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식품 파문 ‘배째라’ 동서식품 노림수

얼렁뚱땅 넘기려다…국민들 뿔났다

[일요시사 경제1팀] 한종해 기자 = 동서식품의 국내 소비자 뒤통수 때리기가 도를 넘었다. 오너 일가는 '배당잔치'를 벌이고 미국에 거액의 로열티까지 지급하면서 '쥐꼬리 기부'로 빈축을 산 데 이어 동서식품이 제조한 시리얼에서는 대장균이 검출됐다. 여기에 "대장균은 생활 도처에 많다"는 동서식품의 황당한 해명이 더해지면서 논란은 커지고 있다. 제대로 미운털이 박힌 동서식품, '제2의 남양유업 사태'로 번지는 모양새다.

지난 16일 서울 마포구 동서식품 본사와 인천 부평구 연구소에 검찰 수사관들이 들이닥쳤다. 지난 13일 동서식품 진천공장 압수수색에 이어 두 번째로 집행되는 압수수색이다.

서울 서부지방검찰청 부정식품사범 합동수사단은 이날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자가품질검사' 서류 등을 확보하고 동서식품이 식품 기준과 규격 적합 여부를 제대로 검사했는지, 대장균 검출 사실을 고의로 숨겼는지를 파악하고 있다.

"억울하다"
일단 버티기

동서식품은 출고 전 자가품질검사 결과 대장균이 검출된 부적합 제품을 조금씩 섞어 최종 완제품을 생산한 혐의를 받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14일 이 같은 정황을 포착해 동서식품 '포스트 아몬드 후레이크'와 '그래놀라 파파야 코코넛' '오레오 오즈' '그래놀라 크랜베리 아몬드' 등 4개 시리얼 품목을 잠정 유통·판매 금지했다. 이밖에 진천공장에서 생산되는 17개 제품을 모두 수거해 부적합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동서식품의 안일한 대응은 화를 키웠다. 동서식품은 '대장균 시리얼'이 논란된 직후 "'대장균군'은 쌀을 포함한 농산물 원료에 일상적으로 존재하는 미생물"이라며 "동서식품은 해당 제품 제조과정 중 품질검사와 적절한 열처리를 통해 '대장균군 음성'으로 판명된 제품만 출고 및 판매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과는커녕 억울함만 묻어나는 해명이다.


"문제될 게 없다"는 사측의 해명과 달리 동서식품 직원들은 제품섭취 자체를 피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대장균은 도처에 많다" 황당 해명
버티고 버티다 나흘 만에 공식사과

SBS가 입수한 동서식품 공장 작업 일지에는 '쿠키 맛 시리얼에서 대장균이 발생했다'며 '상자를 해체하라'고 쓰여 있다. 다이어트 시리얼로 알려진 다른 제품에서도 대장균이 발생했다는 내용과 함께 '불량품을 새로 만들어지는 시리얼에 10%씩 투입하라'는 지시도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 동서식품 내부 제보자는 "재활용을 매일 하지는 않는다"며 "재고가 좀 쌓이면 뜯어서 새로 나온 제품에 섞는 작업을 한다"고 전했다. 그는 또 "직원들이 제대로 제조됐는지, 설탕 배합 같은 건 제대로 됐는지 맛을 보는데 재활용 작업을 하는 날은 직원들끼리 '야, 오늘은 먹지마. 오늘 그거 한 날이야'라고 했다”고 말했다.
 

꼿꼿하던 동서식품의 고개가 꺾인 것은 나흘 만인 지난 16일이다. 동서식품은 지난 16일 주요 일간지에 "고객 여러분 심려를 끼쳐드려 사과 말씀 드립니다"는 사과광고를 게재했다.

동서식품은 사과문에서 "동서식품 '시리얼 제품' 관련 언론 보도로 그간 저희 제품을 애용해주신 고객 여러분께 심려 끼쳐드린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며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잠정 유통·판매 금지를 내린 특정 4개 품목의 유통기한 제품 외에도 품목 전체에 대해 식약처 조사 결과가 발표될 때까지 유통·판매되지 않도록 조치했다"고 밝혔다.

