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꾼 판치는 방송가 천태만상

  • 최현경 mw2871@naver.com
  • 등록 2013.09.24 13:4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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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이 뭐길래…여기도 구라 저기도 구라

[일요시사=사회팀] ‘꾼 리스트’. 방송에 거짓 사연을 보내 상품을 챙겨가는, 일명 ‘꾼’을 색출하기 위한 리스트이다. 시청자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준 가짜 사연들 때문에 방송 프로그램의 진정성이 의심받고 있다.
 



“진솔한 사연이 방송에 소개되면 반응은 정말 뜨겁다.”

어느 방송작가의 말이다. 최근 일반인의 출연이나 사연으로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프로그램이 많다. 그런데 우리를 울고 웃게 만들었던 그들의 ‘사연’이 모두 꾸며낸 이야기라면?

‘거짓 사연’들이 많아지자 속은 시청자들은 ‘노이즈 마케팅이다’ ‘시청자를 우롱하냐’며 제작진들의 ‘출연자 검증 여부’에 대해 불만을 나타냈다.

허나 뿔난 시청자만큼 해당 프로그램 제작진들 또한 의도적으로 속이는 사연자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일반인을 출연시키는 프로그램의 제작진들은 ‘진짜 사연’을 찾기 위해 최소 3∼4번의 검증 과정을 거친다. 간단한 서류 확인부터 전화 인터뷰, 방송용 인터뷰 등을 통해 ‘가짜 사연’을 골라내기도 한다. 한 방송사 관계자는 “요즘은 과거 인터넷 게시판에 댓글을 남긴 이력도 ‘네티즌 수사대’를 통해 알려져 제작진의 힘으로 해결되지 못한 부분이 드러날 때는 곤혹스럽다”라고 말했다. 이어 “법적인 이유로 (사연)참가자의 개인정보를 물을 수 없다”며 “속이려고 작정한 (사연)신청자를 막을 방법은 없다”고 하소연했다.

공감얻는 감동사연
진실없는 방송으로


가슴 절절한 사연으로 가수가 되고 싶어하는 이들의 도전이 돋보이는 <슈퍼스타K>가 얼마 전 시즌5(이하 <슈퍼스타K5>)까지 제작됐다. 얼마 전 <슈퍼스타K5>에는 ‘말더듬이’ 사연으로 지원자 박상돈씨가 출연했다. 말더듬으로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박씨는 “노래를 통해 극복하고 있다”며 눈물을 보였고 장애를 극복하는 박씨의 사연에 심사위원들과 시청자들은 그를 응원했다.

그러나 박씨가 사기 및 횡령 혐의로 고소당한 사실이 알려지며, 그의 사연 또한 거짓이 아니냐는 논란에 휩싸였다. 경찰에 따르면 박씨는 페라리 차량대여를 빌미로 피해자 A씨로부터 차량 운송비 등 50만원을 입금받은 뒤 잠적하는 등 같은 수법으로 여러 사람에게 금전을 편취한 혐의를 받고 있다. 논란이 되자 <슈퍼스타K5>측은 “박씨가 슈퍼위크에서 탈락했다”고 전하며 박씨가 출연하는 장면을 통편집해 사건을 일단락했다. 제작진과 연락을 끊은 채 잠적한 박씨는 현재 사기 및 횡령혐의로 기소중지됐다.

<슈퍼스타K5> 제작사인 CJ E&M 측은 법적 문제 때문에 “지원자를 받을 때 개인 신상과 관련해 자세한 부분까지는 알지 못한다”며 참가자의 양심에 맡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시청자 속이는 사연 넘쳐 제작진 골머리
‘진짜 찾기’최소 3∼4번 검증도 무용지물

외모 콤플렉스 때문에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느끼는 여성들에게 성형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주는 CJ E&M <렛미인> 또한 ‘거짓 사연’의 피해를 입었다.

<렛미인>은 MC와 성형외과, 정신외과의 등으로 이루어진 닥터스가 신청자의 사연을 듣고 최종 선정하여 치료해주는 성형 프로그램이다.

