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불명예 퇴진한 한상대 전 검찰총장

  • 김민석 ideaed@ilyosisa.co.kr
  • 등록 2012.11.30 19: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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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수 부리려다…제 꾀에 넘어간 총장님

[일요시사=사회팀] 한상대 전 검찰총장의 사퇴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이번 사태를 두고 '검란' '내홍' '사상 초유'라는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검사동일체 원칙'을 내세우는 검찰 조직 내에서 검찰총장과 대검 중수부장의 정면충돌이라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중수부 폐지'를 내건 개혁안에 반기를 들었던 최재경 대검 중수부장에 대해 한 전 총장이 보복성 감찰을 지시하자 전국의 검사들이 들고 일어났다. 결국 일선 검사들이 자신의 수장을 내쫓아 버린 꼴이 됐다.

지난 29일 한상대 전 검찰총장(53·연수원 13기)과 최재경 대검중수부장(50·17기)은 볼썽사나운 싸움을 벌였다. 이날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 8층 검찰총장실 앞은 이른 아침부터 긴장감이 맴돌았다.

대검 소속 직원 10여 명은 총장실 앞에 대기하며 상황을 예의주시했고 일부 검찰 간부들은 총장실과 차장검사실 등을 분주히 오갔다. 이날 오전 9시께 채동욱 대검 차장검사(53·14기)를 필두로 최 중수부장을 제외한 대검 부장검사 전원이 총장실을 찾았다.

이들 참모진은 최 중수부장에 대한 감찰 착수 소식이 발표된 28일 오후 전국 각 검찰청에서 검찰총장사퇴요구가 빗발쳐 나오자 한 총장에게 용퇴를 건의하기 위해 온 것. 이들은 '검란'이 일어날 것을 우려해 일선 검찰청에 집단행동을 자제해 줄 것을 당부해야 했다.

검찰총장 vs 중수부장
중수부 폐지 놓고 갈등

뒤이어 9시40분께 대검 소속 기획관과 단장 및 과장 등 부장검사급 중간간부들이 총장실에 도착했다. 이들은 "명예롭게 퇴진해 달라"며 용퇴를 건의했다. 그러자 한 전 총장은 "그런 얘기할 거면 너희들도 같이 사퇴하라”고 고성을 질렀다. 무너져가는 막장 검찰의 단면을 보여주는 웃지 못 할 한 장면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한 전 총장은 사퇴할 의사가 없음을 내비쳤다. 그러자 서울중앙지검 소속 형사부장들을 주축으로 대표단을 꾸려 한 전 총장을 방문할 움직임이 일었다. 검사들의 의견이 '총장 퇴진 불가피' 쪽으로 모이면서 이날 정오까지 총장이 사퇴하지 않으면 검란이 일어날 조짐도 나타났다. 사태가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지자 한 전 총장은 버티지 못하고 결국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한 전 총장은 다음날인 30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동 대검청사 15층 회의실에서 사퇴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약 2분간 짧은 사퇴의 변을 남기고 물러났다.

한 전 총장은 "저는 오늘 검찰총장 직에서 사퇴합니다. 먼저 최근 검찰에서 부장검사 억대 뇌물 사건과 피의자를 상대로 성행위를 한 차마 말씀드리기조차 부끄러운 사건으로 국민 여러분께 크나큰 충격과 실망 드린 것에 대하여 검찰총장으로서 고개 숙여 사죄를 드립니다"라고 말하며 단상에서 나와 허리를 숙였다.

이어 "저는 이제 검찰을 떠납니다. 떠나는 사람은 말이 없습니다. 검찰 개혁을 포함한 모든 현안을 후임자에게 맡기고 표표히 여러분과 작별하고자 합니다. 여러분,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라며 사퇴의 변을 마무리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 전 총장의 사퇴 기자회견과 관련한 보고를 받고 곧바로 사표를 수리했다. 한 전 총장은 애초 이날 오후 2시 검찰개혁안과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대통령의 신임을 묻는' 조건부 사표를 제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전날 밤 서울서부지검 평검사들이 회의를 열고 한 전 총장에게 개혁안 발표 중단을 촉구하는 등 검찰 내부의 반발이 거세지자 개혁안 발표를 취소하고 사퇴표명만 했다.

