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지몰린 김무성 반격 시나리오

이제 청와대에 할 말은 하겠다…더 세게?

[일요시사 정치팀] 허주렬 기자 = 청와대와 친박(친박근혜)계의 거센 견제에 납작 엎드렸던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반격에 나섰다. 청와대, 친박계가 금기시하는 ‘개헌론’을 다시금 언급한 데 이어 ‘수첩 파동’으로 청와대를 곤경에 빠트린 것이다. 이런 가운데 당·청 지지율 역전 현상까지 심화되며 김 대표가 목소리를 키울 명분까지 마련됐다. 미래권력을 노리는 김 대표의 현재권력을 향한 반격 시나리오를 전망해봤다. 

한국 정치에서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은 가까워지기 힘든 관계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취하고 있는 만큼 모든 권력을 독식하고 있는 현재권력은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미래권력으로 힘이 쏠리는 것을 경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권력은 늘 미래를 지향하는 법이다. 현재권력의 누수가 시작되면 미래권력으로 힘이 쏠리는 것은 불가피하다. 

현재권력 향한
미래권력의 도전 
 
이런 측면에서 보면 현재권력인 박근혜 대통령과 유력한 여권의 미래권력인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가까워지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실제로 지난해 7월 “청와대에 할 말은 하겠다”며 취임한 김 대표가 지금껏 청와대를 향해 몸을 낮춰왔음에도 불구하고 청와대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김 대표가 언젠가는 청와대를 향해 칼을 겨눌 것이라 보고 경계해 왔던 것이다. 때로는 현재권력의 세를 과시하며 힘으로 누르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물론 김 대표도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당직인사’ ‘상하이발 개헌발언’ ‘원외 당협 당무감사’ 등의 카드로 자신의 영향력 확대를 꾀했던 것. 
 

그러나 지난해 10월 ‘상하이발 개헌론’이 나온 이후 청와대가 친박계를 앞세워 노골적인 ‘김무성 흔들기’를 시도하자 김 대표는 몸을 바짝 낮추고 청와대에 지속적인 화해의 손길을 보내왔다. 박근혜정부가 야심차게 꺼내든 공무원연금개혁, 담뱃값 인상 등에 김 대표가 앞장선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많다.   
 
청와대, 친박계 거센 견제 뚫고 역습 개시
‘수첩 파동’ ‘지지율 역전’ 등 명분 확보
 
그런데 최근 기류가 급변하기 시작했다. 김 대표가 지난 6일 “청와대 조무래기들 가만 안 놔두겠다”라는 발언과 함께 본격적인 반격에 나선 것이다. 김 대표의 이날 발언은 새누리당 김상민 의원의 결혼식 피로연에서 이준석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으로부터 “음종환 청와대 행정관이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의원을 정윤회 문건 파동의 배후로 지목했다”는 말을 듣고 격노하며 내뱉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실이 지난 12일 김 대표의 수첩이 한 언론사의 카메라에 포착되며 세간에 알려지자, 청와대는 즉각 음 행정관을 면직 처리하며 수습에 나섰다. 이는 박근혜정권이 측근 인사들의 논란에 대해 그간 취해온 대응 방식과 확연히 다르다. ‘김무성 수첩 파동’이 청와대와 검찰이 애써 수습한 정윤회 문건 파동을 재점화시킬 가능성을 염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 정치권에서는 김 대표의 강력한 부인에도 불구하고 “김 대표가 의도적으로 언론에 수첩을 노출시켰을 것”이라는 뒷말이 무성했다. 결론적으로 김 대표가 수첩 파동으로 청와대를 향한 직접적 공격은 피하면서 ‘십상시’로도 거론됐던 청와대 행정관의 부적절한 처신을 공개해 청와대 운영의 문제점을 만천하에 알린 셈이 됐기 때문이다. 청와대와 친박계가 연말연초 김 대표와 각을 세우며 만찬회동, 친박모임 등으로 기선제압을 시도하던 터에 역습을 당한 것이다. 

