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MLB 가는 박병호

148억 잭팟? 그동안 흘린 땀이 얼만데요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메이저리그팀 미네소타는 구단 공식 트위터를 통해 박병호에 대한 협상권을 획득했다고 전했다. 미네소타가 최고 응찰 금액을 적은 구단으로 밝혀지면서 박병호는 메이저리그 진출을 향한 다음 과정으로 넘어가게 됐다. KBO리그 역대 최강의 ‘거포’로 꼽히는 박병호가 무사히 메이저리그에 안착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박병호는 1986년 7월10일 전라북도 부안에서 출생했다. 일찍 서울에 올라와 서울영일초등학교와 영남중학교를 거쳐 성남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야구를 시작한 박병호는 이희수 전 한화 이글스 감독 밑에서 야구를 배웠다. 성남고등학교 시절 전국 대회에서 화순고등학교와 휘문고등학교와의 2경기에 걸쳐 4연타석 홈런(화순고등학교와의 경기에서 3연타석, 휘문고등학교와의 경기에서 1타석)을 기록하였는데, 고등학생으로는 최초의 기록이다.
 
박병호 키운
히어로즈 대박
 
이러한 이유로 LG트윈스는 박병호를 장타를 책임질 해결사라 여기게 됐고 그는 2005년 1차 지명을 받아 계약금 3억3000만원을 받고 입단한다. 입단 후 포수에서 1루수로 전향해 많은 기대를 모았으나 별다른 활약을 보여 주지 못한다. 박병호는 리듬이나 타격 기술이 부족해 2할 초반이나 1할대를 쳤다. 2006년 2시즌간 1군 127경기에 출장해 타율 0.177, 8홈런, 34타점을 기록했다.
 
박병호는 2006년 상무에 입대해 2008년 2군 북부리그 홈런왕을 차지했다. 2008년 말 제대해 2009년 1군 첫 경기에서 연타석 홈런을 포함해 4타수 3안타를 친 지 며칠 뒤 또 연타석 홈런을 쳤다. LG트윈스는 확실한 오른손 거포가 없었던 찰나에 박병호의 활약으로 큰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변화구에 약점을 보이고 나서부터 경기 기량은 또다시 하락했다.  박병호는 그 해 9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2010년 시즌을 앞두고 이택근의 트레이드 영입, 외야수 이병규의 복귀 등으로 외야진의 포화 현상으로 인해 이택근이 1루수를 겸업하며 LG트윈스 내에서 박병호의 주전 경쟁은 더욱 힘들어졌다. 2010년 9월17일 잠실 SK전에서 나주환과 충돌하여 왼쪽 팔꿈치 부상을 당해 시즌을 마감했다. 박병호는 토미 존 수술(부상당한 팔꿈치에 정상적인 팔꿈치의 인대를 떼어 붙이는 수술)을 받아 재활하게 되어 2011년에는 1군에 늦게 합류했다. 하지만 LG트윈스에서 더 이상 자리 잡지 못하고 1군과 2군을 오가는 신세가 됐다.
 
2011년 7월31일 박병호는 투수 심수창과 함께 김성현과 송신영을 상대로 넥센히어로즈에 트레이드됐다. 트레이드 이후 박병호는 맹타를 휘두르며 넥센히어로즈에서 맹활약하게 된다. 박병호가 이적하기 전 넥센히어로즈의 1루는 이숭용과 장영석, 오재일, 조중근이 번갈아 맡았으나, 트레이드로 영입한 박병호가 1루수로 완전히 정착했다.
 
트레이드 직후 이장석 구단주의 지시 아래 박병호를 쭉 선발 출장시켰지만, 트레이드된 이후 처음 출장한 대구 삼성라이온즈 전에서는 12타수 2안타로 부진했다. 8월5일 두산베어스 전에서는 외야수 알드리지가 부상을 당해 4번 타자로 출장했고 두산전 3차전에서 11타수 7안타 2홈런 5타점으로 활약을 펼쳤다.
 
