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그리운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

위기의 한국경제…왕회장 리더십이 절실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초등학교 역사 교과서에 실리는 유일한 기업인이 있다. 바로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다. 교과서에는 정 회장이 소 떼를 몰고 북한에 넘어가는 모습이 소개된다. 그 순간이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역사적인 장면 중 하나기 때문이다. 사업가로서 일군 업적이라고 하기에는 정 회장이 대한민국에 미친 영향력은 지대했다. 산업화를 주도했을 뿐만 아니라, 남북 관계 개선에도 이바지해서다. 아산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업적과 철학을 재조명했다.

정 회장은 1915년 11월25일에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 아산리(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강원도 통천군 노상리)에서 아버지 정봉식과 어머니 한성실 사이에서 6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산’이라는 그의 아호는 자신의 출생지 옛 지명에서 따온 것이다.

통천 송전소학교를 졸업했고 그와 함께한 동창생은 27명이다. 정 회장의 최종 학력은 소학교(초등학교) 졸업이 유일하다.

4번의 가출
그리고 성공

가난 때문에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아버지의 농사를 도왔다.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여러 차례 가출을 반복하였으나 실패했다가 결국 가출에 성공했다.

가출 후 청진의 개항 공사와 제철 공장 건설 공사장에 노동자가 필요하다는 <동아일보> 기사를 보고 소를 판 돈으로 고향을 떠나 원산 고원의 철도 공사판에서 흙을 날랐는데 이것이 첫 번째 가출이었다. 이것을 시작으로 정 회장은 무려 4번이나 가출했다.

두 번째 가출해 금화에 가서 일했다. 세번째 가출 때는 아버지가 소를 판 돈 70원을 들고 도망해 경성실천부기학원에서 공부를 하다가 덜미를 잡혀 고향으로 돌아갔다. 4번째 가출은 1933년으로 19살에 상경하여 이듬해 복흥상회라는 쌀가게 배달원으로 취직했다.


배달원 자리는 꽤 흡족해 집을 나온 지 3년이 지나 월급이 쌀 20가마가 됐다. 장부를 잘 쓸 줄 아는 정 회장은 쌀가게 주인의 신임을 받았고 쌀가게 주인의 아들은 여자에 빠져 가산을 탕진했기 때문에 주인은 아들이 아닌 정 회장에게 가게를 물려줬다.

1938년 주인으로부터 가게를 물려받아 ‘복흥상회’라는 이름을 짓고 그 가게의 주인이 됐다. 하지만 복흥상회 개업 후 2년 만인 1940년에 중일전쟁으로 인해 쌀이 배급제가 되면서 결국 가게를 정리했다.

이후 ‘아도서비스’라는 자동차 수리공장을 세워 직원이 80명에 달할 정도로 크게 운영했다. 그러나 화재로 건물이 전소해 버리는 일이 발생한다. 다행히 평소에 그의 행동을 눈여겨보았던 당시 후원인이 거금을 빌려줘 재기에 성공했다.

6.25 전쟁 시기에 피난하여 부산에서 건설회사를 시작했다. 지금 현대그룹의 토대가 되는 현대토건이다. 당시 은행에서 큰돈을 빌리는 사람들을 봤더니 건설업자가 많은 것을 보고 자동차 수리공장 사장이 순식간에 건설사를 세운 것이다.

회고록에 의하면 미군으로부터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방한에 맞춰 한겨울에 미군 묘지에 잔디 입히는 일을 발주받았다. 당시 한국의 여건상 겨울에 잔디를 구하기란 불가능했기 때문에 다른 업체에서 전부 거절한 것을 정 회장은 받아들였다.

일단 파란 풀로만 덮으면 된다는 확인을 받은 후 트럭 30여대를 동원해서 밭에 나있는 보리 싹을 사다가 심어서 행사를 무사히 마쳤다. 이후 겨울이 지나자 보리를 전부 갈아엎고 다시 잔디를 심어 마무리했다. 이 일이 화제가 된 후 미군으로부터 많은 일을 발주 받게 됐다.

한국경제사에 있어서 정 회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한국 전쟁 직후 전쟁으로 파괴된 도시와 교량, 도로, 집, 건물 등을 복구해야 했다. 전후복구사업에서 공업입국, 중화학공업화, 첨단산업화로 이어지는 경제사의 주요 물줄기를 민간부문에서 이끌어 온 주역이 바로 정 회장이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도전·실험정신

1960년대부터 시작된 근대화의 사회간접시설은 대두분 정 회장이 주도했다. 소양강다목적댐(1967년), 경부고속도로(1970년), 울산조선소(1973년), 원자력발전소(1970년) 등 국내 굴지의 대공사는 한국경제사 측면에서 보면 무에서 유를 창조한 사업이었다.