검찰개혁을 촉구하는 글을 쓴 뒤 기자에게 속마음을 드러낸 문자를 보내 물의를 일으킨 서울남부지검 소속 윤대해 검사에 대한 논란도 검찰개혁안을 발표하는데 있어 부담으로 작용됐다. 이로써 검찰의 자체 개혁은 일단 무산됐다.


중수부 폐지 두고 내홍…중수부장과 정면충돌
"제발 나가주세요" 검찰 초유 집단항명 사태

검찰총장과 중수부장이 정면충돌한 사상 초유의 사태의 주요 배경은 무엇일까.

바로 '검찰 개혁안'을 둘러싼 의견충돌에 있었다. 최 중수부장은 한 전 총장이 모든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던 반면 한 전 총장은 중수부 폐지를 비롯한 검찰개혁을 통해 MB정권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연명해보려 했던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한 전 총장은 궁지에 몰려 있었다. 서울고검 부장검사의 뇌물 수수, 동부지검 전모 검사의 성추문 사건, 여론 조작 논란을 부른 서울남부지검 윤대해 검사의 문자까지 대형사건이 연달아 터지자 한 전 총장에 대한 사퇴요구가 빗발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 전 총장이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봐주기 위해 법정 최저형인 4년으로 내리도록 개입한 사실이 드러난 것도 큰 파장을 일으켰다.

한 전 총장은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꼼수'를 생각해냈다. 코너에 몰리자 위기 돌파 수단으로 '중수부 폐지 카드'를 포함한 검찰개혁안을 꺼내 든 것이다. 또 한 전 총장은 의견충돌을 빚어온 최 중수부장에 대해 그가 보낸 문자메시지를 트집 잡아 감찰까지 지시했다. 현직 대검 중수부장이 감찰을 받는다는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결과론적으로 이 판단은 '무리수'가 되어 오히려 총장 생명을 단축시킨 꼴이 됐다.

대검이 한 전 총장의 지시를 받고 최 중수부장 감찰에 들어간 표면적 이유는 최 중수부장이 김광준 검사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였다. 김 검사가 서울중앙지검 3차장 등 공보업무를 맡았던 최 중수부장에게 향후 언론대응을 어떻게 해야 할지 묻자 최 중수부장이 문자로 조언했는데 이것이 검사의 품위유지 의무를 위반했다는 것이었다.

중수부장 향해
보복성 감찰조사

한 전 총장은 지난달 28일 오후 이 문제를 보고받자마자 감찰 조사를 지시했다. 또 이준호 감찰본부장에게 긴급 브리핑을 열도록 해 이 사실을 언론에 공개토록 했다. 통상 감찰조사는 결과가 나온 뒤에 언론에 공개하는 것을 생각하면 매우 이례적인 조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총장이 제 뜻과 다른 최 중수부장을 솎아내기 위해 무리하게 감찰을 동원한 정황이 드러났다. 한 전 총장은 김수창 특임검사팀의 "최 중수부장이 보낸 문자메시지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의견을 듣고도 직권으로 감찰본부에 감찰을 지시한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겉으론 김 특임검사가 최 중수부장의 감찰을 의뢰한 것처럼 비춰지게 하면서 정작 한 전 총장 자신은 전면에 등장하지 않는 모양새를 띠도록 하는 꼼수까지 부렸다.

한 전 총장이 본인의 임기를 연명하기 위해 중수부 폐지 카드를 꺼내고 최 중수부장까지 찍어 내리려 하자 일선 검사들까지 나서 한 전 총장에 대해 격앙된 반응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검찰 내부에서 두터운 신망을 받고 있던 최 중수부장은 강하게 반발했다. 그는 "검찰의 잇따른 추문 이후 총장 진퇴 문제 등 대응 방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한 전 총장과 의견 충돌이 있었고 그것이 감찰 조사로 나타났다고 생각한다"며 "문제 될 행동을 일체 한 바 없으므로 이번 감찰조사를 승복할 수 없고 향후 부당한 조처에는 굴복하지 않고 적정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히며 한 전 총장을 정면으로 겨눴다.


