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정치팀] 허주렬 기자 = 정의화 국회의장의 ‘국회 개혁 프로젝트’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둘러싼 여-야-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간 3각 충돌로 인해 좀처럼 진척이 되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개혁은커녕 거꾸로 가고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정 의장이 약속했던 ‘열린 국회’가 희생자 유가족들의 국회 출입을 막기 위한 ‘닫힌 국회’로 변질된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회는 일반국민들의 출입까지 덩달아 막고 있다. 국민들에 의해 선출돼 민의를 대변해야 할 이들이 모인 국회가 국민들의 출입을 막는 것은 모순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신뢰도를 높이고,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국회를 만들겠다.”
지난 6월 정의화 국회의장은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의장 임기 중 반드시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또 지난달에 열린 제헌절 기념식 경축사에서는 ‘열린 국회’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국회 출입 통제 강화
그러나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의 국회 본청 앞 농성이 길어지고, 여야의 세월호 특별법 협상이 좀처럼 합의점을 찾지 못하며 국회에는 정 의장의 발언과는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졌다. 국회 출입통제가 강화됐고, 일반국민들 대신 통제를 위한 경찰병력이 급증한 것.
이와 같은 조치는 정 의장이 지난 8일 희생자 유가족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국회 정문 앞 100m 이내에서는 집회나 시위를 할 수 없다’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을 거론하며 “그동안 의장인 내가 법을 어겼다. 국회 내에 들어와 시위를 하거나 농성을 하는 것은 더 이상 해드리고 싶어도 실질적으로 행하기가 어렵다”고 발언한 이후 시작됐다.
이날부터 국회 경내로 출입하는 문과 본청 출입구 곳곳에는 경찰병력이 무더기로 배치됐고, 희생자 유가족 및 일반국민들의 국회 출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이는 희생자 유가족들의 국회 내 농성을 막기 위한 특단의 조치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국회의원, 국회 직원, 기자, 유가족 대표단 일부, 국회도서관 장기출입증 소지자 등을 제외하고는 국회 출입이 어려워졌다. 이 같은 이례적인 조치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기약도 없는 상황이다.
국회 경호기획관실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지금과 같은 통제는) ‘상황 종료’시까지 지속된다는 지시를 받았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상황 종료는 희생자 유가족들이 농성을 푸는 것을 의미하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는 “답변할 위치에 있지 않다. 모르겠다”고 답했다.
국회 대변인실 관계자도 “출입 통제가 언제까지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답변할 위치에 있지 않다”고 답변을 회피했다. 국회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당분간은 국회 출입 통제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희생자 유가족들은 세월호 사고의 진상규명을 위한 진상조사위에 새누리당이 반대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는 내용을 담은 특별법이 제정되지 않는 한 단식농성을 이어갈 뜻을 고수하고 있다.
세월호 특별법 논란에 꽉 막힌 국회
개혁은 뒷전…문 잠근 채 파행 운영
국회 출입통제가 강화되며 최근 국회 본청 앞에서 단식농성을 벌이던 희생자 유가족 중 한 명이 약을 받으러 국회를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경찰의 제지를 받고 실랑이를 벌인 끝에 다리에 피멍이 드는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보다 못한 새정치민주연합 일부 의원들은 자신의 차량을 이용해 희생자 유가족을 실어 나르기도 했다. 그러자 국회 측은 희생자 유가족을 차량에 태워 출입하다 적발된 새정치연합 의원들을 블랙리스트에 올려놓고 차량 검문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맞대응 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부 의원은 짐을 보관하는 트렁크에 희생자 유가족을 실어 나르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정 의장이 지난달 제헌절 기념식 축사에서 선언한 ‘열린 국회’는커녕 이전 국회보다 못한 ‘닫힌 국회’로 국회가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문을 걸어 잠근 국회가 본연의 기능인 입법활동을 제대로 수행한 것도 아니다. 정 의장 체제로 19대 하반기 국회가 시작된 지도 어느덧 3개월째에 접어들었지만 시급한 민생·경제 법안은 단 하나도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여-야-희생자 유가족 간에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싼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며 국회가 지금껏 파행 운영됐기 때문이다. 결국 정 의장이 약속했던 열린 국회, 국민에게 사랑받는 국회는 거꾸로 가고 있는 모양새다.
앞서 정 의장은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국회가 관료화 돼 있고, 과거 독재시대의 잔재도 많이 남아 있다. 의장 재임기간 국회 내 악습과 구태를 모두 바꾸려고 한다”고도 했다.
그러나 현실은 출입을 통제하는 독재시대의 잔재도 재현되고 있고, 국민들에게는 친숙한 국회가 아니라 접근조차 어려운 국회가 됐다. 이러는 사이 희생자 유가족뿐 아니라 국회를 방문한 일반국민들의 불만은 극에 달하고 있다.
물론 정 의장도 속이 편하지 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취임 후 줄곧 국회 개혁을 강조했던 그가 국회의장에 출마하며 약속했던 개혁안들이 줄줄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국회 권위만 강조?
특히 청와대와의 마찰을 각오하며 사무총장에 내정한 친이(친이명박)계 핵심인사인 박형준 사무총장 내정자는 국회 본회의가 열리지 못하다 보니 한 달이 넘도록 국회 인준을 받지 못해 ‘내정자’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여권 일각에서도 박 내정자에 대한 반대기류가 형성되고 있어 최종 추인을 받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대표적으로 박 내정자와 지역구(부산 수영구)를 놓고 18·19대 총선에서 맞붙으며 ‘진흙탕 싸움’을 벌였던 새누리당 유재중 의원이 반대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다만 ▲원로 회의 ▲국회개혁 자문위원회 ▲남북 화해·협력 자문위원회 등의 신설 및 운영 정도만 간간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정치권 한 관계자는 “정 의장이 기존 의장들에 비해 비교적 여야 양쪽과 소통이 잘된다는 평이 많았지만, 의장이 된 후 ‘국회 권위’를 너무 강조하다 보니 거리감이 생기고 있는 것 같다”고 질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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