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사무라이 정신은 거짓이다 ⑱ 사무라이의 특권

평민계급 죽여도 책임 묻지 않았다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올해는 광복 69주년이 되는 해다. 내년이면 벌써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지만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는 요원하기만 하다. 게다가 고노담화를 부정하고, 위안부 문제를 왜곡하는 등 일본의 역사인식은 과거보다 오히려 퇴보하고 있어 국민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 이런 시기에 일본의 자랑인 ‘사무라이 정신’의 실체를 낱낱이 밝혀내 화제가 되고 있는 책이 있다. 일요시사가 화제의 책 <사무라이 정신은 거짓이다>를 연재한다. 


영지 안에서는 영주가 그 위치를 확고히 하면서 주종 관계가 강화되었고, 밖으로는 이웃한 영주들로부터 침략을 받고, 침략도 하면서 영주와 가신 사이에는 공동체 의식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바로 영지를 지켜야 한다는 점에서 영주와 가신은 한배를 탄 처지가 된 것이다.

자신의 주군이 다른 영주로부터 침략을 받아 멸망하면, 가신인 자신도 죽거나 아니면 낭인으로 전락하고, 식구들 또한 노예로 전락하게 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자손마저 대대로 천민으로 살아가야 하는 비참한 인생이 되는 것이다.

반대로 자신의 주군이 이웃 영주 공략에 성공하면, 할당받는 자신의 영지는 커지고, 부하 군사도 늘어나고, 하인도 더 많아지면서 생활은 윤택하여진다. 그래서 할당받는 영지가 점점 더 늘어나면 언젠가 작은 영주도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직책과 녹봉은 대물림되어 자손 대대로 영화를 누리게 된다.

영지의 중요성

사무라이에게 있어 영지는 그들의 생활을 윤택하게 해 주는 밥줄이자, 신분을 나타내는 벼슬과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그래서 갖고 있는 영지는 목숨을 걸고 지켜야 했고, 남의 영지는 악착같이 더 빼앗아야 했다. 여기에 사무라이들이 목숨을 걸고 전투에 임하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주군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과 자손들의 영지를 확보하기 위하여 필사적으로 전투에 임해야 했다. 주군의 멸망이 곧 자신의 멸망이고, 주군의 번창이 바로 자신의 번창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영지를 잃어버려도 농부나 상공인으로서 살아갈 수는 있었을 것이다. 최소한 목숨만이라도 유지하기를 원한다면…….

그러나 이 또한 현실에 있어서는 대단히 어려웠던 것 같다. 사무라이에게 있어 영지를 잃는다는 것은, 그것이 침략을 받아 빼앗기든 아니면 영주에게 잘못 보여 몰수당하든, 이것은 단순히 밥줄만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었다. 지배 계급에서 천민 계급으로 신분이 떨어진다는 상당한 의미가 있었다. 그것도 자신만이 아니라 자손 대대로 비참한 처지로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당시는 뚜렷한 신분 제도를 유지했다.

바로 ‘사농공상’이라는 신분 제도였다. 무사, 즉 사무라이가 지배 계급이자 귀족 계급이었고, 그 다음이 농부이고, 제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장사꾼은 가장 낮은 신분으로 여겼다. 엄밀히 얘기하면 ‘사농공상’ 외에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던 히닌(非人)이라는 계급도 있었다. 이들은 주로 시체를 처리하거나 사형장에서 형을 집행하는 일을 했다. 조선시대의 백정과 같은 신분이었다.

사무라이에게는 농부나 상공인들이 갖지 못하는 3가지의 특권이 주어졌다. 첫째는 칼을 지닐 수 있었고, 둘째는 성(姓)을 가질 수 있었으며, 셋째는 농부나 상공인들을 즉결 처분할 수 있는 권리였다.

이것을 다이토(帶刀 : 무사가 도검을 차는 것), 묘지(苗字 : 성씨(姓氏) 등 가문의 성을 사용할 수 있는 것), 기리스테 고멘(斬捨御免 : 서민을 죽여도 죄를 묻지 않는 것)이라고 하며, 이 세 가지는 무사의 대표적인 특권이었다.