지난 8월, <렛미인>에 급격한 노화로 남편에게 버림받는 ‘라보니 루나’씨의 사연이 방영됐다. 방송에 출연한 루나는 “변한 외모와 늘어진 살 때문에 남편의 폭력과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에 시달린다”며 눈물흘렸다.
 최종 선정된 루나는 방송절차에 따라 우울증 검사를 했다. <렛미인> 관계자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당시 루나는 우울증 검사의 모든 문항에 '심하다'고 체크했다”며 “실제 우울증 환자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에 루나의 수술을 맡은 의료진이 의구심을 제기했고, 제작진이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이후 루나의 거짓말이 하나둘씩 드러났다.


5년 전, 한국인 남편과 결혼한 루나는 한 다문화신문에 우울증을 극복했다는 글을 기고했다. “내가 가진 재능과 꿈을 한국에서 마음껏 펼쳐보고 싶었던 저는 속을 풀어 놓을 친구 하나 없이 좌절과 상처 속에서 우울증을 앓기 시작해 자살을 시도했다”며 “이후 남편의 격려과 보살핌 속에서 내 스스로 다시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고 여러 가지 활동을 시작했습니다”고 작성한 루나의 글은 방송에서 언급했던 말과 상반되는 주장이었다. 노안 외모로 외부활동이 어렵다는 말 또한 거짓이었다. 도리어 다문화극단과 TV프로그램에서 공연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결국 루나는 <렛미인> 사상 초유로 선정이 취소됐다.

‘의도적인 숨기기’
“법적 책임 묻겠다”

SBS <짝>은 일반인 싱글남녀가 일주일동안 함께 지내며 자신을 짝을 찾는 방송이다. ‘진실된 만남’이 전제인 <짝>에 의류 쇼핑몰 모델·운영자들이 경력을 숨기고 출연하는 경우가 잦아지면서 프로그램의 진실성 여부에 대한 지적이 많다. SBS <짝>은 배우자를 찾는 프로그램인 만큼 ‘홍보’로 의심되는 자기소개서는 철저히 거른 후 각종 증명서 등으로 학력·재직 여부를 확인한다. 이와 같은 제작진의 노력에도 <짝>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2011년 <짝> 돌싱특집에 출연한 한 여성 출연자가 에로영화 주인공과 흡사하다는 의심에 이어 지난해 7월 출연한 남성 출연자 또한 ‘에로배우’ 출신으로 밝혀졌다. 문제의 남성이 출연한 방송이 나가자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최근 <짝>에 출연한 한 남자와 성인물에 등장하는 남성의 체격과 점 네 개의 위치가 똑같다”고 주장하는 글이 올라왔다. 논란이 커지자, <짝> 제작진은 “성인용 방송 출연이 사실인 것 같다”며 사실을 인정했다. 일부 네티즌들이 “직업의 귀천이 어딨냐. 에로배우는 배우자 찾으면 안 되는 것이냐”라고 옹호하자 제작진은 “에로배우 출신은 짝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아니다. 제작진에게 미리 공지를 했다면 출연을 시키지 않았거나 그와 관련한 정보를 방송을 통해 제공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촬영 전, 출연동의서 작성 과정에서 과거 매체에 출연한 적이 있냐는 항목에 없다고 응답한 남성 출연자에 대해 “일반인들이 짝을 찾는데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조건을 알리지 않음으로써 프로그램의 진정성을 훼손한 점을 그냥 넘길 수 없다.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특이한 사연으로 연일 화제를 모으는 tvN <화성인 바이러스>는 수많은 ‘거짓 사연’으로  ‘홍보를 위한 방송’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2010년 tvN <화성인 바이러스>에 ‘아우라 피부녀’ 박현숙씨가 출연했다. 박씨는 결혼 5년차 주부임에도 불구하고 무결점 피부로 많은 여성들의 부러움을 샀다. “고현정에 피부만큼은 뒤지지 않을 자신있다”며 미스코리아 수상과거를 고백한 박씨는 무결점 피부의 비결인 ‘노터치 피부 관리법’을 소개하기도 했다. “기름진 것을 피하기 위해 일년에 고기는 5번 정도만 섭취하며 피부를 건조하게 만드는 커피와 녹차 대신 허브티를 주로 마신다”며 “튀김, 햄버거, 빵, 라면 등을 피하고 와인 한 모금에 물을 4∼5잔 정도씩 먹으며 수분 유지에 최선을 다한다”라고 하는 등 자신만의 피부 관리 비법에 대해 밝혔다.

