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차 메카' 강남매매단지 내홍 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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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경제팀] 이창근 기자 = 장안동과 더불어 중고차 거래의 메카로 불리던 율현동 강남자동차매매단지의 몰락이 예사롭지 않다. 월 5000대에 육박하던 중고차 거래가 내리막을 걷더니 최근에는 1300대 수준으로 떨어졌다. 사창가를 연상시키는 길거리 호객행위와 소비자를 기만하는 허위매물 등에 대한 소비자들의 분노가 입소문을 타면서 손님들이 급격히 줄어든 것이다. 단지 내 사업자들 사이에 “이러다 망하는 것 아니냐”는 말들이 오가고 있지만 매매단지 부흥을 위한 마땅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사실 강남자동차매매단지(이하 강남단지)의 몰락에는 몇 년째 치르고 있는 내홍 탓이 크다. 단지 내 구분소유권자, 임대사업자, 관리단 사이의 갈등이다. 구분소유권자는 2001년 강남단지가 세워지면서 상가를 분양받은 사람들이고, 이 소유권자들이 단지 내 시설 및 부지관리를 위해 임명한 조직이 관리단이다. 그리고 분양받은 소유권자의 상가를 임대해 중고차매매 사업을 하는 이들이 임대사업자다. 현재 강남단지에는 활동하는 70개 상사 중 대부분이 임대사업자다. 
 
고소고발 얼룩
양측 최후 통첩
 
현재 강남단지의 내홍은 임대사업자와 관리단 사이에서 첨예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 내홍의 유탄을 구분소유권자들도 함께 맞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8월7일, 강남단지 내 활동 중인 70개 상사 중 56개 상사의 모임인 ‘서울시자동차매매사업조합 강남지부(지부장 이기홍)’는 이사회 결의사항을 개별 소유권자들에게 발송했다. 핵심내용은 두 가지. 첫째는 지금의 관리단은 업무에 부적합한 이들로 각종 비리가 자행되고 있으니 임명권을 가진 구분소유권자들이 현 관리인의 해임 또는 직무정지가처분을 결의해달라는 것이다. 둘째는 현 관리인에 대한 시정조치가 11월까지 이행되지 않으면 이후 관리비 및 임대료 납부를 단체로 거부하겠다는 것. 
 

“지금처럼 강남단지가 운영되어서는 상인이나 고객은 물론 구분소유권자들도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비리와 부정부패로 얼룩진 관리단을 바로잡아야 강남단지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참을 만큼 참았고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관리단에 대해 삭발투쟁을 선언한 이기홍 지부장(61)은 “강남지부 조합원들의 이번 결정이 결코 장난이 아니다”고 강조하고 있다. 분양받은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관리단의 횡포 속에 사업을 꾸려나가야 하는 임대사업자 입장에서는 더 이상 관리단의 전횡을 참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지부장은 “강남단지의 부흥을 꾀해야 할 관리단이 각종 비리를 저지르는 것도 모자라 입주상인들을 갈취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관리단과 관리단장이 자행하는 비리가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도대체 강남단지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이 지부장은 속칭 ‘뻥카’라고 불리는 허위매물은 강남단지에서 절대 벌어지지 않아야 할 악덕상술인데 관리단장이 운영하는 매매상사가 앞장서서 허위매물 작업을 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단속해야 할 관리단장부터 허위매물로 장난을 치고 있으니 ‘뻥카’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정상적으로 사업하는 사람들까지 피해를 보고 있다는 주장이다. 결국 새로 관리단장이 선출되어야 허위매물이 사라질 것이란 논리다.
  
이에 대해 관리단의 김용선 단장(57세)은 “일부 세력의 음해”라는 입장이다. “내가 운영하는 상사는 사무실만 컸지 직원이 거의 없는데 무슨 허위매물을 하겠냐”며 의혹을 일축했다. 하지만 상인들은 김단장의 해명이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하고 있다. 정상적인 매매상가는 직원들이 상시로 근무하는 게 맞다는 것이다.
 
 
허위매물은 다른 상사가 잡아놓은 매물정보를 베껴서 작업하는 것이기 때문에 순진한 고객이 걸려들었을 때만 숨어있던 직원이 등장한다는 것. 사람은 없고 책상만 빼곡한 사무실 자체가 허위매물의 증거라는 논리다. 단지 내 상인 최 모씨는 “내 물건 가지고 지들이 마진 붙여 팔아먹은 것이 한 두 번이 아닌데 무슨 소린가. 이 단지에서 거기(관리단장 운영상사)에 작업당한 상인들이 수두룩한데 변명도 참…”이라며 혀를 찼다.
 
주자장을 둘러싼 잡음도 크다. 중고차매매단지의 속성상 개별 사업자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주차공간이다. 현재 강남단지 내 공유공간들은 관리단이 줄을 그어 확보한 주차장이 곳곳에 위치하고 있다. 화단 앞은 물론 공용도로, 장애인전용 주차장도 일반 주차공간으로 변한 상태다. 건물 A동과 B동을 연결하는 지하통로는 물론이고 소방도로까지 주차장이 되었다. 자칫 불이라도 나면 엄청난 재산손실과 인명피해가 불가피해 보인다. 
 