당·청 지지율 역전 
당 목소리 커질 듯 
 

이번 수첩 파동은 향후 당·청관계에서 김 대표가 목소리를 키울 호재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 여권 관계자는 “수첩 파동으로 김 대표를 견제하려던 청와대와 친박계의 움직임에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게 됐다”고 말했다.   
 
김 대표가 지난 7일 개헌론을 다시금 꺼낸 것도 반격의 일환으로 분석된다. 청와대와 친박계가 개헌론을 금기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김 대표의 개헌론 언급은 일종의 ‘반란’으로 비쳐질 수 있다.  
 
물론 김 대표는 “현재 대통령에 권력이 집중된 제도로는 안 된다”는 취지의 원론적 발언이었다고 수위 조절에 나섰으나 언제든 ‘개헌 카드’를 다시 꺼낼 여지를 남겼다. 
 
이 과정을 겪으며 박 대통령 지지율이 폭락, 당·청 지지율 역전 현상이 심화되며 김 대표의 어깨가 가벼워졌다.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이 역전된 것은 당이 독자적 목소리를 내도 될 분위기가 만들어졌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에 따르면 박 대통령의 지난 21일 지지율은 33.2%까지 추락했다. 반면 같은 날 기준 새누리당 지지율은 37.4%로 박 대통령보다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최근의 지지율 추이를 보면 이러한 역전 현상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리얼미터 관계자는 “박 대통령은 대선후보 때나 당선 이후나 줄곧 새누리당 지지율을 끌어주는 견인차 역할을 했지만 최근 당·청 지지율 역전 현상이 본격화 돼 당·청의 권력구조 재편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가 ‘연말정산 세금폭탄 논란’에 대한 정부 비판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도 반격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대표는 지난 21일 최고위원·중진의원연석회의에서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전날 연말정산 관련 기자회견에 대해 “최 부총리가 어제 과도한 세 부담이 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는데 이것은 연말정산 정책 설계의 실수를 인정한 것”이라며 공개적으로 면박을 주고, 연말정산 개정 소급적용을 강력히 요구했다.   

상향식 공천
‘무대’ 승부수
 
그렇다면 김 대표의 이후 반격 카드는 무엇일까. 김 대표의 진짜 승부수는 ‘상향식 공천’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김 대표가 공공연하게 “투명한 공천시스템 확립에 정치생명을 걸겠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김 대표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새누리당 공직후보자추천위원회는 4·29재보선(서울 관악을, 경기 성남 중원, 광주 서구을) 공천을 100% 여론조사 방식(국민여론 70%+당원 30%)으로 하기로 결정했다. 친박계의 반발을 무릅쓰고 강행한 김 대표의 상향식 공천 카드는 4월 재보선 결과에 따라 희비가 극명하게 갈릴 것으로 보인다.  
 
시작된 권력투쟁…‘한지붕 두가족’ 갈라서나? 

원내대표 경선, 4월 재보선 중대한 분수령
 
여권에 불리한 지역에서 치러지는 재보선에 새로운 시도로 승리할 경우 미래권력을 노리는 김 대표의 ‘포스트 박근혜’ 준비는 한층 가속도가 붙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반면 패배했을 경우에는 친박계의 거센 역풍을 맞게 될 것이 자명하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4월 재보선은 여권 권력투쟁의 중대한 분수령이 될 것”이라며 “결과에 따라 김 대표의 입지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완구 원내대표의 국무총리 내정으로 이번주 내로 치러질 원내대표 경선에서도 박 대통령과 김 대표 간 치열한 힘겨루기가 예상된다. 친박계 측 한 인사는 “청와대, 친박계가 미는 이주영 의원과 한때는 원조 친박이었으나 현재는 김 대표와 가까운 유승민 의원의 양강 구도가 예상되는 원내대표 경선 결과는 박 대통령과 김 대표의 힘을 비교할 가늠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친박·비박
동상이몽
 
새누리당은 외형상 “당과 청와대는 한몸”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실제로 친박계와 청와대가 한몸이지, 비박(비박근혜)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는 분위기다 역력하다. 이제 박 대통령이 집권 중반기에 접어든 만큼 일단 함께 가지만 청와대의 실정이 반복되며 여론이 싸늘해질 경우 언제든 등을 돌릴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심판론’이 거세게 불었지만, 정권 교체가 이뤄지지 않은 것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 대통령을 분리해서 보는 시각이 많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박근혜정부가 ‘실패한 정부’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면 미래권력을 중심으로 현 정권과 선긋기에 나설 가능성이 농후하다. 
 
