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서울시의회가 지난해 임시직 라급(8급) 공무원 50명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현직 시의원 등의 입김으로 무자격자들을 다수 채용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그러나 서울시의회 측은 오히려 본인이 청탁한 지원자가 불합격한 것에 불만을 품은 일부 인사들이 서울시의회를 폄훼하기 위해 이 같은 의혹을 제기한 것이라며 맞서고 있다. 진실공방으로 치닫게 된 서울시의회 공무원 채용비리 의혹을 <일요시사>가 파헤쳐봤다.
서울시의회 임시직 공무원을 뽑는 자기소개서에 ‘경기도의회에서 열심히 일하겠습니다’라고 쓰고도 합격했다? 서울시의회가 지난해 12월 임시직 라급(8급) 공무원 50명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현직 시의원 등의 입김으로 무자격자들을 다수 채용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이번 공모에 합격한 인원들은 임시직이지만 수당까지 합쳐 연봉 3000만원 이상을 받게 된다. 50명을 뽑는 이번 채용에는 무려 190명 이상이 원서를 냈다.
억울한 탈락자들
서울시의회가 시간제 임시직 공무원을 이처럼 대거 뽑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합격자들은 지난 1월 인사위원회를 거쳐 정식 임용됐다. 정식 임용된 임시직 50명은 일반행정직 30명, 전문성을 요하는 입법분석요원 20명 등이다. 하지만 합격자들의 면면을 보면 과연 공정한 채용과정을 거친 것인지 의심케 한다.
우선 앞서 언급한 것처럼 서울시의회 임시직 공무원을 뽑는 자기소개서에 ‘경기도의회에서 열심히 일하겠습니다’라고 쓴 지원자가 합격처리 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됐다. 이 같은 실수는 많은 입사지원자들이 흔히 하는 실수지만 한두 점 차이로 당락이 결정되는 요즘 채용과정에서는 매우 치명적인 실수다.
그러나 서울시의회 측은 “워드로 작성된 이력서로 여러 곳에 지원을 하다보면 그런 실수를 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며 “오타가 좀 났다고 해서 그거 하나가지고 당락을 결정짓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또 이번에 입법조사관으로 채용된 한 지원자는 현직 시의원의 딸인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됐다. 입법조사관은 전문성이 요구되는 자리였지만 해당 지원자는 전임 의장 때 의장실에서 근무했던 것 외에는 별다른 경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서도 서울시의회는 “해당 지원자는 관련 분야 학과 졸업자로 충분한 자격 요건을 갖춘 인재였다”며 “아버지가 현직 시의원이었다는 이유로 탈락한다면 오히려 역차별”이라고 설명했다. 해당 지원자의 아버지인 현직 시의원은 “딸이 해당 공무원 채용공고에 지원한지도 몰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번 채용을 진행한 서울시 인재개발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이번 채용공고에 합격한 사람들 중 상당수는 중앙당 당직자, 현직 의원의 선거운동원 등으로 전문성이 없는데도 채용된 정황이 발견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반면 법학 등을 전공하고 시의회에서 관련 업무경험을 수년 간 쌓아온 사람들은 면접에서 줄줄이 떨어졌다. 인재개발원이 공개한 자료에서도 1차 채점에서 고득점을 받은 지원자들이 최종 채점에서는 낮은 점수를 받고 탈락한 사례가 다수 발견됐다. 결국 경력, 자격증 등 객관적 자료보다는 면접 과정에서 당락이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일부 면접관은 고등학교 졸업증명서를 내지 않은 지원자를 합격시킨 사례도 있었다.
시의원 입김으로 무자격자 다수 채용?
서울시의회 폄훼하기 위한 모종의 모함?
그러나 서울시의회는 이에 대해서도 “면접이라는 것은 면접위원의 고도의 전문성과 양심에 따라서 이뤄지는 재량행위”라며 “이는 법원도 지난 판례에서 인정하고 있다. 면접시험에서 점수를 변경한 것은 해당 면접위원의 주관적 판단 결과임으로 존중해줘야 한다”고 해명했다.
일각에서는 이번에 채용된 직원들이 컴퓨터의 기초도 제대로 몰라 기본적인 일도 시킬 수가 없는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왔지만 서울시의회는 이에 대해서도 “임기제 공무원 선발 과정에서 컴퓨터 활용능력은 전혀 고려사항이 아니었다”며 “시의 인사규칙에 따라 전문지식과 응용능력, 창의력 및 발전가능성 등 5개 항목을 중점적으로 평가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의혹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이번 채용과정에서 당락을 결정한 면접에서 합격자에게는 ‘애인 있느냐’는 등의 질문만 하고 탈락자에게는 ‘의원 행동강령을 외워보라’는 등 어려운 질문을 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러나 서울시의회 측은 “질문 내용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서류심사로는 한계가 있는 인성적인 측면 등을 체크하기 위해 다양한 질문을 하는 과정에서 해당 질문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며 “이미 면접위원들에게 여성비하 등 성차별적 질문을 금지하도록 교육하고 있지만 앞으로 오해가 없도록 하겠다”고 해명했다.
서울시의회의 이 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시의회의 실세 의원들은 지인 수명씩을 공무원에 합격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 이번 채용비리 의혹의 주된 골자다. <일요시사>는 이 같은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이번에 합격된 인원들의 출신학교나 자격증 소유 여부 등의 상세 프로필을 공개할 것을 요구했지만 서울시의회 측은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거부했다.
서울시의회 내에서도 이번 사건에 대해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있지만 좀처럼 힘이 실리지 않고 있다. 실세 동료의원들이 대거 연루된 일에 괜히 손을 댔다가 불이익을 당하는 것 아니냐는 인식이 시의회 전반에 팽배하다는 것이다.
한편 서울시의회는 이번 채용을 진행하며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외부기관인 서울시 인재개발원에 채용을 위탁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폭로한 인사들은 정작 면접위원 선발은 의회 사무처가 주도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면접관 5명 중 시의회 사무처 직원 1명이 포함됐을 뿐 아니라, 인재개발원 또한 서울시 산하기관이라 인사 청탁 개입 논란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지적이다.
서울시의회는 이번 채용과정에서 문제는 없었다면서도 문제가 있었다고 해도 시의회의 잘못은 없고, 모든 책임은 채용과정을 진행한 인재개발원에 있다고 선을 긋고 있다. 더 나아가 최웅식 서울시의회 운영위원장은 이번 사건에 대해 “본인이 청탁한 지원자가 불합격한 것에 불만을 품은 일부 의원이 사실 확인도 없이 외부에 알린 것”이라며 서울시의회를 폄훼하기 위해 이 같은 의혹이 제기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은 진실공방으로 치닫게 되는 양상이다.
인사 때마다 잡음
서울시의회의 한 관계자는 “과거부터 시의회 인사채용 때마다 온갖 잡음이 많았다. 오죽하면 8급 직원을 뽑는 것도 인재개발원에 위탁했겠냐”며 “지난해 전국 지방의회 중 최초로 청년 실업률 해소를 위해 노력하자는 ‘청년 기본조례안’을 발의한 서울시의회가 채용비리에 연루됐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시민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줬을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서울시의회가 인재 채용과정에서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