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솔그룹' 중소기업 기술 갈취 의혹

1년에 24억 벌어주는데 1억7000만원으로 ‘꿀꺽’

[일요시사 경제1팀] 한종해 기자 = 범정부 차원의 '중소기업 기술유용 근절' 공조체제가 가동 중인 가운데 한솔그룹이 중소기업인 어울림정보기술의 핵심기술 저작권을 두고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어울림은 "뺏겼다"고, 한솔에서는 "정당하게 샀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 그 속을 들여다보니 이상한 점은 한둘이 아니었다. 고소·고발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일요시사>가 양측의 주장을 토대로 사건을 재구성해봤다.

1997년 설립된 어울림정보기술은 보안 1세대 회사로 방화벽, 가상사설망(VPN) 등을 개발해온 정보보안 전문기업이다. 방화벽, VPN, IPS 등을 아우르는 통합 보안 솔루션(UTM)이 주력 제품이다.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지금껏 공공기관과 금융기관 3000여개에 약 5만대의 제품을 판매하고 유지·보수 업무를 이어왔다. 어울림정보기술(이하 어울림)는 어울림그룹의 계열사로, 어울림그룹은 수제 스포츠카 '스피라' '뱅가리' 등을 생산하는 어울림모터스로 유명하다.

대규모 퇴직후
압류→경매

한솔넥스지는 2001년 설립된 넥스지를 전신으로 한다. 국내 VPN 시장 1위 업체로 2013년 7월 한솔그룹에 인수됐다. 현재 한솔그룹 계열사인 한솔인티큐브와 솔라시아가 각각 지분 18.42%를 보유하고 있다. 

한솔그룹에 편입된 한솔넥스지(이하 한솔)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13년 12월 어울림 소유인 'SECUREWORKS V4.0(이하 시큐웍스 V4.0)' 프로그램 저작권을 경매를 통해 매수하면서부터다. 당시 한솔은 보도자료를 통해 "경매를 통해 매수한 시큐웍스 V4.0에 대한 모든 권리가 한솔에 있는 만큼, 시큐웍스 V4.0 제품과 기존 넥스지 제품과의 사업 시너지가 최대한 발취될 수 있도록 제품 개발과 서비스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프로그램을 무단 복제해 사용하는 업체들에 대해 법률적으로 대응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한솔은 사업다각화에 속도가 붙게 됐다. 지난해 3월에는 "어울림 시큐웍스 V4.0을 사용 중인 고객사 800여곳 중 500여곳에 대한 유지보수를 함께 하고 있다"는 보도자료가 나오기도 했으며 지난해 3분기 기준 유지·보수용역 비용은 전년 동기 기준 20억원가량 증가했다.
 


이처럼 한솔의 성장에 주를 담당하는 시큐웍스 V4.0의 낙찰가는 1억7000만원이다. 경매 절차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경매 시작가도 평가사들의 감정에 의해 정해졌다. 그런데도 어울림은 현재 "한솔이 실체도 없는 시큐웍스 V4.0을 인수해 놓고 어울림 대부분의 기술에 대한 저작권을 불법 행사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어울림에 따르면 회사 내 이상 징후가 포착된 것은 2012년 3월 주주총회부터다. 이날 직원 수명이 어울림 지분 20%가량을 확보한 뒤 주총에 나타나 이사 선임을 시도했으나 무산됐다.

한솔넥스지 VS 어울림정보통신 이전투구
배임·업무방해·저작권침해 고소고발 난무

3개월 뒤 주총에 나타났던 일부 직원들이 회사와의 아무런 협의 없이 회생 신청을 내고 법정관리인을 자기 쪽 사람으로 선임해 줄 것을 요구했으나 이마저도 없던 일이 됐다. 같은 달 직원 200~300명이 집단 퇴직했다. 2주 후 퇴직자들은 퇴직금지급소송을 내고 회사 내 모든 기물과 통장 계좌, 시큐웍스 V4.0에 대한 압류 신청을 했다. 회사는 퇴직금 지급을 위해 압류를 풀어달라고 수차례 요청했지만 퇴직자들을 묵묵부답이었다. 퇴직자들 중 20여명은 다넷정보기술이라는 업체를 설립했다. 2013년 10월 한솔은 다넷정보기술을 인수, 이듬해 청산종결했다.

