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콰이아 몰락, 그 후…

아버지 망해도 아들은 ‘떵떵’

[일요시사 경제1팀] 한종해 기자 = 국내 대표 제화업체 에스콰이아가 무너졌다. 인수·합병 시장에 매물로 나온 것. 수년간 매출 감소세로 자금난을 겪고 워크아웃에 돌입하면서 반백년을 자랑하는 제화업계의 신화가 완전히 역사 속에 남게 됐다. 토종 브랜드로 한때 제화시장을 싹쓸이했던 에스콰이아가 어쩌다 이런 처지가 된 걸까.

에스콰이아의 전신은 고 이인표 창업주가 1961년 서울 명동에 차린 10평 남짓의 작은 구둣방이다. 이 창업주는 22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성상공실업학교를 졸업하고 마흔이 넘어 제화사업을 시작했다.

'귀하'라는 뜻을 지난 에스콰이아를 사명으로 하고 최고급 수제화 생산에 매달린 이 창업주는 66년 국내 최초로 수제화 자동화 공정을 도입, 시대를 앞서는 디자인과 철저한 품질관리로 80년대 국내 제화시장 1등 업체로 자리매김했다.

영욕의 54년

81년 영에이지, 88년 미스미스터 등 브랜드를 설립하고 9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패션사업에 진출, 구두뿐만아니라 핸드백, 가방, 잡화류, 의류 등을 생산·판매하는 종합패션전문기업으로 거듭났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 창업주의 경영철학이다. '기업이윤은 반드시 사회에 돌려줘야 한다'는 경영이념에 따라 누구보다 앞장서서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다. 81년 이 창업주가 사재를 털어 공익재단 에스콰이아문화재단을 설립, 한국사회과학도서관과 인표어린이도서관 등을 운영한 게 대표적이다.


에스콰이아는 IMF 외환위기도 잘 넘겼다. 1999년 1045억원을 기록한 매출은 2000년 2180억원, 2001년 2254억원, 2002년 2376억원으로 상승했다.

에스콰이아의 성장세가 주춤한 것은 2000년대 들어서면서 부터다. 특히 이 창업주가 2000년 장남 이범 전 회장에게 대권을 물려주고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2002년 노환으로 별세한 뒤 에스콰이아의 날개 잃은 추락이 시작됐다.

2003년 감소세로 돌아선 매출은 2008년 1209억원으로 곤두박질쳤다. 2002년 1600여명에 달하던 직원도 2009년 800여명으로 줄어들었다. 에스콰이아의 시작은 9명의 직원과 3명의 판매원이었다. 2009년 6월에는 50년 역사를 자랑하는 에스콰이아 명동 본점 간판을 내렸다. 에스콰이어는 본점 4층 건물을 일본계 신발유통업체 ABC마트에 매각했다. 당시 에스콰이아 관계자는 "매각 조건과 이유를 밝힐 수 없지만 회사 역사의 산물인 명동점을 눈물을 머금고 팔 수밖에 없었다. 달리 대안이 없었다"며 회사의 다급한 사정을 알린 바 있다.
 

같은 해 이 전 회장은 사모펀드 H&Q 아시아퍼시픽코리아에 800억 안팎에 회사를 넘겼다. 반세기 만에 새 주인을 맞은 에스콰이아는 사명을 지금의 이에프씨(EFC)로 바꾸고 지난해 역삼동으로 본사를 이전했다. EFC는 2011년까지 매출액 2000억원을 넘기면서 다시 살아나는 듯했다. 그러나 2012년 들어 다시 매출액은 급감했고 백화점, 할인점, 아울렛 등 모든 유형의 패션 유통 채널에서 EFC 매장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새 주인 맞았지만 재기 실패…결국 매각
회사넘긴 2세 공익재단 이사장으로 활동

결국 EFC는 지난해 3월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을 신청하고 경영정상화에 힘썼다. 그러나 채권단과 최종합의에 실패, 8월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2013년 EFC의 매출은 1563억원, 영업손실 62억원이다. 같은 기간 부채총액은 1178억원에 달한다.

에스콰이아 몰락 배경에는 경영주의 경기판단 착오에 따른 무리한 투자가 있다. 에스콰이아는 IMF가 거의 마무리됐다고 판단한 2003년부터 국내 경제가 다시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 모든 사업 부문에 대한 투자를 늘렸지만 곧바로 '카드 대란'이 터지면서 몰락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특히 판매 촉진을 위해 30∼40%씩 구두상품권을 할인해 판매한 것이 패인의 결정타였다. 상품권 남발은 품질 저하로 이어지면서 에스콰이아의 '명품' 이미지를 순식간에 날려버렸다. 한때 에스콰이아 상품권 발행은 매출 60%선까지 육박했고 시중에는 최대 반값에 상품권이 거래되기도 했다.