이장석 구단주와 감독, 코치진은 박병호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내며 새로운 4번 타자로 키우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8월에는 리그 최다 홈런을 때려내며 괴력을 보였으며, 8월 20일 기아타이거즈 전에서는 투수 유동훈을 상대로 생애 첫 끝내기 홈런을 터뜨리기도 했다. 
 
미네소타 협상권 획득…메이저리그 눈앞
힘과 내구성에 베팅 “리빌딩 방점 필요”
 
2011년 넥센히어로즈가 최하위로 떨어졌지만 박병호의 맹활약으로 마지막까지 파이팅 넘치는 플레이를 보여 주게 됐다. 2011년 13홈런을 기록하여 개인 통산 처음으로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했으며, 오른손 강타자였던 클리프 브룸바의 이름을 본뜬 브룸박과 메이저 리그 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오른손 강타자인 푸홀스의 이름을 본뜬 ‘병홀스’라는 별명을 얻었다.
 

박병는 그를 오랫동안 괴롭혀 온 발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기 위해 시즌 종료를 몇 경기 앞두고 구단의 배려로 시즌을 마감한다. 2011년 12월10일 4세 연상의 전 KBSN 스포츠 아나운서인 이지윤과 결혼했다. 시즌 후 박병호가 넥센히어로스의 새로운 스타가 된 반면 트레이드 당사자 중 송신영은 FA를 선언해 한화 이글스로 이적했고, 2년 후인 2013년에 트레이드로 넥센히어로즈에 복귀하여 박병호와 함께하게 됐다. 김성현은 경기조작 사실이 드러나 방출되어 이 트레이드는 LG트윈스에게 완전히 실패로 끝난 트레이드가 되고 말았다.
 
2012년부터 실질적인 풀타임 시즌을 맞이 하게된다. 팀의 4번 타자로 3루 수비 연습도 하였으나 주로 1루수 및 지명타자로 출장했다. 시범 경기에서 연타석 홈런을 날리며 고타율로 승승장구하여 시즌을 기대하게 하였으나, 4월 한달간 타격감이 오르지 않았다.
 
그러다가 4월 15일 삼성라이온즈 전에서 투수 차우찬을 상대로 생애 첫 만루 홈런을 쏘아올린 것을 시작으로 홈런포가 시작됐다. 4월에 총 4개의 홈런포를 날린다. 그 뒤 5월과 6월에는 3할이 넘는 타율을 유지하며 6월까지 16홈런 58타점으로 홈런과 타점 부문 상위권을 유지한다. 
 
KBO 최초 2년 연속 
전 경기 4번 타자 
 
전반기가 끝났을 때 2할 8푼의 타율과 17홈런 64타점으로 홈런 부문 3위, 타점 부문 1위를 유지했다. 홈런 선두를 달리던 강정호가 봉와직염으로 잠시 주춤한 사이 박병호는 홈런이 더 늘었다. 8월1일에는 생애 첫 1경기 3홈런을 날리기도 하며 7월31일 ~ 8월 5일 사이에 열린 6경기에서 6개의 홈런을 몰아치며 홈런 부문 1위에 등극한다.
 
그 후 홈런 부문 1위를 계속 지켰으며 타점 부문은 삼성라이온즈의 박석민에게 잠시 1위를 내주기도 하였으나, 박석민이 9월에 부진한 사이 치고 올라가며 타점 부문 1위를 굳혔다. 또한 9월 21일 한화이글스와 경기에서 1홈런 3타점을 기록하여 2012년 시즌 처음으로 30홈런 100타점을 돌파하였으며 이는 KBO 리그 통산 40번째의 기록이다.
 
10월 2일 목동 두산베어스 전에서 도루를 성공하며 20홈런 20도루 클럽에 가입한다. 이는 1루수로는 해태 타이거즈의 김성한에 이은 2번째의 대기록이며, 강정호와 함께 넥센히어로즈는 두 중심 타자가 모두 20홈런-20도루 클럽 가입에 성공한다. 이는 KBO 리그 역사상 최초의 기록이다.
 