한국경제가 자립국가 확립을 목표로 수출에 눈을 돌릴 때 정 회장은 국내에서 쌓아 올린 경험을 바탕으로 1965년 국내 기업 최초로 태국 고속도로 사업 등 해외 건설시장 개척에 나섰다.

당시 자원이 부족한 대한민국 현실에서 해외시장 개척은 새로운 돌파구였다. 하지만 기술과 경험, 자본, 장비 등 모든 부분이 미비한 까닭으로 아직 그 누구도 해외시장 개척은 상상조차 하지 않던 상황이었다.

그런 가운데 정 회장은 과감하게 해외 건설시장 진출을 선언했고, 국내에서 축적된 기술과 노하우를 기반으로 1970년대 중동 건설시장에 진출했다. 정 회장은 20세기 최대의 역사라 불리는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산업항 공사를 성공적으로 마침으로써 수출주도형 경제기반을 구축했다.

탄생 100주년 맞아 업적·철학 재조명
가장 존경하는·가장 사랑하는 기업인

1971년 정 회장은 혼자서 미포만 해변 사진 한 장과 외국 조선소에서 빌린 유조선 설계도 하나 들고 차관을 받기 위해 유럽을 돌았다. 거절만 당하다 1971년 9월 영국 바클레이 은행의 차관을 받기 위한 A&P 애플도어의 롱바톰 회장을 만나 추천서를 부탁했지만 대답은 역시 ‘No’였다.

이 때 정 회장은 대한민국 500원짜리 지폐를 꺼내 보이며 거북선 그림을 보여줬다. 정 회장은 “우리는 영국보다 300년이나 앞선 1500년대에 이미 철갑선을 만들어 외국을 물리쳤소”라며 “비록 쇄국정책으로 시기가 좀 늦어졌지만, 그 잠재력만큼은 충분하다고 생각하오”라며 롱바톰 회장을 설득했다. 정 회장의 기지와 배짱 끝에 결국 차관 도입에 성공할 수 있었다.

정 회장은 1977년 아산사회복지사업재단을 설립, 기업이윤의 사회환원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정 회장은 처음부터 아산재단을 미국의 록펠러 재단이나 포드 재단에 버금가는 재단으로 성장시키겠다는 목표 아래 재단의 중점 사업부문을 의료사업과 사회복지 지원사업, 연구개발 지원사업, 장학사업 등 4개 부분으로 설정했다. 그는 특히 전국의 의료 취약지역에 대한 지원사업에 관심을 갖고 9개의 병원을 건립하는 한편 울산의과대학 및 아산생명과학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의료 지원사업을 열정적으로 펼쳐 왔다.

90년대부터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되어 일선에서 물러난 뒤에는 정 회장은 대북사업에 관심을 쏟았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정 회장은 다시 한번 세상이 놀랄만한 일을 해낸다. 당시 김 대통령의 대북 햇볕 정책에 맞춰서 금강산 개발 사업을 추진한 것이다.

1998년 통일소라고 명명된 소 떼 1001마리를 이끌고 판문점을 넘는다. 당시 이 장면은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역사적인 순간 중 하나로 꼽힌다.


정 회장은 2차에 걸쳐 북한을 방문했다. 1차는 6월 16일 500마리 소를 데리고 갔으며, 2차는 501마리 소를 몰고 갔다. 이때 소 501마리와 함께 직접 판문점을 통해 방북,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면담하고 남북 협력 사업 추진을 논의했다. 당시 프랑스의 세계적인 석학 기 소르망은 정 회장이 몰고 간 소 떼를 두고 ‘20세기 최후의 전위 예술’이라고 말했다.

소떼 몰고 방북
역사적인 장면

그리고 마침내 금강산 관광사업에 관한 합의를 얻어 그해 11월 18일에 첫 금강산 관광을 위한 배가 출발했다. 금강산 관광사업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과 개성공단 건립 합의의 초석이 됐다. 당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정 회장이 묵고 있던 평야의 백화원 초대소를 직접 방문하는 등 국가원수급에 달하는 극진한 예우를 했다. 후에는 평양에 ‘정주영 체육관’까지 건립됐다.