김 대표의 반격이 시작되며 현재권력과 미래권력 투쟁은 시작됐다. 이 투쟁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 
 
<carpedie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김무성 ‘현장정치 가속도’ 노림수
불통 대통령과 차별화…‘무대정치’ 본격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새해 들어 충북, 제주, 전북 지역을 잇달아 방문하는 등 현장정치에 가속도를 붙이고 있다. 불통 이미지가 강한 박근혜 대통령과 차별화되는 행보여서 주목된다.
 
우선 김 대표는 지난 18일 오전에는 충북 대한불교천태종 총본산 구인사에서 열린 대한불교천태종 상월원각대조사 탄신 103주년 봉축법요식에 참석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대통령이 개혁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개혁을 추진하다보면 국민들에게 인기가 없다”며 “지금 (개혁을) 하지 않으면 안 되니 잘 도와달라”고 당부했다. 
 
김 대표는 이어 이날 오후에는 이군현 사무총장, 이정현 최고위원, 강석호 제1사무부총장, 정양석 제2사무부총장, 김학용 당대표 비서실장, 박대출 대변인 등과 함께 제주를 방문했다. 그는 제주 첨단과학기술단지 내 제주전기자동차 사업 현장을 방문해 “제주도는 공해 없는 청정 지역으로 유지해야 할 보석같은 지역”이라며 “탄소 없는 제주를 만드는 데 제일 중요한 게 탄소를 제일 많이 내뿜는 자동차를 전기차로 바꾸는 것이다. 제주도에서 시범 사업이 성공해 전국적으로 퍼질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22일에는 전북 지역에서 현장 최고위원회의를 실시했고, 이후에도 전국을 순회하며 최고위원회의를 여는 등 현장행보를 강화할 예정이다. 
 
이 같은 김 대표의 현장행보는 지난 14일 신년기자회견에서 “현장에 답이 있다”고 밝힌 대로 현장의 목소리를 듣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김 대표는 최근 취재진과 만나 “신년기자회견에서 밝혔듯 우리 새누리당은 올해 어려운 국민들을 찾아서 그 분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없이 낮은 자세로 현장으로 간다”며 “현장에 답이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속 현장에 나가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다.
 