가족들과의 스킨십도 절대 하지 않는다는 철저한 피부 관리녀 박씨는 알고보니 “피부관리실 대표”였다. 방송이후 한 네티즌은 “박씨가 일반 주부가 아닌 ‘피부 관리실 대표’다”라고 주장했고 이와 같은 사실이 밝혀지며 홍보를 위해 방송에 출연했다는 거센 비판을 받았다. 사실을 밝힌 네티즌은 “이번에 나온 피부녀도 피부관리실 원장님이네요. 화성인은 홍보의 장”이라며 비아냥거리듯 비난했다.

말 바꾸는 사연자…
해명하기 바쁜 제작진

지난 7월 KBS2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에 ‘약술을 사랑하는 엄마’ 때문에 고민이라는 가족이 방송됐다.

집안을 가득 채운 수천 개의 약술로 생활이 어렵다는 사연이었다. 수천 개의 약술은 출연자의 어머니가 10년 동안 담근 것으로 “방안 가득 약술이 있다.”고 고민을 호소하며 “거실, 부엌, 안방, 엄마방이 약술로 꽉 차있다. 내 방에도 못 들어가며 3년째 소파에서 새우잠을 자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술 사업을 구상 중인 것 아니냐”는 MC의 질문에 사연을 보낸 아들의 어머니는 상업목적이 아니며 “5000가지가 넘는 약재로 술을 담가서 내 이름을 걸고 전시하고 싶다” 라는 바람을 밝혀 화제가 됐다.

 ‘약술사랑 엄마’의 사연이 방영되고 일부 네티즌은 이들 가족이 지난해 10월 MBN <리얼다큐 숨>에 말벌사냥꾼 가족으로 출연했다며 사연의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다큐프로에서는 이들 부부가 함께 말벌을 잡아 술을 담그는 장면이 방송됐다. 이를 두고 시청자들은 “부인의 약술 사랑이 고민이라고 했는데 함께 술을 담그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한 담근 약술이 온라인을 통해 판매되고 있는 것이 밝혀져 논란이 불거졌다.일었다.


<안녕하세요> 제작진은 “(다큐)방송 출연 당시 말벌사냥꾼으로 소개돼 곤혹스러웠다고 하더라. 부인에게 촬영 섭외가 와서 도와준 것 뿐, 술 판매를 주업으로 하는 가족이 아니다”며 “조작이나 설정은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안녕하세요>이전에 출연한 다큐 프로그램의 제작진은 “함께 말벌을 채집하는 생활을 한다고 했다”며 “이 때문에 촬영도 함께 이뤄진 것이다”라고 반박했다.

신상·경력 숨기고 출연
신분 세탁했다가 덜미도

지난 2011년 MBC <100분 토론>은 이른바 ‘신촌 냉면집 논란’으로 방통심의위로부터 주의 조치를 받았다.
‘SNS 규제 논란’의 주제로 제작진이 사실 확인 없이 SNS 심의에 찬성하는 발언을 내보낸 것이다. 생방송 도중 전화로 “신촌에서 10년 동안 냉면 음식점을 운영했다”고 밝힌 한 시청자는 “손님이 종업원에게 욕설을 들었다는 거짓 정보를 트위터에 띄워 나쁜 소문이 일파만파로 퍼지는 바람에 음식점이 폐쇄당하는 피해를 입었다”고 말했다.