2012년 시즌을 마친 박병호는 거포의 상징인 홈런왕, 타점왕, 장타율왕으로 3개의 개인 타이틀을 획득했다. 넥센히어로즈 소속 선수로는 사상 처음으로 정규 시즌 MVP로 선정됐다. 같은 해 데뷔 후 처음으로 1루수 부문 골든 글러브도 수상했다. 
 
 
2013년 시즌도 1루수, 4번 타자로 전 경기를 출장한다. 시즌 초 3월과 4월에는 총 4홈런을 치며 부진을 보이다가 5월에 0.341의 타율을 기록하며 팀의 상승세에 큰 기여를 한다. 4월~6월의 타율이 3할 7리에 불과하지만, 7월~8월의 타율은 3할 3푼 1리를 기록하였으며 이 기간 40경기 동안 11개의 홈런을 쏘아 올렸다. 또한 팀이 큰 상승세를 올리던 9월에는 18경기에서 무려 11개의 홈런을 터트리며 2년 연속 홈런왕 굳히기에 들어갔다.
 
9월29일 두산전에서는 생애 통산 2번째로 1경기 3홈런(7타점)을 올렸으며, 37홈런을 기록하여 2년 연속 30홈런대, 100타점을 달성했다. 또한 2012년에는 달성하지 못하였던 3할 타율까지 달성하며 개인 통산 첫 번째로 최고 타자의 상징인 3할 타율 30홈런 100타점을 기록했다. 10월3일 기아타이거즈 전에서는 생애 최초로 한 경기 3도루를 성공한다.
 
또한 KBO 리그 사상 최초로 2년 연속 전 경기 4번 타자로 출장하는 대기록을 달성하며 넥센히어로즈의 창단 첫 포스트시즌 진출에 큰 공헌을 했다. 시즌 중 감독 추천 선수로 올스타에 선정되어 데뷔 후 처음으로 포항에서 열린 올스타전에 출전하는 영광을 안았다. 이런 맹활약으로 시즌 MVP는 다시 한 번 박병호에게 돌아갔으며, 홈런, 타점, 득점, 장타율 부문까지 4관왕을 차지했다. 2년 연속 MVP는 선동열(1989∼1990), 장종훈(1991∼1992), 이승엽(2001∼2003) 이후로 박병호가 4번째다.
 

고등학생 최초 4연타 홈런
프로 초반 부진하다 거포로
 
2014년 시즌 5월과 6월에만 무려 23개의 홈런을 쳤다. 그러던 6월27일 두산베어스를 상대로 시즌 29호 홈런을 친 후 긴 부진에 빠지면서 선발 출장에서도 제외됐다. 7월11일 NC다이노스 전에서 대타로 출장해 30홈런을 쳤다. 2012년과 2013년에 이어 3년 연속 30홈런을 쳐내는 기록을 달성했다.
 
2014년 올스타전에 1루수로 선발됐다. 2014년 7월18일에 광주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올스타전에서 맹활약했다. 1회에는 SK와이번스의 김광현을 상대로 1회에 2루타, SK와이번스의 채병용을 상대로 3회에 쓰리런 홈런, 8회에는 삼성 라이온즈의 안지만을 상대로 솔로홈런을 쳤다. 4타수 3안타 4타점으로 웨스턴리그의 13-2로 대승을 이끌어냈다. 생애 첫 올스타전 MVP를 차지했다. 9월5일 목동 NC다이노스 전에서는 3연타석 홈런을 포함, 역대 두 번째 한 경기 4홈런을 달성했다.
 
2014년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팀으로 발탁되어,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게 됐다. 그국가대표팀의 주장으로 선출됐고, 대만과 2차전 국가대표 발탁 이후 처음으로 홈런을 쳤다. 준결승전에는 6회 중국투수 리신에게 결승 3점포를 쏘아올리면서 대표팀의 결승진출에 기여해 생애 첫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부진으로 트레이드
이후 중심타선으로
 

10월14일 사직 롯데자이언트 전에서 김사율을 상대로 데뷔 첫 50호 홈런을 달성했다. 이승엽-심정수에 이어 국내 타자중 3번째로 50홈런 이상을 기록한 선수가 됐다. 비록 팀은 한국시리즈에서 2승 4패로 패배하여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지만, 2014 프로야구 골든글러브 1루수 부문에서 골든글러브를 3년 연속 수상하는 한 해를 보냈다.
 