수많은 압류물품 중에서 경매로 넘어간 것은 시큐웍스 V4.0 저작권 하나였다.

이상한 것은 어울림 내에서 시큐웍스 V4.0이라는 제품은 없었다는 점이다. 단지 시큐웍스 1000/2000/3000 V4 R3, 시큐웍스 1500/2500/3500 V4.0 R4 등 여러 개의 제품을 통칭하기 위해 시큐웍스 V4.0이라는 단어를 썼을 뿐이다.

어울림이 저작권위원회에 확인한 결과 시큐웍스 V4.0 저작권은 2011년 9월에 등록된 것으로 확인했다. 법인 공인인증서를 통해 저작권위원회에 저작권이 등록됐지만 당시 대표이사는 물론 사내 어느 직원도 저작권 등록 사실을 몰랐다. 어울림은 당시 법인 공인인증서 관리를 맡았던 전 직원에게 "2011년 9월8일 연구소 직원이 찾아와 '급히 처리할 것이 있으니 컴퓨터를 쓰게 해 달라'는 요구가 있어 자리를 내준 적이 있다"는 답을 받았다.
 


통상적으로 프로그램에 대한 저작권을 등록할 때는 프로그램 소스코드파일이나 실행파일이 첨부된다. 소스코드는 프로그램 언어로 구성된 일종의 설계도다. 하지만 시큐웍스 V4.0 저작권은 소스코드 없이 제품을 설명하는 브로셔만 첨부돼 등록됐다. 그런데도 시큐웍스 V4.0 저작권은 2013년 11월, 1억7000만원에 한솔로 넘어갔다. 당시 어울림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한솔이 소스코드도 포함되어 있지 않아 결과적으로 실체가 없는, 단순히 이름뿐인 저작권을 1억7000만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인수해 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 초부터 거래처 이탈이 시작됐다. 어울림의 유지보수 관리를 받던 거래처가 하나 둘씩 한솔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어울림은 홈페이지에 "고객님들이 사용하고 계신 제품은 '시큐웍스 V4.0 R2ㆍR3ㆍR4'들이며 경매로 낙찰된 '시큐웍스 V4.0'과는 전혀 다른 별도의 저작물입니다"라는 내용을 게재하며 고객 이탈 막기에 나섰다.

회사도 모르는
저작권 등록

여기까지가 어울림의 주장이다. 어울림은 한솔 측에 이의를 제기했다. 이에 한솔은 오히려 문경석 어울림 이사를 저작권법위반과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했다. "프로그램 업데이트 권한과 유지보수 권한 등 시큐웍스 V4.0이라는 이름을 쓰는 모든 제품에 대한 저작권을 정당한 방법으로 인수했는데도 불구하고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저작권자의 허락을 득하지 않고 무단으로 제품판매 및 유지보수 활동을 해 저작재산권을 침해했다"는 게 고소 이유였다. 해당 고소는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혐의없음' 처분을 받았다. 한솔은 항고한 상태다.

쟁점은 시큐웍스 V4.0과 시큐웍스 V4.0 R2ㆍR3ㆍR4의 관련성이다. 한솔 측은 시큐웍스 V4.0이 시큐웍스 V4.0 R2ㆍR3ㆍR4 등을 총칭하는 제품명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어울림은 시큐웍스 V4.0은 어울림정보기술이 개발한 제품이 아닌 실체가 없는 저작권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어울림 주장의 첫 번째 근거는 소스파일의 용량이다. 시큐웍스 V4.0 저작권이 등록될 당시 소스파일 대신 제품설명서가 첨부됐다. 반면 어울림의 주력 제품인 시큐웍스 1000/2000/3000 V4.0과 시큐웍스 1500/2500/3500 V4.0 R4는 저작권 등록당시 각각 실행파일과 소스파일이 첨부됐다. 시큐웍스 V4.0은 추후 저작권위원회의 요청으로 어울림이 소스파일을 첨부, 지금은 경정등록된 상태다.
 

