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바리스타 선생님 윤채완

칼춤 추던 ‘꽃순이’ 커피에 빠지다

[일요시사 경제팀] 이창근 기자 = 윤채완(42·여)씨는 ‘럭비공’이다. 160cm 남짓한 키에 가녀린 체구를 잠시도 가만히 두는 법이 없다. 해보고 싶은 일은 다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미다. 방귀는 참아도 궁금한 것은 절대 못 참는다. 무슨 일이든 호기심이 생기면 바닥까지 파고드는 집요함과 자신에 대한 엄격함 때문에 마른 몸에 살이 붙을 틈이 없다.


윤채완씨는 재주가 많다. 고등학교 들어서야 입문한 판소리와 가야금으로 세계를 돌아다녔고 꽃꽂이도 잘한다. 남자들도 따기 힘들다는 자동차정비 관련 자격증도 있다. 독거노인 봉사활동을 하면서 ‘이왕이면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에 응급처치법 강사 자격증도 땄다.
 
예쁘장한 외모 덕분에 한 때는 광고모델로 활동하기도 했고, 작은 언니와 함께 피부와 비만을 관리하는 샵을 운영하면서 돈도 좀 만졌다. 아직도 허리 사이즈가 21인치일 정도로 살이 안찌는 체질이라 비만이 고민인 사람들의 ‘워너비’ 모델로 어필된 것이 주효했던 것이다. 

오지랖 때문에 시작
 
지금은 국내 바리스타 지도교사 자격과 유럽 바리스타 자격을 획득한 후 국내에서 치러지는 바리스타 자격시험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변 친구들은 거의 다 결혼해서 애 낳고 사는데 윤씨는 아직도 솔로다. ‘남 일이 다 내 일 같다’는 오지랖 때문에 이 일 저 일 손대다보니 어느 새 사십을 넘겼다고 한다. 바리스타가 된 계기만 해도 그렇다. 탤런트 시험을 치르러 방송국에 가는 친구를 따라 갔다가 정작 친구는 떨어지고 자기만 덜컥 붙었다는 유명 연예인의 케이스와 비슷하다. 
 
“3년 전인가. 제 친구가 종합병원 안에 테이크 아웃 카페 자리를 인수하고 싶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커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어쩌면 좋겠냐고 하소연을 하는 겁니다. 제가 그랬죠. 나라도 배워서 도와주겠다고. 그게 제가 바리스타가 된 계기입니다. 좀 오지랖이죠.”
 
친구의 고민 때문에 입문한 바리스타지만 스승 운이 좋았다. <카페 바리스타>와 <카페바리스타 필기문제집>의 저자인 이용남(39)씨로부터 지도를 받은 것이다. 스승은 윤씨보다 세 살쯤 어리지만 실력만큼은 커피업계에서 알아주는 실력파다. 그런 실력파 선생 밑에 수행한 덕분에 바리스타 입문 두 달 만에 2급 자격을 따고, 한 달 뒤 1급 바리스타에 도전해서 좋은 결과를 냈다. 2012년 겨울에는 유럽바리스타 자격까지 땄다. 나이 사십이 다 되어서 시작한 늦공부지만 그야말로 바리스타가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성과를 낸 것이다. 
 
판소리하다 우연한 기회로 접해

친구 카페 돕다 바리스타 길로
 
“제가 좀 팔랑 귀 인가 봐요. 선생님이 잘 한다, 소질 있다고 해주니까 그냥 정말 소질 있는 줄 알고 배웠다니까요.(웃음)”
 
그렇다고 이씨 제자나 다른 도전자들 모두가 윤씨처럼 일사천리로 수준급 바리스타로 성장한 것은 아니다. 필기시험에 통과해도 실기시험에서 낙방하는 이가 많다. 마시는 입장에서는 다 그렇고 그런 커피지만 정작 만들어 내는 입장에서 볼 때 커피와 관련된 무수한 지식은 물론 ‘블랜딩’이나 ‘로스팅’ 같은 과정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일이 결코 만만치 않다. 고급으로 갈수록 난이도가 높다. 커피 생두를 볶아 원두를 만들고, 그 원두를 갈고 빻아서 한 잔의 커피로 담아내기 까지 추출시간이며 온도, 압력은 물론 원두 입자 크기 하나까지 신경 쓸 일이 한둘이 아니다. 
 
