 후보군인 박주민 의원과 서영교 최고위원을 비롯한 전현희·김영배·박홍근 의원 등이 대거 참석했다. 특히 박홍근 의원은 “차기 시장, 그리고 대권 놀음을 위해 종묘를 제물로 바치겠다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서울 종묘가 서울시장 선거의 새로운 전장이 된 셈이다. 이리저리 혼돈의 표심 민주당에서는 윤석열정부 조기 퇴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 승리의 후광효과가 지선까지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지선 기조를 내란 청산으로 내세운 것 역시 ‘내란 VS 헌법 수호’ 프레임이 유효하다고 본 것이다. 다시 꺼내든 내란 종식 키워드가 내년 지선에서도 먹힐지는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지선 압승이라는 낙관론에 젖어 서울시 민심을 제대로 훑지 못한다면 ‘이정부 심판론’으로 되치기당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지점이다. 민주당 출신의 한 정치권 관계자는 “서울시 선거는 ‘오세훈만 꺾으면 당선’ 같은 일차 방정식이 아니다. 오 시장이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등 각종 리스크에 발목 잡혀 약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울시민이 내란 종식을 외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겠냐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다시 출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구 특성만큼 변수도 많은 서울시 자체가 첫 번째 허들이다. 서울은 마포·용산·영등포·광진·동작·성동·강동·중구 등 13개 선거구를 일컫는 한강벨트를 따라 보수층이 포진해 있어 보수 텃밭으로 여겨지지만, 지난해 치러진 총선에서 민주당이 서울 48석 중 37석을 얻어 과반이 넘는 지역에 파란 깃발을 수놓았다. 그럼에도 조기 대선에서 당시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서울시에서 각각 47.1%, 41.6%를 얻어 두 후보 간의 격차는 5.5%p에 불과했다. 여기에 범보수로 여겨지는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가 얻은 9.9%를 더하면 보수 진영이 진보 진영을 앞서게 된다. 비상계엄이라는 특수 상황을 경험했지만 40%에 달하는 서울 시민이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두 번째는 한강벨트를 따라 빼곡히 자리 잡은 부동산이다. 정부의 10·15 부동산 정책을 통해 서울시 민심을 움직이는 건 진영 간의 논리 싸움이 아닌 정책, 그중에서도 집값이라는 게 명확해졌다. 서울 전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과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하는 이재명표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지 약 보름 뒤 민주당 지지율이 1주일 새 10%포인트 하락하며 국민의힘에 오차범위 내에서 역전됐다. 지지층에 휩쓸릴라 한국갤럽이 지난달 28~30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의 서울 지지율은 31%로 전주 대비 10%p 떨어졌다. 반면 국민의힘은 12%p 오른 32%로 집계됐다. 서울을 대상으로 고강도 대책이 발표되자 서울 민심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전체 긍정 평가는 전주 대비 1%포인트 상승해 57%를 기록했지만,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서울 지역에서는 8%p 하락한 47%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2.6%다.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와 한국갤럽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결국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진영 간의 대립구도가 아닌 인물과 정책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의견에 초점이 맞춰지지만, 진보 진영 후보들은 본선 진출을 위해 당원의 표심을 얻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졌다. 지선을 앞두고 민주당 지도부가 권리당원 권한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힌 만큼 국민의힘과 잘 싸우는 ‘전투적인 후보’가 경선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차기 서울시장 후보 적합도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진보·여권 후보 가운데 정 구청장이 1위를 차지했다. 만일 정 구청장이 출마 의지를 굳히더라도 박주민·서영교 의원 등 쟁쟁한 원내 인사를 제치고 당원의 선택을 받을지 확신할 수 없다. 