이와 함께 불통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듣고 있는 박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위한 행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 여권 관계자는 “김 대표의 현장행보 강화는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로서 박 대통령과 차별화되는 자기 정치를 본격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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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트럼프발’ 통상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앞서 못 박은 시한은 끝났다. 우리나라는 유예 기간이 끝나기 전날 타결했다. 이제 협상 결과를 두고 계산기를 두드려야 할 때다. 일본과 유럽연합(EU), 그리고 한국. <일요시사>가 세부 내용을 들여다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각국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미국을 상대로 돈을 번, 즉 대미 무역 흑자를 거둔 나라들이 표적이 됐다.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부터 전 세계는 ‘트럼프발’ 통상 전쟁에 휘말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숫자를 외칠 때마다 세계 경제가 요동쳤다. 하루 전 극적 타결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다소 늦게 통상 협상을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지난 6월 조기 대선이 치러질 때까지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탄핵심판 등 대형 정치 이슈가 거듭되면서 미국과 협상을 하고 싶어도 테이블에 앉을 사람이 마땅치 않은 상태였다. 실제 한덕수 전 국무총리나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등이 협상에 나섰지만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제동을 걸었다. 또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 선언, 최 전 부총리 탄핵안 상정 등의 상황이 겹치면서 미국과의 협상은 큰 진전 없이 시간만 흘렀다. 이후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우리나라는 좀처럼 미국 실무진과 접점을 찾지 못했다. 그 사이 트럼프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모든 한국산 제품에 대해 산업별 관세와는 별도로 25%의 일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시한은 지난 1일로 못 박았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FTA 체결로 사실상 무관세 수준이었기에 관세 부과가 현실화하면 경제 전반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자동차나 반도체 등 핵심 수출 품목에 붙는 관세 외에도 비관세 장벽(관세 이외의 수단으로 무역을 제한하는 조치)을 허물라는 압박도 가해졌다. 쌀이나 소고기 등 농·축산물 시장 개방, 정밀 지도 반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이 협상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예상됐다. 국내 상황과 맞물려 쉽게 내주기 어려운 조건들이었다. 일·EU와 같은 15%로 막아 대미 투자는 3500억달러로 협상도 난항을 겪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 통상 협상을 하루 앞두고 출국하려다 미국 측의 취소로 불발하는 일이 일어났다. 앞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방한을 닷새 앞두고 일정을 취소하기도 했다. 미국 고위급 인사들과의 만남이 잇따라 무산되면서 ‘한미 관계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일본과 유럽연합(EU)이 차례로 미국과 협상을 타결하면서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특히 일본의 협상 결과가 공개되면서 우리나라가 최소한으로 맞춰야 할 기준이 생겨버렸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자동차 등 수출 품목이 일부 겹치기에 일본보다 관세가 높아지면 수출 경쟁력이 망가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일본과 무역 협상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일본산 수입품에 부과하는 상호관세는 15%다. 기존 25%에서 10%포인트 줄어들었다. 일본이 미국에 5500억달러(약 759조원)를 투자할 것이고 이 중 90%의 수익을 미국이 받게 된다고도 했다. 동시에 자동차와 농산물을 일부 개방한다는 조건도 달렸다. 지난달 27일에는 미국과 EU가 관세 협상을 타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EU로부터 수입되는 모든 품목에 대해 일괄적으로 1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산 에너지 7500억달러(약 1030조원) 구매 및 대미 투자 6000억달러(약 820조원) 확대 방안을 담은 ‘무역협정 틀’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일본과 EU의 협상 타결로 미국의 협상 전략이 윤곽을 드러냈다. 관세를 낮추는 조건으로 무엇을, 얼마나 내놓느냐가 관건이 된 것이다. 관심이 집중된 부분은 대미 투자액이었다. 애당초 통상 전쟁 자체가 타국이 얻는 대미 무역 흑자를 줄이겠다는 명목으로 시작된 터라 트럼프 대통령은 상대국에 대미 투자라는 일종의 ‘청구서’를 요구한 셈이다. 일본이 5500억달러, EU가 6000억달러를 미국에 각각 투자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리나라에 날아올 청구액에 관심이 쏠렸다. 협상 시한이 다가오면서 언론보도 등을 통해 3000억달러, 4000억달러 등의 추측이 난무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제멋대로’ 외교에 우리나라 협상팀이 휘둘리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 쌀 소고기 지켰다는데 우리나라는 협상 시한을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 한국산 제품에 대한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을 골자로 협상을 타결했다. 일단 일본, EU와 동일한 수준으로 관세 인하를 이끌어낸 것이다. 관심을 모았던 자동차 관세율은 15%, 철강·알루미늄·구리는 기존 관세율(50%)을 유지하기로 했다. 