다만 한 전 총장이 사퇴하기로 결정하자 최 중수부장 역시 지난달 30일 대검찰청에 출근하면서 기자들에게 "감찰 문제가 종결되면 공직자로서 책임을 지겠다"고 말해 사퇴 의사를 내비쳤다.

중수부 폐지 문제는 처음 나온 이야기가 아니다. 검찰이 정치적으로 논란이 있는 수사를 벌일 때마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정권 차원의 하명 수사, 표적 수사를 일삼는 중수부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검찰은 그때마다 검찰총장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중수부 폐지를 필사적으로 반대해왔다. 검찰은 중수부가 폐지되면 수사권이 약화로 이어지는 만큼 절대 물러설 수 없는 마지노선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런데 검찰 수장이 직접 중수부 폐지를 언급하고 나서니 한 전 총장은 검찰 내부에서 '공공의 적'이 돼버린 것. 그런 한 전 총장이 최 중수부장에 대한 감찰조사 지시까지 내리자 전국 일선 검사들까지 들고일어나 사퇴까지 이른 것이다.

MB정권 승승장구
레임덕 맞자 찬밥

한 전 총장은 1959년 1월28일 서울에서 태어나 보성고등학교와 고려대 법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1981년 제23회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1983년 서울지검 남부지청 검사로 임용된 후 법무부 법무실장·검찰국장, 서울고검 검사장, 서울중앙지검 검사장 등을 역임하며 '독립기념관 부실시공 화재사건' '부산 항운노조 비리사건' 등을 수사했다.


1989년 법무부 국제법무심의관실을 시작으로 주미대사관 법무협력관, 법무연수원 기획과장, 법무부 국제법무과장, 법무심의관을 거쳤다. 특수와 공안 분야 경험이 다소 적은 편이지만, 검찰 최고 요직으로 꼽히는 '빅4' 중 법무부 검찰국장과 서울중앙지검장을 거치면서 '대기만성형'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병풍 의혹'을 제기한 김대업씨를 무고와 명예훼손 혐의로 구속 기소한 것이 참여정부 당시 걸림돌로 작용해 한동안 내리막길을 걸었다. 2003년 인사에서 대전고검 검사로 발령받은 뒤 참여정부동안 지방을 전전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그는 다시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고려대 출신으로 검찰 내 고대 인맥의 좌장격인 한 총장은 법무부 검찰국장, 서울고검장, 서울중앙지검장 등의 요직을 두루 거친 뒤 대망의 검찰총장 자리까지 꿰찼다.

물론 그가 검찰총장이 되는 과정은 순탄치 못했다. 지난해 7월 검찰총장으로 내정될 당시 한 총장에 대해 스폰서, 군 면제, 논문표절, 위장전입, 다운계약서 등 온갖 의혹이 제기됐다. 이런저런 비리가 고구마 줄기 캐듯 계속 나오자 검찰 내부에서도 눈살을 찌푸리며 그의 임명을 반대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이 대통령은 한 전 총장 임명을 밀어붙였고 당시 다수의석을 한나라당도 이에 동조해 지난해 8월 검찰총장으로 취임했다.

MB정부 들어 승승장구 "퇴임대비용 인사"
BBK·내곡동…의혹 모두 잠재운 '소방수'

당시 검찰과 정가에서는 '퇴임대비용 인사'라는 평가가 압도적이었다. 정권 말 레임덕이 오면 측근 및 친인척 비리가 줄줄이 터질 것을 예견하고 대비한 카드라는 것.

실제로 한 전 총장은 이 대통령과 보통 사이가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우선 이 대통령과 한 전 총장은 고려대 동문이다. 또 한 전 총장의 장인 박정기 전 한국전력 사장은 이 대통령 형 이상득 전 의원과 같은 TK 출신이자 육사 14기 동기로 절친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전 총장이 각종 의혹의 당사자임에도 MB정권의 마지막 검찰총장으로 임명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특수 관계 덕분이라는 게 당시 검찰 안팎의 중론이었다.