단지 기술 숙련도 문제가 아니다. 원두 몇 종을 섞어서 맛을 내는 블랜딩과 그 맛을 끌어내는 로스팅 능력이 중요하다. 원두를 혼합할 때 미리 단맛이나 신맛, 씁쓸한 맛 등 마시는 사람의 취향을 염두에 두고 ‘어떤 맛을 내겠다’고 공언한 뒤, 그에 맞는 결과물을 내놓아야 한다. 상상했던 커피와 일치하는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가의 여부는 평소 얼마나 커피를 붙들고 살았는지에 달려 있는 셈이다. 
 
특이하게도 윤씨의 경우는 커피에 대한 지식 쌓기와 블랜딩, 로스팅의 미묘한 감각을 쌓는 과정보다 만들어 낸 커피를 맛보는 부분이 더 힘들었다고 한다. 바리스타에 입문하기 전에는 일 년에 커피 다섯 잔도 안마시던 그였지만 자신이 만든 커피의 완성도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무던히 커피를 마셔야 했던 것.  
 
“어떤 날에는 한 스무 잔도 넘게 마신 것 같아요. 그랬더니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맥을 못 추겠는 거예요. 병원에 갔더니 카페인 과다중독이라지 뭐예요.(웃음) 우습죠?”
 
평소에는 즐기지 않던 커피를 끼고 살면서 깨달은 게 있다. 한 잔의 새로운 커피를 만드는 과정이 마치 인생의 여정과 같다는 점이다. 같은 품종의 원두라도 무엇을 혼합하느냐에 따라 맛이 다르고, 온도나 압력, 볶는 시간에 따라 수천가지의 다른 맛, 다른 향의 커피가 탄생한다. 인생 또한 어떤 부모 밑에 태어나서 어떤 사람을 만나고, 사랑하고, 또 어떠한 마인드로 하루하루를 사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삶의 향기를 낸다는 것이다. 
 

“커피 한잔엔 인생이 담겼죠”
 
윤씨가 인생과 커피를 하나의 관점으로 해석하는 데는 나름 배경이 있다. 전남 구례에서 경찰관이던 아버지와 어머니 밑에서 2남4녀 중 막내로 자란 윤씨의 별명은 ‘꽃순이’. 초등학생이던 막내 처제에게 100원 짜리 하나 쥐어주며 노래시키던 큰 형부가 즐겨 부른 별명이다.
 
고교 1학년 여름방학 때 서편제 소리를 하던 임영이 선생에게 가야금을 배우다가 우연한 기회에 명창 조상현 선생의 문하에 들면서 제대로 판소리를 배웠다. 스승 복은 어릴 때부터 있었던 모양이다. 대학 입학 후 판소리협회 총무 역할도 하면서 매년 수 십 차례 이상 국내외 행사에 초청을 받아 공연을 다녔다. 가야금 하나들고 세계를 누빈 것이다.
 
그렇게 국내외 행사를 다니다가 관계가 깊어진 곳이 스페인. 스페인에서도 합기도 연맹과의 인연이 깊다. 연맹이 주관한 행사 중간에 가야금과 판소리 공연을 했던 것이 반응이 좋아서 자주 초청을 받았다. 자주 보면 애정도 생긴다든가. 공연 전 합기도 선수들 몸 푸는 것 구경하다가 시작한 합기도가 공인 4단이다. 단을 따면서 스페인 선수들과 합기도 시범단 활동도 했다. 시범단 내 주특기는 쌍단검. 단검 두 개를 휘두르며 찌르고, 베고, 구르며 ‘칼춤’(?)을 추면서 지내 온 시간이 10여 년이다. 
 
한국과 스페인을 오가던 삶을 정리하고 완전히 귀국한 것이 3년 전. 그리고 그 때 운명처럼 시작한 것이 바리스타다. 커피 원두가 어떤 상상력을 가진 바리스타를 만나느냐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지듯 윤씨의 살아온 여정 자체가 매번 새롭게 시도되는 인생 블랜딩이고, 로스팅인 셈이다.   
 
윤씨는 향후 자신의 삶이 한 잔의 커피처럼 다른 이에게 따뜻한 온기와 색다른 향기를 전달해주는 날들로 채워지기를 희망하고 있다. 또 바리스타로서의 일 뿐만 아니라 또 다른 분야에도 도전을 지속적으로 할 생각이다. ‘인생 블랜딩’에 새롭게 첨가해보고 싶은 일이 많다는 것이다. 

상상한 맛 구현 
 
“알면 알수록 힘든 게 커피네요. 상상력과 노력에 따라 꽃향기도 나고 사과향도 납니다. 그 남다른 맛과 향을 찾아내기 위해 힘든 과정을 참아내는 게 매력이죠. 인생도 그렇고요. 어려움 속에서 진정한 가치를 찾아내는 사람, 힘든 과정을 기꺼이 즐길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바리스타겠죠.”
 