강남지부 상인들이 ‘갈취’라는 단어를 써가며 지적하는 곳이 지하주차장이다. 매매단지 지하주차장은 입주식당이나 부대시설 임차인에게 당연히 제공되는 곳인데 관리단이 임의로 주차비를 부과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아파트 세입자에게 주차비를 별도로 받는다면 어느 누가 납득하겠느냐는 반문이다. 
 

아파트 주민에 
주차비 받는 꼴
 
관리단장은 “이전 관리단장 때부터 일부 힘 있는 사람들이 쓰던 곳을 정비한 것”이라고 했지만 상인들은 “공용부지와 지하의 법정주차장에 주차비를 부과한 것은 김단장 취임 이후”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확보된 주차비의 사용처를 둘러싼 잡음이 더 크다. 관리단이 2015년 3월 정기총회에서 보고한 문건에 명시된 주차비 수입은 년간 2억원 규모. 관리단은 이 주차비 수입을 주차관련 지출과 관리단의 공적업무 수행을 위한 차용금으로 집행했다는 입장인 반면 상인들은 주차비를 관리단 수뇌부가 착복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년간 2억원의 주차비를 추가로 거뒀으면 영업환경이 좋아지던지 다소라도 관리비가 내려가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상인들 틈에서 “매월 걷는 주차비 2000만원 중에 술 마시고 노름하는 데 없앤 돈이 상당부분일 것”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에 대해 관리단장은 “수년간 관리단이 엉터리로 운영되면서 적자가 발생했고, 전기세 같은 시급한 비용을 우선적으로 지급하기 위해 차용한 것일 뿐 횡령은 없었다. 수사를 받아야 한다면 받겠다”며 펄쩍 뛰고 있다. 한편, 강남단지 내 상가번영회 입장은 관리단의 주차비 징수와 운영에 문제가 있다는 쪽이었다.


   
번영회장 전희광(49) 씨는 “입주상인들에게 주차비를 부과할 때는 마땅한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관리단이 임의로 과금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특히 관리단이 상인들이 내는 주차비에 대해 세금계산서 한 장 발행해주지 않은 것은 관리단 스스로 탈세를 하고 있다는 것과 같고, 주차비를 어디에 썼는지 명확한 사용처를 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상인들로부터 횡령의혹을 받고 있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특히 작년에 시행된 매매단지 LED조명공사 건은 현 관리단이 불신 받는 큰 배경이 되고 있다. 상당수 상인들은 LED공사에 대해 “돈은 지들이 빼먹고, 공사비는 우리한테 나눠 내라고 하고 있다”며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조명공사 착공 전 회자되던 ‘공사비 리베이트 수수의혹’이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당시 회자되던 소문은 심각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LED조명업체의 백모씨가 “공사비 3억5000만원에 리베이트 20%”를 제의했는데, 이를 관리단장이 5억8000만원으로 부풀린 후 차액과 리베이트를 나눠가졌다는 것. 이 소문에 당시의 상황이 담긴 녹음파일을 들었다는 상인들이 나타나면서 소문이 확산된 바 있다. 물론 관리단장 측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못 박고 나선 상태다. 모함도 너무 질이 나쁜 모함이라는 것. 
“5개 업체로부터 제안서를 받았고 운영위원들과 함께 개봉해서 검토한 후 결정했다. 국내 10위권 업체를 선정했고, 하자보증까지 확보한 공사다. 리베이트 같은 것은 없었다.”
 
월 5000대서 1300대로 거래 내리막
호객·허위매물에 손님 급격히 줄어
 
김 관리단장은 이미 구분소유권자들은 물론 입주상인들에게도 충분히 해명한 일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관리단장의 해명이 입주상인들에게 충분히 전달된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형광등이었을 때보다 더 어둡다. 전기세 절감분으로 공사비를 충당하겠다더니 매월 전기세 외에 LED 전기공사비를 따로 걷는 것은 뭔가? 전기세는 예전보다 돈 1만원도 안 줄었는데 공사비 명목으로 매달 7만∼9만원 정도 애먼 지출만 더 생겼다. 이상한 공사다.” 
 
입주 상인의 말이다. 또 다른 상인은 “아는 조명업자 불러서 견적 내보니 2억원 정도면 충분하다고 했다. 관리단 내 직원말로는 백 이사란 사람이 인증도 없는 중국산 제품을 사람 사서 공사한 것이라고 증언했다”고 덧붙였다. 직접 공사업체 관계자에게 확인해보니 업체는 “정품으로 직접 공사를 했고, 하자책임을 다하고 있다”고 답변해왔다. 상인들이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이다.
 
LED조명 공사 
사기의혹 제기
 
그러나 업체 관계자의 답변에도 불구하고 현재 강남단지 사업자들 사이에 “사기 공사의 증거가 확보됐다”는 말이 돌고 있다. 한 사업자가 직접 한국전력을 방문, 강남단지의 전기세 내역을 확인해보니 월 3000만원 수준이던 전기세가 공사 이후 100만원 정도 밖에 절감되지 않았다는 것.
 
