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그리운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

위기의 한국경제…왕회장 리더십이 절실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초등학교 역사 교과서에 실리는 유일한 기업인이 있다. 바로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다. 교과서에는 정 회장이 소 떼를 몰고 북한에 넘어가는 모습이 소개된다. 그 순간이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역사적인 장면 중 하나기 때문이다. 사업가로서 일군 업적이라고 하기에는 정 회장이 대한민국에 미친 영향력은 지대했다. 산업화를 주도했을 뿐만 아니라, 남북 관계 개선에도 이바지해서다. 아산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업적과 철학을 재조명했다.

정 회장은 1915년 11월25일에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 아산리(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강원도 통천군 노상리)에서 아버지 정봉식과 어머니 한성실 사이에서 6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산’이라는 그의 아호는 자신의 출생지 옛 지명에서 따온 것이다.

통천 송전소학교를 졸업했고 그와 함께한 동창생은 27명이다. 정 회장의 최종 학력은 소학교(초등학교) 졸업이 유일하다.

4번의 가출
그리고 성공

가난 때문에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아버지의 농사를 도왔다.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여러 차례 가출을 반복하였으나 실패했다가 결국 가출에 성공했다.

가출 후 청진의 개항 공사와 제철 공장 건설 공사장에 노동자가 필요하다는 <동아일보> 기사를 보고 소를 판 돈으로 고향을 떠나 원산 고원의 철도 공사판에서 흙을 날랐는데 이것이 첫 번째 가출이었다. 이것을 시작으로 정 회장은 무려 4번이나 가출했다.

두 번째 가출해 금화에 가서 일했다. 세번째 가출 때는 아버지가 소를 판 돈 70원을 들고 도망해 경성실천부기학원에서 공부를 하다가 덜미를 잡혀 고향으로 돌아갔다. 4번째 가출은 1933년으로 19살에 상경하여 이듬해 복흥상회라는 쌀가게 배달원으로 취직했다.


배달원 자리는 꽤 흡족해 집을 나온 지 3년이 지나 월급이 쌀 20가마가 됐다. 장부를 잘 쓸 줄 아는 정 회장은 쌀가게 주인의 신임을 받았고 쌀가게 주인의 아들은 여자에 빠져 가산을 탕진했기 때문에 주인은 아들이 아닌 정 회장에게 가게를 물려줬다.

1938년 주인으로부터 가게를 물려받아 ‘복흥상회’라는 이름을 짓고 그 가게의 주인이 됐다. 하지만 복흥상회 개업 후 2년 만인 1940년에 중일전쟁으로 인해 쌀이 배급제가 되면서 결국 가게를 정리했다.

이후 ‘아도서비스’라는 자동차 수리공장을 세워 직원이 80명에 달할 정도로 크게 운영했다. 그러나 화재로 건물이 전소해 버리는 일이 발생한다. 다행히 평소에 그의 행동을 눈여겨보았던 당시 후원인이 거금을 빌려줘 재기에 성공했다.

6.25 전쟁 시기에 피난하여 부산에서 건설회사를 시작했다. 지금 현대그룹의 토대가 되는 현대토건이다. 당시 은행에서 큰돈을 빌리는 사람들을 봤더니 건설업자가 많은 것을 보고 자동차 수리공장 사장이 순식간에 건설사를 세운 것이다.

회고록에 의하면 미군으로부터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방한에 맞춰 한겨울에 미군 묘지에 잔디 입히는 일을 발주받았다. 당시 한국의 여건상 겨울에 잔디를 구하기란 불가능했기 때문에 다른 업체에서 전부 거절한 것을 정 회장은 받아들였다.

일단 파란 풀로만 덮으면 된다는 확인을 받은 후 트럭 30여대를 동원해서 밭에 나있는 보리 싹을 사다가 심어서 행사를 무사히 마쳤다. 이후 겨울이 지나자 보리를 전부 갈아엎고 다시 잔디를 심어 마무리했다. 이 일이 화제가 된 후 미군으로부터 많은 일을 발주 받게 됐다.

