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금기어로 본 재벌가 비사-LIG손해보험 ‘구자준 스캔들’

회장님, 그렇게 안 봤는데 ‘헐∼’

[일요시사=경제1팀] 김성수 기자 = 재벌가 혼맥, 대박 브랜드 비밀, 망해도 잘사는 부자들, 기업 내부거래 등을 시사지 최초로 연속 기획해 독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던 <일요시사>가 새 연재를 시작한다. 직원들이 입 밖에 내면 안 되는 '금기어'를 통해 기업 성장의 이면에 숨겨진 '비사'를 파헤쳐 보기로 했다. 일반인은 잘 모르는, 기업으로선 숨기고픈 비밀, 이번엔 LIG손해보험의 '구자준 스캔들'편이다.

마라톤을 즐겼고, K2·에베레스트 원정에 나설 정도로 등산도 좋아했다. 그냥 취미가 아니다. 자선기금을 조성해 불우이웃을 도왔다. 몸소 체험을 통해 나눔경영을 펼친 것이다. 이런 공로로 이웃돕기유공 국민포장, 대한적십자사 최고명예대장 등의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법 없이 살 사람?
재벌답지 않은 서민 행보로 귀감

주인공은 구자준 전 LIG손해보험 회장이다. 고 구철회 창업고문(고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첫째 동생)의 넷째 아들인 구 전 회장은 평소 재벌답지 않은 행보로 주목을 받았다. 서민에 가까운 검소하고 소박한 모습을 보여 세간의 존경을 받았다.

그의 집무실은 소탈한 성격을 반영하듯 여느 오너의 사무실보다 작았다. 한번은 한 잡지에 부인과 함께 자신의 집을 스스럼없이 공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주변에선 그를 법 없이도 살 바른 사람이라고 치켜세웠다.

한양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구 전 회장은 1974년 금성사에 사원으로 입사한 뒤 LG정밀에서 근무하다 1999년 LIG손보(당시 LG화재)로 자리를 옮겼다. 2002년 사장, 2005년 부회장이 된데 이어 2008년 회장이 됐다. 지난해 6월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현재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지난 4월엔 한국배구연맹(KOVO) 총재직을 연임했다.


그랬던 구 전 회장이 요즘 진땀을 흘리고 있다. 숨겨왔던 '두 얼굴'이 속속 드러나서다. 회사가 막아준 바리케이드가 없어져설까. 공교롭게도 경영일선에서 물러나자마자 구설에 오르내리는 모양새다.

먼저 미국 부동산 의혹이 불거졌다. 한 방송사는 얼마 전 국내 재벌과 부호들의 미국 부동산 보유 실태를 추적 조사해 방송했는데, 구 전 회장도 도마에 올랐다. 구 전 회장은 미국에서 모두 4건의 부동산을 사고팔았지만, 국내에 신고한 건 단 1건 뿐이었다고 지적했다. 3건에 대해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얘기다.

구 전 회장은 사실 여부를 묻는 취재진이 접근하자 "아이 참. 서류 제출했으니까 그걸로 대체하라"며 얼굴을 가린 채 도망치듯 자리를 떴다. 이 장면은 고스란히 전파를 탔다. 경영자 시절 당당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숨겼던 두얼굴 속속 드러나 진땀

구 전 회장은 미국과 인연이 깊다. 미국 캔자스 주립대와 미주리 주립대로 유학을 다녀왔다. 또 미국 지사로 발령이 나 한동안 미국에서 지낸 적이 있다. 두 아들도 미국에서 공부했다.

사실 구 전 회장의 미국 부동산 의혹은 처음이 아니다. 재미언론인 안치용씨는 2009년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구 전 회장이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초호화 콘도 2채를 매입해 이중 1채를 부인에게 무상증여한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당시 회사 측의 선방(?)으로 언론 등 세간엔 잘 알려지지 않았다.