방송 이후 <100분 토론> 홈페이지 시청자 게시판에 “수만 명이 리트윗했다는 냉면집, 리트윗했다는 사람 한 명도 못 찾겠네” “전화한 사람 말대로 신촌 냉면집 쳐도 그런 말이 안 나오는데?”라는 글들이 올라오면서 냉면식당의 진실성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논란이 커지자 MBC <100분 토론> 제작진은 홈페이지에 “서울 모처에서 학원을 운영하던 중, 해고된 강사가 허위사실을 트위터로 유포시켜 큰 정신적 물질적 손해를 입었던 억울한 심경을 밝히고 싶었으나 자신의 익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학원을 식당으로 바꿔 이야기했다”고 해명했다. 이어 “사전확인에 미흡함이 발생해 사실과 다른 내용이 방송되게 된 점 깊이 사과드리며, 앞으로 유사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라는 제작진의 공식 사과문과 해당 시청자에게 받은 사실확인서 원본을 올렸다.

팔팔 나는 98세 노인
알고보니 전과 9범


올해로 33주년을 맞은 KBS <전국노래자랑>에도 황당한 ‘거짓말쟁이’가 등장했다.

지난해 10월 충북 청주시에서 열린 <전국노래자랑>에 안복영 할아버지가 참가했다. 98세의 나이로 출연한 안씨는 사회자 송해에게 ‘동생’이라는 호칭을 써가며 고령의 나이에도 정정한 모습을 보여줬다. 무대 위를 뛰어다니며 트로트 가요를 부른 안씨는 인기상을 수상했고, 연말 결선에서도 인기상을 한 번 더 받았다. 나이에 비해 정정한 할아버지(?)인 안씨는 지난 1월 한 아침 교양프로에도 출연해 건강비법을 설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 안씨의 방송에서 알려진 나이보다 38살 어린 60세로 9범 전과자였다.

안씨는 유가증권 위조죄로 2년동안 교도소 신세를 진 뒤 2005년 출소해 고아인 척하며 청주의 한 목사에게 접근했다. 많은 주름과 이가 없는 노안 외모의 안씨는 목사의 도움을 받아 출생년도를 1915년으로 신고해 95살의 나이로 2009년 새 호적을 얻었다.

새 신분을 얻은 안씨는 손에 강력접착제를 발라 지문을 손상시키는 등 치밀하게 90세 노인으로 살며 지난 1월까지 48개월 동안 2285만원의 기초노령연금, 장수수당과 기초생계비를 챙겼다.

이어 5만원 미만의 복권을 위조해 총 47만원의 당첨금액을 타낸 안씨는 위조 복권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에게 덜미가 붙잡혔다. 안씨를 검거한 경찰 관계자는 “안씨가 치아도 없고 흰 수염을 길러 99세 노인으로 착각할만 했다”라고 전했다. 현재 안씨는 허위 가족관계등록부를 만들고 복권을 위조한 혐의 등(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등)으로 구속됐다.


최현경 기자<mw287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끊이지 않는' 스타들의 거짓말
재미에 급급…입만 열면 뻥?

클라라는 최근 거짓말 논란과 해명으로 화제를 모았다. KBS <해피투게더>의 ‘야간 매점’코너에 출연한 클라라는 소시지에 파스타면을 넣어 요리하는 기발한 레시피를 소개했다. 

MC 박미선이 “이걸 어떻게 생각했냐”고 묻자 클라라는 “음식에 프레젠테이션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재밌게 먹을 수 있을까 생각하다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방송 이후, tvN <세 얼간이>에서 해당 메뉴가 소개된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이 되자 제작진은 “‘야간매점’코너는 스타가 직접 만든 메뉴를 소개하는 것이 아닌, 즐겨 먹는 야식을 소개하는 것이 기획의도다”라며 “클라라 또한 방송에서 직접 이를 자신이 개발한 메뉴라고 한 적이 없다. 출연자들끼리 대화하고 소개하는 과정에서 오해가 생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작진과 클라라의 상반되는 주장에 네티즌들의 비난이 거세지자 클라라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죄송합니다. 변명, 해명할 여지가 없습니다. 제가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전적으로 제 욕심으로 기인한 저의 잘못입니다. 부디 너그럽게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해명했다.