한국경제사에 있어서 정 회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한국 전쟁 직후 전쟁으로 파괴된 도시와 교량, 도로, 집, 건물 등을 복구해야 했다. 전후복구사업에서 공업입국, 중화학공업화, 첨단산업화로 이어지는 경제사의 주요 물줄기를 민간부문에서 이끌어 온 주역이 바로 정 회장이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도전·실험정신

1960년대부터 시작된 근대화의 사회간접시설은 대두분 정 회장이 주도했다. 소양강다목적댐(1967년), 경부고속도로(1970년), 울산조선소(1973년), 원자력발전소(1970년) 등 국내 굴지의 대공사는 한국경제사 측면에서 보면 무에서 유를 창조한 사업이었다.

한국경제가 자립국가 확립을 목표로 수출에 눈을 돌릴 때 정 회장은 국내에서 쌓아 올린 경험을 바탕으로 1965년 국내 기업 최초로 태국 고속도로 사업 등 해외 건설시장 개척에 나섰다.

당시 자원이 부족한 대한민국 현실에서 해외시장 개척은 새로운 돌파구였다. 하지만 기술과 경험, 자본, 장비 등 모든 부분이 미비한 까닭으로 아직 그 누구도 해외시장 개척은 상상조차 하지 않던 상황이었다.

그런 가운데 정 회장은 과감하게 해외 건설시장 진출을 선언했고, 국내에서 축적된 기술과 노하우를 기반으로 1970년대 중동 건설시장에 진출했다. 정 회장은 20세기 최대의 역사라 불리는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산업항 공사를 성공적으로 마침으로써 수출주도형 경제기반을 구축했다.

탄생 100주년 맞아 업적·철학 재조명
가장 존경하는·가장 사랑하는 기업인

1971년 정 회장은 혼자서 미포만 해변 사진 한 장과 외국 조선소에서 빌린 유조선 설계도 하나 들고 차관을 받기 위해 유럽을 돌았다. 거절만 당하다 1971년 9월 영국 바클레이 은행의 차관을 받기 위한 A&P 애플도어의 롱바톰 회장을 만나 추천서를 부탁했지만 대답은 역시 ‘No’였다.

이 때 정 회장은 대한민국 500원짜리 지폐를 꺼내 보이며 거북선 그림을 보여줬다. 정 회장은 “우리는 영국보다 300년이나 앞선 1500년대에 이미 철갑선을 만들어 외국을 물리쳤소”라며 “비록 쇄국정책으로 시기가 좀 늦어졌지만, 그 잠재력만큼은 충분하다고 생각하오”라며 롱바톰 회장을 설득했다. 정 회장의 기지와 배짱 끝에 결국 차관 도입에 성공할 수 있었다.

정 회장은 1977년 아산사회복지사업재단을 설립, 기업이윤의 사회환원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정 회장은 처음부터 아산재단을 미국의 록펠러 재단이나 포드 재단에 버금가는 재단으로 성장시키겠다는 목표 아래 재단의 중점 사업부문을 의료사업과 사회복지 지원사업, 연구개발 지원사업, 장학사업 등 4개 부분으로 설정했다. 그는 특히 전국의 의료 취약지역에 대한 지원사업에 관심을 갖고 9개의 병원을 건립하는 한편 울산의과대학 및 아산생명과학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의료 지원사업을 열정적으로 펼쳐 왔다.

90년대부터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되어 일선에서 물러난 뒤에는 정 회장은 대북사업에 관심을 쏟았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정 회장은 다시 한번 세상이 놀랄만한 일을 해낸다. 당시 김 대통령의 대북 햇볕 정책에 맞춰서 금강산 개발 사업을 추진한 것이다.

1998년 통일소라고 명명된 소 떼 1001마리를 이끌고 판문점을 넘는다. 당시 이 장면은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역사적인 순간 중 하나로 꼽힌다.


정 회장은 2차에 걸쳐 북한을 방문했다. 1차는 6월 16일 500마리 소를 데리고 갔으며, 2차는 501마리 소를 몰고 갔다. 이때 소 501마리와 함께 직접 판문점을 통해 방북,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면담하고 남북 협력 사업 추진을 논의했다. 당시 프랑스의 세계적인 석학 기 소르망은 정 회장이 몰고 간 소 떼를 두고 ‘20세기 최후의 전위 예술’이라고 말했다.