이런 정 회장의 업적으로 역사는 남북화해와 협력, 교류의 신기원을 개척했다는 평가와 시대사적 사명을 인식하고 분단의 벽을 뛰어넘은 현대사의 걸출한 인물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런 업적 때문에 정 회장은 여론조사에서 국민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부자’로 꼽혔다. 이 외에도 그 동안 정 회장은 ‘한국 경제 60년 가장 위대한 기업가’ ‘기업인이 존경하는 최고 경영자’ ‘오피니언 리더들이 꼽은 한국 사회 대표 인물’ ‘대학생들이 부활하기를 바라는 기업인’ 등에 선정된 바 있다.

무에서 유 창조…불도저 정신
“이봐 해봤어?” 불굴의 개척자


“이봐, 해봤어?”


1984년 충남 서산간척지 개발사업을 맡은 현대건설은 최종 물막이 공사를 앞둔 상황에서 방조제용 바위가 계속 거센 물살에 휩쓸려 가는 바람에 공사가 더는 진행되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정 회장은 당시 현장을 찾아 폐유조선을 가라앉혀 물길을 잡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담당자가 ‘현실성이 있느냐’며 머뭇대자 정 회장은 “이봐, 해 봤어?”라고 되물으며 “해보지도 않은 채 고민하지 말고 일단 해 보라”고 말했다. 결국 정 회장의 아이디어는 성공적이었다. 현대건설은 공사기간을 무려 3년이나 앞당길 수 있었다. <뉴욕타임스> 등은 이 공사를 ‘정주영 공법’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정 회장의 “이봐, 해봤어?”라는 말이 ‘우리나라 경영인을 대표하는 최고 어록’으로 선정됐다. 대기업 전·현직 홍보 책임자들의 모임인 한국 CCO클럽은 전국경제인연합회의 간행물인 <재계 인사이트> 독자 27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정 회장의 말이 대표 어록으로 선정됐다고 지난달 23일 밝혔다.

한국 CCO 클럽은 설문에서 ‘기업가정신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기업인 어록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고, 복수 응답한 응답자의 20.2%가 정 회장의 “이봐, 해봤어?”를 최고의 어록으로 꼽은 것이다. 이 말은 ‘정주영 리더십’의 핵심 키워드다. 무한한 긍정 마인드와 무에서 유를 개척해낸 도전정신, 실패를 상쇄하고도 남는 창의성 등을 함축해서 표현한 말이다.

최근 정 회장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업적을 재조명하는 바람이 불고 있다. 그의 업적과 기업 철학을 되새겨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는 취지다. 이런 움직임의 배경에는 한국의 답답한 경제 현실이 깔려있다고 풀이된다.

오래도록 저성장의 늪에서 헤매고 있는 한국경제를 구출해낼 사람이나 방법을 찾다보니 정 회장의 리더십이 부상하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긍정과 도전정신, 창의성을 골자로 한 정주영 리더십이 환생해야 할 때라는 얘기다. 기업인들은 새로운 성장 동력 찾기보다 현상 유지와 대중의 눈치 살피기에 더 매달리는 분위기다. 창업 2·3세로 경영권이 넘어가면서 더욱 그런 느낌을 받는다.

맨땅에 일군
현대왕국 신화


최근 현대자동차그룹은 정 회장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기념식과 학술포지엄, 음악회, 사진전 등의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정 회장 100주년의 재조명은 한국경제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다. 점점 기업가 정신이 상실되고 있는 시점에서 정 회장의 기록들은 한국만의 독특한 경영리더십의 표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min1330@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화제의 신간' 정주영 리더십 재조명
‘정주영은 살아있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업적과 철학을 재조명한 서적도 잇달아 출판되고 있다. 그중에서 <정주영은 살아있다>(도서출판 솔)가 가장 주목받고 있다.

기성세대는 물론 2∼30대 젊은이들이 정주영 부활가를 부르고, 피터 드러커를 비롯한 세계의 석학들이 정주영 회장을 새롭게 주목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미 시사주간지 <타임>은 정주영을 아시아의 영웅으로 선정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들이 정주영에게 열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필자(김문현 현대중공업 자문역)는 그 답을 정주영의 리더십에서 찾고 있다. 바로 도전, 신용, 긍정, 창의, 이타의 리더십이다. 현대그룹 문화실에서 소 떼 방북, 금강산 관광 등 정주영의 홍보 전략을 담당했던 필자는 정주영의 어록과 에피소드를 보다 친숙한 언어로 재해석했다. 또한 사진 한 장만으로 정주영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진귀한 사진을 대거 수록했다. 게다가 에피소드 말미에 필자의 넓고 옅은 지식을 보너스로 채워 넣음으로써 바쁜 현대인들의 구미를 당긴다.

