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더민당 목줄 잡은 김종인 선거대책위원장

불붙은 호남민심에 기름 부었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인재영입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지난 1월부터 젊은 인재와 파격적인 인사를 영입하며 정치권에 파란을 일으켰다. 특히 김종인 전 의원을 영입해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입명한 것은 더불어민주당 지지층 이탈을 막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게 중론이다. 문재인 대표는 대표직을 사퇴하고 김종인 선거대책위원장에게 전권을 일임했다. 김 위원장은 총선까지 더불어민주당의 목줄을 잡게 됐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당) 선거대책위원장은 ‘경제민주화의 상징’으로, 최근 몇 년 동안 거물급 인사로 꼽혔다. 1940년 경기도 시흥군 동면 신림리(현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에서 태어났다.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 김병로의 손자다.

중도성향 경제통
경제민주화 원조

한국외국어대학교를 졸업하고 독일 뮌스터대학교에서 유학했다. 귀국 후에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를 지내다가 유신정권에서 정책자문역할로 경제개발계획 수립에 참여했다. 노태우 정부 때 보건사회부 장관과 청와대 경제수석을 역임했다. 1987년 헌법 개정 당시 ‘경제민주화 조항’(119조 2항) 신설을 주도하며 대표적인 재벌개혁론자다.

1979년 12·12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신군부가 내각을 통제하기 위해 만든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이른바 국보위)에 재무 분과위원으로 참여했다. 당시 국보위는 초헌법적 반민주기관으로써 신군부 반대세력들의 정치활동 규제, 언론인과 공직자 숙정, 삼청교육대 발족 등 많은 일들을 추진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이 독재 정권을 도왔다는 비판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김 위원장은 지금까지 여러 정치세력과 번갈아가며 손을 잡았다. 전두환 정권 출범 직후인 1981년 민주정의당(민정당) 비례대표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그는 12대(민정당), 14대(민주자유당) 의원으로 승승장구했다.


노태우정권에서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 보건사회부 장관을 역임했다. 사실 김 위원장은 노태우 대통령과의 경제 분야 과외교사로까지 불린다. 그러나, 정작 정권 출범 직후에는 대통령 측근들의 견제로 상대적으로 한직인 보건사회부 장관에 머물러 있다가 기록적인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경제 분야의 전권을 약속 받고 청와대에 들어갔다.

김 위원장은 청와대 경제수석 시절, 부동산 투기의 원인을 기업의 무분별한 부동산 투기로 봤다. 그래서 공급량 조절을 위해 주요 재벌들의 비업무용 부동산을 강제 매각시키는 5·8조치를 단행해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켰다. 이는 역사상 가장 강도 높은 재벌 규제로 손꼽힌다. 이를 기반으로 경제 구조 조정과 체질 개선을 주도했으며, 국가의 적절한 시장개입을 통해 재벌과 기업의 폭주를 견제하는 등 균형잡힌 경제적 성과를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이렇듯 강력한 재벌개혁 추진으로 재벌 쪽에서 가장 껄끄럽게 여기는 인물이 됐다. 당시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지낸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과는 사사건건 충돌했다. 이것이 정 회장이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 출마에 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문재인 사퇴하고 김종인 체제 전환
총선까지 진두지휘…임무완수 가능?

승승장구했던 김 위원장은 1993년 안영모 동화은행장에게 2억1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돼 의원직을 잃었다.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재직 중이던 1991년 12월 청와대로 찾아온 안 은행장으로부터 “은행장 연임이 가능하도록 도와달라”는 부탁과 함께 1000만원을 받는 등 1992년 3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2억1000만원을 받은 혐의였다.

김 위원장은 뇌물수수로 감옥살이를 하며 재판을 받아 결국 징역 2년6개월 집행유예 4년형을 받았다.

이후 계속 야인으로 지냈다. 역대 정권의 인사 개편 때마다 경제부총리 혹은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으로 하마평에 올랐으나 번번이 입각에 실패했다.