취임 후 한 전 총장은 'MB 지키기'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 전 의원 연루 의혹이 제기된 이국철 SLS회장 사건 등을 수사하면서도 정작 몸통으로 지목된 이 전 의원에 대해선 서면조사만 했다. 또 이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의혹 건에 대한 봐주기 식 수사를 주도했다.

한 전 총장의 MB 지키기는 서울중앙지검장 시절부터 시작됐다. 지난해 2월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귀국하자 당시 한상대 검사장은 수사를 맡았다. 그리고 수사 착수 2개월 만에 한 전 청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한 전 청장이 갖는 무게감에 비하면 김이 빠지는 수사였다. 그림 로비를 통한 인사 청탁 혐의, 미국 체류 기간에 국내 주정 업체 3, 4곳으로부터 자문료 명목으로 수천만 원을 받은 혐의 등이 전부였다.

한 전 청장을 둘러싼 의혹의 핵심이었던 이 전 의원 등 여권 거물급 인사에 대한 연임 로비, 노무현 전 대통령을 자살로 몰고 간 태광실업 표적 세무조사, 이 대통령 관련 도곡동 땅 실소유주 의혹 등은 사실상 수사 대상에서 제외된 것이다. 한 전 청장이 미국 체류 시절 대기업 3곳으로부터 수억 원의 자문료를 받아 챙긴 것도 '대가성이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한 전 청장 수사는 철저히 개인 비리 차원, 그것도 최소한의 선에서 이뤄진 것이다.

비슷한 시기 김경준 씨의 누나 에리카 김씨가 미군 산하 오산 미군비행장을 통해 귀국해 역시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옵셔널벤처스(옛 BBK투자자문) 자금 319억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는 에리카 김에 대해 검찰은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관련해 정치권에서는 '이명박·에리카 김의 빅딜설'이 나왔다. 에리카 김씨가 BBK 의혹의 잔재를 눈감아주는 대신 검찰이 그의 비위를 눈감아 줬다는 내용의 의혹이었다.

BBK 소방수
초특급 승진

이처럼 이 대통령의 'BBK 의혹'은 한 전 총장에 의해 잠재워졌다. '소방수' 역할을 충실히 해낸 것이다. 두 사건을 깔끔하게 처리한 공로를 인정받은 한 전 총장은 중앙지검 부임 5개월 만에 검찰총장으로 임명됐다. 그리고 그는 2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1년3개월 만에 검찰총장 자리를 물러났다.