소떼 몰고 방북
역사적인 장면

그리고 마침내 금강산 관광사업에 관한 합의를 얻어 그해 11월 18일에 첫 금강산 관광을 위한 배가 출발했다. 금강산 관광사업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과 개성공단 건립 합의의 초석이 됐다. 당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정 회장이 묵고 있던 평야의 백화원 초대소를 직접 방문하는 등 국가원수급에 달하는 극진한 예우를 했다. 후에는 평양에 ‘정주영 체육관’까지 건립됐다.

이런 정 회장의 업적으로 역사는 남북화해와 협력, 교류의 신기원을 개척했다는 평가와 시대사적 사명을 인식하고 분단의 벽을 뛰어넘은 현대사의 걸출한 인물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런 업적 때문에 정 회장은 여론조사에서 국민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부자’로 꼽혔다. 이 외에도 그 동안 정 회장은 ‘한국 경제 60년 가장 위대한 기업가’ ‘기업인이 존경하는 최고 경영자’ ‘오피니언 리더들이 꼽은 한국 사회 대표 인물’ ‘대학생들이 부활하기를 바라는 기업인’ 등에 선정된 바 있다.

무에서 유 창조…불도저 정신
“이봐 해봤어?” 불굴의 개척자


“이봐, 해봤어?”


1984년 충남 서산간척지 개발사업을 맡은 현대건설은 최종 물막이 공사를 앞둔 상황에서 방조제용 바위가 계속 거센 물살에 휩쓸려 가는 바람에 공사가 더는 진행되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정 회장은 당시 현장을 찾아 폐유조선을 가라앉혀 물길을 잡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담당자가 ‘현실성이 있느냐’며 머뭇대자 정 회장은 “이봐, 해 봤어?”라고 되물으며 “해보지도 않은 채 고민하지 말고 일단 해 보라”고 말했다. 결국 정 회장의 아이디어는 성공적이었다. 현대건설은 공사기간을 무려 3년이나 앞당길 수 있었다. <뉴욕타임스> 등은 이 공사를 ‘정주영 공법’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정 회장의 “이봐, 해봤어?”라는 말이 ‘우리나라 경영인을 대표하는 최고 어록’으로 선정됐다. 대기업 전·현직 홍보 책임자들의 모임인 한국 CCO클럽은 전국경제인연합회의 간행물인 <재계 인사이트> 독자 27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정 회장의 말이 대표 어록으로 선정됐다고 지난달 23일 밝혔다.

한국 CCO 클럽은 설문에서 ‘기업가정신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기업인 어록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고, 복수 응답한 응답자의 20.2%가 정 회장의 “이봐, 해봤어?”를 최고의 어록으로 꼽은 것이다. 이 말은 ‘정주영 리더십’의 핵심 키워드다. 무한한 긍정 마인드와 무에서 유를 개척해낸 도전정신, 실패를 상쇄하고도 남는 창의성 등을 함축해서 표현한 말이다.

최근 정 회장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업적을 재조명하는 바람이 불고 있다. 그의 업적과 기업 철학을 되새겨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는 취지다. 이런 움직임의 배경에는 한국의 답답한 경제 현실이 깔려있다고 풀이된다.

오래도록 저성장의 늪에서 헤매고 있는 한국경제를 구출해낼 사람이나 방법을 찾다보니 정 회장의 리더십이 부상하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긍정과 도전정신, 창의성을 골자로 한 정주영 리더십이 환생해야 할 때라는 얘기다. 기업인들은 새로운 성장 동력 찾기보다 현상 유지와 대중의 눈치 살피기에 더 매달리는 분위기다. 창업 2·3세로 경영권이 넘어가면서 더욱 그런 느낌을 받는다.

맨땅에 일군
현대왕국 신화


최근 현대자동차그룹은 정 회장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기념식과 학술포지엄, 음악회, 사진전 등의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정 회장 100주년의 재조명은 한국경제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다. 점점 기업가 정신이 상실되고 있는 시점에서 정 회장의 기록들은 한국만의 독특한 경영리더십의 표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min1330@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화제의 신간' 정주영 리더십 재조명
‘정주영은 살아있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업적과 철학을 재조명한 서적도 잇달아 출판되고 있다. 그중에서 <정주영은 살아있다>(도서출판 솔)가 가장 주목받고 있다.