칼춤 추던 ‘구례 꽃순이’가 삶의 여정을 담아 내놓는 커피 한 잔의 여운이 혀끝에 길게 남았다. 
 
 
<manchoice@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일요시사 취재1·정치팀] 오혁진·박희영·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특검이 출범하면서 관련 수사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핵심 인물들의 수사 기록이 일부 보도됐다. 그러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없다. <일요시사>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의 ‘노상원 수사 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하기로 했다. “부정선거 증거가 차고 넘치고 나중에는 드러날 것이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이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에 꽂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실상 수년 전부터 망상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생각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노 전 사령관 수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 목사와 개인적으로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당시 분위기와 참석자들이 윤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텔레그램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1년간 ‘극우 집회’를 분석한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 등과 만날 때 주로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선관위를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관위가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김용현 전 장관이 많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여러 번 선관위의 부정선거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네이버로 찾아도 봤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를 주로 누구에게서 들었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는 “관련 집회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들었고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실명을 거명하긴 그렇다. 나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해서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여론조사 조작이나 선거 부정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했다. 전 주도 윤 지지자 극우 집회 직접 참석 김과 텔레그램으로 부정선거 자료 공유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의 근거로 “선관위 산하에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있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의 갑이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9명으로 위원장 이대영 사무총장과 강성봉 등이고 그 밑에 쭉 있는데 7명이 진보 계열 인물이다. 여론조사기관이 편향되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임시선거사무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202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동작구 선거사무소가 있는데 옆을 임대해서 임시선거사무소를 만들었었다. 언론에 나오니까 발뺌했었고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자 김 전 장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내 줬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며 “결국에는 다 까질 것이다. 전산은 한 번 가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폭파하거나 고물상에 갖다 버리지 않는다면 전산은 결국 까진다. 북한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서울 상공에 포를 쏜 것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께서는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시고 정국이 전시에 준하는 사태라고 민감한 상황이라고 보신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행동한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시간짜리 호소였다. 만약 국회 결정을 윤 전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유혈사태가 났을 것”이라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노 전 사령관은 12월 초 후 선관위가 서버 교체를 검토했다가 교체하려 했던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께서 어디에선가 확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들으셨을 것 같다. 서버 조작이 있었기에 그 서버를 우리가 확보하려 할 때 선관위 측이 폭파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군검찰·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정보사 군무원 간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등 인물들에 대해 “비상대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해야 한다”며 “현재의 사법체계, 형사소송법, 방탄국회 및 재판지연 아래에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조치’ ‘2시간짜리 계엄’ 겹치는 윤·노 발언 "서버 확보하려 했다면 선관위가 폭파했을 것” 주장 윤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한 조치”를 언급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자신의 의견을 거스르는 인물들에 대한 복수심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노 전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김용군(대령)과 구삼회 등에게 ‘이재명은 죄가 7개인데 봐주고 지연시키고 구속도 안 되고 당 대표까지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 중앙지검장, 판사 등을 모두 탄핵하려고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세상이냐’고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말이 일치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선관위는 헌법기관인데 스스로 깨끗해야 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황제·세자 채용 등 문제가 나왔다. 각종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다 저질렀다. 그리고 전산 해킹이 언급될 때 서버 본체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일부 샘플만 살짝 보여줬는데 얼마든지 전산 조작이 가능하고 해킹에 얼마나 취약하면 비밀번호가 ‘1234’냐. 이미 그런 게 다 나왔다. 그렇게 떳떳하면 왜 본체를 못 열어주나”고 말했다.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같은 해 12월 검찰 조사에서 “선관위 시스템에 보안상 취약점이 발견됐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과 직접 비화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보고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도 지난해 12월2일 자신의 지인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노 전 사령관은 당시 “나 같은 경우는 브이(V, 윤 전 대통령 지칭)하고 이렇게 좀 도와드리고 있다. 원래 한 4~5년, 3~4년 전에 알았다뿐이고 그래서 이제 뭐 이렇게 여러 가지로 좀 도와드리고 있다. 비선으로”라고 했다. 친분 과시 노 전 사령관은 안산 ‘롯데리아 회동’에 참석했던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에게도 “며칠 전에는 김용현과 함께 대통령도 만났다. 갈 때마다 대통령이 나한테만 거수경례를 하면서 ‘사령관님 오셨습니까’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대통령과 장관 같이 만난다. 나는 벌써 여러 번 만났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