영지는 곧 사무라이의 목숨
영주가 명령하면 할복까지 


성(姓)을 가진다는 것은 바로 가문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었고, 농부나 상공인들을 즉결 처분할 수 있다는 것은 농부나 상공인이 불순하다고 여겨지면 언제 어디서나 누구의 제재나 허가 없이 즉석에서 칼을 뽑아 죽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평민의 처지에서 보면, 사무라이를 대할 때마다 사시나무 떨듯 떨며 비굴하게 살아가는 인생이 되는 것이었다. 언제 어떻게 칼 맞아 죽을지 모르는 파리 목숨 같은 인생으로 평생을 비굴하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었다. 당시 평민들이 얼마나 파리 같은 목숨으로 살았는지를 보여 주는 좋은 예가 <무사도>라는 책에 있다.

한 상인이 사무라이에게 벼룩이 붙어 있는 것을 보고, 공손히 “벼룩을 잡아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한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그 상인의 목이 떨어져 나가고 말았다. 벼룩이란 동물에게나 붙어사는 미물인데, 자신에게 그런 미물이 있다고 함으로써 자신을 동물 취급했기 때문에 죽이는 것이라고 했다. 당시는 농민이든 상공인이든 모든 평민들은 이 같이 참담하고 비굴한 삶을 살아갔던 것이다.

이 신분은 대물림되는 것이었다. 무사의 자손은 무사로서 살아가고, 상공인의 자손은 천민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었다. 성(姓)도 없고, 가문도 없이 그마저도 파리 같은 목숨으로 삶을 구걸하며 대대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일본을 평정하고도 무사로서 최고 직책인 ‘쇼군’이 되지 못하고, ‘간파쿠(關白)’라고 하는 행정대신이 되어 일본을 통치했던 이유도 바로 그가 무사 집안의 자손이 아니라 상인 출신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당시는 엄격한 신분 제도를 일관되게 유지했다.

사무라이가 농부나 상공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마 조선시대에 양반이 천민으로 떨어져 살아가는 처지보다 훨씬 더했을 것이다.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신분의 하락이었다. 조선시대 양반들이 굶어 죽을지언정 ‘어흠’거리며 양반으로 지내려고 했던 것처럼, 주군과 영지를 잃은 사무라이들도, 농부나 상공인으로 살아가려고 하기보다는 낭인으로 지내면서 이 전쟁터, 저 전쟁터를 기웃거리며 재기를 노렸던 것이다.

주군은 사무라이들에게 있어서 절대자였다. 주군의 신임을 통해서만 입지도 굳힐 수 있었으며, 주군의 번창을 통해서만 보다 큰 영지도 하사받을 수 있고, 부리는 하인과 군사의 수도 늘어나서 생활의 윤택 뿐 아니라, 영주로서 출세도 가능하게 되는 것이었다.

전쟁꾼 사무라이

영주가 싫다고, 주군이 싫다고 다른 곳으로 옮겨갈 수도 없었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가문을 중심으로 무사 세력들이 형성되어 왔기 때문에 새로운 주군을 만난다는 것이 구조적으로 어려운 사회였다. 특히 전국시대에는 중앙 세력인 막부가 없어지면서 각 영지가 하나의 독립된 작은 국가처럼 된 마당에 새로운 곳을 찾아 옮겨간다는 것은 더욱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각 영주마다 군사력 강화를 위하여 이미 분에 넘치는 사무라이들을 고용함으로써, 여유 세수입도, 나누어 줄 영지도 없는 처지에서 자체 가신도 아닌 타 영지에서 온 사무라이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법도 없고, 규범도 없다. 영주가 절대자가 된 마당에, 영주가 곧 법이자 규범이 된 것이다. 영주가 죽으라고 하면 죽어야 했다. 죽는 시늉만 해서는 안 되었을 것이다. 시늉만 했다가는 결국 본인도 죽고, 직책과 영지도 몰수당하고, 그 가족까지 하인으로 전락하게 된다.

죽으라고 할 때 실제로 할복이라도 해서 충성심이라도 있는 척하며 죽어야 할당받은 농지도 유지할 수 있고, 그 아들은 무사로서 계속 일할 수 있으며, 그 부인과 딸은 하녀나 ‘게이샤’로 전락되는 신세라도 면할 수 있는 것이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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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