2005년에는 상품권 판매를 일반상품 판매로 위장해 신용카드 영수증을 조작하는 방법으로 거액을 탈세했다는 내부 직원들의 폭로에 국체청과 공정거래위원회 등의 조사를 받는 곤욕도 치렀다.

아버지가 일생을 바치며 쌓아올린 회사를 무너뜨린 이 전 회장은 어디서 뭘 하면서 살고 있을까.
 

회사 매각 이후 행적을 감췄던 이 전 회장의 소식이 들린 것은 국회도서관으로부터다. 지난해 3월 국회도서관과 한국사회과학자료원이 자료공동활용과 지식공유운동 확산 상호협력을 위한 포괄적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는데 한국사회과학자료원 이사장으로 이 전 회장이 등장한 것.

한국사회과학자료원은 이 창업주가 사회공헌활동의 일환으로 설립한 공익재단으로 사회과학 정보서비스 전문기관이다. 이 전 회장은 에스콰이아 매각 이후인 지난 2012년 1월 제8대 이사장에 취임했다. 이 전 회장은 서울의 부촌으로 유명한 한남동 유엔빌리지의 한 고급 주택 1개 호실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토종 브랜드 몰락

에스콰이아는 공개입찰 방식으로 기업을 매각하기로 결정, 매각 공고를 낸 상태다. 매각주관사는 딜로이트안진이 선정됐다. 에스콰이아 측은 "일괄매각방식이 원칙이지만 투자자의 제안에 따라 사업부별 매각방식도 가능하다"고 전했다. 인수의향서 제출기한은 오는 1월23일이다.

 

