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전설의 호빠 선수’ 김동이

“밤의 세계, 그 원리를 책에 담았다”


전국에 20여 개의 지점을 가지고 있는 국내 최고의 여성전용바인 ‘레드모델바’의 김동이 대표가 자신의 삶과 유흥업소의 창업 이야기를 담은 자서전 <여자의 밤을 디자인하는 남자>를 펴낸다. 현재 레드모델바는 기존의 어두운 밤 문화의 하나였던 ‘호스트바’를 건전하게 바꿔 국내에 정착시킨 유일한 업소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 이곳에 근무하는 ‘꽃미남’들만 전국적으로 무려 2000명. 이들은 초창기의 어려움을 겪고 건전한 여성들의 도우미로 정착하는 데 성공했으며 또한 매일 밤 수많은 여성 손님들에게 생활의 즐거움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성공의 배경에는 한때 ‘전설의 호빠 선수’로 불리던 김동이 대표의 고군분투가 녹아있다고 할 수 있다. 김 대표와의 인터뷰를 통해 여성유흥문화의 단면과 성공적인 주류창업을 위한 조언을 들어봤다.

어두운 밤 문화였던 ‘호스트바’ 건전하게 바꿔 국내 정착
꽃미남 2천명 전국 ‘레드모델바’ 포진, 언니들 발길 이어져


레드모델바의 성공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김동이 대표가 불우이웃돕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는 데 있다. 2009년 3월에 사회복지법인 <열린 집>에 불우이웃 성금을 기탁한 것을 시작으로  그 후 현재까지 레드모델바의 선행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빚 때문에 일본 팔려가
좌절과 절망 맛보기도

유흥체인점이 이렇게 공식적인 사회 환원에 나서고 있는 일은 드문 일로 이는 레드모델바가 그만큼 많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점과 레드모델바라는 기업이 사회적인 책임의식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그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 과거 호스트빠 선수 시절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좌절감과 절망감을 느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그는 호빠 시절에 과연 어떤 삶을 겪어왔던 것일까.
“애초에 연예인 지망생 시절 한 기획사에 의해서 사기를 당했던 것이 본격적인 호빠 생활을 하게 된 계기가 됐다. 처음에는 모델 생활이 경제적으로 힘들어 잠시 발을 들여놓았었는데, 그때는 호빠 선수가 내 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잠시 거쳐 간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러다 TV에 출연시켜주겠다며 돈을 요구했던 기획사에 속아 사채 빚을 지게 됐다. 결국 그 빚을 갚지 못해 일본으로 팔려가게 됐고 거기서부터 본격적인 호빠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감금을 당한 채 매일 여성들에게 술과 웃음을 팔았던 세월이었다. 그러나 다행이었던 것은 그나마 그곳에서 ‘최고의 에이스’라는 평가를 받았고 그 평가에 걸맞는 많은 돈을 벌기도 했다. 하지만 애초에 나는 빚 때문에 팔려간 처지에 불과했다. 결국 남은 것 없이 빈털터리로 다시 한국에 돌아오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일본 호빠 생활을 하면서 스스로 탁월한 유흥 감각이 있다는 점을 경험했다. 신입 선수들을 훈련시켜 아가씨들이 원하는 ‘니즈’를 정확하게 만족시켜주었기에 그가 있는 호빠에 온 여성들은 결코 실망하는 법이 없었다.
 
빚 때문에 일본 팔려가 본격 호빠 생활…좌절과 절망 속 하루하루
유흥가 창업 원하는 사람 위해 노하우 전수하는 자서전 발간 예정


사채 때문에 일본에 팔려가기까지 했던 그였지만 타고난 끼와 본능적인 유흥 감각으로 일본에서의 호빠 생활을 자신의 인생역전을 위한 계기로 삼은 것.
한국으로 돌아온 뒤 그는 호빠 생활을 벗어나려고 했지만 ‘돈’에 대한 유혹에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가까스로 빚의 고리에서 벗어났지만 생활은 나아진 것이 없었고, 따라서 그는 결국 다시 호빠 생활로 돌아가게 됐다. 그가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유일한 기회는 바로 호빠 생활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다시 일을 시작한 그는 그때부터 그 누구에 못지않은 상당한 돈을 벌기 시작했다. 김동이 대표의 표현대로 ‘재벌이 부럽지 않은 생활’이었다고 한다.