한솔의 주장처럼 시큐웍스 V4.0이 위 제품을 모두 포함한다면 소스파일 용량은 최소 시큐웍스 1500/2500/3500 V4.0 R4보다 커야 한다. 하지만 프로그램 등록부를 보면 시큐웍스 V4.0의 소스파일 용량은 1102만6988바이트, 시큐웍스 1500/2500/3500 V4.0 R4 소스파일 용량은 2982만1579바이트로 턱없이 부족하다. 게다가 두 소스파일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어울림이 저작권위원회의 소스파일 등록 요청을 받아 재등록할 당시 보냈던 소스파일은 시큐웍스 V4.0 시리즈와 아무 관련 없는 파일이었기 때문이다.

"R2·3·4는
R1 수정버전"

두 번째 근거는 프로그램등록부 상 프로그램 내용 설명이다. 시큐웍스 V4.0의 프로그램등록부는 시큐웍스 V4.0를 '고성능 Multi-Core CPU를 사용한 경계선 방어형 네트워크 보안 솔루션으로 하나의 장비로 Firewall, VPN, IPS, QoS, Anti-Virus 등의 기능을 제공합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시큐웍스 1500/2500/3500 V4.0 R4의 경우에는 '전용 서버 하드웨어에 설치되어 내부 네트웍자원에 대한 보안과 사용자들의 접근제어를 수행하고 암호화된 가상의 사설망을 제공하는 시스템 프로그램'으로 표현되고 있다.

시큐웍스 V4.0은 '장비', 시큐웍스 1500/2500/3500 V4.0 R4는 '프로그램'이라는 얘기다. 쉽게 말하면 컴퓨터 본체와 윈도우 시리즈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수원지검 성남지청도 비슷한 논리로 문 이사에 대해 불기소처분했다. 문 이사에 대한 '불기소이유통지'를 보면 검찰은 "고소인(한솔)은 소스코드의 주석이 동일하다고 주장하지만 소스코드 주석은 프로그램 개발자가 개발 편의상 코드 가독성을 위해 임의로 작성되는 부분으로 프로그램의 실행 및 작동에 관여되는 부분이 아니므로 이것만으로 프로그램이 동일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검찰은 "한국저작권위원회에서 프로그램 소스파일이 등록되지 아니하여 2014년 8월28일 경 직권 경정된 사실에 비추어 피의자(문 이사)가 2013년 11월29일부터 2014년 2월 경까지 '시큐웍스 V4.0과 시큐웍스 V4.0 R2ㆍR3ㆍR4는 전혀 다른 저작물입니다'라는 주장대로 브로셔 파일만 기재되어 있었던 사실이 인정되고, 문 이사가 한솔의 저작권을 침해하고 영업을 방해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밝혔다.

장비 인수했다고 프로그램까지 넘어가나
3개월새 어울림 거래처 60% 한솔로 이동

박동혁 어울림 대표는 "2011년 9월 그 누구도 모르게 저작권을 등록하고, 퇴직 직원이 돈이 들어있는 회사 법인 계좌는 제외하고 실체도 없는 저작권에 대한 경매를 신청하고, 퇴직 직원이 설립한 회사를 한솔이 인수하고, 한솔이 결국 저작권까지 인수해 불법 행사를 하는 모양새가 한 편의 잘 짜여진 각본을 보는 듯 하다"고 전했다. 어울림은 유화석 한솔 대표이사를 '배임 혐의'로 고발했다.
 

한솔의 주장은 다르다. 소스코드가 없다고 해서 저작권을 인정 받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는 게 요지다. 한솔 관계자는 "마이크로소프트 경우에도 윈도우 시리즈를 등록할 때 소스코드를 등록을 하지 않고 실행 CD만 단순 등록을 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제품에 대한 프로그램등록부를 보면 원 파일에 대한 소스 용량이 다 차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경매로 취득한 시큐웍스 V4.0은 R0, R1 버전이고 어울림이 주장하는 R2ㆍR3ㆍR4는 R1의 릴리즈(수정) 버전이다"며 "경매로 시큐웍스 V4.0을 낙찰 받을 때 개작권을 포함하고 있었으므로 R0ㆍR1ㆍR2ㆍR3ㆍR4는 하나라고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2014년 한솔을 상대로 어울림이 저작권위반 및 업무방해혐의로 고소한 사건에서도 '한솔이 시큐웍스 V4.0에 대한 저작권을 정당하게 인수했고, 이를 인정해 준다'는 취지의 판결이 나왔다"고 덧붙였다.


