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 가구점 화재' 한전 책임 공방전

누가 그 새벽에…귀신이 불 질렀나

[일요시사 경제1팀] 한종해 기자 = 2011년 2월, 안양시 만안구 소재의 가구점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불은 삽시간에 퍼져 주변 건물 태웠고, 가구점과 식당이 전소되고 주변 주택, 빌딩, 상가 등 8가구가 피해를 봤다. 가구점 주인은 경찰과 국과수 조사 결과에 따라 한전에 손배소를 제기했다. 1심 2심 법원은 한전 손을 들어줬다. ‘화재가 한전 책임으로 볼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가구점 주인은 “억울하다”말하고 있다.

2011년 2월23일 새벽 4시30분경.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안양동 836-10번지 안양가구점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불길은 2시간만에 잡혔지만 소방서 추산 1억원의 재산피해와 주변에 위치했던 식당, 주택, 빌딩, 옷가게가 전소되거나 연소되는 피해가 발생했다.

30년 가까이 가구점을 운영하던 양승환씨는 경기지방경찰청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조사 결과를 토대로 한전에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도경·국과수
“인입선 문제”

화재현장 감식에 나선 경기지방경찰청은 “주상변압기의 전원선은 동 매장(안양가구점) 후면에서 다시 중단부 발화부 주변으로 이동하는 형태이며, 동 전원선에서 전기적인 특이점 일부 관찰된 사안이다”며 “동 부분의 인입배선에서 전기적인 특이점이 관찰됐지만 내부 배선의 전기적인 부분은 전소붕괴 및 발굴복원조사 불가로 논단 불가”라는 결론을 내렸다.

국과수는 “안양가구점 후면 우측의 분전반 소락 부분에서 수거한 멀티콘센트 및 배선에서는 전기적인 특이점이 식별되지 않으며 분전반의 인입배선 수개소에서 단락흔이 식별됨”이라는 조사 결과를 내놨다. 단락흔은 전선이 합선되면서 녹은 흔적을, 소락은 불에 타서 아래로 떨어진 것을 말한다.


재판부는 1심에서 한전의 손을 들어줬다. “단락흔이 발견된 배선이 한전의 책임 부분에 속하는 인입선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게 이유였다. 인정할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 불복한 양씨는 즉시 항고했지만 2심 재판부의 판결 또한 1심과 같았다.

재판에서 패한 양씨에게 돌아온 것은 화재로 피해를 입은 주변 상가, 가구 측의 손해배상소송. 결국 수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손해배상을 해주게 된 양씨의 아버지는 모든 것을 잃고 충격에 낙향했고 함께 가구점을 운영하던 형은 공장에 취직했으며 양씨도 시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면서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양씨는 아직 “억울하다”고 말한다. 한전이 재판부와 양씨를 속였다는 것이다. 양씨는 “한전이 전기공급약관까지 무시해가며 재판에서 위증을 일삼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전은 이에 대해 아무런 답변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양씨의 주장과 한전의 전기공급약관, 판결문, 현장감식 결과 등 자료를 토대로 몇 가지 의혹을 정리해 봤다.

첫 번째는 ‘인입선 연결방식’이다. 인입선은 전신주에서 각 가구로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설치하는 전선을 말한다. 아파트나 요즘 지어지는 주택의 경우에는 인입선이 지하에 묻혀있지만 과거에 지어진 주택의 경우, 건물 주변 전신주에서 각 건물로 이어지는 검은 전선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이 검은 전선이 인입선이다.

3년 전 8가구 피해…원인 미궁으로
발화된 가구점 주인 한전 상대 소송

한전전기공급약관 제 6조6항에도 인입선은 ‘공중 및 진중전선로의 지지물(전신주)로부터 다른 지지물을 거치지 않고 전기사용장소의 연결점이나 인입구에 이르는 전선’으로 명시되어 있다.

전신주에서 출발한 인입선은 각 가정에 공급되기 전 인입지지물을 거쳐 계량기를 통한다. 약관에 따르면 한 건물의 인입지지물을 거친 인입선은 다른 가정으로 연결될 수 없다. 1인입선 1계량기를 원칙으로 한다.


다만 인입지지물을 거치기 전에 별도의 인입선을 연결해 다른 가정으로 연결할 수 있다. 연접인입선이라고 하는데 이는 전신주와 건물사이에 또 다른 건물이 존재해 직접 인입선을 연결할 수 없는 경우나 전신주와 거리가 너무 멀 경우에 사용된다. 흔히 ‘선을 딴다’고 표현한다. 선을 딴 지점은 ‘연접’이라고 부른다.
 