“그때 최고의 에이스로만 조각된 우리 팀은 한국에서 최고라고 표현해도 아깝지 않을 정도다. 흔히 사람들이 ‘돈을 긁는다’는 표현을 하곤 하는데, 정말 그때 우리 팀은 돈을 긁다가 지칠 정도였다. 양말, 속옷까지 최고의 명품으로 치장을 했고 최고급 차에, 제일 맛있다는 음식을 먹으며 생활을 했었다. 어떤 호스트빠 사장님은 돈을 현금 더미로 들고 와 우리와 함께 일하기를 부탁하기도 했다. 최고의 명성을 날렸던 팀이었고, 그 팀의 수장을 맡았던 나로서는 과거의 불행을 잊고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런 그가 호빠를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는 다름 아닌 경찰의 집중단속에 타깃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경찰서로 끌려가 오랜 시간 동안 ‘마약 투약’에 관한 조사를 받기도 했다. 가장 잘 나가는 팀이었던 만큼 집중적인 기획수사의 대상이 되었고 비록 무죄로 판명됐지만 그 과정을 거치면서 김동이 대표는 ‘이제 더 이상 어두운 밤 문화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 후 그는 합법적인 일에 종사하기로 결심했고 그 결과물이 바로 오늘날의 레드모델바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레드모델바를 일구기까지도 결코 쉽지 않은 인고의 세월을 견뎌야 했다. 우선 가장 대표적으로는, 아무리 업소 자체가 ‘건전한 여성전용음주를 위한 바’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워도 여성고객들이 이를 호빠로 오인하거나 혹은 호빠에 준하는 서비스를 제공해주길 원했다는 것.

“그간에 많은 돈을 벌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 레드모델바를 위한 공사를 할 때에만 해도 무척이나 힘들었다. 하루하루 인건비 충당을 걱정해야 할 만큼 모든 것은 열악한 상황이었다. 한번은 업소 오픈을 도와주던 누나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 적도 있었다. 늘 잠은 공사 현장에서 자야했고 성공에 대한 불안으로 노심초사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고생해서 업소를 오픈했지만 정작 손님은 늘지 않았고 매일 매일 적자였다. 그나마 간간이 오는 손님들조차 여전히 레드모델바를 호빠로 착각했고 심지어 호빠에서의 서비스를 해주지 않는다고 화를 내기까지 했다. 일부 직원들조차 업소의 방침을 어기고 손님들과 개인적인 연락을 취하곤 했었다. 아무리 내가 호빠를 벗어나고 싶어도 직원들이 따라주지 않으면 건전한 여성음주문화를 개척하는 것은 힘든 일이라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았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렇게 사업적인 고전을 하면서 힘들었던 그에게 희망의 빛이 되었던 것은 한 케이블 TV의 방송이었다. 그렇게 첫 방송을 탄 뒤 레드모델바는 드디어 ‘대박행진’을 시작할 수 있었다. 손님들은 끊이지 않고 찾아왔고 체인점을 열겠다는 사람들도 줄을 서기 시작했다. 과거 가난했던 연예인 지망생, 일본으로 팔려간 호빠 선수의 어두운 과거를 드디어 떨쳐내고 ‘건전한 여성음주 문화의 개척자’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이러한 유흥가에서의 활약을 두고 ‘절반의 성공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이제 국내에서 여성전용바의 정착은 초기에 불과하고 앞으로도 더 많은 노력과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

특히 여성의 사회활동이 늘어나게 된 만큼 여성전용바는 새로운 ‘블루오션’이 되고 있으며 이를 선점하기 위한 노력은 끊임없이 이어갈 계획이다.