한솔은 R2ㆍR3ㆍR4의 저작권 등록 시점을 잘 살펴봐야 한다는 당부도 했다. 한솔에 따르면 어울림이 시큐웍스 V4.0 저작권을 등록한 이유는 개별적으로 등록하면 인증 비용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다. 모든 제품 라인업을 시큐웍스 V4.0에 포함에 저작권을 등록했다는 것.

그런데 퇴사한 직원들이 시큐웍스 V4.0에 대한 압류를 하고, 경매를 신청하자 어울림이 이를 뺏길 수도 있다는 판단에 그제야 시큐웍스 1000/2000/3000 V4.0 R2, R3, R4와 시큐웍스 1500/2500/3500 V4.0 R2ㆍR3ㆍR4 저작권을 등록하고 과거 판매된 제품까지 자기들 소유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게 한솔넥스지의 설명이다. 두 제품의 등록시점은 2013년 4월이다.

한솔 용역매출↑
시큐웍스 덕분?

한솔은 "가장 중요한 것은 어울림이 거래처인 공공기관과 금융기관에 보낸 인증서에 그들 스스로가 제품명을 시큐웍스 V4.0으로 명시하고 있다는 부분"이라며 "어울림의 주장대로 R2ㆍR3ㆍR4 제품이 판매됐다면 현재 공공기관과 금융기관 인증 담당자들은 비인증 제품 사용으로 징계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고 전했다.

 