기성세대는 물론 2∼30대 젊은이들이 정주영 부활가를 부르고, 피터 드러커를 비롯한 세계의 석학들이 정주영 회장을 새롭게 주목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미 시사주간지 <타임>은 정주영을 아시아의 영웅으로 선정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들이 정주영에게 열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필자(김문현 현대중공업 자문역)는 그 답을 정주영의 리더십에서 찾고 있다. 바로 도전, 신용, 긍정, 창의, 이타의 리더십이다. 현대그룹 문화실에서 소 떼 방북, 금강산 관광 등 정주영의 홍보 전략을 담당했던 필자는 정주영의 어록과 에피소드를 보다 친숙한 언어로 재해석했다. 또한 사진 한 장만으로 정주영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진귀한 사진을 대거 수록했다. 게다가 에피소드 말미에 필자의 넓고 옅은 지식을 보너스로 채워 넣음으로써 바쁜 현대인들의 구미를 당긴다.

필자는 “10만명에 육박하는 청년실업 속에 도전정신은 희석되고 열정페이에 청년들이 위축되고 있다”며 “현재가 불안하고 미래가 불투명한 대한민국 청년들에게 정주영의 다소 투박한 어록과 일화는 젊은이들에게 다시금 도전정신과 의지를 불태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줄 것”이라고 전했다.