유흥가 창업 원하는
사람 위한 조언, 책으로

그런가 하면 김 대표는 자신의 오랜 경험담을 담은 자서전 출간을 목전에 두고 있다. 그가 쓴 자서전은 자신의 성공을 자화자찬하려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호빠의 길을 걸어온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고 새로운 음주문화를 만들어가려는 다짐의 성격이 강하다고 한다. 특히 이제까지 자신이 겪어왔던 경험에서 뽑아낸 ‘유흥가 성공의 법칙’들은 유흥가에서 창업을 하고 성공을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소중한 조언을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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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일요시사 취재1·정치팀] 오혁진·박희영·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특검이 출범하면서 관련 수사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핵심 인물들의 수사 기록이 일부 보도됐다. 그러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없다. <일요시사>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의 ‘노상원 수사 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하기로 했다. “부정선거 증거가 차고 넘치고 나중에는 드러날 것이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이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에 꽂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실상 수년 전부터 망상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생각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노 전 사령관 수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 목사와 개인적으로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당시 분위기와 참석자들이 윤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텔레그램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1년간 ‘극우 집회’를 분석한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 등과 만날 때 주로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선관위를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관위가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김용현 전 장관이 많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여러 번 선관위의 부정선거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네이버로 찾아도 봤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를 주로 누구에게서 들었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는 “관련 집회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들었고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실명을 거명하긴 그렇다. 나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해서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여론조사 조작이나 선거 부정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했다. 전 주도 윤 지지자 극우 집회 직접 참석 김과 텔레그램으로 부정선거 자료 공유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의 근거로 “선관위 산하에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있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의 갑이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9명으로 위원장 이대영 사무총장과 강성봉 등이고 그 밑에 쭉 있는데 7명이 진보 계열 인물이다. 여론조사기관이 편향되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임시선거사무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202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동작구 선거사무소가 있는데 옆을 임대해서 임시선거사무소를 만들었었다. 언론에 나오니까 발뺌했었고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자 김 전 장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내 줬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며 “결국에는 다 까질 것이다. 전산은 한 번 까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폭파하거나 고물상에 갖다 버리지 않는다면 전산은 결국 까진다. 북한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서울 상공에 포를 쏜 것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께서는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시고 정국이 전시에 준하는 사태라고 민감한 상황이라고 보신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행동한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시간짜리 호소였다. 만약 국회 결정을 윤 전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유혈사태가 났을 것”이라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 초, 선관위가 서버 교체를 검토했다가 교체하려 했던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께서 어디에선가 확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들으셨을 것 같다. 서버 조작이 있었기에 그 서버를 우리가 확보하려 할 때 선관위 측이 폭파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군검찰·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정보사 군무원 간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등 인물들에 대해 “비상대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해야 한다”며 “현재의 사법체계, 형사소송법, 방탄국회 및 재판지연 아래에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조치’ ‘2시간짜리 계엄’ 겹치는 윤·노 발언 "서버 확보하려 했다면 선관위가 폭파했을 것” 주장 윤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한 조치”를 언급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자신의 의견을 거스르는 인물들에 대한 복수심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노 전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김용군(대령)과 구삼회 등에게 ‘이재명은 죄가 7개인데 봐주고 지연시키고 구속도 안 되고 당 대표까지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 중앙지검장, 판사 등을 모두 탄핵하려고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세상이냐’고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말이 일치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선관위가 헌법기관인데 스스로 깨끗해야 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황제·세자 채용 등 문제가 나왔다. 각종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다 저질렀다. 그리고 전산 해킹이 언급될 때 서버 본체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일부 샘플만 살짝 보여줬는데 얼마든지 전산 조작이 가능하고 해킹에 얼마나 취약하면 비밀번호가 ‘1234’냐. 이미 그런 게 다 나왔다. 그렇게 떳떳하면 왜 본체를 못 열어주나”고 말했다.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같은 해 12월 검찰 조사에서 “선관위 시스템에 보안상 취약점이 발견됐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과 직접 비화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보고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도 지난해 12월2일 자신의 지인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노 전 사령관은 당시 “나 같은 경우는 브이(V, 윤 전 대통령 지칭)하고 이렇게 좀 도와드리고 있다. 원래 한 4~5년, 3~4년 전에 알았다뿐이고 그래서 이제 뭐 이렇게 여러 가지로 좀 도와드리고 있다. 비선으로”라고 했다. 친분 과시 노 전 사령관은 안산 ‘롯데리아 회동’에 참석했던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에게도 “며칠 전에는 김용현과 함께 대통령도 만났다. 갈 때마다 대통령이 나한테만 거수경례를 하면서 ‘사령관님 오셨습니까’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대통령과 장관 같이 만난다. 나는 벌써 여러 번 만났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