이밖에 공동주택 등으로서 한 건물 내 2개 가구 이상에게 전기를 공급할 경우에 사용되는 공동인입선이 있다. 1990년대 이후 지어진 다세대 주택 등 공동 주택과 상가건물이 이에 해당한다. 1인입선 1계량기를 원칙으로 하는 기본인입선과는 사용전력에서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그보다 두꺼운 인입선이 설치된다.
한전 전기공급약관 제 32조1항에서도 ‘한전은 건물 밀집장소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장소에서는 연접인입선이나 공동인입선으로 전기를 공급할 수 있다. 특히 공동주택 등으로 1건물내 2이상의 고객(1인입선으로 2개이상의 계량기)에게 전기를 공급할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공동인입선으로 공급한다’라고 적시되어 있다.

화재가 발생하기 전 안양가구점과 가장 가까운 전신주 사이에는 또 다른 가구점 A가 들어서 있었다. 안양가구점과 A가구점의 직선 거리는 13m에 달했다. 여기에 안양가구점은 1988년 1월 건축됐다. A가구점은 그 보다 뒤에 건축됐다. 당초 인입선이 전신주와 안양가구점이 직접 연결되어 있다가 A가구점이 들어서면서 기존 인입선을 끊고 새 인입선을 A가구점과 연결 후 연접을 이용해 안양가구점과 연결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인입선이 직접 연결되기 힘든 상황인 것. 연접인입선이 설치됐어야 했다.

사라진 인입선
대체 어디로?

양씨에 따르면 한전은 “안양가구점 인입선은 A에 설치된 인입지지물을 거친 인입선”이라고 주장했다. 인입지지물을 거친 A와 연결된 인입선이 다시 안양가구점으로 연결됐다는 주장인데 이는 사실 확인이 불가능하다. 화재 발생 후 안양가구점에 연결된 인입선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의심이 드는 부분은 A와 연결된 인입선에 연접 지점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누군가 선을 따서 어딘가로 인입선을 연결했다는 얘긴데 이 역시 연접 지점만 존재할 뿐 인입선을 확인할 수 없다.

한전 주장처럼 안양가구점 인입선이 A에 설치된 인입선이라면 한전이 전기공급약관을 스스로 어기고 인입선을 설치했다는 말이 된다. 한전이 약관을 지켰다면 연접을 통해 안양가구점에 인입선이 연결됐다는 양씨의 주장이 사실이 된다.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인입선의 두께도 쟁점 중 하나다. 증거물로 수집되어 단락흔이 발견된 인입선의 두께는 2.6mm. 한전은 “한전에서는 3.2mm의 인입선만 사용한다”고 주장했다. 한전의 인입선이 아니라는 것. 이 주장 역시 의문이 든다. ‘배전편 설계기준 DS-3700’을 보면 인입선의 굵기에 대해 ‘전선의 굵기는 케이블인 경우 이외에는 2.6mm 경동선 또는 이와 동등 이상의 세기 및 굵기의 절연선’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전기용량 5kVA 이하일 때 2.6mm의 인입선을 사용하도록 했다. 전체 인입선 길이가 15m 이내일 때 2.6mm를 적용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안양가구점의 전기용량은 5kVA 이하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같은 자료에는 전기 용량 5kVA이하부터 50kVA이하 까지 각각의 용량에 따른 인입선 굵기가 전부 달랐다. 가장 얇은 2.6mm부터 가장 두꺼운 150mm까지 다양했다. 양씨는 “2.6mm의 인입선이 존재한다는 증거를 들이밀자 한전은 ‘그것은 극히 예외적인 것’으로 일축했다”고 전했다.

1·2심 “증거 없다” 판결
이 과정서 위증 의혹 제기

한전은 ‘일반적인 주택이나 상가의 경우 한전은 3.2mm의 인입선만 사용하고 있다’는 주장의 연장선에서 수집된 2.6mm 단선이 양씨 측이 인입선과 계량기를 연결하기 위해 설치한 단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주장에도 허점은 존재한다. 2.6mm 단선과 함께 수집된 1.4mm 단선과 멀티콘센트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1.4mm 단선과 멀티콘센트에서는 단락흔이 발견되지 않았다.