검찰 내부에서의 한 전 총장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업무 전반을 잘 파악하고 후배들을 다룰 줄 알아 조직 장악 능력이 뛰어나다"고 말하는 이가 있는 한편 "총장 취임 이후 너무 독단적으로 조직을 운영해 대검과 일선 지검에서 선후배 갈등이 커졌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김민석 기자 <ideaed@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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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대학생 피살 사건에 대한 정부의 뒷북 대응에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급증했음에도 침묵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최초 보도했던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탈옥 사건에 이어 주무부처의 소극 행정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급히 대책을 마련 중이지만 ‘코리안데스크’가 능사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캄보디아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은 수백명이다. 스캠(사기) 산업에 연루된 수만 1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일부는 불법행위라는 걸 알면서도 발을 들였다. 문제는 구금 시설에서 빠져나오려다가 인신매매를 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여러 사건을 인지했음에도 그저 피해자들에게 “기다리라”고만 했다. 감금 한국인 그들은 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인 대상 범죄 피해가 확산하는 캄보디아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현지 공관에 접수된 감금 관련 신고는 약 330건, 외교부 공관 신고를 포함하면 약 550건인 것으로 파악했다. 대다수 사안이 처리된 가운데 현재 처리 중인 신고 건은 70여건이라고 위 실장은 설명했다. 위 실장은 “정부 차원에서 여러 대처를 하고 있지만, 캄보디아 내에서 범죄 대응은 본질적으로 캄보디아 주권 사안이기 때문에 우리가 대응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다”며 “우리 국민 중 불법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발을 들인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최근 현지에서 고문당해 숨진 대학생의 시신 운구가 지연된 상황과 관련해서는 “유가족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공동 부검을 요구한 것과 관련이 있다”며 “캄보디아 측에서는 공동 부검이 흔치 않기 때문에 소화하려면 내부 절차가 있고, 내부 절차가 진행되는 데 시간이 소요됐다”고 부연했다. 위 실장은 현지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 60명 송환 계획과 관련해서는 “빠른 시일 내 그분들을 서둘러서 데려오려는 입장”이라며 “항공편도 다 준비됐다”고 말했다. 돈이 급한 한국인들은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을 보고 동남아로 향한다. 태국이나 라오스 및 캄보디아 국경지대서 피싱 조직에 납치당하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현지 당국에 신고한다고 해도 오히려 살해 협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캄보디아는 필리핀처럼 현지 수사기관 및 공무원들과 범죄조직 사이의 비리가 만연하다. 범죄조직 아지트를 당국이 확인해도 눈감아주는 경우가 다반사다. 현지 코리안데스크 있으나마나 똑같다? 유족·피해자에 “기다려라” 황당 대응 한 경찰 관계자는 “수감 중인 한국인이 다른 조직에 팔려가 인신매매가 벌어지거나 탈출을 시도하면 살해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은 대부분 중국계 갱단인 ‘흑사회’로 구성돼있다. 이들은 캄보디아 고위 공무원들에게 우리나라 돈 수억원을 상납한다. 매수된 공무원은 구속된 조직원을 빼주는 것은 물론, 경찰 급습 시점을 사전에 알려주기도 한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이 드러나기 시작한 건 필리핀과 태국에 주둔했던 흑사회 간부들이 캄보디아에 자리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피싱 조직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필리핀과 태국은 자본주의 국가다. 아무리 부패와 비리가 심해도 공산주의와 독재 국가 체제인 캄보디아보다 심하지 않다”며 “중국 갱단은 원래 필리핀에 자리 잡았다. 마약, 도박 범죄 등으로 여러 번 언급되자 4~5년 전부터 캄보디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캄보디아는 필리핀보다 공무원을 매수하는 비용이 싸다. 경찰관 한 명을 매수해 자신의 인터폴 수배 여부를 확인하는 등 수사 정보를 알기 위한 비용이 한국 돈으로 10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한국인 대상 범죄 급증에 대한 대책으로 캄보디아 ‘코리안데스크(한인 사건 전담반)’ 설치를 추진 중이다. 지난 10일 조현 외교부 장관이 쿠언폰러타낙 주한 캄보디아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항의했다. 영사협의회에서도 코리안데스크 설치 협력을 요청하기도 했다. 경찰청도 최근 캄보디아와의 양자 협의에서 이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코리안데스크는 경찰 협력관과 달리 대사관 등 외교 채널을 거치지 않고 현지 경찰과 소통할 수 있어 합동 수사에 용이하다. 국외도피사범을 추적하거나 한국인 범죄 피해를 파악할 때 교민 사회 등에서 관련 내용을 수집해 현지 경찰관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수사를 돕는다. 실종, 살해… 뒤늦게 논의 현지 경찰관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 국제형사사법공조나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등을 통한 공식 요청보다 빠르게 현지 수사가 가능하다. 