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째 못 쉬는 가락시장 사람들

“쉬고 싶은데 그럴 수도 없고…”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최근 국내 최대 농수산물도매시장인 가락시장이 시끄럽다. 가락시장과 구리시장이 동시에 시범 휴업을 진행하면서다. 이를 계기로 주5일제 도입을 둘러싼 논란도 다시 불붙는 분위기다. 농민들과 중도매인들 사이 갈등 역시 격화되고 있다. 농수산물도매시장은 특성상 지금까지 주6일 체제로 운영돼 왔지만, 중도매인들은 “하루만 더 쉬게 해달라”며 근무 여건 개선을 호소하는 중이다.

가락시장을 비롯한 농수산물도매시장은 개장 이후 40년 가까이 주6일 운영체제를 유지해 왔다. 일요일을 제외하면 거의 매일 경매가 열리는 구조로, 설과 추석 등 일부 명절을 제외하면 사실상 연중 대부분 운영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동시 휴업
후폭풍

이 같은 운영 방식은 농산물의 특성 때문에 형성됐다. 농산물은 하루가 다르게 생육이 진행되는 ‘생물’인 만큼, 일정 기간 보관하거나 출하를 미루는 데 한계가 있다. 산지에서 수확된 물량을 제때 소화하기 위해서는 도매시장 역시 일정 수준 이상의 개장일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경매 중심의 유통구조도 영향을 미쳤다.

도매시장은 하루 단위로 반입되는 물량을 경매를 통해 소화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특정일에 거래가 중단될 경우 물량이 다음 날로 집중되거나 가격 변동성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

이 같은 이유로 도매시장 개장일은 오랜 기간 큰 변화 없이 유지돼 왔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시장 종사자들의 근무 환경은 상대적으로 개선되지 못했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가락시장의 주5일제 논의는 최근 들어 갑자기 등장한 사안은 아니다. 시장 종사자들의 근무 여건 개선 요구가 지속적으로 제기되면서, 개장일을 줄이자는 논의는 수년 전부터 이어져 왔다. 근무 환경 개선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고, 이를 계기로 개장일을 줄이자는 논의가 본격화됐다.

특히 인력 고령화와 구인난이 심화되면서 시장 운영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진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현장에서는 하루 12시간 이상 이어지는 야간 근무와 부족한 휴식으로 인해 신규 인력 유입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었던 것이 문제였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서울시와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는(이하 공사) 도매시장 개장일을 단계적으로 줄이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공사는 2023년 시장관리운영위원회와 협의체 등을 통해 개장일 감축 방안을 검토한 뒤, 같은 해 11월과 12월 첫 번째 시범 휴업을 실시했다. 동절기와 비수기를 중심으로 토요일 경매를 월 1회 중단하는 방식이었다. 이후 2024년에도 시범 사업으로 이어졌다.

3월 추가 휴업이 진행됐지만, 산지에서 출하 지연과 품질 저하 우려가 제기되면서 4월 예정됐던 시범 휴업은 보류됐다. 당시 농민단체들은 “피해 대책 없이 추진된 정책”이라며 강하게 반발했고, 정부 차원의 개입으로 휴업이 중단되기도 했다.

“하루 더 쉬자” VS “출하 막힌다”
주5일제 두고 농민·상인 갈등 격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4년 하반기에는 휴업 요일을 조정한 2차 시범 사업이 다시 추진됐고, 공사는 휴업 요일 시범 운영 결과 농수산물 가격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농민단체는 이를 “비수기와 기상 영향에 따른 착시효과”라고 반박하며 갈등은 오히려 확대됐다. 지난해 들어서는 3차 시범 사업이 시행됐다. 그해 11월과 12월, 이달과 내달에 걸쳐 월 1회 토요일 휴업을 실시하는 방식으로 추진됐다.

가락시장 주5일제 도입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쪽은 산지 농민들이다. 최근 가락시장과 구리시장이 첫 동시 시범 휴업을 했지만 여전히 반발이 거센 상황이다. 시장 종사자들의 근무 여건 개선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개장일 감축이 현실화될 경우 그 피해가 고스란히 농가로 전가될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농민들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출하 시기’다. 농산물은 공산품과 달리 생산 시기를 인위적으로 조절하기 어렵고, 수확 시기를 놓치면 상품성이 급격히 떨어지는 특성이 있다. 특히 딸기, 오이, 토마토, 참외와 같은 과채류는 하루만 지나도 품질이 크게 저하될 수 있어, 일정 기간 출하가 막히는 상황 자체가 곧 손실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에 가락시장과 구리농수산물도매시장이 같은 날 시범 휴업에 들어가면서 일부 산지에서는 이틀 연속 출하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토요일 경매가 중단된 데 이어 일요일은 원래 휴장일이기 때문이다. 전남 담양에서 25년째 딸기 농사를 짓고 있는 한 농가는 이틀간 수확 작업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평소에는 한 줄기에 달린 딸기 중 일부만 익은 상태에서 선별 수확을 진행하지만, 출하가 막히면서 수확 시기를 놓치자 줄기에 달린 딸기가 한꺼번에 익어버렸다는 것이다. 이렇게 과숙된 딸기는 외관상 멀쩡해 보여도 유통 과정에서 쉽게 무르기 때문에 상품성이 크게 떨어진다.