<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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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국방부 문건이 대규모로 파쇄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조치는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의 지시로 이뤄졌다. 오 전 기획관은 검찰 특수본과 재판서 정보사와 수사2단 인사안의 문제점을 증언했던 인물이다. 자신이 비상계엄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수사에 협조한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올해 초 신년맞이 대청소라면서 문서를 대량으로 파쇄했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국방부 직원들의 말이다. 파쇄된 문건들은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자료라고 한다. 지시자는 오영대 전 국방부 인사기획관이다. 검찰 수사에 협조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으나 실상은 다르다는 게 군 내부자들의 주장이다. 뭘 숨기나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말 취임하면서 시작한 첫 번째 군 개혁은 인사다. 신임 인사기획관에 일반 공무원 출신인 이인구 군사시설기획관을 임용한 건 안 장관이 강조해 왔던 ‘군 문민통제’와도 맞닿아 있다. 인사기획관은 본래 예비역 장성이 맡아왔다. 이 신임 기획관의 전임자였던 오 전 기획관도 예비역 준장 출신이다. 군 내부에서는 국방부에 여전히 12·3 내란 사태에 협조한 군인들이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핵심으로 인사기획관실의 총괄과이자 인사기획관의 일정, 예산 등을 모두 관리하는 인사기획관리과가 언급된다. 다수의 국방부 관계자들은 “오 전 기획관은 물러났지만 책임져야 할 다수의 인물이 아직 자리를 보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부서의 간부들은 전부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다. 과장 김모 대령은 오 전 기획관이 대령이었을 때 소령으로 근무했고, 총괄 이모 중령은 오 전 기획관이 특전사 여단장을 역임했던 1공수여단서 중대장과 707중대장을 거쳤다. 장군인사팀장 김모 대령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수도방위사령관으로 근무했던 시절 비서실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김 전 장관과 가깝거나 육사 출신인 이들이 국방부 인사의 핵심부서인 인사기획관리과에 포진하면서 계엄 실행을 위한 보직 이동이 이뤄진 셈이다. 김 전 장관은 실제 대통령경호처장일 때부터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과 군 인사에 대해 논의했다. 직무에서 배제되지 않은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장관이 모든 책임을 오 전 기획관에게 묻는 형식으로 퇴직을 시켰으니 우리는 지시를 받아 어쩔 수 없이 한 것처럼 조용히 지내면서 정부초기 개혁의 소나기만 피하면 진급 가능’이라며 서로서로 쉬쉬하고 있다고 한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내란 이후인 지난해 12월 중순 오 전 기획관의 지시에 따라 문건 파쇄를 계획했다. 김 전 장관이 물러난 이후 인사기획관리과장 김 대령 및 총괄인 이 중령 외에는 계획되지 않은 대면보고는 금지했고 내부 보안에 심혈을 기울였다. 인사과 간부들 계엄 실패 후 12월 계획···1월 파쇄 “지시자는 검찰 수사 응했던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 한 달여 뒤 이 중령은 모든 과에 ‘신년맞이 대청소’를 하라고 전파했다. TF 자리 배치와 오래된 문건을 정리한다며 유독 인사기획관리과만 복도로 책상을 빼고, 대량 세절이 가능한 세절실을 예약해 엄청난 양의 문서들을 파쇄했다. 여기엔 내란 핵심 파일도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안 장관은 이와 관련해 국회에서 오 전 기획관에게 여러 차례 질문한 바 있다. 당시 오 전 기획관이 당황해하며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퍼지기도 했다. 이 중령은 동영상을 보며 웃는 직원들의 명단과 안 장관에게 제보한 인물을 색출하기 위해 탐문 활동을 벌여 오 전 기획관에게 추정해 보고했다. 이들은 모두 오 전 기획관으로부터 승진추천, 성과상여금, 각종 포상 등 인사상 불이익을 본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이 문건을 파쇄한 이유는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내란 당일 오후 10시가 넘은 시각임에도 퇴근하지 않고 사무실에 있던 오 전 기획관의 지시를 받은 이 중령은 각 과의 총괄 담당자들을 소집해 ‘계엄 선포가 됐는데 선제적으로 인사 관련 조치를 왜 안 하냐’ ‘합참에는 계엄사령부가, 지작사령부에는 지역계엄사령부가 곧 창설될 텐데 각 군 본부 및 지작사와 인사 지침을 협의해 계엄령 취지에 맞게 배포하라’고 강조했다. 특히 오 전 기획관은 계엄 해제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 테이블을 통과했음에도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서 이 중령에게 “(계엄이) 해제되긴 했는데 다시 시행될 수도 있으니 빨리 계엄사 창설 지원을 위한 인사 조치를 완성하고 지작사 병력에 대한 휴가 지침 및 통제 등 건의 사항을 받아보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 전 기획관은 내란 직전까지 김 전 장관의 의중에 따라 군 인사를 반영했다. 최근 내란 특검팀이 군 장성급 인사 자료 확보에 나선 것도 이에 관해 들여다보기 위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검팀은 최근 국방부 장군인사팀과 육군본부 장군인사실 등을 압수수색해 해당 부서 내 인사 관련 파일 등을 확보했다. 정치권에선 지난 2023년 11월과 지난해 4월 이례적인 인사가 이뤄졌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진급에 절박한 군 인사들을 계엄 실행 세력으로 활용했단 의혹이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윤석열정부 장군 인사는 특이하고, 이례적인 경우가 유독 많았다”며 “인사를 통해 군을 장악하고, 내란을 준비했다는 의혹 관련 특검의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3차 계엄 대비 문건 없애” 증거 인멸 국회서 해제 불구 지작사와 인사 논의?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은 지난 2023년 11월 인사에서 소장에서 중장으로 진급했다. 박안수 전 계엄사령관은 ‘75주년 국군의 날 행사기획단장 겸 제병지휘관’ 등 한직에서 2023년 10월 육군참모총장에 발탁됐다. 지난해 4월엔 지휘부에 이어 작전본부 인사가 이어졌다. 원천희 당시 육군 소장이 4차 진급으로 합참 정보본부장으로 승진했고, 이승오 소장은 군단장을 거치지 않고 합참 작전본부장으로 진급했다. 안찬명 당시 육군22사단장은 임명 5개월 만에 합참 작전부장으로 보직을 옮겼다. 통상 사단장은 1년 반~2년가량 보직을 맡는다. 군 안팎에서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왔던 이유다. 경질 위기이던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은 유임됐다. 그는 지난해 6월 정보사 군무원의 블랙요원 명단 국외 유출 사건 및 박민우 전 정보사 100여단장과의 갈등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신원식 전 안보실장은 지난해 8월 국회에서 “후속 조치를 강하게 할 생각”이라고 언급했지만, 다음 달 본인이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는 군 관계자에게서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이 장군들 인사에 대해 논의했고 오 전 기획관에게 전달됐다”는 진술을 확보한 바 있다. 위기감을 느낀 오 전 기획관은 특수본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기 시작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오 전 기획관의 특수본 진술조서를 보면 그는 “신원식 (전 국방부) 장관이 저와 원천희 국방부 정보본부장에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보직해임·정보사령관 교체 검토를 지시했으나 지난해 9월6일, 김 전 장관이 취임하면서 문 전 사령관에 대한 ‘현 보직 유지’를 지시했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이해하기 어려운 인사였다”고 했다. 앞뒤 달랐다 오 전 기획관은 “(문 전 사령관이 박 준장으로부터 고소당한 혐의가)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지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인사 조치는 없었다”며 “공론화된 문제고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는데도 이렇게 유야무야 넘어가는 일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