1997년 김대중정권 시절 외환위기(IMF사태) 때 ‘어떻게든 문제투성이인 재벌을 개혁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돼 개혁진보 성향의 경제학자들과 언론이 김 위원장을 지지했으나, 결국 입각하지 못했다. 2003년 노무현정권 출범 직전에도 경제부총리후보로 강력하게 고려됐으나, 결국 그 자리는 관료출신으로 정권인수위에 참여했던 김진표 국무조정실장에게 돌아갔다.

박근혜·안철수
멘토로 불리기도

김 위원장은 뇌물수수로 감옥살이를 하며 재판을 받다가 결국 징역 2년6개월 집행유예 4년형을 받았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는 조순형 새천년민주당 대표의 영입 제안을 받아 비례대표로 4선에 성공했다. 이후 임기가 끝나고 이후 다시 야인으로 지내는 동안 강력한 재벌개혁과 부동산 규제를 주장하면서 경제민주화 전도사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이 대중의 관심을 모으게 된 것은 2010∼2011년 ‘청춘콘서트’를 열며 전국을 누비던 안철수 당시 서울대 교수의 멘토로 활약하면서다. 김 위원장은 청춘콘서트에 게스트로 종종 출연했고, 안 교수는 그를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 하나로 꼽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19대 총선을 앞둔 2011년 말엔 박근혜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의 영입 제안을 받고 새누리당에 합류했다. 또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박근혜 후보의 캠프에서 활약했다. 핵심 공약인 경제민주화의 이론을 정립시켰고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 공약을 설계했던 장본인이다.

이렇게 복지 및 경제민주화 이슈를 선점하는 데 성공한 새누리당은 총선에서 승리했다. 이 기세를 이어가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탄생하게 된다.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직 인수위 때부터 사실상 경제민주화 노선을 버리고 창조경제로 선회하면서 김 위원장은 결국 이용만 당하고 토사구팽당한 꼴이 되어버렸다. 이때 김 위원장은 정부 여당과 완전히 결별하게 된다. 이후엔 박근혜 정부에 쓴소리를 주저하지 않았고 선거 때 박 대통령을 도왔던 일에 대해서도 “국민들에게 미안하다” “내가 너무 과욕을 부렸다”고 공개적으로 말하기도 했다.

지난 1월14일, 문 전 대표의 삼고초려를 받아들여 김 위원장은 전격 합류했다. 문 전 대표는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김 전 의원이 우리당과 함께해주기로 했다”며 “선대위를 조기 출범시키고 김 전 의원을 당 선대위원장으로 모시려고 한다”고 밝혔다.

“원톱으로 간다”
단독선대위 구성

문 전 대표는 “우리 당이 유능한 경제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해, 또 경제민주화 실현을 위해 김 전 의원의 지혜와 경륜이 꼭 필요하다”며 “빠른 시일 안에 당내 동의를 진행한 뒤 김 전 의원을 중심으로 총선 필승을 하고 정권교체까지 바라보는 선대위 구성을 빠르게 마무리해 총선 관리를 맡기겠다”고 말했다.

선대위원장 자리를 두고 김 위원장과 문 전 대표 사이 단독이냐 공동이냐를 두고 긴장감이 흘렀다. 당 안팎에선 한때 문 전 대표와 김 위원장 사이에 출발부터 불협화음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던 터였다. 하지만 결국 문 전 대표는 공동선대위원장 구상을 철회했다. 문 전 대표 사퇴를 요구해 온 비주류 의원들은 “급하긴 급했던 모양”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더민주당 내부에서는 그 동안 연이은 탈당과 호남민심 이반 등으로 풍전등화의 처지에 놓였지만, 김 위원장을 영입한 이후 추가 이탈 움직임이 진정되고 당 운영도 안정화 과정을 밟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실제 호남의 한 축인 전북 의원단이 당 잔류를 선언했으며, 총 11명 중 이미 탈당한 유성엽·김관영 의원을 제외한 9명 전원이 돌아왔다. 탈당 후 국민의당에 합류한 권은희 의원의 ‘대항마’로 당 대변인 출신이자 경제통인 이용섭 전 의원이 복당했다.

