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망록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평소 메모광으로 불릴 정도로 꼼꼼히 기록하는 습관으로 유명해 비망록 존재 가능성을 높인다. 문제는 내용이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세상을 떠난 만큼 그가 생전 못 다한 말들도 굉장한 파급력을 머금고 있을 게 분명하다. 한국 현대 정치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란 점에서 메가톤급 후폭풍까지 예고된다. 그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여전히 풀리지 않은 대형 사건들도 한둘이 아니다. ‘김대중 비망록’엔 어떤 비하인드 스토리가 담겨있을까.
청와대 나와 2005년부터 작업 자서전 내용 관심
파란만장 삶만큼 파급력 촉각…거센 후폭풍 예고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서거 전 별도의 유언을 남기거나 유서를 따로 작성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는 공식적으로 유언 또는 유서 존재를 부인했다.
감동의 일기장 공개
옥중서신도 곧 출간
항간에선 그의 최측근인 박지원 의원이 재산분배 등을 언급한 유서를 받았다는 얘기도 흘러나왔지만 박 의원은 이를 전면 일축했다. 다만 박 의원은 “김 전 대통령이 생전에 쓰던 책상이나 서랍 등에 유서가 보관돼 있는지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대신 김 전 대통령의 유서 격인 일기가 공개됐다. 일기는 김 전 대통령이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하기 전까지 쓴 100페이지 안팎의 분량이다. 이 여사 등 유족 측은 일기 가운데 일부를 40페이지 분량의 소책자로 만들었다.
이 책자엔 ▲김 전 대통령이 살아온 인생에 대한 소회 ▲이 여사에 대한 애틋한 정과 사랑 ▲동교동 사저 정원의 꽃과 나무 ▲평소 즐겼던 한강변 드라이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등 임기기간 만났던 각계 인사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잃은 슬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최경환 비서관은 “김 전 대통령이 올해 1월1일부터 입원하기 전인 6월4일까지 작성한 일기를 모든 국민들이 읽을 수 있도록 책으로 엮었다”며 “이 일기를 유언장으로 보면 맞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유족 측은 김 전 대통령이 과거 감옥과 서울대병원에 연금된 동안 이 여사와 주고받은 옥중서신을 모아 곧 출간할 예정이다. 이번 옥중서신은 거의 탈고를 마친 것으로 전해진다. 김 전 대통령의 옥중서신은 ‘내란음모 사건’으로 1980년부터 1982년까지 수감생활을 하는 동안 가족들에게 쓴 편지를 모아 1984년 처음 발간된 이후 여러 차례 출간된 바 있다.
당초 정치권에선 ‘김대중 일기’에 현 정부 비판 등 정국에 파장을 몰고 올 만한 내용이 가감 없이 포함돼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김 전 대통령이 서거 전 꼬인 대북관계와 노 전 대통령의 서거와 관련 이명박 대통령을 독재자로 표현하는 등 MB정부에 직격탄을 날린 것이 이를 뒷받침했다. 정부와 정계는 그 후폭풍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최 비서관은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언급을 극도로 자제하면서 “책을 열어본 순간 전율을 느꼈다”고 말해 긴장감을 더했다.
직·간접 연관 미스터리 사건들 언급?
최대 의문 ‘대북송금’ 진상 밝힐까
하지만 충격적인 내용은 없었다. 통합, 화해, 평화, 통일 등 김 전 대통령이 평생 추구하던 가치에 대한 일상적인 메시지만 담겼을 뿐이다. 김 전 대통령의 일기 중 이번에 공개되지 않은 미공개 비망록에 시선이 쏠리는 이유다. 김 전 대통령 측은 상중인 점을 감안해 상대적으로 파장이 적은 내용들만 추려 공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감한 부분을 제외한 것.
김 전 대통령 한 측근은 “일기엔 상당히 중요한 내용도 들어 있지만 일단 공개해도 될 만한 내용만 선정했다”며 “나머지는 유족들과 상의해 분위기가 좀 차분해지면 추후 공개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더욱이 김 전 대통령은 틈틈이 자신의 일대기를 집대성한 자서전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져 그 내용과 향후 정국에 미칠 파급력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그의 측근들에 따르면 김 전 대통령은 퇴임 이후인 2005년부터 자서전 작업을 시작했다.