LIG손보 한 직원은 "방송 후 다른 언론들의 확인 전화가 많았던 것으로 안다"며 "(담당 직원에게) 구 전 회장이 회장 신분이라면 몰라도 현직이 아니라서 난감하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귀띔했다.


구 전 회장은 이병기 국정원장과 관련해서도 이름이 거론됐다. 이 원장은 취임 전인 후보자 시절 '특혜 취업'의혹을 받았다. 여기서 등장하는 인물과 회사가 바로 구 전 회장과 그가 경영한 LIG손보다.

이 원장은 구 전 회장이 회장직을 맡았던 2008년 7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5년간 LIG손보의 법인영업지원팀 고문으로 재직했다. 이 기간 그는 회사로부터 5000만원 이상의 연봉을 받아 총 2억5779만원을 급여로 받았다.

관건은 특혜가 있었냐는 것이다. 구 전 회장과 이 원장은 사돈관계라 의혹을 짙게 했다. 이 원장은 구본욱 LIG손해보험 전략지원담당 상무의 장인. 구 상무는 구 전 회장의 둘째 형인 고 구자성 전 LG건설(현 GS건설) 사장의 장남으로, 구 전 회장의 조카다.

미국 부동산 수상한 거래 도마
국정원장 특혜 취업 의혹 거론
두 아들 군면제 문제까지 회자

구 전 회장은 1995년 갑자기 심장마비로 사망한 형을 대신해 구 상무를 각별히 챙겼다고 한다. 부친 사망 당시 18세였던 구 상무는 서강대 경영학과와 미국 코넬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LIG투자증권 경영지원본부장(이사)과 WM전략본부장(상무) 등을 역임한 후 지난해 4월 LIG손보에 둥지를 틀었다. 구 전 회장이 퇴진할 당시 구 상무는 사내이사로 선임되면서 경영 전면에 나섰다.

이른바 '구자준 스캔들'이 연달아 터지자 구 전 회장 일가를 둘러싼 해묵은 논란거리까지 다시 회자되고 있다. 두 아들의 병역 문제가 그중 하나다. 최근 신체 건강한 군면제 연예인들이 이슈화 되면서 군대 안간 구 전 회장의 아들들도 덩달아 재계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만 19세부터 30세까지 병역의무 나이를 지난 '구씨일가' 4세들의 병역 여부를 살펴보면 군필자 못지않게 미필자가 많다. 눈에 띄는 점은 다른 재벌가와 달리 면제 사유가 질병보다 외국 국적이 많다는 것이다. 이들은 대부분 영주권이나 시민권 등을 내세워 '소나기'를 피한 뒤 병역의무 나이가 지나면 슬그머니 국내에 들어와 한자리씩 꿰차고 있다.

구 전 회장의 두 아들도 마찬가지다. 구 전 회장은 부인 이영희씨와 사이에 2남(동범-동진)을 두고 있다. 올해 39세인 장남 동범씨와 37세인 차남 동진씨는 모두 병역을 면제받았다. 미국 영주권을 갖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미국 시민권자는 '자진해서 외국 국적을 취득한 자는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한다'고 규정한 국내 국적법에 따라 한국 국적이 자동 소멸된다. 영주권자는 한국 국적과 외국 국적을 동시에 보유할 수 있다. 이중국적자의 경우 현행 국적법상 22세 이전에 하나의 국적을 선택해야 한다.

동범씨는 LIG손보 이사로 미국법인을 담당하다 지난해 9월부터 LIG에이디피 총괄 부사장을 맡고 있다. LIG에이디피는 구 전 회장이 최대주주(19.39%)로 있는 디스플레이 장비업체다. 동진씨는 이사 직함으로 형이 맡았던 LIG손보 미국법인을 책임지고 있다.

공든탑 무너질 판

'정도'만 걸어온 것으로 알려졌던 구 전 회장. 여기까지일까. 하루가 멀다 하고 구설에 오르는 통에 굿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까딱 잘못했다간 수십년 공든탑이 무너질 판이다.
 


<kimss@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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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