필자는 “10만명에 육박하는 청년실업 속에 도전정신은 희석되고 열정페이에 청년들이 위축되고 있다”며 “현재가 불안하고 미래가 불투명한 대한민국 청년들에게 정주영의 다소 투박한 어록과 일화는 젊은이들에게 다시금 도전정신과 의지를 불태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줄 것”이라고 전했다.

필자는 성균관대학교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했고, 1990년대 초부터 2000년까지 현대그룹 문화실 홍보팀장으로 재직하면서 정 회장의 홍보전략을 담당해왔다. 현대중공업 홍보실장과 인재교육원장직을 거친 뒤 2014년부터 울산대학병원, 현대백화점, 현대해상화재, 현대미포조선 등에서 '위기를 기회로 만든 정주영 리더십'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는 등 정 회장의 기업가정신을 널리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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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특검 ‘검사 파견’ 대폭 줄인 이유

종합특검 ‘검사 파견’ 대폭 줄인 이유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2차 종합특별검사팀 출범했다. 이제 수사팀을 꾸린 뒤 내란 관련 혐의 17개 의혹을 규명해야 한다. 내란 외에도 김건희·채 해병 등 각 특검팀에서 매듭짓지 못한 사건들도 들여다볼 방침이다. 이번 특검팀은 과거 특검팀과는 사뭇 다르다. ‘검사 파견’을 대폭 줄였다. 이는 일부 특검팀에서 야기된 내부 갈등을 피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2차 종합특별검사팀은 3대 특검(내란·김건희·채 해병) 수사로 결론을 내지 못한 사안과 정보기관의 민간인 사찰·블랙리스트, 부정선거 관련 유언비어 의혹 등을 재수사한다. 사무실을 정하고 수사팀을 꾸리는 데만 한 달여의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분주한 움직임 윤석열·김건희에 의한 내란·외환 및 국정 농단 행위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종합특검법)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은 추천받은 날부터 3일 이내에 특검을 임명해야 하기에 지난 5일 특검을 임명했다. 앞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지난 2일 특검 후보자에 전준철 변호사를, 조국혁신당은 같은 날 특검 후보자에 권창영 서울대학교 법전원 겸임교수를 각각 추천했다. 전 변호사는 검찰 출신으로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부장, 수원·대전지검 특수부장, 대검 인권수사자문관 등을 거쳤다. 반면 권 교수는 판사 출신으로 대법원 노동법실무연구회 편집위원 및 간사, 중대재해자문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냈다. 특검팀 사무실 구성과 인력 파견 요청 등 출범 작업은 곧바로 진행되고 있다. 종합특검팀은 수사 대상이 광범위한 만큼 초반에는 사건별 우선순위와 수사 분담을 정하는 정리 작업이 핵심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종합특검팀은 수사 대상을 총 17개로 규정했다. 크게 보면 기존 3대 특검이 다뤘지만 규명이 미진했던 사건을 다시 수사하는 한편, 당시 특검 범위에 없던 의혹을 추가로 다룬다. 구체적으로 ▲12·3 불법 계엄 관련 내란·외환 의혹 7개 ▲김건희씨 관련 1개 ▲채 해병 관련 1개 ▲관련 고소·고발 및 수사 과정에서 인지한 사안 2개 등으로 분류된다. 종합특검팀도 앞선 특검팀들과 마찬가지로 인지수사가 가능해 수사 범위가 더 넓어질 수 있다. 과거 특검수사 못한 대상 총 17개로 규정 주로 12·3 내란 사안…‘정보기관’도 포함 종합특검팀이 다룰 불법 계엄 관련 의혹 상당수는 내란 특검팀 수사 과정에서 다뤄졌지만 결론이 나지 않았거나, 내란 특검팀이 무혐의·각하로 종결했던 사건들이다. 대표적으로 ▲무장 헬기의 북방한계선(NLL) 위협 비행 의혹 ▲삼청동 안전 가옥(안가) 회동 ▲일부 지자체의 계엄 동조 의혹 등이다. 이 밖에도 종합특검팀은 내란 특검팀이 마무리하지 못해 채 군검찰로 이첩한 일부 외환 의혹, 계엄 준비 정황이 담겼다는 ‘노상원 수첩’ 의혹, 국군 방첩사령부의 블랙리스트 작성 의혹 등을 재수사할 계획이다. 