미네소타는 지난 10일 구단 공식 트위터를 통해 박병호에 대한 협상권을 획득했다고 발표했다. 미네소타가 최고 응찰 금액인 1285만 달러(한화 약 148억8,670만 원)를 적은 구단으로 밝혀지면서 박병호 영입에 강력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테리 라이언 단장은 10일 “박병호는 야구 인생의 전성기에 있다. 일본리그와 비슷한 한국에서 엄청난 성적을 남겨 메이저리그에서도 성공적으로 정착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박병호의 공식 에이전트사인 옥타곤 월드와이드는 미네소타와 30일 동안 계약 기간과 연봉을 협상한다. 미네소타가 단독 협상권을 가지게 돼 박병호의 선택지는 분명해졌다.  미네소타는 메이저리그에서 중소구단으로 평가된다. 미네소타는 장타력을 강화하기 위해 거포인 박병호를 선택했고 12월9일까지 연봉 협상을 벌인다. 미네소타에게 1285만 달러(한화 약 148억8,670만 원)는 적은 금액이 아니다. 박병호의 연봉은 포스팅 비용에 맞춰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제 관심은 자연스럽게 박병호의 연봉으로 쏠린다. 먼저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류현진(LA 다저스), 강정호(피츠버그 파이어리츠)와 비교해 연봉규모를 추산해 볼 수도 있다. 류현진은 2011년 약 2573만 달러(297억원)의 포스팅 금액에 6년 3600만 달러(약 416억원)에 계약했다. 강정호는 지난해 500만215달러(약 55억원)의 포스팅 비용에 연봉은 4년 1100만 달러(약 127억원)였다. 
 