또 반도체와 의약품 관세 부과 시 최혜국 대우도 약속받았다. 다른 나라보다 불리한 관세를 적용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부분도 일본, EU와 같은 합의 내용이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민감한 품목으로 분류됐던 쌀과 쇠고기 등의 개방은 하지 않는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농산물 전면 개방을 언급해 향후 변동 가능성을 지켜봐야 한다. 대미 투자액은 3500억달러(약 490조원)로 결정됐고 1000억달러(약 140조원) 상당의 액화천연가스(LNG) 또는 기타 에너지 제품을 수입하기로 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한국과 일본의 대미 무역 상황은 지난해 기준 각각 660억달러 흑자, 685억달러 흑자로 규모가 유사한 상황에서 일본보다 작은 규모인 3500억 달러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며 “기업이 주도하는 조선펀드 1500억달러를 제외하면 우리 펀드 규모는 2000억달러로 일본의 36%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합의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미국과 조선업 분야 협력을 확대하기로 한 것”이라며 “한미 조선협력펀드 1500억달러는 선박 건조, MRO(유지·보수·정비), 조선 기자재 등 조선업 생태계 전반을 포괄한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협상팀은 조선 협력을 내세운 게 협상 타결의 ‘키’였다고 자평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브리핑을 하며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가 협상 타결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밝혔다.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구호인 ‘매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에서 따온 표현이다. 자동차는 관철 못 해 아쉬운 부분으로는 자동차 관세를 꼽았다. 이전까지 우리나라 자동차는 관세가 0%였다. 2.5%였던 일본과 비교해 근소하게 가격 경쟁력을 가졌다. 하지만 이번 협상 타결로 일본과 똑같은 15% 관세가 결정되면서 자동차 업계는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됐다. 우리나라 협상팀이 끝까지 자동차 관세 12.5%를 요구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 15%’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큰 고비를 하나 넘었다”며 “이번 협상으로 정부는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을 없애고 미국 관세를 주요 대미 수출 경쟁국보다 낮거나 같은 수준으로 맞춤으로써 주요국들과 동등하거나 우월한 조건으로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고 평했다. 협상 결과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 일단 ‘최악은 면했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협상 타결이 이뤄지기 전까지 유예 기간을 놓쳐 관세 25%를 맞을 수도 있다고 우려한 것에 비하면 나름 ‘선방했다’는 의견이다. 동시에 미국이 내민 청구서의 구체적인 부분을 더 살펴야 한다는 신중론도 존재한다. 일본 등은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타결 발표와 실제 합의 내용이 다르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결정된 사항을 즉흥적으로 바꾸는 등 외교 과정에서 ‘오락가락’하는 면모를 보인 적이 여러 차례 있다.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불확실성을 극대화하는 협상 기술을 사용한다는 평이다. 정밀 지도·국방비 등 안보 이슈 백악관서 만나 대통령끼리 담판?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와의 협상 타결 내용을 발표하면서 언급한 정상회담이 ‘진짜’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는 “한국이 투자 목적으로 상당한 금액을 추가 투자하기로 합의했다”면서 2주 내로 이재명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투자액이 발표될 것이라고 했다. 추가 청구서가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 통상 협상에서 논의되지 않은 정밀 지도 반출 문제가 협상 테이블에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지도 반출 등 안보 사안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별도로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지도 반출과 관련해) 우리가 계속 방어해왔다. 추가 양보는 없다”고 말했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3월 <2025 국가별 무역 장벽 보고서>에서 정밀 지도 반출 제한을 한국과의 디지털 무역 장벽 중 하나로 지목했다. 우리나라 정부는 군사기밀 유출을 우려해 정밀 지도의 국외 반출을 막아왔다. 정밀 지도에 해외 기업이 가진 위성사진을 결합하면 국가 안보와 직결된 지도 정보로 완성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정계와 IT업계는 정밀 지도를 반출해야 한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협상에서는 다뤄지지 않았지만 정상회담의 의제로 오를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주한미군 주둔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문제도 거론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들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5% 이상을 국방비 예산으로 잡으라고 압박했다. 우리나라에도 대선 후보 시절부터 방위비 분담금으로 100억달러를 내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하는 등 전방위로 요구한 바 있다. 추가 청구 나올까? 한미 정상회담은 이 대통령의 ‘외교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G7 정상회의에 참석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다. 나토 회의에는 이 대통령 대신 위성락 안보실장이 참석했다. 이번 정상회담이 ‘안보’ 회담이 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딜을 벌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