종합특검팀 수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던 사건들로는 계엄 당일 계엄사령부 구성을 위해 육군본부 간부들이 계룡대 육군본부에서 서울로 이동하려 했다는 이른바 ‘계엄 버스’ 의혹이 있다. 국방부가 최근 당시 버스 탑승 간부들에게 일제히 중징계를 내린 만큼 종합특검팀은 이 사건을 형사 처벌할 수 있는지, 지시·보고 라인이 있었는지 등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볼 것으로 보인다. 김씨 관련 의혹에서는 이전 특검팀이 정해진 기간 내 수사를 끝내지 못해 경찰에 넘긴 사건들이 종합특검팀에 다수 포함됐다. 대표적으로 ▲대통령 관저 이전 의혹 ▲양평고속도로 종점 변경 의혹 등이 꼽힌다. 종합특검팀은 관저 이전 의혹과 관련해 김씨와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을 윗선으로 봤지만 수사 기한이 임박한 시점에 조사가 이뤄지면서 윤 의원은 기소 여부를 결론 내지 못했다. 종합특검팀이 윤 의원 등을 상대로 조사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수사 막바지에 착수해 핵심 관련자 조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이른바 ‘김건희 수사 봐주기’ 의혹과 사실상 손을 대지 못했다는 창원 국가첨단산업단지 지정 과정의 부당 개입 의혹 등도 수사 대상이다. 또 김건희·채 해병 특검팀에서 중복 수사 대상이었지만 규명이 충분하지 못했다는 이른바 ‘구명 로비’ 의혹 역시 종합특검팀이 결론을 내야 할 사안이다. 정치적 계산 확연한 차이 종합특검팀을 둘러싼 가장 큰 변화는 단연 검사 파견 규모의 축소다. 과거 특검팀이 수십명에서 많게는 백여명의 현직 검사를 파견받아 운영됐던 것과 달리, 종합특검팀은 검사 파견을 최소화하고 외부 인력 중심으로 이뤄지는 수사 구조를 택했다. 정치권과 법조계 안팎에서는 이를 두고 “검찰 이후 시대를 염두에 둔 구조적 실험”이라는 평가와 “수사 역량을 스스로 약화시킨 선택”이라는 우려가 동시에 나온다. 단순한 인력 운용의 변화라기보다, 종합특검팀의 성격과 권한, 검찰과의 관계 설정을 근본적으로 재정의하려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동안 특검은 형식적으로는 독립기구였지만, 실제 운영은 검찰 조직에 크게 의존해 왔다. 수사 실무와 기획, 영장 청구와 공소 유지까지 대부분의 과정이 파견 검사들에 의해 이뤄졌고, 특검은 사실상 ‘검찰의 별도 수사본부’에 가까웠다는 지적이 거셌다. 검찰로부터 검사를 파견받으면 대형 수사를 빠르게 진행하는 데는 효과적이었지만, 정치적 중립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특히 수사 대상에 전·현직 고위 공직자, 검찰 출신 정치인, 혹은 검찰이 과거 불기소하거나 수사했던 사안이 포함될 경우 “검찰의 셀프 수사”라는 비판이 지속됐다. 특검이 검찰의 판단을 다시 들여다보는 구조 자체가 모순이라는 문제 제기도 이어졌다. 이번 종합특검팀의 수사 대상에는 전직 대통령과 고위 권력층, 과거 검찰 수사와 직·간접적으로 얽힌 사안들이 다수 포함돼있다. 검사 파견을 대규모로 유지할 경우, 수사 결과와 무관하게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공격을 피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내부 갈등 의식했나 종합특검팀은 검사 수를 최소화하는 대신, 특검보를 중심으로 한 지휘 체계와 외부 수사 인력을 대폭 늘리는 방식을 택했다. 경찰, 국세청, 감사원, 금융·회계·디지털 포렌식 전문가 등 비검찰 인력 비중을 확대해 복합 사건에 대응한다는 구상이다. 이는 단순히 인력 구성을 바꾼 것이 아니라, 검찰 권한 축소 이후 특검의 새로운 모델을 시험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검찰이 더 이상 모든 대형 수사의 중심이 아닌 상황에서, 특검마저 검사 중심으로 운영된다면 검찰개혁의 취지가 무색해진다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검찰이 아닌 방식으로도 대형 권력형 비리를 수사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검사 파견 축소에는 분명한 정치적 계산도 담겨있다. 종합특검팀은 출범 단계부터 ‘정치 보복’ ‘선택적 특검’이라는 야당의 반발에 직면했다. 이 과정에서 검사 중심 특검은 가장 공격받기 쉬운 지점이다. 