산지유통센터(APC)에서도 피해는 그대로 드러났다. 선별 과정에서 폐기되는 물량이 평소보다 두 배 가까이 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하루 폐기량이 기존 12~14㎏ 수준에서 24㎏까지 증가했다. 농가 입장에서 가격 하락은 둘째치고, 애초에 판매 자체가 불가능한 물량이 늘어나는 상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출하 지연은 또 다른 문제로 이어진다. 휴업일 이후 출하가 재개되면 그동안 쌓였던 물량이 한꺼번에 시장으로 몰리면서 ‘물량 쏠림’ 현상이 발생한다. 이는 곧 가격 하락으로 직결된다.

매일같이
야간 근무

실제 해당 시기 가락시장 딸기 반입량은 전년 대비 30% 이상 증가했고, 가격은 약 20% 가까이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현상은 특정 품목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구리시장에서도 딸기와 참외 반입량이 크게 증가하는 등 유사한 문제가 확인됐다.

농민들은 이런 결과를 두고 “하루 쉬는 것 이상의 피해가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농민들은 이 같은 피해가 반복될 가능성에 대해 강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현재 시범 사업은 주로 동절기와 비수기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향후 하절기로 확대될 경우 피해 규모는 훨씬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여름철에는 작물 생육 속도가 빠르고 저장성이 낮아 하루만 출하가 지연돼도 상품성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농민단체들은 “시범 사업 자체가 단계적으로 주5일제로 가기 위한 수순 아니냐”는 의심도 제기하고 있다.


실제로 월 1회 휴업 형태로 시작된 시범 사업이 반복되면서, 결국 전면적인 개장일 축소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다. 일부 농민단체는 “월 1회 휴업이 누적되면 사실상 주5일제와 다를 바 없다”며 정책 방향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주6일을 고집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들은 수십년간 이어져 온 주6일 근무체제에서 벗어나 최소한의 휴식권을 보장받기를 원한다.

현재 가락시장의 운영 구조는 일반적인 산업 현장과는 다른 형태를 띤다. 대부분의 경매가 저녁부터 시작해 다음 날 아침까지 이어지는 ‘야간 중심’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중도매인들은 통상 오후 늦게 시장에 출근해 경매에 참여하고, 낙찰받은 물량을 정리·배송하는 작업까지 마친 뒤에야 퇴근한다.

이 과정에서 하루 근무 시간은 12시간을 훌쩍 넘기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런 근무 방식이 주6일 내내 이어진다는 점이다. 공휴일을 제외하면 사실상 일주일에 하루만 쉴 수 있는 구조인데, 이마저도 제대로 쉬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것이 현장 종사자들의 설명이다. 경매 일정에 맞춰 생활해야 하기 때문에 낮과 밤이 완전히 뒤바뀐 생활이 고착화돼있고, 휴일에도 수면 패턴이 쉽게 회복되지 않아 일상생활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물러버린
딸기들


실제로 현장에서 만난 중도매인들은 “몸이 망가지는 게 먼저인지, 일을 그만두는 게 먼저인지 모를 정도”라고 토로했다. 수십년간 같은 일을 해온 고령 종사자일수록 무릎·허리 통증이나 만성 피로를 호소하는 사례가 많다. 단순히 ‘힘들다’는 차원을 넘어 건강 문제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 같은 환경은 인력 구조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가락시장 중도매인의 상당수가 50대 이상으로,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젊은 층 유입이 거의 없는 이유 역시 근무 환경과 직결된다.

장시간 야간 노동과 낮은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로 인해 신규 인력이 시장에 들어오지 않으면서, 기존 종사자들의 부담이 더욱 커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중도매인들이 주5일제를 요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로지 “하루 더 쉬고 싶다”는 요구가 아니라, 현재 구조로는 시장 기능 자체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한 중도매인은 “이대로 가면 10년 뒤에는 일할 사람이 없어 시장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중도매인들 역시 개인적으로는 주5일 근무를 선택하기 어려운 구조에 놓여 있다. 시장은 경매를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일부 점포만 휴무를 선택할 경우 경쟁에서 불리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경매시장의 특성상 참여자가 줄어들면 낙찰 가격이 낮아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는 남아 있는 중도매인들에게는 유리할 수 있지만, 반대로 쉬는 점포는 거래 기회를 잃게 된다. 결국 ‘남들 다 일할 때 나만 쉬기 어려운 구조’가 형성돼있는 셈이다.