이는 공사 전 관리단이 전기세가 매년 50% 절감될 것이고, 그 절감분으로 공사비를 상환하다는 말 자체가 거짓이거나 공사업체가 하지도 않은 공사를 했다고 세금계산서를 끊어 준 반증이라는 견해다. 상인들은 관리단을 수서경찰서에 고발했고 현재 수사가 진행되는 중이다. 관리단장과 시공업체의 해명으로 의혹이 사라져야 하는데 현실은 불신과 의혹이 증폭되고 있는 상황이다.       
 

상가 관계자들은 “관리단이 상인들에게 불신 받는 것은 일정 부분 관리단이 자초한 바가 크다”고 입을 모은다. 그 동안 관리단이 시행했다는 각종 공사에 대한 견적서나 시방서 같은 근거서류 열람을 요청할 때마다 매번 외면 받았다는 것이다. 강남지부 이정기 지부장의 말이다. 
 
“관리단이 서류작업은 잘한다. 각종 공사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 무슨 회의록 같은 것을 근거서류라고 내놓는다. 그런데 견적서나 시방서, 세금계산서 같은 자료는 왜 못 내놓는지 모르겠다. 심지어 배전반 공사는 3000만원이 들었다는데 서류상으로만 공사했고 실제 공사는 하지도 않았다. 매번 이런 식이었다.”
이밖에도 관리단장이 운영하는 상가가 부담할 관리비 3억원을 전산조작으로 완납 처리했다는 의혹과 신차전시장을 불법으로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부분, 2014년 관리단장 선출 당시 부정투표가 있었다는 부분 등등 각종 의혹이 끝없이 제기되고 있다. 


   
김 관리단장은 단지 내 사업자들의 불신에 대해 “일부 다른 목적을 가진 사람들의 음해 때문”이라는 입장이다. 수차례에 걸쳐 구분소유권자나 상인들에게 관리단 사무실에 자료가 있으니 언제든지 와서 보라고 했지만 직접 찾아온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또한 모든 비용은 세무사가 전부 회계처리를 하고 감사로부터 감사도 받는데 하지도 않은 공사를 했다고 할 사람이 어디 있겠냐며 되물었다. 한쪽에서는 “모든 것들이 불투명하다”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불순한 의도로 트집을 잡는 것”이라며 대치중인 상태다. 
 
임대사업자 “핍박, 참을 만큼 참았다!”
관리단 “열심히 하는 데도 딴죽 거나?”
 
금년 6월로 예정됐던 정기총회가 두 달 이상 연기되는 것도 또 다른 갈등 요소가 되고 있다. 일전불사를 외치는 강남지부 소속 상인들은 “현 관리단장이 의도적으로 정기총회를 미루고 있다”며 날을 세우고 있고, 관리단장 또한 “메르스 여파로 총회가 연기됐을 뿐 조만간 일정을 잡을 것”이라며 응수하고 있다. 양측의 갈등은 임대사업자 연명으로 소유권자들에게 관리단 해임을 요구하는 통첩까지 보낸 이상 쉽사리 봉합될 것 같지 않다.
 
임대사업자를 대변하는 이 지부장은 “나이 육십에 머리까지 밀고 나설 때는 개인적인 이익보다 매매단지를 살리는 게 더 중요하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손님들이 믿고 찾을 수 있는 중고차 메카로 거듭나지 않으면 여기 있는 사람들 다 망한다. 반드시 정상적이고 투명한 관리단을 만들어내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반면 김 관리단장은 열심히 하는 데도 상인들이 알아주지 않는 것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상인들의 무조건적인 반발은 누군가의 영향력이 작용한 여파로 판단하는 눈치다. 
 
“나보다 앞서 9년 동안 관리단장을 한 사람이 있다. 그 사람 때문에 관리단의 재정과 체계가 엉망이 됐다. 외부회계감사 결과 큰 액수가 비어서 고소고발까지 한 상태다. 강남단지를 개혁하는 것이 불편한 사람들을 누군가 배후조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관리단을 둘러싼 잡음은 향후 개최될 정기총회에서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벌써부터 ‘위임장 확보전’ 조짐도 보인다. 임대사업자는 투표권이 없기 때문에 결국 구분소유권자들의 위임장을 받아 총회에 참석하겠다는 생각이고, 투표권이 있는 현 관리단장 측은 전체 구분소유권자 중 우호세력을 결집하는 데 주력하는 움직임이다. 

“정기총회서 보자” 
서로 물밑작업 중 
 
한편, 세력결집을 위한 양측의 물밑작업에 의외의 변수가 부상하고 있다. 현 관리단과 예전 관리단장, 현 관리단장과 입주상인 간에 제기된 각종 고소고발 사건과 진정, 투서 등에 따른 잡음이 외부로 퍼지면서 급기야 검찰수사가 착수된 것이다. “참을 만큼 참았다”는 입주상인과 “열심히 하는데 무슨 트집이냐”는 관리단 사이의 갈등은 당사자들의 노력이 아닌 수사기관의 조사와 판단에 따라 향후 행보가 결정될 전망이다.
 

<manchoice@ilyosis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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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