평소 메모광으로 불릴 정도로 꼼꼼히 기록하는 습관을 가졌던 김 전 대통령이 이를 위해 60여 차례에 걸쳐 직접 구술을 하는 등 자서전 집필에 강한 애착을 보였다는 게 한 측근의 전언이다. 구술 장면은 모두 비디오 촬영으로도 녹화됐다고 한다. 김 전 대통령은 입원 직전인 지난달까지도 장시간 직접 구술했다. 한 집필진은 “김 전 대통령이 자서전에 자신의 숨결과 혼을 담아 달라고 당부했다”며 “김 전 대통령의 85년 영욕의 삶이 담긴 자서전은 현재 초고가 마무리된 상태로 감수도 상당부분 진행됐다”고 전했다.
정치 비화 담길 듯
현재 초고 마무리
이에 따라 곧 세상에 나올 김 전 대통령의 자서전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지 주목된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세상을 떠난 만큼 그가 생전 못 다한 말들이 실릴 게 확실하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한국 현대 정치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란 점에서 메가톤급 후폭풍까지 예고된다. 김 전 대통령의 자서전은 원고지 5000여 장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으로 ‘출생부터 1997년 대선 전까지’를 전반부, ‘집권 이후’를 후반부로 나눠 삶의 고비 때마다 느낀 소회 등을 상세히 담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1973년 납치사건과 1981년 신군부 정권에 의한 사형선고, 1987년 후보단일화 파동 등 그동안 밝혀지지 않은 정치 비화 등이 공개될지 여부가 관심사다. 뿐만 아니다. 이외에도 그가 겪었던 고난은 열거하기도 힘들어 이에 관한 비하인드 스토리 또한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다. 무엇보다 그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미스터리로 남은 대형 사건들도 한둘이 아니다. 김 전 대통령이 지금까지 풀리지 않은 각종 미제에 대해 언급했을 가능성도 적지 않은 대목이다.
그중에서도 ‘대북송금’ 사건의 진상은 여전히 미궁에 빠져 있다. 김 전 대통령이 일군 업적 중 가장 높게 평가받은 것은 남북관계에 일대 변화를 가져온 ‘햇볕정책’이다. 햇볕정책은 한국 현대사에서 극적인 순간으로 꼽히는 2002년 6·15 남북정상회담으로 이어졌고 이후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는 등 남북한 사이에 역대 최고의 훈풍을 불게 했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은 이 과정에서 ‘퍼주기’ 논란으로 위기를 맞기도 했다. 이때 증폭된 의혹이 대북송금 부분이다. 화해와 포용의 대가로 북한에 얼마를 지원했느냐가 논란거리다. 김 전 대통령은 2003년 대북송금 특검에서 “북한에 단 한 푼의 돈도 준 적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4억5000만 달러를 북한에 전달한 사실이 드러났고 박지원, 임동원 등 ‘DJ의 남자들’이 줄줄이 구치소로 향해야 했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더 이상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특검에서 수많은 의혹만 남긴 채 실체를 규명하지 못한 대북송금 미스터리는 2003년 8월 이 사건의 열쇠를 쥔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 핵심 인물들이 여러 명 거론되지만 해외로 도피하는 등 오리무중이다. 김 전 대통령의 가신들도 입을 꾹 다물고 있다.
감춰진 대북정책 진실
어디까지 털어놓을까
정치권 한 관계자는 “정계 유력인사들이 타계 후 자서전을 통해 생전 못 다한 말들을 남겼듯 김 전 대통령도 비망록 등에서 세상이 알지 못했던 비화와 무언의 침묵 속에 묻혀있는 진실들을 모두 털어놓지 않겠냐”며 “김 전 대통령이 한국 정치사의 큰 인물인 만큼 그의 고해성사는 대한민국을 요동치게 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