거래처 문제도 있다. 중도매인들은 도매시장 내 경매뿐만 아니라, 외부 소매상이나 유통업체와의 거래를 통해 수익을 얻는다. 특정 요일에 쉬게 되면 거래처를 경쟁업체에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이런 이유로 개인 단위의 주5일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현장의 공통된 인식이다.

이 때문에 중도매인들은 개별 선택이 아닌 ‘시장 전체 차원의 제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즉, 특정 점포만 쉬는 방식이 아니라 시장 전체가 동일하게 휴업해야 공정한 경쟁 환경이 유지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노동 강도의 문제다. 중도매인의 업무는 경매 참여에 그치지 않는다.

고령화·구인난 심화…주6일 체제 한계
시범만 3년째…대책도 없는 휴업 시행

낙찰받은 물량을 직접 운반하거나 하역 작업을 돕는 경우도 많고, 상품 상태를 확인하고 가격을 판단하는 과정에서도 상당한 집중력이 요구된다.

특히 과일이나 채소처럼 신선도가 중요한 품목은 짧은 시간 안에 상품 가치를 판단해야 하기 때문에 업무 강도가 높다. 여기에 새벽까지 이어지는 노동까지 더해지면서 육체적·정신적 부담이 동시에 누적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5일 근무는 최소한의 생존 조건”이라는 인식이 강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시장 종사자들이 열악한 환경을 감수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졌지만, 최근 들어서는 다른 산업과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사회 전반적으로 주5일제가 정착된 상황에서, 특정 산업만 여전히 주6일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과연 타당하냐는 문제의식이다.

다만 중도매인들 사이에서도 입장이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취급 품목에 따라 의견이 갈리는 경우도 있다. 상대적으로 저장성이 높은 품목을 다루는 중도매인들은 주5일제 도입에 비교적 긍정적인 반면, 과일이나 일부 신선 채소를 취급하는 중도매인들은 거래 공백에 따른 손실을 우려해 신중한 입장을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흐름은 ‘근무 환경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 무게가 실린다. 특히 고령 종사자 비중이 높은 현실을 고려할 때, 더 이상 기존의 운영 방식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중도매인들은 주5일제 도입이 복지 문제가 아니라 시장 경쟁력과도 직결된다고 보고 있다.

인력 유입이 끊긴 상태가 지속될 경우 장기적으로 유통 기능 자체가 약화될 수 있고, 이는 결국 소비자와 산지 모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논리다.

이와 함께 농민단체들은 대안으로 시장 개장일을 유지한 채 인력을 확충하거나, 종사자들이 교대로 휴무를 갖는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또 정가·수의 매매 확대나 저장시설 확충 등 유통구조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비용 부담과 운영 효율성 문제로 인해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결국 구조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다는 것이다.