'대장균 시리얼' 유통 일파만파
불량품 조금 섞어 완제품 생산


이어 "진행 중인 관계 당국의 조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할 것이며, 고객 여러분들께서 저희 제품을 안심하고 드실 수 있도록 식품 안전과 품질 관리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덧붙였다.

동서식품의 사과문 게재에도 불구하고 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동서식품의 소비자 뒤통수 때리기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라는 점이 부각되면서다.

동서식품은 매출 대부분을 국내 시장에 의존하고 있다. ‘맥심’ 브랜드로 국내 커피믹스 시장 1위 업체지만 해외 수출 길이 막혀 있기 때문이다. 동서식품은 모회사인 ㈜동서와 미국 크래프트 푸즈가 각각 50%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 크래프트 푸즈와 손잡으면서 맥심 제품을 해외에 수출할 수 없다는 조건이 달렸다.

동서식품의 지난해 매출은 1조5270억원이다. 매출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사업은 커피믹스 사업이다. 지난해 커피믹스 국내 시장 규모는 약 1조3000억원으로 추산되는데 동서식품 시장점유율이 약 80%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동서식품의 연매출 중 1조원가량이 커피믹스 사업에서 나온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이번에 논란이 된 시리얼 제품군도 동서식품의 효자 상품이다. 업계가 추산하는 국내 시리얼 시장 규모는 4000억원 정도. 동서식품과 켈로그가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가운데 동서식품의 점유율은 55%가량이다. 따라서 동서식품은 시리얼 제품으로 2200억원 수준의 매출을 올리는 것으로 추산된다. 커피믹스와 시리얼 매출을 합하는 1조5200억원. 매출 99%가 두 제품군에서 나온다는 얘기다.

설비투자 외면
주머니 채우기

이럼에도 동서식품은 국내 소비자들을 외면해 왔다. '고액 배당'으로 배당잔치를 벌이고 미국 크래프트 푸즈사에 고액 로열티를 지급하면서도 '쥐꼬리'만한 기부금으로 눈총을 샀다.
 

<일요시사>는 지난 5월29일자 신문(960호)에서 동서식품의 '기부와 배당'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동서는 지난해 고작 98만원을 기부했다. 같은 기간 매출은 4258억원으로 0.0002%에 불과한 금액이다. 순이익 960억원에 대비해서도 0.001%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2012년에는 50만원을 기부금으로 냈다. 매출은 4215억원, 순이익은 974억원이었다. ㈜동서는 2011년 101만원, 2010년 601만원, 2009년 51만원, 2008년 1341만원, 2007년 880만원을 기부했다.

같은 기간 ㈜동서의 배당금을 보면 입이 떡 벌어진다. ㈜동서 지분구조는 김상헌 ㈜동서 회장이 22.97%를 보유해 최대주주에 올라 있으며 그의 동생 김석수 동서식품 회장이 20.05%, 장남 김종희 전 ㈜동서 상무가 9.4%를 보유해 그 뒤를 잇고 있다. 문혜영(20.01%), 김정민(3.01%), 김은정(3.18%), 한혜연(3.23%), 김현진(0.07%), 김유민(0.07%) 등 특수관계인의 지분을 합하면 오너일가는 ㈜동서 지분 67.83%를 보유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오너일가는 배당금 366억원을 챙겼다. 이 중 126억원은 김상헌 회장이 받아 갔고 김석수 회장과 김종희 전 상무는 각각 110억원, 52억원을 수령했다. 2∼3% 지분을 보유한 특수관계인은 11억∼18억원을 배당받았고 김현진·김유민양은 각각 3700만원을 챙겼다. 동서 3∼4세로 추정되는 현진·유민양은 4세와 6세로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미성년자다.

2012년에는 ㈜동서가 배당한 470억원 중 약 67%에 해당하는 315억원이 오너 일가에게 흘러들어갔다. ㈜동서는 2011년 397억원, 2010년 353억원, 2009년 308억원, 2008년 264억원, 2007년 235억원을 각각 배당했다.

그룹 주력사인 동서식품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지난해 매출 1조5270억원에 영업이익 2046억원, 순이익 1693억원을 올렸음에도 기부금은 6억6200만원에 그쳤다. 연간 기부금은 2012년 6억4600만원, 2011년 6억2000만원, 2010년 7억4100만원, 2009년 9억9300만원, 2008년 8억4000만원, 2007년 5억8600만원으로 대동소이 했다.