<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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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내란 특검팀이 2차 계엄 의혹에 대한 실마리를 풀기 시작했다. 비상계엄 선포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4일 새벽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핵심이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 간 교감과 이날, 군 수뇌부의 움직임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당시 상황을 재구성 중인 특검팀은 윤석열 전 대통령을 재소환할 방침이다. 내란 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은 비상계엄 선포 이후의 상황을 재구성해 왔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의 역할은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고 있다. 특히 2차 계엄 논의 여부는 여전히 의혹에 그치고 있다.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과 김주현 전 민정수석이 무엇을 위한 법률을 검토했는지가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안가 회동 정조준 특검팀은 지금까지 12·3 내란이 어떻게 준비됐는지에 대해 수사력을 집중했다. 북풍 공작과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 국군정보·방첩사령부의 움직임 등이 상당 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내란 이후의 상황을 수사하기 시작한 특검팀은 지난달 24일 오전 10시 박 전 장관을 소환 조사했다.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를 받는 박 전 장관은 13시간가량 조사를 받고 귀가했다. 박 전 장관은 내란 당일 대통령 집무실에서 계엄 선포 계획을 가장 먼저 들은 국무위원 중 한 명이다. 이후 법무부로 돌아와 실·국장 회의를 열고 검찰국에 ‘합동수사본부 검사 파견 검토’ 지시를 내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계엄 당일 법무부 출입국본부에 출국금지팀을 대기시키라고 지시한 혐의도 적용됐다. 계엄 이후에는 정치인 등 수용을 위해 교정본부에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를 지시한 혐의도 있다. 특검팀은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로 그가 지난해 12월3일 오후 11시쯤 대통령실에서 정부과천청사로 이동하면서 통화한 내역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이 통화한 인물은 임세진 전 검찰과장, 배상업 전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신용해 전 교정본부장, 심우정 전 검찰총장 등이다. 임 전 과장은 박 전 장관과의 통화를 마치고 검사·수사관 인사를 담당하는 실무진 2명에게 전화를 걸었고, 배 전 본부장은 출국금지·출입국 관련 담당자들에게 연락했다. 신 전 본부장은 김문태 전 서울구치소장과 연락을 취했다. 박 전 장관은 이후 간부 회의를 열어 관련 논의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다음 날 한상대 전 검찰총장과 연락하기도 했다. 한 전 총장은 퇴직 검사 모임인 검찰동우회 회장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과 탄핵 당시 가장 많이 연락한 인물이다. 국회 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 이후에는 김 전 수석과 비화폰으로 통화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검팀은 두 사람이 2차 계엄 등 후속 대책을 논의했다고 보고 있다. 박 전 장관 측은 김 전 수석에게 포고령에 문제가 있으며 국회가 의결했으니 국무회의를 신속히 소집해 계엄을 해제해야 한다고 전했다는 입장이다. 박성재·김주현 곧바로 2차 계엄 법률 검토? 용산 CCTV 속 최측근들 메모 후 문건 만지작 특검팀은 박 전 장관이 ▲계엄사령부 산하 합동수사본부 검사를 파견하라고 검찰국에 지시 ▲출입국본부 ‘출국금지팀’ 대기 지시 ▲교정본부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 지시 등을 추진했다고 판단한다. 조사를 마친 박 전 장관은 “제가 한 일에 대해 소상하게 다 말씀드렸다”며 “통상적인 업무 수행에 대한 다른 평가를 하는 것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모든 내용을 상세하게 말씀드렸다”고 했다. 이어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지속적으로 특검법의 위헌성에 대해 지적을 했었는데, 이 부분이 현재 특검법에도 시정되지 않은 채 시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 점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어떤 내용을 (특검에) 말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의문이 제기되는 모든 점에 대해 상세히 말씀드렸다”고 답했다.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지’ 묻자 “나는 항상 업무를 했을 뿐”이라고 했다. ‘5급 이상 간부들에게 비상대기를 지시했다’는 주장에는 “부당한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구치소장 연락 지시’ 관련 질문에는 “질문이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수용 지시가 계엄과 관련됐느냐’는 질문에는 “누구에게도 체포·구금하라는 지시를 한 사실이 없다”고 답변했다.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직전 국무회의를 열기 위해 일부 국무위원을 용산 대통령실로 소집했을 때의 CCTV 영상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은 대통령실 대접견실에서 A4 용지에 직접 내용을 메모하고 특정 문건을 들여다봤다고 한다. 특검팀은 그가 윤 전 대통령 등으로부터 문건 형태로 계엄 이후 법무부가 해야 할 조치 등을 지시받고 현장에서 이를 직접 정리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앞서 계엄 선포 당일 대통령실에 모인 일부 국무위원 등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계엄 이후 조치 사항이 담긴 문건을 직접 전달받았다. 최상목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계엄 이후 가동할 비상입법기구 예산 편성 등을 지시받았고,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향신문> 등 언론사에 단전·단수 조치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시를 한 사실 없다” 조태열 전 외교부 장관은 ‘공관을 통해 대외 관계를 안정화시키라’는 지시를 받았다. 박 전 장관 측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개별 지시 문건을 받지 않았고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법무부에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24일 특검 조사에서도 A4 용지에 메모했는지 등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장관 측은 이날 “해당 CCTV 장면을 보여달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특검에 제출했다. 특검팀이 김 전 수석을 소환한 건 지난 7월 초다. 그는 지난해 12월4일 서울 삼청동에 위치한 대통령 안전가옥(안가)에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박 전 장관, 이완규 전 법제처장 등과 계엄 관련 법률 검토를 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모두 윤 전 대통령과는 고교·대학 및 검찰 동기나 선·후배로 윤석열정부 최고위직 법률가들이다. 