수도권 탈당의 키를 쥐고 있던 박영선 의원도 김 위원장 합류 이후 당에 남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당내 갈등봉합?…일단 지지율 반등세
국보위 참여 전력…광주쪽 여론 싸늘

광주·전남 의원들의 후속 이탈 움직임도 당 정상화 움직임과 맞물려 주춤하고 있다. 충남지역 의원들도 당 잔류로 가닥을 잡고 있다는 후문이다.

지난 1월25일 김 위원장은 문 전 대표 없이 당 선대위 회의를 처음 주재했다. 제1야당 리더로 공식 등장한 김 위원장은 선대위 모두발언에서 “그간 더민주당이 국민에게 준 실망을 어떻게 회복할지”라며 “정치인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한 분들은 당이 단호한 입장을 견지해 우리 당이 변모했다는 모습을 보여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 발언 이후 열린 당 윤리심판원 전체회의에선 신기남·노영민 의원에 대해 ‘총선 출마 불가’라는 중징계 결정이 났다. 노 의원은 당원자격정지 6개월, 신 의원은 당원자격정지 3개월을 받았다. 신·노 의원은 문 전 대표와 가까운 주류 측 핵심 의원으로 꼽힌다.
 

‘김종인 개혁’은 인적 쇄신이 최종 승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한 라디오에 출연해 “이번 총선에서 최소한 현 의석(109석) 이상, 탈당 전 의석수(127석) 이상이 돼야 승리라고 할 수 있다”며 총선 승패 기준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문 전 대표도) 현재보다 한 석이라도 많아야 책임론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관건은 ‘사람’이다. 김 위원장은 현역 기득권 타파를 외쳤다. 김 위원장은 “하위 20% 물갈이는 (탈당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적용할 것”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의 광폭행보를 보며 “저승사자가 따로 없다”며 혀를 내두르고 있다. 김 위원장은 당 체질 개선에 집중하고 있다. 정치투쟁을 지양하고 정책정당을 지향하겠다는 것이다. 최근 경제민주화 담론을 ‘포용적 성장’으로 구체화하고, 선대위 내 ‘새경제위원회’(가칭) 설치를 검토하는 것은 실천 방안이다.

김 위원장 영입으로 문 전 대표가 차기대선주자 지지도에서 2주 만에 1위로 올라섰다.

문 전 대표는 안 의원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에 각각 1.1%포인트, 1.2%포인트 앞서며 2주 만에 선두를 탈환했다. 문 전 대표는 수도권(↑2.1%포인트)과 대전ㆍ충청ㆍ세종(↑2.0%포인트), 30대(↑7.5%포인트)와 50대(↑2.4%포인트), 보수층(↑3.0%포인트)과 중도층(↑2.7%포인트)에서 주로 상승했다.

탈당 러시 막아
광폭 인재 영입

1월18일 언론을 통해 보도된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의 2016년 1월 2주차(11∼15일) 여야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결과에 따르면, 김종인 전 의원을 선대위원장으로 영입하고 비정치권, 전문직 중심의 인재영입을 이어간 문 전 대표의 지지율은 지난주보다 0.9%포인트 상승한 18.9%를 기록했다.

문 전 대표는 안 의원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에 각각 1.1%포인트, 1.2%포인트 앞서며 2주 만에 선두를 탈환했다. 문 전 대표는 수도권(↑2.1%포인트)과 대전ㆍ충청ㆍ세종(↑2.0%포인트), 30대(↑7.5%포인트)와 50대(↑2.4%포인트), 보수층(↑3.0%포인트)과 중도층(↑2.7%포인트)에서 주로 상승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여론조사 보도 참조함)


<min1330@ilyosisa.co.kr>

 

[김종인은?] 

▲1940년 서울 ▲중앙고·한국외대 ▲뮌스터대학교대학원 석·박사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11, 12, 14, 17대 국회의원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 ▲국민경제자문회의 자문위원 ▲헌법연구자문위원회 위원장 ▲대한발전전략연구원 이사장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석좌교수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 ▲박근혜 대선경선캠프 공동선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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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