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에…' 팍팍 쓰는 기업들 백태

IMF보다 어렵다지만…두꺼워지는 재벌 지갑

[일요시사 경제1팀] 한종해 기자 = 우리나라의 소비자 심리지수가 60개국 중에서 59위를 기록했다. 30대 그룹 대부분도 지금 경제 상황에 대해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더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 경제에 장기 불황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 하지만 기업들의 배당·실적·임금을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불황이라면서 그들만의 잔치를 벌인 기업들은 한둘이 아니다.

글로벌 정보분석 기업인 닐슨이 지난해 4분기 세계 60개국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지출 의향 등을 물었더니 우리나라의 소비자 심리지수는 60개국 중에서 59위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의 '1월 소비자 동향 조사'에 따르면 소비자 심리지수는 지난해 9월(107)부터 3개월 연속 떨어지다가 지난달 102로 1포인트 상승하며 하락세가 진정됐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직후 기록한 소비자 심리지수(104) 수준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부진 예측 뒤엎는
대기업 실적 개선

기업들이 한국 경제를 바라보는 인식도 비슷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최근 30대 그룹을 대상(1개 그룹 무응답)으로 '2015 투자·경영 환경 조사'를 실시한 결과 24개 그룹(82.8%)이 '구조적 장기 불황이 우려된다'고 답했다. 절반이 넘는 그룹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비교해 현 경영 환경이 '더 나쁘다'고 답했다. 44.8%에 해당하는 13곳은 경제 회복 시기가 '2017년 이후'라는 부정적인 전망을 내놨다.

올해 예상 투자규모를 묻는 질문에는 41.4%가 작년과 비슷한 수준이 될 것이라고 답했고 24.1%는 작년보다 줄 것이라고 응답했다.


이처럼 너도나도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연초부터 발표되고 있는 기업들의 배당, 실적, 임금 수치를 보면 '그들만의 잔치'를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전체적으로 부진할 것이라는 업계의 예측과 달리 지난 한해 대체로 양호한 실적을 올린 기업들이 많았다. 특히 한진그룹의 약진이 눈에 띈다.

에프엔가이드에 따르면 한진그룹 주력계열사 대한항공은 2013년 4분기 영업이익 178억원에서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은 1305억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3년 연속 영업손실을 기록하던 한진해운은 4년 만에 흑자를 달성했다.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10.3% 감소한 8조6548억원을 기록했으나 영업이익은 1435억원이다. 한진그룹의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은 280%가량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전년 동기에 비해 36%나 줄어든 영업이익을 기록한 삼성전자 때문에 고전이 예상됐던 삼성그룹의 경우, 삼성카드, 삼성증권, 삼성생명, 호텔신라, 크레듀 등 타 계열사 실적 개선으로 그나마 '선방'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차와 기아차 영업이익이 각각 전년 대비 7.6%, 23% 하락한 현대자동차그룹 또한 현대제철과 현대건설의 선전으로 작년과 비슷한 수준의 영업이익을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SK그룹도 SK이노베이션 부진을 SK하이닉스가 보완해 줬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4600억원대 영업손실을 냈다. 하지만 SK하이닉스는 지난해 매출액 17조1256억원, 영업이익 5조1095억원을 기록하며 또 한번 최대 매출액과 영업이익 기록을 갈아치웠다. 당기순이익도 전년 동기보다 46% 증가했다.

배당금 총액 전년 대비 61% 증가
100억 이상 배당 부자 최소 20명

LG그룹은 LG전자, LG디스플레이, LG이노텍이 선전하면서 LG화학의 부진을 메꿨다. CJ그룹도 CJ헬로비전과 CJ E&M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CJ제일제당과 CJ대한통운의 실적 향상을 이끌어 내며 전체적으로는 성장했다.


포스코그룹은 3조원대 매출을 회복했다. 포스코그룹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61조865억원) 대비 5.2% 증가한 65조984억원으로 나타났으며 영업이익은 3조2135억원으로 전년 대비 7.3% 증가했다.

기업들의 실적 선방을 방증하듯이 올해 역시 '배당 잔치'가 벌어졌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1일부터 올해 2월5일까지 2014년도 배당총액은 10조2751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3조9025억원(61%)이 증가했다. 현금배당을 공시한 상장법인도 253개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113개(80%) 늘었다.
 

유가증권시장 상장법인 중 배당을 공시한 기업은 전년 86개에서 145개로 증가했고 배당금 총액은 6조1989억원에서 9조8774억원으로 늘어났다. 코스닥 상장법인 중 배당을 공시한 곳은 전년 54개 사에서 108개로 증가했고 배당금 총액은 1737억원에서 3977억원으로 집계됐다.

가장 많은 배당금을 지급한 기업은 삼성전자로 배당금 총액은 전년보다 40.5% 증가한 2조9246억원으로 집계됐다. 삼성전자는 보통주 1주당 배당금을 1만3800원에서 1만9500원으로 41.3% 늘렸다. 삼성화재해상보험은 주당 2750원에서 4500원으로 63.6%늘렸으며 배당금 총액은 1202억원에서 1988억원으로 65.4% 늘었다. 삼성카드도 2013년 700원에서 2014년 300원(42.9%)이 증가한 1000원을 배당해 배당금 총액 1154억원(전년 808억원)을 기록했다.

배당금을 큰 폭으로 확대한 주요 대기업을 살펴보면 ▲현대자동차(1950원→3000원, 53.8%) ▲기아자동차(700원→1000원, 42.9%) ▲동부화재해상보험(1000원→1450원, 45%) ▲SK C&C(1500원→2000원, 33.3%) 등으로 나타났다.