재치있는 입담의 슈퍼주니어 멤버 이특 또한 거짓말 논란으로 공개사과를 한 바 있다. 2007년 SBS <강심장>에 출연한 이특은 “피겨선수 김연아와 함께 CF촬영하며 친해졌고, 일촌 신청을 했으나 거절당했다”는 거짓말을 해 논란이 됐다. 이후 “김연아에게 피해가 갈까봐”라고 해명하며 공식사과했다.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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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내란 특검팀이 2차 계엄 의혹에 대한 실마리를 풀기 시작했다. 비상계엄 선포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4일 새벽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핵심이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 간 교감과 이날, 군 수뇌부의 움직임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당시 상황을 재구성 중인 특검팀은 윤석열 전 대통령을 재소환할 방침이다. 내란 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은 비상계엄 선포 이후의 상황을 재구성해 왔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의 역할은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고 있다. 특히 2차 계엄 논의 여부는 여전히 의혹에 그치고 있다.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과 김주현 전 민정수석이 무엇을 위한 법률을 검토했는지가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안가 회동 정조준 특검팀은 지금까지 12·3 내란이 어떻게 준비됐는지에 대해 수사력을 집중했다. 북풍 공작과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 국군정보·방첩사령부의 움직임 등이 상당 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내란 이후의 상황을 수사하기 시작한 특검팀은 지난달 24일 오전 10시 박 전 장관을 소환 조사했다.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를 받는 박 전 장관은 13시간가량 조사를 받고 귀가했다. 박 전 장관은 내란 당일 대통령 집무실에서 계엄 선포 계획을 가장 먼저 들은 국무위원 중 한 명이다. 이후 법무부로 돌아와 실·국장 회의를 열고 검찰국에 ‘합동수사본부 검사 파견 검토’ 지시를 내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계엄 당일 법무부 출입국본부에 출국금지팀을 대기시키라고 지시한 혐의도 적용됐다. 계엄 이후에는 정치인 등 수용을 위해 교정본부에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를 지시한 혐의도 있다. 특검팀은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로 그가 지난해 12월3일 오후 11시쯤 대통령실에서 정부과천청사로 이동하면서 통화한 내역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이 통화한 인물은 임세진 전 검찰과장, 배상업 전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신용해 전 교정본부장, 심우정 전 검찰총장 등이다. 임 전 과장은 박 전 장관과의 통화를 마치고 검사·수사관 인사를 담당하는 실무진 2명에게 전화를 걸었고, 배 전 본부장은 출국금지·출입국 관련 담당자들에게 연락했다. 신 전 본부장은 김문태 전 서울구치소장과 연락을 취했다. 박 전 장관은 이후 간부 회의를 열어 관련 논의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다음 날 한상대 전 검찰총장과 연락하기도 했다. 한 전 총장은 퇴직 검사 모임인 검찰동우회 회장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과 탄핵 당시 가장 많이 연락한 인물이다. 국회 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 이후에는 김 전 수석과 비화폰으로 통화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검팀은 두 사람이 2차 계엄 등 후속 대책을 논의했다고 보고 있다. 박 전 장관 측은 김 전 수석에게 포고령에 문제가 있으며 국회가 의결했으니 국무회의를 신속히 소집해 계엄을 해제해야 한다고 전했다는 입장이다. 박성재·김주현 곧바로 2차 계엄 법률 검토? 용산 CCTV 속 최측근들 메모 후 문건 만지작 특검팀은 박 전 장관이 ▲계엄사령부 산하 합동수사본부 검사를 파견하라고 검찰국에 지시 ▲출입국본부 ‘출국금지팀’ 대기 지시 ▲교정본부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 지시 등을 추진했다고 판단한다. 조사를 마친 박 전 장관은 “제가 한 일에 대해 소상하게 다 말씀드렸다”며 “통상적인 업무 수행에 대한 다른 평가를 하는 것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모든 내용을 상세하게 말씀드렸다”고 했다. 이어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지속적으로 특검법의 위헌성에 대해 지적을 했었는데, 이 부분이 현재 특검법에도 시정되지 않은 채 시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 점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어떤 내용을 (특검에) 말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의문이 제기되는 모든 점에 대해 상세히 말씀드렸다”고 답했다.