안그래도 시선 곱지 않았는데…
소비자 불매운동 움직임 확산

같은 기간 매출은 2007년 1조원을 돌파한 데 이어 매년 늘어 2011년 1조5000억원을 기록했다. 2000년대 들어 적자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영업이익도 1000억∼2000억원, 순이익은 700억~1800억원을 거뒀다.

동석식품 배당금의 50%는 외국 주주들에게 보내진다. 주력상품인 '맥심' 브랜드는 세계 2위 식품기업 크래프트 푸즈사의 소유로, 동서식품이 로열티를 주고 빌려 쓰고 있다. 동서식품의 커피믹스 '모카골드' '화이트골드' '오리지널' 등은 모두 맥심 브랜드를 달고 있으며 '맥스웰하우스' 브랜드도 크래프트 푸즈 소유다. 동서식품은 지난 2008년 크래프트 푸즈사와 커피, 시리얼 제품에 대한 상표권 사용계약을 체결하고 매년 고액의 로열티를 지불하고 있다. 2008년 96억원을 시작으로 2009년 222억원, 2010년 239억원, 2011년 252억원, 2012년 263억원, 2013년 261억원을 지불했다. 커피믹스 매출이 증가하면 로열티도 함께 증가한다.

거액의 배당금도 크래프트 푸즈사가 가져간다. 동서식품은 2007년 946억원, 2008년 1746억원, 2009년 980억원, 2010년·2011년 각각 1100억원, 2012년·2013년 각각 1120억원으로 매년 1000억원대의 배당을 실시했다. 동서식품의 50% 지분을 가지고 있는 크래프트 푸즈사는 배당금의 절반을 가져갔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소비자들로부터 엄청난 수입을 벌어들이고 있으면서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기 위한 설비 투자에는 소홀하고 대부분 배당으로 자기 주머니 챙기기에 바빴다는 얘기"라며 "시리얼에서 대장균이 검출된 것은 예견된 결과"라고 전했다.

'그들만의 잔치'를 벌이다 못해 '대장균 시리얼' 사태까지 터지자 소비자들은 동서식품으로부터 하나둘씩 등을 돌리고 있다. 불매운동까지 일어나는 모양새가 동서식품이 '제2의 남양유업'으로 불거지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동서식품의 '대장균 시리얼' 사태는 지난해 5월 대리점을 상대로 '슈퍼갑질'을 해 논란이 된 남양유업 사태와 이상하리만큼 닮아 있다. 남양유업은 지난해 5월4일 영업사원이 대리점주를 상대로 폭언과 욕설을 한 '막말 통화' 내용이 유포되면서 몸살을 앓았다.

처음에는 무대응으로 일관하던 남양유업은 사태가 심각해지자 직원 해고, 재발 방지 등을 약속하면서 뒤늦게 사과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대리점 관계개선책 등의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지 않아 '비만 피하고 보자'는 임기응변식 대응에 불과했다는 비난이 일었고 불매운동까지 이어지며 매출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2013년 실적은 전년대비 매출이 10% 감소하고 455억원의 적자를 기록했으며 올해 1분기와 2분기에도 적자행진이 이어졌다. 올 상반기 매출은 5651억원으로 같은 기간보다 6.5% 떨어졌으며 지난해 60억원에 달하던 영업이익도 187억원으로 손실폭을 키웠다. 증권가는 남양유업의 적자가 올해 하반기까지는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집단소송 검토
제2 남양유업?

동서식품 불매운동도 확산되고 있다. 지난 14일 한 누리꾼이 포털사이트에 올린 '대장균 시리얼을 알고도 판매한 동서식품 불매운동합시다!'라는 서명에는 지난 16일 기준 700명이 넘은 사람이 동참했고 서명인원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또한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대장균군이 검출된 시리얼 제품을 재활용해 판매한 사실은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해야 할 식품기업이 소비자의 건강과 안전을 해치는 데 앞장서고 있다는 점에서 경악을 금치 못한다"며 동서식품 제품에 대해 불매운동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집단소송도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는 문제의 시리얼로 인한 피해자를 모집해 법적 검토를 거쳐 소비자 집단소송을 검토할 예정이다.

 

<han1028@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