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지경세태> ‘헬조선’ 외치는 청년들 천태만상

“더이상 한국엔 희망이 없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한국 사회가 날이 갈수록 팍팍하다 못해 노력해도 빈곤해져만 간다. 청년들은 이런 대한민국을 ‘헬조선’ ‘지옥불반도’라 부른다.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인식 속에서 오늘날 한국 사회는 지옥으로 묘사되고 있다. 

 
 
사이버 공간에 ‘헬조선’(Hell·지옥+조선)과 ‘지옥불반도’(지옥불+한반도)라는 신조어가 떠돌아다닌다.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젊은이는 10대에 입시, 20대에 취업, 30대에는 주거·결혼 전쟁을 겪는다. 발버둥쳐도 ‘루저’ 신세와 가난의 대물림을 벗어날 수 없다. 헬조선 신드롬은 경제적 약자의 아픔을 그저 “‘노오력’이 부족해”라고 외면하는 불통의 현실에 대한 야유이자 집단 반란이다.

‘지옥+조선’
 
헬조선의 등장은 커뮤니티인 <디시인사이드> 역사 갤러리에서부터 시작됐다. 본래 헬조선은 식민사관을 비호하고 근대지상주의(일본이 한국을 지배해서 이만큼 사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한국을 비하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였다고 한다. 다시 말해 한반도 역사가 미개하다는 인식에서부터 출발한다.
 
네티즌들은 한국의 지옥같은 현실과 헬조선이라는 단어의 강렬함에 이끌려 온라인 공간에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후 지난 5월부터 헬조선이라는 이름의 커뮤니티가 등장하면서 급속도로 확산됐다. 한국 사회가 살기 어렵고 삶을 유지하는 것이 고통스럽다고 느끼는 사람과 사회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헬조선이라는 표현에 공감하기 시작한 것이다. 
 
헬조선을 관통하는 몇 가지 키워드가 있다. ‘노오력’ ‘금수저’ ‘탈출’ 등 이다. 이 키워드는 헬조선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다. 이 단어를 뜯어보면 헬조선에 공감하고 있는 사람들의 인식도 엿볼 수 있다.
 
헬조선 목소리 가운데 두드러지는 것은 취업과 청년문제다. ‘청년을 노예처럼 부려 먹는 조직문화’가 지옥인 것이다. 청년들에게 자발적 희생을 강조하는 의미의 단어 ‘노오력’ 등이 핵심이다. 노오력은 노력이라는 명분으로 노동력을 착취하는 기성세대와 노력해도 끊을 수 없는 청년 빈곤을 풍자하는 데서 비롯됐다. 
 

최근 3포세대(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젊은이), 5포세대(3포세대에 취업·주택구입 등 포기한 젊은이), 7포세대(5포세대에 인간관계 및 희망을 포기한 젊은이) 등 이것보다 오래된 이태백(이십대 태반은 백수)과같은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청년이 노력해도 되지 않은 절망감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노오력과 짝을 이룬 말로써 가장 많이 쓰이는 키워드는 ‘금수저’다. 금수저는 좋은 환경에서 태어난 사람을 뜻한다. 부유한 사람과 상류층 자제를 일컫는다. 대물림되고 있는 부를 비꼬고 있다. 헬조선의 헬(Hell)은 이 신조어의 현대성을 부각하지만 ‘한국’도 아닌 ‘조선’은 이미 신분의 대물림이 거의 제도화된 한국 사회의 퇴행성을 암시하기도 한다.
 
조선의 한양 북촌에서 태어난 권문세도가들의 자녀들이 입에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듯, 오늘날 ‘강남족’은 저들만의 세습적 신분이 이루어 거주지, 통혼권, 학습, 유학 루트, 언어 등의 차원에서 배타적인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금수저와 상반된 의미로 ‘흙수저’도 있다. 흙수저는 저소득층, 일용직 노동자 등 사회적으로 소득이 저조한 계층을 의미한다. 흙수저에는 노력해도 극복할 수 없는 신분의 한계가 내재돼 있다. 이런 보이지 않은 계급적 한계를 빗대어 최근에는 “내가 흙수저로 태어난 것은 노오력이 부족해서”라며 한국 사회는 노력으로 극복 불가능한 신분 사회가 됐다는 비판을 우회적으로 하고 있다.
 