보장도 없고
대안도 없고

익명을 요구한 한 가락시장의 도매인 A씨는 “농민들이 반대하는 이유를 이해한다”면서도 “하지만 이대로 주6일제를 하는 것도 더 이상은 무리”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어느 한쪽도 피해를 입지 않는 절충안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도매인 B씨는 “주 4.5일제 논의까지 나오는 시대지만 시장 종사자들은 공휴일도 쉬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우리의 고통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imsharp@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10·29 이태원 참사 당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정재관 현 군인공제회 이사장(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에게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한 사실이 드러났다. 정 이사장은 대한토지신탁의 박종철 대표이사를 ‘낙하산으로 임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박 대표가 김건희 일가의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의 담당자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다.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관련 청문회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10월29일 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이던 정재관 이사장에게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전단지를 제거했음을 보고하는 취지의 문자메시지와 사진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공공기관 인사를 둘러싼 윤석열정부의 정치권 인맥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이태원 참사 개입 정황들 이날 오후 10시51분 박 구청장이 보낸 문자에는 ‘전단지 제거 완료’라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정 이사장은 ‘ㅋ 고생하셨습니다’라는 취지의 답장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메시지가 오간 시간대는 소방 경찰 시민이 뒤엉켜 사람들을 끄집어내고 심폐소생술을 하던 10시49분과 겹친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가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하고 있었다면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뒤바뀐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태원 참사 이후 인파 관리 실패와 초기 대응 부실이 핵심 책임 논쟁으로 이어졌던 만큼, 참사 당일 용산구청이 어떤 업무에 행정력을 투입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다시 제기되고 있다. 박 구청장은 청문회에서 해당 문자와 관련해 “전단지를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는 “우리 업무인 것 같아 전화해 보라고 한 것일 뿐 바로 나가서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청문위원들은 문자 내용과 상황을 근거로 사실상 조치 지시가 있었던 것 아니냐며 강하게 추궁했다. 또 참사 상황에서 대통령실 인근 문제를 별도로 챙기고 이를 대통령경호처 인사에게 보고한 정황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사고 우려 민원 전화가 쇄도하던 때 박 구청장은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진보 단체 전단지를 다 떼어냈다며 사진과 함께 보고 형식의 문자를 보냈다. 이를 받은 정 이사장은 웃으며 “고생했다. 이태원 압사사고 안타깝고”라고 답한 것이다. 이번 문자 공개로 이태원 참사 당시 지방자치단체의 대응 판단과 대통령실 주변 기관과의 관계, 그리고 재난 상황에서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어떻게 작동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박 구청장이 문자를 보낸 정 이사장은 김용현 당시 대통령경호처장과 절친한 육사 38기 동기다. 윤석열 캠프에서 ‘국방정책자문단 육사 8인회’로 통했으며 용산 ‘대통령실 이전 TF’에서 활동했다. ‘21세기 하나회’나 다름없다. 이태원 참사 전단지 제거 의혹 제기 보고받은 정, 대토신 사장 임명 개입? 박 구청장은 수사와 재판에서 이날 오후 10시51분에야 이태원참사를 인지했다고 주장했다. 느낌표까지 쓰며 “전단지 제거 완료”를 보고한 바로 그 시각과 분 단위까지 일치한다. 박 구청장이 참사 현장에 도착한 건 8분 뒤인 10시59분. 그 사이 박 구청장이 어디에 몰두했는지 그리고 대통령실 측근들과 어떤 소통을 한 건지 처음 드러났다. 지난 12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가 연 청문회에서 양성우 이태원 특조위 위원은 “정재관이 전단지 제거를 요청했기 때문에 자랑하려고 보낸 것인가요?”라고 물었다. 이에 박 구청장은 “전혀 아니”라고 답했다. 양 위원이 “정재관을 통해서 경호처장 김용현, 나아가 대통령 내외에게 전달될 것을 의식하고 보고한 것 아닙니까”라고 재차 질문하자, 박 구청장은 아니라고 답했다. 앞서 정 이사장은 특조위 조사에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대통령실에 협조한 걸 자랑하려고 일방적으로 보낸 것 같다”고 진술했고, 이날 청문회에 불출석했다. 현재 정 이사장이 이끌고 있는 군인공제회는 약 17만명 군인 회원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대형 기관이다. 자산 규모는 20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하 기업 가운데 하나인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한 부동산 신탁회사다. 사실상 공제회의 핵심 투자 및 사업 플랫폼 역할을 한다. 문제의 중심에는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대표 박종철의 인사 흐름이 있다. 정 이사장은 2023년 1월 제16대 군인공제회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예비역 육군 준장 출신으로 통상 소장 또는 중장급이 맡아왔던 자리에 임명된 이례적 인물이다. 군 안팎에서는 그의 발탁 배경에 윤 정부 핵심 인맥으로 꼽히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영향력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20조 책임진 원스타 준장 실제로 군인공제회가 창립된 1984년 이래 준장급이 이사장을 맡은 건 정 이사장이 처음이다. 