강정호보다 2배
57억 이상 예상
 
산술적으로 포스팅 비용만을 놓고 보면 강정호의 이적료보다 2.5배 높은 박병호의 연봉은 최소 500만 달러(57억원)은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박병호는 올 시즌 타율 0.343와 2년 연속 50홈런을 기록했기 때문에 올해 1루수가 부진했던 미네소타와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에 설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또 류현진처럼 일본 진출을 무기로 삼아 협상 테이블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도 있다. 미네소타의 의지에 따라 박병호의 연봉이 결정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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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갈수록 증폭되는 평택 논란 이제야 공개된 소소한 흔적 쉽게 거두지 못하는 의심 의미심장 세력 교체 과정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소문이 어느덧 사실처럼 인식되고 있다. 명확한 물증이 없는 가운데 파편적인 의혹이 덧씌워진 양상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으며, 흐름을 파악할 만한 유의미한 흔적이 이제야 겨우 나왔을 뿐이다. 증폭된 의혹 뒤편에서 여전히 진실은 빼꼼히 잘 보이지 않는다. 2010년 9월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황해경제자유구역에 자리 잡은 유일한 농산물 가공 업체로, 그간 심심치 않게 밀수 의혹을 받아왔다. 가공 목적으로 수입한 농산물을 가공 없이 시중에 유통시켜 엄청난 차익을 봤다는 꼬리표가 뒤따랐다. 의혹하는 눈초리 선라이즈에프앤티가 취급했던 대다수 농산물이 고관세 품목이라는 점은 이 같은 의혹을 부채질했다. 그간 선라이즈에프앤티는 ▲녹두 ▲콩나물콩 ▲다대기(혼합양념) ▲생강 ▲마늘 ▲참깨 ▲팥 ▲서리태 등 높은 세율이 붙는 고관세 품목을 주로 수입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 예로 콩나물콩의 경우 그대로 들여와 국내에 유통하면 487% 관세가 부과되지만, 콩나물 재배 목적으로 수입하면 27%만 반영된다. 평택세관에 몸담았던 다수의 전직 세관공무원이 기업 출범 및 운영에 관여했다는 점도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었다. 심지어 선라이즈에프앤티 이사진에 포함됐던 특정 세관 출신 임원이 한때 다이아몬드 밀수 사건에 이름이 오르내린 사례도 존재한다. 수년 전부터는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동일선상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해졌다. 선라이즈에프앤티의 밀수 의혹을 수차례에 걸쳐 제기했던 공익 제보자 이성열씨가 재판에 연루되는 과정에서 김건희씨의 모친인 최은순씨가 거론됐던 게 이 같은 흐름에 불을 지핀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정치평론가인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이 최근 ‘평택항’을 언급하자,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은 사실처럼 받아들여질 정도가 됐다. 장 소장은 SBS라디오 <김태현의 뉴스쇼>가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김건희씨 일가의 수상한 물건 수입 의혹과 관련한 이야기를 전했다. 장 소장은 “최은순씨가 주인으로 있는 농수산물 수입업체에서 이상한 것을 들고 오려고 하다가 걸려서 (김건희) 오빠와 김건희씨가 그것을 무마시키려고 여러 가지 이상한 (일들을 했다고 한다)”며 “어떤 물건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부적절한 물건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급기야 선라이즈에프앤티의 폐업이 알려지자, 의혹은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양상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국세청 사업자 과세 유형 조회 결과 지난 10일자로 폐업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폐업자로 조회된 지난 10일은 김건희 특검법이 공포된 시기와 맞물린다. 물론 꾸준히 의혹이 제기된 것과 별개로,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을 입증할 만한 확실한 단서는 없는 상황이다. 특히 주주명부가 지금껏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는 게 의혹과 진실을 구분 짓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일요시사>가 최초 입수한 주주명부는 간접적으로나마 의문을 풀 수 있는 열쇠로 작용할 여지를 남긴다. 의문 해소 첫 단추 2022년 10월 작성된 ‘카리나에프앤티(선라이즈에프앤티에서 2020년 9월 상호 변경) 주주명부’를 검토한 결과 주주는 총 17명, 발행주식은 91만8400주(1주당 5000원)로 확인됐다. 2010년 9월 자본금 5억원으로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수차례 증자를 거쳤고, 해당 시기에 자본금을 45억9200만원으로 늘린 상태였다. 일단 주주명부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대신 경영권 교체 과정이나마 엿볼 수 있을 뿐이다. 법인 등기와 주주명부를 교차 검증한 결과를 토대로 추정하면, 표면상 선라이즈에프앤티 지배 세력은 ‘전직 세관공무원(설립~2018년 중순)→지엔티에이치(~2020년 중순)→킴스에O엔O(~2022년 초순)→동OO앤에스(~2025년 6월)’ 순으로 변경된 흐름이다. 첫 번째 경영권 교체는 ‘펀딩하이 연체 사건’과 함께 발생했다. 펀딩하이는 중국·동남아시아에서 농산물을 수입하는 업체에 돈을 빌려 주고, 투자자들에게 15% 이상 수익을 보장하는 펀딩 상품으로 인기를 끌던 P2P 업체였다. 그러나 펀딩하이는 2018년 6월20일 ‘마늘 시즌2-17차(모집 금액 3억원, 차주 승리산업)’ 펀딩 상품의 연체를 시작으로 ▲세척 당근 시즌2-18차(모집금액 5억원, 차주 지엔티에이치) ▲김치 펀딩 2차(모집금액 1억2000만원, 차주 상아농산) ▲번데기 펀딩 1차(모집금액 1억8000만원, 차주 월량완코리아) 등에서 차주의 투자금 상환 실패를 알렸다. 