인지도면은 물론 민주당 지선 기조가 내란 청산으로 자리 잡은 한 12·3 비상계엄을 해제한 인물에게 더 많은 정치적 유산과 서사가 쥐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박 전 의원은 출마 가능성을 시사한 동시에 민주당 강성 지지층에게 집중적으로 질타 받았다. 2023년 8월 당시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이던 시절 체포동의안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던 중 불체포특권 포기 성명에 이름을 올린 31명의 의원 중 한 명인 만큼 경선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반면 민주당 지지층으로부터 꾸준히 이름을 알려온 경우 경선 통과가 수월하지만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개딸(개혁의 딸들)이 밀어준 강경파 후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면 정책이나 행정가로서의 자질은 묻히고 이에 거부감을 느낀 중도층의 표가 분산될 것이란 점에서다. 당원 마음 잡으랴, 중도층 안으랴 김민석·강훈식 ‘투톱’ 차출설도 경선과 본선을 놓고 민주당의 딜레마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김민석·강훈식 차출설’이 돌면서 서울시장 선거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인지도가 높고 행정가 면모가 돋보이는 김민석 국무총리와 강훈식 대통령실비서실장을 서울시장 후보로 내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국정 투톱이 또다시 정치의 한가운데에 들어섰다. 앞서 김 총리는 여러 차례에 걸쳐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에 선을 그어왔지만 종묘 재개발 논쟁에 뛰어들면서 다시 불을 댕겼다. 지난 10일 김 총리가 서울 종묘 일대를 찾아 “무리하게 한강버스를 밀어붙이다 시민의 부담을 초래한 서울시로서는 더욱 신중하게 국민적 우려를 경청해야 한다”고 우려를 표했는데, 이를 두고 오 시장이 “국민 감정을 자극하려 하는데 이는 선동”이라며 지선을 겨냥한 발언이라고 의심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한 차례 서울시장에 도전했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이름도 다시 거론된다. 김 총리가 서울시장 대신 당 대표로 나서고, 직을 내려놓은 정 대표가 서울시장 도전 후 대권 코스를 밟는 시나리오다. 3대 개혁을 두고 당정 불협화음이라는 의심의 눈초리가 따라붙는 만큼 교통정리를 통해 당정 서로에게 윈윈(win-win)하는 방법으로 꼽힌다. 우선 민주당 관계자들은 앞선 두 사람의 출마 가능성이 극히 낮다고 보고 있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총리나 대통령비서실장 자리에 생긴 공백은 국정 운영에 차질이 빚을뿐더러 정부 출범 1년도 되지 않은 시기에 지선 후보로 차출할 시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게 공통된 설명이다. 정 대표의 서울시장 도전 여부 역시 “이제 겨우 (취임) 100일이 지났다”며 일축했다. 이처럼 ‘스타 정치인’ 후보군이 물망에 오르자 당 일각에서도 지역 일꾼을 뽑는 지선의 의미가 퇴색될까 우려하는 모양새다. 경선 당락을 결정할 당원의 표심을 사로잡기 위해 지나친 선명성 경쟁이 이어질 경우 중도층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거라는 지적도 나온다. 수많은 변수들 여권 관계자는 “지선 결과를 미리 예단하기엔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차분하게 기다리면서 후보들의 공약을 분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앞으로 종묘 재개발 같은 이슈가 전방으로 나올 텐데 그때마다 (민주당도) 네거티브로 맞받아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우리 당원도 내란 종식과 민생회복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사람을 최종 후보로 뽑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터줏대감 눈치 보는 국힘? 더불어민주당과 마찬가지로 국민의힘 역시 서울시장을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로 보고 있다. 서울시 사수를 위해 후보군을 물색하고 있지만, 오세훈 시장의 임기가 남은 만큼 누구 하나 선뜻 도전장을 내밀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에 오 시장의 재도전이 유일한 방법으로 여겨지는 모양새다. 오 시장은 “시민들이 어떤 평가를 해줄지 지켜보며 거취를 분명히 하겠다”며 3선 도전 가능성을 내비쳤다.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종묘 재개발 등 리스크를 안고 있지만 현역 프리미엄에 기댄다면 시도해 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 셈이다. 한때 경기도지사 후보로 거론됐던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이번에는 서울시장 물망에 올랐다. 서울시장 출사표를 던진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오 시장이 아닌 나 의원을 상대할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로 말하면서 이목이 쏠렸지만 정작 나 의원은 서울시장 도전 가능성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