지난해 말부터 정치권에서 “비상계엄 수사 등 법률적 대응 방안 또는 제2의 내란 모의 가능성을 논의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자 이들은 국회와 경찰 조사에서 “연말에 얼굴 보자는 취지였다”(박성재 전 장관), “신세 한탄이나 하자는 자리였고, 법률을 검토할 겨를도 없었다”(이상민 전 장관)며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은 이 자리에 한정화 전 법률비서관이 동석한 사실을 확인했다. 주변 CCTV 등 안가 회동 참석자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한 전 비서관의 존재를 인지하고 소환 조사까지 진행했다. 특검팀은 삼청동 안가 모임 성격을 ▲비상계엄 선포 절차 사후 보완 ▲대통령 탄핵 대비 법적 대응 논리 개발 자리 등으로 보고 있다. 특히 내란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나온 관련자 진술의 위법성을 면밀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장관과 김 전 수석, 이 전 처장 등은 안가 회동 이후 휴대전화를 바꿨다.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은 지난 3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윤 전 대통령 최측근으로 꼽히는 김주현 전 민정수석,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등 밑에서 일하던 검찰 고위 관계자들은 대통령을 ‘운명 공동체’로 생각한다”며 “박 전 장관이나 김 전 수석에 대해서는 검찰이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았다. 이들에 대해 합리적이고 납득할 만한 수사 결론이 나오지 않으면 국민이 받아들이겠나. 모든 의혹이 해소될 때까지 그 사람들에 대한 수사는 계속돼야 한다. 이들은 죽을 때까지 수사선상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증거 이미 폐기했다? 특검팀은 과거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가 작성했던 수사보고서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검찰 특수본 수사보고서의 제목은 ‘2차 비상계엄 가능성에 대한 의혹 등 정리 보고’다. 수사보고서에는 “12·4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되고 난 직후, 윤 대통령이 계엄사령부 상황실로 찾아가 김용현 국방부 장관에게 ‘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 ‘내가 다시 계엄을 할 테니 그때는 철저히 준비해서 국회부터 장악하라’라고 지시한 정황”이 있다고 적혔다. 해당 의혹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처음 제기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12월6일 비상 의원총회에서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2차 발령을 준비했다는 정황을 공개했다. 검찰이 이 같은 민주당의 의혹 제기와 관련해 수사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계엄사령관인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윤 대통령, 김용현 장관과 함께 합참 지휘통제실 내 별도의 방에 들어갔다고 국방위 현안 질의에서 답한 바 있으나 대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발언했으나 박 총장이 답변한 날인 12월5일은 윤 대통령의 위와 같은 발언이 공개되지 않은 시점”이라며 박 전 총장에 대해 조사 필요가 있다고 적었다. 검찰은 수사보고서에서 시민단체와 언론사 보도 등 2차 계엄 의혹과 관련한 의혹 확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육군 복수 부대에 지휘관 휴가 통제 지침이 내려졌고 비상계엄 선포 이후 경계 태세가 유지되고 있다는 의혹과 계엄 둘째 날 지방 공수여단의 서울 진입 계획이 있었다는 육군특수전사령부 간부의 언론사 인터뷰 등이 그 근거다. 검찰은 윤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에게 ‘국회 문을 열고 들어가 의사당 내 의원들을 밖으로 이탈시킬 것’이라고 동일한 명령을 내렸지만, 지시가 이행되지 않아 2차 계엄이 준비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12월4일 새벽 중요…검도 “수사 필요” 인정 자료 이미 사라졌나…용산 PC 전부 포맷 확인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윤 대통령의 ‘국회의원 이탈 명령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자 김 장관에게 위와 같은 발언(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을 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 보이고, 이와 더불어 ‘추가 계엄 선포’와 관련된 발언을 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이므로 관련 내용 수사 필요성 있음”이라고 적었다. 특검팀은 대통령실 고위 간부들이 조직적으로 2차 계엄 관련 자료를 폐기했다고 보고 있다. 지난달 18일 정진석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한 특검팀은 정 전 실장에게 계엄 이후의 상황을 따져 물은 것으로 파악됐다. 정 전 실장은 불법 계엄 전후 윤석열 전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했다. 그는 계엄 선포 직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 있었다. 국무위원은 아니지만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에 신원식 전 국가안보실장과 함께 참석했다. 이튿날 새벽에 계엄 해제 국무회의가 열리기 전, 윤 전 대통령이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 머물 때 찾아가 만나기도 했다. 정 전 실장은 지난해 12월4일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이후 윤 전 대통령, 박 전 총장, 김 전 장관 등과 함께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 내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의결된 후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와도 통화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앞서 “지난해 12월4일 오전 2시58분쯤 정 전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국회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정부에 도착했음을 확인하고 정부의 신속한 계엄 해제 조치를 촉구했다”고 밝혔다. 정 전 실장은 대통령실 윗선이 계엄 증거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의혹에도 연루돼있다. 특검은 지난 4월 대통령실 컴퓨터(PC) 전체 초기화 계획이 정 전 실장의 지시로 실행됐을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 특검팀은 앞서 별도 전담팀을 꾸려 정 전 실장 관련 의혹을 수사해 왔다. 특검팀은 이날 정 전 실장을 상대로 계엄 당시 국무회의와 대통령실 상황, 추 전 원내대표와의 통화 경위 등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이 부족하다 특검팀은 박 전 총장도 참고인 신분으로 재조사했다. 앞서 박 전 총장은 계엄 당시 계엄사령관으로서 불법 포고령을 발령한 혐의(내란중요임무종사)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박 전 총장도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뒤 윤 전 대통령, 김 전 장관 등과 합참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