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지’ 묻자 “나는 항상 업무를 했을 뿐”이라고 했다. ‘5급 이상 간부들에게 비상대기를 지시했다’는 주장에는 “부당한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구치소장 연락 지시’ 관련 질문에는 “질문이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수용 지시가 계엄과 관련됐느냐’는 질문에는 “누구에게도 체포·구금하라는 지시를 한 사실이 없다”고 답변했다.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직전 국무회의를 열기 위해 일부 국무위원을 용산 대통령실로 소집했을 때의 CCTV 영상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은 대통령실 대접견실에서 A4 용지에 직접 내용을 메모하고 특정 문건을 들여다봤다고 한다. 특검팀은 그가 윤 전 대통령 등으로부터 문건 형태로 계엄 이후 법무부가 해야 할 조치 등을 지시받고 현장에서 이를 직접 정리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앞서 계엄 선포 당일 대통령실에 모인 일부 국무위원 등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계엄 이후 조치 사항이 담긴 문건을 직접 전달받았다. 최상목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계엄 이후 가동할 비상입법기구 예산 편성 등을 지시받았고,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향신문> 등 언론사에 단전·단수 조치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시를 한 사실 없다” 조태열 전 외교부 장관은 ‘공관을 통해 대외 관계를 안정화시키라’는 지시를 받았다. 박 전 장관 측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개별 지시 문건을 받지 않았고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법무부에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24일 특검 조사에서도 A4 용지에 메모했는지 등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장관 측은 이날 “해당 CCTV 장면을 보여달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특검에 제출했다. 특검팀이 김 전 수석을 소환한 건 지난 7월 초다. 그는 지난해 12월4일 서울 삼청동에 위치한 대통령 안전가옥(안가)에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박 전 장관, 이완규 전 법제처장 등과 계엄 관련 법률 검토를 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모두 윤 전 대통령과는 고교·대학 및 검찰 동기나 선·후배로 윤석열정부 최고위직 법률가들이다. 지난해 말부터 정치권에서 “비상계엄 수사 등 법률적 대응 방안 또는 제2의 내란 모의 가능성을 논의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자 이들은 국회와 경찰 조사에서 “연말에 얼굴 보자는 취지였다”(박성재 전 장관), “신세 한탄이나 하자는 자리였고, 법률을 검토할 겨를도 없었다”(이상민 전 장관)며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은 이 자리에 한정화 전 법률비서관이 동석한 사실을 확인했다. 주변 CCTV 등 안가 회동 참석자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한 전 비서관의 존재를 인지하고 소환 조사까지 진행했다. 특검팀은 삼청동 안가 모임 성격을 ▲비상계엄 선포 절차 사후 보완 ▲대통령 탄핵 대비 법적 대응 논리 개발 자리 등으로 보고 있다. 특히 내란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나온 관련자 진술의 위법성을 면밀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장관과 김 전 수석, 이 전 처장 등은 안가 회동 이후 휴대전화를 바꿨다.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은 지난 3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윤 전 대통령 최측근으로 꼽히는 김주현 전 민정수석,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등 밑에서 일하던 검찰 고위 관계자들은 대통령을 ‘운명 공동체’로 생각한다”며 “박 전 장관이나 김 전 수석에 대해서는 검찰이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았다. 이들에 대해 합리적이고 납득할 만한 수사 결론이 나오지 않으면 국민이 받아들이겠나. 모든 의혹이 해소될 때까지 그 사람들에 대한 수사는 계속돼야 한다. 이들은 죽을 때까지 수사선상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증거 이미 폐기했다? 특검팀은 과거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가 작성했던 수사보고서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검찰 특수본 수사보고서의 제목은 ‘2차 비상계엄 가능성에 대한 의혹 등 정리 보고’다. 수사보고서에는 “12·4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되고 난 직후, 윤 대통령이 계엄사령부 상황실로 찾아가 김용현 국방부 장관에게 ‘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 ‘내가 다시 계엄을 할 테니 그때는 철저히 준비해서 국회부터 장악하라’라고 지시한 정황”이 있다고 적혔다. 