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연재]레드모델바 김동이의 <여자의 밤을 디자인하는 남자 4>

돈? 사랑? 선수 아닌 흔들리는 남심(男心)

전국 20여개 지점을 가지고 있는 국내 최고의 여성전용바인 ‘레드모델바’를 모르는 여성은 아마 별로 없을 것이다. 현재 레드모델바는 기존의 어두운 밤 문화의 하나였던 ‘호스트바’를 건전하게 바꿔 국내에 정착시킨 유일한 업소로 평가받고 있다. 이곳에 근무하는 ‘꽃미남’들만 전국적으로 무려 2천명에 이르고, 여성들의 건전한 도우미로 정착하는데 성공했으며 매일 밤 수많은 여성손님들에게 생활의 즐거움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성공의 배경에는 한때 ‘전설의 호빠 선수’로 불리던 김동이 대표의 고군분투가 녹아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삶과 유흥업소의 창업 이야기를 담은 자서전 <여자의 밤을 디자인하는 남자>를 펴낸다. <일요시사>는 김 대표의 책 발행에 앞서 책 내용을 단독 연재한다.

“동이씨, 오늘은 그냥 내 옆에 있어주면 안돼?”
그녀는 나의 마음을 사기 위해 돈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 은영의 어두운 얼굴
하지만 그녀는 특별한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세잔, 네 잔, 다섯 잔. 마치 폭풍 전야의 고요라고나 할까. 가끔씩 힘든 일을 겪는 여자들은 그렇게 말없이 술잔을 기울이곤 한다. 나는 한 달 정도의 선수 생활로 이미 그 정도는 눈치를 챌 수 있었다. 그럴 때는 너무 옆에서 나대는 것도 좋지 않다는 것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투명한 유리잔과 새 하얀 그녀의 손은 너무도 잘 어울렸다. 긴 생머리에 하얀 피부, 아담한 발 사이즈. 그녀의 모든 것은 내 마음을 훔치기에 충분했다. 나도 서서히 취해가면서 그녀의 모든 것이 더욱 아름다워 보이기 시작했다. 어떤 남자인들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까. 같은 여자들이 봐도 예쁘다고 할 정도니. 그저 나는 그녀 옆에 함께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양주 한 병이 거의 다 비워갈 즈음, 그녀가 드디어 엷은 목소리로 말했다.
“노래할까?”
노래를 거듭할수록 그녀의 얼굴은 더욱 슬픔으로 얼룩지기 시작했다. 밝은 노래를 부를 때에도 그녀의 얼굴에는 여전히 어두운 그림자가 지워지지 않았다. 마치 속에 있는 무언가를 다 게워내듯이 한참이나 그렇게 노래를 부른 그녀는 내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동이씨, 그냥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오늘은 그냥 내 옆에 있어주면 안돼?”
사실 뭐 나야 누구와 있은 들 무슨 상관이랴. 거기다가 내가 좋아하는 은영씨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 하지만 내가 있었던 정빠의 경우 ‘따블’을 뛸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몇 테이블을 동시에 왔다 갔다 하면서 손님에게 서비스를 해주는 것이다. 그날 역시 은영씨 외에 두 명의 여자 손님이 더 나를 지명했던 터였다. 난감하고 답답했다. 하지만 역시, 텐프로 마담인 그녀가 호빠의 시스템을 모를 리 없었고, 그런 말을 나에게 하기까지 여러 상황을 감안하지 않았을 리 없었다. 그녀가 말했다.
“백마담한테는 다 말해놨어. 오늘은 동이씨하고 단 둘만 있고 싶다고… 허락도 다 받아놨어.”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슬퍼하는 그녀를 위해 뭔가를 해주어야할 때인 듯 싶었다. 하지만 기분을 띄우고 분위기를 바꾸는 데에는 노래만한 것이 없다. 사실 나는 노래를 무척 잘한다. 나의 고향, 강원도 시골에서는 매년 명절 때 노래자랑 콩쿠르가 열린다. 나는 늘 1등을 하던 실력이었다. 가수보다야 못한 실력이겠지만 여자의 마음 정도 짠하게 만드는 정도는 충분했다. 내 노래 실력은 호빠 선수 시절 내내 나의 가장 큰 무기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가수 박강성의 ‘문 밖에 있는 그대’. 은영씨가 워낙 좋아하던 노래라 이미 노래방에 혼자 가서 20번이나 넘게 연습을 해놓았던 노래였다.
노래가 끝나갈 즈음, 그녀의 얼굴 표정은 다소 밝아진 듯 했다.
“괜찮았어?”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계속 해줘. 오늘은 동이씨가 유난히 노래도 잘 부르네”