필자는 성균관대학교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했고, 1990년대 초부터 2000년까지 현대그룹 문화실 홍보팀장으로 재직하면서 정 회장의 홍보전략을 담당해왔다. 현대중공업 홍보실장과 인재교육원장직을 거친 뒤 2014년부터 울산대학병원, 현대백화점, 현대해상화재, 현대미포조선 등에서 '위기를 기회로 만든 정주영 리더십'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는 등 정 회장의 기업가정신을 널리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창>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오는 31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APEC 정상회의(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이하 정상회의)가 경북 경주에서 열린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20개 나라 정상이 초청 대상으로, ‘외교 슈퍼 위크’가 시작된 셈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각국의 강경파들이 경주로 모이면서 서로 어떤 합을 보일지 관심이 쏠린다. 2025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한미 관세 문제가 급물살을 탔다. 지난 7월 협상 시한 하루를 앞두고 한미 간 무역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된 지 약 세 달 만이다. 정상회의를 계기로 관세 협상이 매끄럽게 마무리될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노브레이크 미국 관세 쟁점은 한국이 상호 관세를 15%로 낮추는 조건으로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3500억달러(약 500조원)에 대한 지불 방식이다. 한국은 직접 투자 비중을 줄이고 투자 기간을 늘리겠다는 방침이지만,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 최대한 현금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현금 선불 투자를 고집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는지가 협상 타결의 관건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상회의가 며칠 남지 않은 시점까지도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 큰 틀에서는 합의가 이뤄졌지만, 세밀한 부분이나 주요 쟁점이 해결되지 않는 등 의견이 모이지 않은 탓이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22일(현지시각)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과 회담한 뒤 “진전이 있었다”면서도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날 김 실장은 ‘마지막 쟁점이 조율됐느냐’는 특파원들 질문에 “쟁점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두 개라고 했고, 아주 많지는 않다”며 “오늘 남아있는 쟁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고 진전이 있었다. 만나면 조금 더 상호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고 답했다. 양국의 대면 협의가 사실상 이날 종료되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두 사람의 결단만 남았다. 미중 간의 관세 협상 결과와 이번에 이뤄질 두 정상의 만남이 한국에 영향을 끼치지 않겠냐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중국과 미국은 지난 4월부터 보복 형식으로 서로를 향해 관세 허들을 높여갔다. 그러던 중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 카드를 꺼내면서 질주하는 미국에 제동을 걸었고,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산 제품에 100% 관세를 추가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관세 전쟁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추가 관세가 현실화하면 중국이 미국에 내야 할 관세는 157%에 달하는 만큼 미중 간의 팽팽한 대립이 이어졌다. 좁히지 못한 ‘디테일’ 막판 협상 난항 이 “우리는 동맹…상식과 합리성 공유” 중국이 밸브를 잠그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희토류와 핵심 광물 공급 협력에 관한 협정에 서명했다. 이는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기 전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일본도 일부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희토류 삼각 동맹이 이뤄진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 백악관 로즈가든 클럽에서 주재한 오찬 행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한국에서 만나 많은 것을 이야기할 것”이라며 대화의 여지를 열어뒀다. 이어 “우리가 협상에서 잘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나는 시 주석과 좋은 합의를 하고 싶고, 시 주석이 중국을 위해 좋은 합의를 하길 바란다. 하지만 그 합의는 공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중 간 무역 갈등이 장기화되면 한국 경제 성장률을 비롯해 수출입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 대통령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한미 관세 협상 타결 전망과 관련해 “조정·교정하는 데 상당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투자펀드를 둘러싼 이견에 대해서는 “결국 이성적으로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결과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며 “왜냐하면 우리는 동맹이며 서로 상식과 합리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중 갈등이 현재 진행형인 상황에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한국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11년 만에 이뤄진 시 주석의 방한도 눈여겨볼 만하다. 아직 한중 관계에 큰 잡음은 없지만 훈풍이 불지 않는 만큼 개선의 여지가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은 한중 관계의 안정적 관리에 대해 초점을 맞출 것으로 전망된다. 이재명정부의 첫 주중대사인 노재헌 신임 대사는 “(시 주석의) 국빈 방문이 계획됐기 때문에 한중 관계가 새로운 도약을 맞이할 수 있는 좋은 계기라고 생각한다”며 “양국 지도자 간에 우호와 신뢰 관계를 다시 굳건히 하고 그 초석 위에서 한중 관계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직 친하지?” 서먹해진 중국 이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시험대에 놓였다. 이 대통령은 지난 9월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열리는 ‘항일전쟁 및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전승절)’에 초청받았지만 의전 서열 2위인 우원식 국회의장이 대신 자리했다. 이 대통령의 전승절 참여 여부를 놓고 국민의힘이 친중 프레임을 굳히자 불필요한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앞서 백악관은 이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축사를 하던 중 뜬금없이 “중국의 간섭과 영향력 우려”라며 중국을 향해 견제구를 날렸다. 한국이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임을 강조할 경우 미국이 제동을 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해석이다. 이처럼 한중 관계 개선의 가장 큰 변수는 미국인 만큼 한국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외교 전략을 펼쳐야 한다. 김지수 한반도 미래경제 포럼 대표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단어가 나오던 때랑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안보와 경제가 같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런 점에서 미국이 더 중요해졌다”고 봤다. 