해당 의혹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처음 제기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12월6일 비상 의원총회에서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2차 발령을 준비했다는 정황을 공개했다. 검찰이 이 같은 민주당의 의혹 제기와 관련해 수사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계엄사령관인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윤 대통령, 김용현 장관과 함께 합참 지휘통제실 내 별도의 방에 들어갔다고 국방위 현안 질의에서 답한 바 있으나 대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발언했으나 박 총장이 답변한 날인 12월5일은 윤 대통령의 위와 같은 발언이 공개되지 않은 시점”이라며 박 전 총장에 대해 조사 필요가 있다고 적었다. 검찰은 수사보고서에서 시민단체와 언론사 보도 등 2차 계엄 의혹과 관련한 의혹 확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육군 복수 부대에 지휘관 휴가 통제 지침이 내려졌고 비상계엄 선포 이후 경계 태세가 유지되고 있다는 의혹과 계엄 둘째 날 지방 공수여단의 서울 진입 계획이 있었다는 육군특수전사령부 간부의 언론사 인터뷰 등이 그 근거다. 검찰은 윤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에게 ‘국회 문을 열고 들어가 의사당 내 의원들을 밖으로 이탈시킬 것’이라고 동일한 명령을 내렸지만, 지시가 이행되지 않아 2차 계엄이 준비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12월4일 새벽 중요…검도 “수사 필요” 인정 자료 이미 사라졌나…용산 PC 전부 포맷 확인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윤 대통령의 ‘국회의원 이탈 명령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자 김 장관에게 위와 같은 발언(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을 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 보이고, 이와 더불어 ‘추가 계엄 선포’와 관련된 발언을 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이므로 관련 내용 수사 필요성 있음”이라고 적었다. 특검팀은 대통령실 고위 간부들이 조직적으로 2차 계엄 관련 자료를 폐기했다고 보고 있다. 지난달 18일 정진석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한 특검팀은 정 전 실장에게 계엄 이후의 상황을 따져 물은 것으로 파악됐다. 정 전 실장은 불법 계엄 전후 윤석열 전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했다. 그는 계엄 선포 직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 있었다. 국무위원은 아니지만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에 신원식 전 국가안보실장과 함께 참석했다. 이튿날 새벽에 계엄 해제 국무회의가 열리기 전, 윤 전 대통령이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 머물 때 찾아가 만나기도 했다. 정 전 실장은 지난해 12월4일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이후 윤 전 대통령, 박 전 총장, 김 전 장관 등과 함께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 내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의결된 후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와도 통화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앞서 “지난해 12월4일 오전 2시58분쯤 정 전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국회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정부에 도착했음을 확인하고 정부의 신속한 계엄 해제 조치를 촉구했다”고 밝혔다. 정 전 실장은 대통령실 윗선이 계엄 증거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의혹에도 연루돼있다. 특검은 지난 4월 대통령실 컴퓨터(PC) 전체 초기화 계획이 정 전 실장의 지시로 실행됐을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 특검팀은 앞서 별도 전담팀을 꾸려 정 전 실장 관련 의혹을 수사해 왔다. 특검팀은 이날 정 전 실장을 상대로 계엄 당시 국무회의와 대통령실 상황, 추 전 원내대표와의 통화 경위 등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이 부족하다 특검팀은 박 전 총장도 참고인 신분으로 재조사했다. 앞서 박 전 총장은 계엄 당시 계엄사령관으로서 불법 포고령을 발령한 혐의(내란중요임무종사)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박 전 총장도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뒤 윤 전 대통령, 김 전 장관 등과 합참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