‘노력해도 빈곤한 삶’ 풍자한 신조어
지옥같은 현실·기성세대 향한 분노
 
네티즌들은 헬조선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탈출 뿐’이라고 말한다. 탈출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노예 같은 삶’을 벗어나기 위해서다. 청년층 간 ‘계층’과 ‘불평등’ ‘반목’이 이 대목에서 드러난다. 
 

오늘날 ‘개천에서 용났다’는 말은 옛말이 됐다.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현실에서 절망할 때 찾는 해결책이 있다. ‘한국을 뜨는 것’이다. 명문대생들을 중심으로 취업이민 스터디와 이민계까지 결성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한국 사회의 비정상적 경쟁구조, 빈약한 사회안전망 등에 실망한 2030 젊은이들이 최근 해외이민에 적극적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한국을 자발적으로 떠나는 ‘코리아 난민’이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이민을 떠나는 이들의 공통으로 “내 아이에게 답답한 미래를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이런 암울한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인식이 깔렸다.
 
해답은 탈출?
 
한 사회학자는 “청년들이 ‘살기 힘들다’ 외치면 정상적 사회라면 ‘뭐가 힘드냐? 어떻게 고칠까?’하고 반응해야 한다. 그러나 헬조선의 486세대는 ‘내가 20대였을 땐 말이야’라고 훈계하고, 그 윗세대는 ‘북한 가라’고 말한다.”
 
헬조선은 청년세대의 절규를 귀담아듣지 않는 기성세대의 태도를 풍자하는 유머다. 기성세대는 ‘헬조선’에서 무엇을 읽어야 할까. 
 
 
 

<기사 속 기사 - 미니인터뷰> ‘헬조선’ 운영자에게 들어보니…
 
인터넷 커뮤니티 ‘헬조선’에는 한국 사회의 치부만 전문적으로 올라온다. 기자는 헬조선 운영자에 인터뷰를 요청했다. 다음은 헬조선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최초로 사이트를 개설한 김모(30)씨와의 일문일답. 
 
▲하는 일은?
광고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다른 사람과 별 다를 것 없이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초중고 교육을 받고 입시를 통해 대학에 나와 우여곡절 끝에 취직했다. 시간이 날 때 헬조선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다. 
 
▲헬조선은?
정식 오픈은 올해 5월27일이다. 헬조선은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일이라 판단되는 이슈들을 볼 수 있는 사이트다. 대한민국 사회의 부조리한 현실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정치적인 기준을 배제한 ‘현재 대한민국 모습을 전달할 수 있는 사이트로 만들자’라는 목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운영자가 바라보는 대한민국은? 
북한이 사회주의의 문제점을 잘 보여준다면 대한민국은 자본주의의 문제점 잘 보여준다. 가장 큰 문제는 국민이 현재의 대한민국을 냉소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점이다.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라는 애국에 대한 이데올로기와 ‘현실이 괴롭더라도 참고 견디면 좋은 날이 온다, 그러니 노예처럼 일해라’는 기득권 이데올로기가 만났다.
 
젊은이들은 누구 쇠사슬이 더 크고 예쁜지 자랑한다. 자신의 쟁취 해야 하는 건 아예 생각지도 못한 채 노예화 되고 있다, 기득권은 원정출산, 이중국적, 국적포기를 선도하며 앞서서 국부 유출에 힘쓰고 있다. 정말 말 그대로의 헬조선이 되고 있다. 
 
▲헬조선에는 한국을 풍자하는 촌철살인 같은 드립(?)이 올라온다. 기억에 남는 드립은?
‘너도 나도 죽창 한방이면….’ 죽창을 달라는 말은 불평등을 의미한다. 불평등이 해소되지 않으면, 그저 죽창을 달라고 하는 것은 지독할 정도로 자기 파괴적인 포기선언이다. 무엇이 그들을 이토록 포기하게 하였는지는 지금까지 한국 사회를 돌아보면 알 수 있다.  <창>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