연체 금액은 ▲지엔티에이치 29억원 ▲승리산업 33억원 ▲상아농산 11억8000만원 ▲월량완코리아 1억8000만원 등 총 75억6000만원에 달했다. 급기야 펀딩하이는 연체율 100%를 찍은 채 영업을 중단했다. 상환 실패 이후 차주 사이에 관련성이 드러났다. 지엔티에이치와 승리산업에서 대표이사였던 윤석호씨는 두 회사 지분을 각각 60%, 100% 보유 중이었다. 또한 월량완코리아 사내이사로도 등재돼있었다. 연체가 발생한 직접적인 사유는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대상으로 한 지분 투자였다. 지엔티에이치는 펀딩받은 금액을 농산물을 들여오는 데 쓰지 않고,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매입하는 데 활용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이를 계기로 지엔티에이치는 2018년 6월경 주식 16만1400주를 확보한 선라이즈에프앤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확보한 이후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명단에 변화가 목격됐다. 선라이즈에프앤티 초창기부터 함께했던 사내이사와 부친에 이어 회사에 몸담았던 대표이사를 대신해 지엔티에이치가 끌어들인 얼굴들이 등기임원 자리를 꿰찼다. 정작 지엔티에이치는 연체 발생 넉 달 후인 2018년 10월 보유 중이던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에 넘겼다. 펀딩하이 투자자들과의 소송전이 불거지자 중국에 본거지를 둔 우군에 주식을 양도한 모양새였다. 거듭되는 교체 수순 두 번째 경영권 교체는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의 주체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충청권에 본적을 둔 킴스에O엔O는 2022년 10월 기준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10만8200주를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의 친인척이 보유한 주식 13만2800주를 합산하면 우호 주식은 24만주 안팎이다. 기존 지엔티에이치 측 우호 세력(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 16만1400주+마송재 3만주)과 비교해 5만주 가까이 격차를 벌린 셈이다.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대량 매입한 시기는 2020년 중후반으로 추정된다. 이 무렵 선라이즈에프앤티 등기임원 구성이 크게 요동쳤다는 점을 통해 짐작 가능한 사안이다. 실제로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발휘하던 2018년 7월 대표이사에 선임됐던 김정일 대표는 2020년 3월 해임됐다. 2018년 9월 취임했던 또 다른 대표이사 역시 당해 10월을 넘기지 못한 채 사임했다. 공석이 된 주요 등기임원 자리는 킴스에O엔O 측 인물로 채워졌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가 2020년 10월 선라이즈에프앤티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해당 시기에 사외이사, 감사 등 등기임원 전원이 새 얼굴로 교체됐다. 킴스에O엔O에 이어 지배 세력으로 등장한 곳은 식료품 제조업을 영위하는 동OO앤에스였다. 이 회사는 2022년 10월 기준 주주명부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지분율 44.64%)를 보유한 단일 최대주주로 등재돼있다. 여기에 우호 세력(글로O포O 1만주+김성수 2만주+김종봉 788주)의 주식을 합산하면 지분율은 50%에 육박한다. 동OO앤에스는 사실상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인수하고자 만든 업체로 비쳐질 여지를 남긴다. 2022년 2월 출범 당시 자본금 10억원짜리였던 동OO앤에스는 불과 두 달 만인 2022년 4월14일 자본금을 21억원으로 두 배 이상 키웠다. 공교롭게도 동OO앤에스가 설립 이후 8개월 사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투입한 금액은 총 20억5000만원이었다. 이는 동OO앤에스 자본금 21억원이 선라이즈 주식 41만주를 매입하는 데 쓰였을 가능성에 주목하게 만든다. 게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기존 61만8400주였던 발행주식을 2022년 4월22일 91만8400주로 30만주 확대했다. 동OO앤에스가 자본금을 21억원으로 확충한 지 8일 만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가 발행주식을 30만주 늘린 덕분에 동OO앤에스는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주식 41만주를 확보한 형국이다. 동OO앤에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지배하는 위치로 올라설 무렵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구성은 또 한 번 바뀌었다. 동OO앤에스 대표이사가 사내이사, 글로O포O 대표이사가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렸고, 김성수 대표이사가 신규 선임됐다. 이후 김성수 대표는 선라이즈에프앤티 폐업 전까지 자리를 지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되짚어보는 연결고리 한편 일각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는 지엔티에이치 측이 지배력을 상실한 이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나마 킴스에O엔O 혹은 동OO앤에스와의 연관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관여한 직접적인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만약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를 2021년 이후로 특정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항간에 떠도는 마약 적발 여부는 2022년 근방으로 얘기가 오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heaty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