■ 끝내 울어버린 그녀
발라드, 댄스, 트로트… 무슨 굿이라도 하는 듯 내리 10여곡의 노래를 불렀다. 제일 마지막, 박강성의 ‘안녕’이라는 발라드의 1소절이 끝날 즈음, 드디어 은영씨는 참던 울음을 터뜨렸다. 분명히 오늘 처음 봤을 때부터 얼굴에 슬픔이 가득했었다. 나는 노래를 멈추었지만, 반주는 계속됐다. 반주 간간히 은영씨의 서러운 울음소리가 가사처럼 어우러지는 듯 했다. 밴드를 내보낸 후 잠시 혼자 울게 놔둔 뒤 조심스레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왜 그렇게 서럽게 우냐고. 울음으로 범벅된 그녀의 입술이 떨렸다.
“그 년이… 돈만 받고… 도망가 버렸어.”
일명 화류계에서 흔히 있는 ‘마이낑’에 관한 이야기였다. 특히 텐프로 같은 고급 룸살롱에서는 아가씨들이 일을 하기 전에 돈을 미리 주게 된다. 예전에 처음 은영씨를 호빠에서 만났을 때 함께 왔던 그 여자. 바로 은영씨는 그녀에게 함께 일하자고 제안을 했었고 그녀는 자기 말고 한 명 더 데리고 올 테니 5000만원의 마이낑을 달라고 했다고 한다. 물론 대부분은 신분증 복사에다 차용증까지 받기는 하지만, 일단 마음먹고 잠수를 탔을 경우에는 찾아내기가 여간해서 쉽지 않다. 설사 사람은 찾아낸다고 하더라도 돈을 다시 찾기는 힘들다.
그녀는 더욱 서럽게 울었다.
“나, 어떡해 동이씨… ”
은영씨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두 가지. 다시 두 아가씨를 잡아오거나, 혹은 5000만원을 만들어 업주에게 주는 일이다. 둘 중에 하나가 되지 못하면 심한 경제적 곤란을 당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만약 내가 할 수 있다면 뭐든지 도와주고 싶었다. 돈이 있으면 돈을 주고 싶었고, 그녀들을 잡을 수 있다면 당장에라도 뛰어가 여자들의 머리채를 잡고 끌고 오고 싶었다. 하지만 어떤 것이든 당시 나의 상태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정말로 초라하고 하찮았다.
“은영씨, 잘 되겠죠. 제가 할 수 있으면 뭐든… 도와주고 싶어요.”
은영씨가 돈으로 고통 받고 있을 때, 아이러니컬하게도 나는 명자씨를 통해 돈을 가진 자의 막강한 위력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나의 마음을 사기 위해 돈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만남을 가지고 있던 중에 명자씨는 나에게 여러 가지 제안을 했었다.
“동이씨, 운전면허 있어요?”
“아, 음주운전으로 당분간 운전 못한다고 했죠? 제가 해드릴께요. 필요하면 언제든 불러요.”
그녀의 차는 BMW였다. 그 정도의 나이에서 외제차를 몰고 다니는 여자를 본 적은 한번도 없었다. 역시 돈이라는 것은 막강했다. 자신이 원하는 것, 갖고 싶은 것에 돈에 구애 받지 않는다는 것은 나에게 새로운 ‘경지’처럼 느껴졌다. 늘 나의 삶은 끊임없이 돈의 구애를 받아왔었다.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먹고 싶은 것이 있어도 맨 먼저 떠오르는 것은 ‘저건 얼마일까’ ‘비싸겠지?’ ‘에이 돈도 없는데’라고 생각했다. 내 생각은 늘 돈이라는 한계에 부딪혔다. 하지만 명자씨는 달랐다. 그냥 하고 싶은 걸 하고, 먹고 싶은 걸 먹는다. 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 욕구가 중요했다. 나와는 생각의 차원, 생활의 차원이 완전히 달랐던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녀가 내게 운전면허가 있냐고 물어본 것은 그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풋~, 운전 같은 건 동이씨가 안해줘도 돼요. 동이씨가 뭐 내 운전기사인가?”
당시는 소나타 2가 상당한 유행을 하고 있을 때였다. 돈도 있고 스타일도 아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소나타2를 사는 분위기였다.
“동이씨, 내가 차 사줄까?”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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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