필리핀에서 코리안데스크는 한국인을 상대로 자행된 청부살인 등 강력 사건 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 캄보디아 공권력을 신뢰하기 어렵고 현지 치안이 열악한 점 등을 고려해볼 때 최우선 해결책으로 꼽히는 이유다. 국제 앰네스티는 지난 6월 보고서에서 캄보디아 내 범죄 산업이 성행한 원인이 “조직범죄와 부패한 공권력의 결합 구조”에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수사기관 안팎에서는 무의미한 조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캄보디아 당국이 국제 공조에 소극적이기도 하지만 코리안데스크는 수사 권한이 없다는 게 핵심이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최근까지 캄보디아 당국에 20건의 국제 공조를 요청했으나 절반도 되지 않는 답변을 받았다. 특히 캄보디아 당국이 코리안데스크 설치를 세 차례 거부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코리안데스크 출신 한 경찰은 “필리핀은 우리나라 정부가 집요하게 압박해 코리안데스크를 설치한 이후 현지 경찰과의 협조가 가능해졌다. 협조가 된다고 해도 범죄자 송환이나 사건 조사가 이뤄지는 경우는 절반도 안 된다. 캄보디아는 더 힘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찰 파견 무의미? 이 경찰은 “정부 차원에서 강하게 압박을 넣어야 한다. 외교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는 식의 각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리안데스크 설치가 불발될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만큼 경찰관 직무 파견 확대가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파견 경찰관을 선발한 뒤 1년 단위로 재발령을 거쳐 최대 2~3년간 현지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단기간에 경찰 주재관을 늘리는 게 쉽지 않은 게 이유다. 2021년 11월 가나 해군은 한국인이 승선한 어선을 위해 안전조치를 하고 있다. 선례도 있다. 앞서 정부는 러시아, 아르헨티나 등에 경찰 인력을 직무 파견했다. 2020년엔 가나 대사관에 해양경찰관을 직무 파견했다. 서아프리카 해역에 해적이 출몰하면서 한국인 선원 13명이 납치된 데 따른 조치였다.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가나 부처에 공식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동시에 파견 경찰은 물밑에서 움직였다. 현지 해군, 경찰 관계자를 지속해 접촉하며 설득을 이어갔고, 가나에 주재하는 타국 외교 사절과도 교류하며 정보를 공유했다. 또 가나가 필요로 하는 컴퓨터 등 기자재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호감을 얻으며 협의를 이어갔다고 한다. 이는 결국 가나 해군이 투입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소극 행정을 일삼는 우리 정부도 문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이 외교부와 행정안전부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행안부는 지난해 주캄보디아 대사관 경찰 주재관을 증원해달라는 외교부의 요청을 불승인했다. ‘해외 도주’ 황하나 프놈펜 잠적 단독 확인 인터폴·경찰 수배 피하려 피싱조직 연루설도 당시 행안부는 외교부 증원 요청을 불승인한 이유에 대해 “사건 발생 등 업무량 증가가 인력 증원 필요 수준에 못 미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인 범죄 피해는 2022년 81건에서 2023년 134건, 지난해 348건으로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까지 확인된 범죄 피해는 303건에 달한다. 현재 주캄보디아 한국 대사관에서 근무 중인 경찰은 주재관 1명과 협력관 2명 등 총 3명이다. 그나마 이렇게 늘어난 인력도 애초 경찰 주재관 1명만 있다가 지난해 10월과 지난달 직무 파견 형태로 협력관을 1명씩 추가 투입한 데 따른 것이다. 위 의원은 “캄보디아에서 우리 국민이 잇따라 납치·감금 피해를 당하고 있음에도 당시 윤석열정부가 경찰 주재관 증원을 외면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거부한 이유를 이번 국정감사에서 반드시 따져 묻겠다”고 강조했다. 캄보디아는 범죄자들에게 천국이다. 필리핀에서 송환되지 않거나 자유롭게 탈옥해 붙잡히지 않은 텔레그램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과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박정훈 등이 그렇다. 국내에서 수차례 마약 사건의 중심에 섰던 황하나씨도 이들의 수법을 활용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는 지난해부터 황씨가 인터폴 수배 대상에 오르자 태국과 필리핀, 캄보디아 등을 오간 사실을 확인하고 취재해 왔다. 실제로 황씨는 지난해 3월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에서 “지금 태국에 있는데, 아파서 병원에 왔다.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황씨는 수년 전부터 화류계에 몸담거나 연예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재벌가에 연결하는 일종의 브로커를 담당했다. 그로 인해 마약을 강제로 투약당하거나 피해 본 인물이 있을 정도다. 국내에서의 생활이 어려워진 황씨가 캄보디아에서 브로커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범죄자 천국 악당 은신처 인터폴에 체포되지 않으려 캄보디아 피싱 조직에 한국인 여성들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실제 캄보디아 공항에 도착한 한국인 20~30대 여성들은 납치된 이후 여권과 휴대전화를 빼앗겨 범죄 단지 ‘웬치’에 감금된다. 이 여성들은 대부분 유흥업소로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웬치’에는 현재 한국인 1000명 이상이 거주 중이다. 다만 이들의 범죄 연루 여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