여권으로서는 ‘검찰이 주도하지 않는 가장 독립적인 특검’이라는 명분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검사 파견을 줄이면 수사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최소한 절차적 중립성에 대한 방어 논리는 강화된다. 이는 향후 수사 과정이나 결과 발표 시 정치적 공방을 완화하기 위한 안전장치이기도 하다. 반대로 야권은 이미 “검사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특검은 정치 쇼에 불과하다”는 프레임을 꺼내 들고 있다. 검사 파견 축소가 수사의 공정성이 아니라 수사 역량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실무적으로 보면, 검사 파견 축소는 분명한 부담 요소다. 대형 특검 수사에는 압수수색영장 청구, 구속영장 판단, 법리 구성 등 고도의 형사법 경험이 요구된다. 검사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은 외부 인력 중심 구조에서는 수사 속도가 늦어질 수 있다. 검 아닌 경찰·국세청·감사원 조사관 비중 확대 “정보사 의혹 수사 시간 오래 걸릴 수도” 우려 특히 수사 이후 공소 유지 단계에서 검찰과의 협조가 원활하지 않을 경우, 재판 과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과거 특검들이 검사 파견을 중시했던 이유는 ‘기소와 유죄 입증’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김건희 특검팀에서 벌어졌던 내부 갈등을 의식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김건희 특검팀에 파견됐던 검사들의 ‘원대 복귀 희망’ 입장문 파동이 종합특검팀에서 재발할 경우 내부 수습에 시간을 빼앗길 수 있다. 당시 입장문이 외부에 유출되며 ‘항명’ ‘집단 반발’ 등으로 알려졌지만, 특검팀 지휘부와 수사팀장들은 ‘하소연 취지’였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한다. 민주당은 파견 검사들을 겨냥해 “징계와 형사 처벌 대상”이라고 비판하고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이 “국민에게 항명했다”고 규정한 것과 달리, 실제론 태업이나 이탈 없이 수사와 공소 유지를 차질 없이 진행했다. 파견 검사들은 검찰에서부터 최대 1년 넘도록 동일한 사건을 수사하며 피로감에 쌓였다. 이들은 검찰개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수사를 매듭지으려 노력했다. 다만 재판에 넘겨진 주요 피고인들의 공소 유지 업무가 순조롭게 진행될지는 예측할 수 없다. ▲일선 검찰청의 민생 사건 적체 ▲정성호 법무부 장관의 ‘직관(수사 검사가 공판에 직접 관여) 제한’ 방침 ▲기존 특검 관례 등을 고려하면 최소 인력만 공소 유지 업무를 담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검 지휘부도 공소 유지 단계에선 복귀를 희망하는 검사들을 강제로 붙잡을 순 없다고 보고, 효율적인 인력 운용 방안을 고심했다. 지휘부가 입장문을 작성하기 2~3주 전부터 김건희 특검 내 일부 수사팀에선 ‘진행 중인 사건을 조속히 마무리한 후 일선으로 복귀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기로 뜻을 모으기도 했다. 종합특검팀은 수사 결과 이전에 이미 하나의 시험대에 올라 있다. 검찰 없이도 대형 권력형 비리를 수사할 수 있는가, 특검이 검찰개혁 이후의 사법 질서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 실패하면 역풍 불가피 만약 종합특검팀이 의미 있는 수사 성과를 낸다면, 향후 특검은 검사 중심 구조에서 벗어난 새로운 표준을 갖게 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성과가 미진할 경우, “그래서 결국 검사가 필요하다”는 역설적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검사 파견 축소는 정치적 선택이자 제도적 실험인 셈이다. 이번 종합특검팀은 단순히 몇 건의 의혹을 밝히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검찰 이후 한국 사법 시스템이 어디까지 작동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분기점이라는 점에서, 그 성패는 수사 대상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