이 대통령 역시 안미경중 노선에 대해 “과거처럼 그런 태도를 취할 수는 없는 상황이 됐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미국이 중국에 대한 강력한 견제, 나아가 봉쇄 정책을 본격 시작하기 전까지 한국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입장을 유지해 왔던 게 사실”이라면서도 “몇 년 사이 자유 진영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진영 간 공급망 재편이 본격적으로 벌어졌고 미국의 정책이 노골적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한국도 미국의 기본적인 정책에서 어긋나게 행동하거나 판단할 수 없는 상태”라며 “중국은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운 데서 생겨나는 불가피한 관계를 잘 관리하는 수준으로 유지하는 상황”이라 고 부연했다. ‘여자 아베’ 경주 데뷔 김 대표는 “미국의 최대 경쟁국은 중국”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은 중국을 제어하기 위해 한국을 향해 손짓하고 있다. 미중 패권 전쟁에서 유리한 전략을 모두 취하고 있는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중국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다. 미국과 가까이 지내기 위해 중국을 적대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중국인 무비자 입국으로 한국 전역에 퍼진 반중 혐오 시위도 고려 대상이다. 최근 국민의힘 등 보수 세력을 중심으로 반중 정서가 확대되면서 외교 갈등이 촉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노 대사는 중국 주상하이 총영사관에서 주중대사관을 상대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국 내 반중·혐중 시위를 묻는 말에 “당연히 우려되고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고 양국 국민의 우호 정서 함양·증진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며 “근거 없고 음모론에 기반한 행위에 대해서는 조치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시적 비자 면제 정책에 대한 자국민의 우려에 대해서도 “불법 체류 현황은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범죄 같은 부분은 입국자 등을 잘 지켜보면서 필요하면 단속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지난 21일 선출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신임 총리는 이번 정상회의를 시작으로 본격 대외 행보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보수 성향이 짙은 탓에 한일 관계가 틀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정권 초기인 만큼 우호적 태도를 유지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중의원 10선 의원으로 경제안보담당상, 총무상, 자민당 정무조사회장 등을 지낸 인물이다. 일본 정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비세습 여성 정치인으로 강경 보수 성향이라는 평가와 함께 입지를 다져왔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4일 치러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하며 당권 티켓을 거머쥐었지만 1999년부터 자민당과 협력해 온 중도 보수 성향인 공명당이 연정에서 이탈해 표가 분산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강경 보수 성향이자 제2야당인 일본유신회를 새롭게 끌어들이면서 극적으로 총리직에 당선됐다. 서로 싫다는 미·중, 사이에 낀 한국 일본까지 강경파 ‘폭풍 속 한반도’ 이 대통령은 신임 일본 총리가 선출된 것에 대해 “정상회의가 개최되는 경주에서 총리를 직접 뵙고, 건설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길 고대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같이 밝히며 “우리는 새로운 한일 관계의 60년을 열어가야 하는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높아진 국제 정세 속에서 한일 관계의 중요성 역시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중대한 시기에 총리와 함께 양국 간, 그리고 양 국민 간 미래지향적 상생 협력을 한층 강화해 나가길 기대한다. 아울러 셔틀 외교를 토대로 양국 정상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훈훈한 축하 인사와 달리 한일 관계는 다시 시험대에 놓였다. 온건하다고 평가받았던 이시바 시게루 내각 체제만큼 협력 기조가 이어질지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2021년 총재 선거 당시 고 아베 전 총리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신임 보수 전사로 떠올랐다. 이번 총리 선거에서 역시 아베 전 총리의 파벌로 형성된 아베파의 지지가 두터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 현지 신문은 자민당의 연정 상대가 공명당에서 유신회로 바뀌면서 다카이치 내각의 보수색이 선명해졌다고 해석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과거부터 야스쿠니 신사를 꾸준히 참배해온 만큼 한국 과거사와 독도 영토 문제 등 민감한 사안을 놓고 이정부와 충돌할 우려도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다카이치 총리가 이번에 보여준 강경 보수 행보는 우익 세력을 끌어들이기 위한 방법으로 한일 외교에 있어서는 이시바 내각과 마찬가지로 온건한 노선을 택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다카이치 총리는 취임 기자회견에서 한일 관계에 우호적인 뜻을 내비쳤으며 가을 예대제 기간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을 것으로도 전해진다. 한일 관계 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다카이치 총리의 온건 행보가 일시적일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역대 총리들이 그랬듯 지지율이 떨어지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고 반한 감정을 부추겨 보수 지지층 결집을 유도할 것이란 점에서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 대통령이 국가 간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미, 한중, 미중 정상회담이 연쇄적으로 열릴 가능성이 크고 비핵화와 관련해 이 대통령이 남·북·미 간의 대화 물꼬를 튼다면 경주를 무대로 ‘평화 한반도’ 기조를 형성하는 일등 공신 역할을 노릴 수 있다. 눌리거나 손잡거나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관계자는 “이 대통령에게 가장 큰 변수는 아무래도 미국이다. 각 국가 정상마다 성향도 다르고 원하는 바도 다른 만큼 미국부터 삐끗하면 차후 일정도 줄줄이 꼬인다”면서 “조급하게 나서면 될 일도 안 되는 게 외교 문제다. 한국은 한국만의 강점이 있다. 우리 쪽에서도 몇 가지 카드가 있을 테니 지금으로서는 정부를 믿는 것이 최선”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하필 지금? 미사일 쏜 북한 속내 지난 22일 북한이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단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한미·한중 정상회담 등에서 북한 문제가 다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미국을 향한 시그널을 보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주한미군과 우리 군의 반응이 엇갈린 점 역시 주목된다. 주한미군은 미국의 한미 동맹에 대한 공약이 굳건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불법적이고 불안정을 초래하는 행위를 강력하게 비판한다. 북한에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 행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반면 우리 군은 통상 해오던 미사일 발사 규탄 성명을 내지 않았다. 정상회의를 앞두고 이정부가 남북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만큼 이를 의식해 톤 조절에 나선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