전년도 주당 600원을 배당한 포스코와 4000원을 배당한 LG화학, 1000원을 배당한 LG, 2500원을 배당한 SK는 올해 같은 금액을 배당하기로 했다. 전년도 배당을 하지 않았던 SK하이닉스는 올해 주당 300원 배당으로 배당금 총액 2184억원을 기록했으며, 역시 배당을 하지 않았던 LG디스플레이도 올해 500원을 배당, 총 1789억원을 배당하기로 했다.

배당 공시 기업
86개→145개

100%가 넘는 배당금 총액 증가율을 나타낸 기업은 엔씨소프트(472.4%)와 메리츠종금증권(108.7%), 아이마켓코리아(100%), 호텔신라(132.5%), 삼성생명(109.5%) 등이다.

코스닥시장에서는 동서가 전년보다 9.1% 증가한 596억원을, GS홈쇼핑이 119.3% 증가한 480억원을, 파라다이스가 56.6% 증가한 428억원을 배당했다.

주요 금융지주사들과 시중은행들도 '배당 잔치'를 벌이고 있다. 지난해 배당을 실시하지 않았던 우리은행은 올해 은행권 내 가장 큰 규모인 5000억원의 배당을 계획 중이다. 올해 3월 초 열리는 이사회에서 최종 배당액을 확정할 계획이다. 주당 배당금은 700~750원 사이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한금융지주는 전년도 650원에서 46.2% 증가한 950원의 배당을 실시키로 결정했다. 배당성향(순이익 대비 배당 총액)은 21.6%로 전년(16.2%)에 비해 크게 확대됐다. 

지난해 주당 500원을 배당했던 KB금융지주는 올해 780원씩 배당하기로 했다. 배당성향은 15.1%에서 21.5%로 증가했다. 꾸준히 배당성향을 늘려오던 하나금융지주와 IBK기업은행도 적극적으로 배당을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기업들이 배당을 늘리면서 100억 이상 '배당 부자'들도 속속 나오고 있다. 재벌닷컴과 금융투자업계 분석 결과 2014년 배당금을 100억원 이상 받게 되는 대기업 주주는 16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배당 규모를 발표하지 않은 기업을 포함하면 배당부자는 최소 20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기업 호실적 소식 잇달아
경영진 임금도 속속 올려

2014년 가장 많은 배당금을 받는 기업인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으로, 지난 2013년 1079억원에서 2014년 1758억원으로 63% 증가했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도 지난 2013년 495억원에서 2014년 649억원으로 31% 늘었다. 2014년 120억원의 배당금을 받았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올해 79.5% 늘어난 216억원의 배당금을 받게 됐다.

이밖에 ▲최태원 SK그룹 회장(2013년 배당금 286억원→2014년 배당금 330억원 증감률 15.4%)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155억원→217억원, 39.9%)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155억원→205억원, 32.2%) ▲정몽진 KCC그룹 회장(131억원→168억원, 28.6%) ▲김남호 동부제철 부장(94억원→144억원, 53.3%) ▲김상헌 동서 고문(126억원→135억원, 7.2%) ▲김석수 동서식품 회장(110억원→120억원, 9.3%) ▲이재현 CJ그룹 회장(118억원→119억원, 0.3%)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91억원→109억원, 19.6%) ▲최태원 회장의 동생인 기원씨(79억원→105억원, 33.3%) ▲구광모 LG 상무(86억원→105억원, 22.6%) 등이 100억원 이상의 배당금을 받게 됐다. 구본무 LG그룹 회장(192억원)과 구본준 LG전자 부회장(137억원)은 배당 액수가 전년과 동일했다.

기업의 근간이 되는 직원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더욱 커졌다. 매출 1조원 이상 대기업 등기임원들은 직원들보다 13배 많은 연봉을 타갔다. 기업분석 전문업체 한국CXO연구소는 2013년 기준 국내 1500대 기업 등기임원 보수의 적정성을 분석한 결과를 내놨다.

매출 1조원이 넘는 대기업 등기임원의 1인 평균 보수는 8억2276만원으로 1인 당 평균 6121만원을 받은 직원들보다 7억6155만원이 높았다. 매출 1000억원 미만 중소기업에서 등기임원과 직원의 보수 격차는 4.8배에 불과했다.


1500대 기업 중 등기임원과 직원 보수가 5배 미만인 기업이 795개사로 절반을 넘었으며 15배 이상 차이가 나는 기업은 109개사에 불과했다. 매출 1조원 이상 대기업 때문에 연봉이 크게 차이가 난다는 얘기다.

등기임원과 직원의 평균 보수 격차가 가장 큰 기업은 SK이노베이션으로 70.4배에 달했다. 그 다름은 오리온(68.7배), 삼성전자(65.9배), 현대백화점(53.5배), SK(55.7배), 메리츠화재(55.5배), 코데즈컴바인(49.6배), 이마트(54.9배), SK C&C(47.2배), 에이블씨엔씨(45.5배)순이다.

불황 비웃는 기업
4분기 깜짝 실적

금액 순으로 등기임원 1인 평균 보수가 가장 높은 기업은 삼성전자로 65억8900만원이다. 2위는 50억2150만원이 지급된 SK, 3위는 47억2988만원이 지급된 SK이노베이션이 차지했다. 그 뒤를 현대백화점(33억7433만원), SK C&C(31억8033만원), 메리츠화재(27억9555만원), 삼성물산(25억3566만원), 삼성중공업(24억900만원), 오리온(23억9100만원), SKC(23억8133만원)가 이었다.

CXO연구소는 "대체로 국내 상장기업에서는 15배가 기준이 될 수 있다는 분석결과를 얻었다"며 "등기임원이 직원보다 15배 이상 받아가면 '과하다'고 볼 수 있다는 의미"라고 전했다.

<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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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