양씨는 “한전 주장대로 우리가 인입선과 계량기를 연결하기 위해 설치한 단선이 있다면 함께 발견된 1.4mm 단선이었을 것”이라며 “2.6mm 단선도 우리 것이라면 3.2mm 인입선에 2.6mm 단선을 연결하고 거기에 다시 1.4mm 단선을 연결하는 바보짓을 한 게 된다”고 말했다.


한전이 수집된 2.6mm의 인입선이 자신들의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또 있다. 인입지지물이다. 한전에서 인입용앵글이라고 부르는 인입지지물은 인입선이 계량기에 연결되기 전 거쳐야만 하는 지지물이다.

한전전기공급약관 제30조 3항은 ‘인입선 연결을 위해 전기사용장소 내에 구내전주 등 보조지지물을 시설하거나 고객의 희망에 따라 한전 규격품 이외의 완금 등 인입지지물을 시설할 경우에는 고객이 그 지지물을 시설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안양가구점 인입지지물로는 ㄷ자 모양의 철근이 설치되어 있었다.

양씨에 따르면 한전은 법정에서 “전기사용장소외벽에만 구멍이 뚫린 L자 철근을 한전만이 직접 설치하고 L자 철근 외에는 설치하지 않기 때문에 원고(안양가구점)가 주장하는 계략기 상단의 ㄷ자 철근은 인정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실상은 달랐다. 안양 가구점 주위 여러 건물들을 돌아보며 인입지지물을 확인한 결과 못, 둥근철근, 일자철근, 아시바(철봉), 플라스틱 연통, 삼각앵글, 각목, 철콘테이너 홈, 공사용 철근, 옥상난간, 구멍없는 L자 철근, 옥상기와, 옥상기둥 등을 인입지지물로 사용하거나 심지어는 인입지지물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한전이 주장하는 L자 철근이 설치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사용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관련 의혹에 대해 양씨는 한전 본사, 한전경기본부, 한전안양지사 등에 답변을 요청했지만 ‘소송이 끝난 사항이라 답변의 의무가 없다’는 무성의한 대답만이 돌아왔다. 한전 고객의 소리와 다음 아고라, 국민 신문고 등에도 의혹을 제기했지만 같은 답변이 반복될 뿐이었다.

수차례 의혹 제기
한전 ‘모르쇠’


그렇다면 한전은 자신들이 직접 만든 규약인 전기공급약관까지 무시하면서까지 재판에 임한 이유가 뭘까? 사실 확인을 위해 제기되는 의혹에 대한 질의서를 한전 홍보팀에 보냈지만 “입장을 물어본 점 감사하게 생각한다”면서도 “질의한 사항에 대해 한전은 법원의 판결내용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달리 밝힐 의견이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han10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수상한 목격자 진술, 진실은?

대부분의 화재 현장에는 목격자가 있기 마련이다. 화재가 발생하면 소방당국은 목격자의 진술을 토대로 경위를 조사한다.

안양가구점 화재도 목격자가 있었다. 최초 목격자는 가구점 근처에서 거주하던 안모군(당시 18세)이다. 안군을 포함 도합 4명의 목격자가 소방서와 경찰서에서 최초 발화지점에 대한 진술을 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양씨에 따르면 한전은 준비서면을 통해 4명의 목격자가 한결같이 “가구매장 후면 중앙 주분전반 지점에서 펑하는 소리와 불길을 외벽 창문에서 보고 119에 신고했다”는 진술을 했다고 주장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주분전반’이라는 용어다. 주분전반은 전신주에서 연결된 인입선이 각 가구에 공급되기 전 전력량기 다음으로 거치는 전기시설이다. 문제는 주분전반이라는 용어가 쉽게 쓰이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통상 사용되는 ‘계량기’ ‘분전반’ ‘메인차단기’ 등의 용어가 있는데 4명 모두 주분전반이라고 진술을 했다는 점이 의아하다.

의혹은 최초 목격자 안군의 경찰 진술서를 보면 더 짙어진다. 안군은 경찰 조사에서 주분전반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적이 없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안군의 경찰 진술서에는 “잠에 들기전 창문 쪽에서 폭죽 같은 것이 터지는 소리가 나서 창 밖을 봤는데 안양가구점 가운데 약간 오른쪽 밑에서 불이 나고 있었다”며 “불난 지점이 우리집에서 봤을 때 가운데서 오른쪽 밑이였다”고 적혀있다. 이에 대해서도 한전은 아무런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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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