예비역 준장 출신인 정 이사장이 발탁된 데에는 ‘김용현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군 인사에 정통한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군인공제회 이사장은 현역 군인 및 군무원 37명으로 구성된 제113차 대의원회의에서 선출, 국방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취임하기 때문이다. 또 정 이사장은 육군사관학교 38기 출신으로 한미연합사 민군작전처장, 합참 민군작전과장,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등을 거친 군 경력 인사다. 특히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시절 정치권과의 연결고리를 구축하며 윤정부 핵심 라인과 가까운 인물로 분류됐다. 논란은 그로부터 약 4개월 뒤 이어진 박 대표를 선임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대표이사 선임 과정 역시 공제회 이사회 추천과 국방부 승인 절차를 거치는 구조이기 때문에 사실상 모회사인 군인공제회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내부에서는 이 같은 인사 흐름을 두고 “군인공제회 수장 교체 이후 산하 기업 인사까지 연쇄적으로 바뀌는 전형적인 권력 인사 패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대한토지신탁 대표 선임 과정은 공개 채용 형식을 취하지만, 최종 후보자는 군인공제회 이사회의 추천을 받아야 하고 국방부 승인까지 거쳐야 한다. 결과적으로 공제회 수장의 의중이 크게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박 대표의 과거 이력까지 다시 조명되면서 정치적 논란이 확대됐다. 박 대표는 과거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을 담당했던 대한토지신탁 실무 책임자로 알려져 있다. 이 사업은 윤석열 전 대통령 장모 최은순씨 일가가 연루된 특혜 의혹 사건과도 연결된 사업이다. 당시 윤석열 측은 대선 과정에서 공흥지구 개발사업이 대한토지신탁 주도로 진행된 만큼 특혜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자료에서 박 대표가 해당 사업 담당자로 확인됐다. 2018년 12월 사업1본부장으로 퇴사한 박 대표가 정권 출범 이후 다시 복귀한 배경을 둘러싸고 ‘낙하산 인사’ 의혹이 제기됐다. 대한토지신탁은 지난 11월 초 <일요시사>와 통화하며 “2014년 양평 공흥지구 사업은 오래된 만큼, 담당자를 알 수 없다”고 일축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요청한 ‘대한토지신탁 양평 공흥지구 개발 담당자 명단’에는 박 대표를 비롯한 양평 공흥지구 사업 실무자들의 이름이 정확하게 기재돼있다. 김건희 일가 집사로 활동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김건희의 가족 회사인 이에스아이엔디(ESI&D)가 양평 공흥지구 개발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고 의심하고 있다. 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대한토지신탁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박 대표는 2014년 5월27일 양평 공흥지구 사업 담당자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박 대표는 대한토지신탁 사업1본부장으로 근무하다가 2018년 12월 퇴사했다. 2019년과 2020년에는 에이치에스파트너스그룹 사장과 비전알이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그는 윤 전 대통령 당선 이후인 2023년 5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로 복귀했다. 이 같은 의혹은 대한토지신탁의 최근 경영 상황과 맞물리며 더욱 확대되는 분위기다. 대한토지신탁은 부동산 경기침체와 PF 부실 여파로 유동성 압박을 겪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최근 수천억원 규모의 재무 지원을 단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로부터 지급보증과 채권 인수 등을 통해 수차례 자금 지원을 받았지만 경영지표 개선은 제한적이었다. 이 때문에 “군인들의 노후자금이 부실 자회사 방어에 사용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의 100% 전액 출자를 바탕으로 부동산 신탁 및 개발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주요 자금 조달이나 사업에 대한 지급보증을 지원하는 등 모회사를 지원함으로써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를 공모하는 모회사다.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 선임 과정도 군인공제회의 자회사 인사 시스템과 상법 및 관련 법규에 따라 진행된다. 대표이사직이 공석이 되면,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를 공개 채용한다. 지원자들은 정해진 기간 내에 지원서를 제출하며, 대한토지신탁 인사총무팀 등에서 서류 전형을 진행한다. 양평 공흥지구 사업1본부장이 대표이사로 김용현 입김?···군인공제회 연결고리 주목 논란의 핵심은 인사와 경영 책임의 연결성이다. 군인공제회는 군인 복지와 연금 재원을 운용하는 기관인 만큼 정치권 외풍으로부터 독립성이 중요하다. 정 이사장의 임명 배경부터 산하 기업 대표 인사까지 정치적 인맥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기관 운영의 투명성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른 상황이다. 군 관련 기관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공제회 관계자들은 “이사장이 특정 정치 라인으로 임명되면 관련 인사들이 주요 보직에 연쇄적으로 배치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며 “기관의 본래 목적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우선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 공우이엔씨도 자금난 논란에 휩싸일 전망이다. 공우이엔씨는 대한토지신탁과 마찬가지로 군인공제회가 출자한 자회사다. 1993년 설립된 제일종합개발은 1999년 공우개발사업소 창설로 이어졌다. 군인공제회관과 계룡대 등의 시설 관리, 예식장, 사우나, 체력 단련장 등을 직영하는 업체였다. 2000년엔 육군 오수처리시설 용역관리와 환경공사로 사업 분야를 넓혀 나갔다. <일요신문> 보도에 따르면 일부 핵심 사업은 이미 공우이엔씨 손을 떠난 상황이다. 2012년 국우터널이, 2022년엔 문학터널이 무료화됐다. 2023년엔 경북 영천 소재 군 골프장 충성대 체력단련장 운영이 종료됐다. 전자공시시스템에 게재된 2023년 감사보고서는 공우이엔씨 민간사업 관련 보증이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공우이엔씨는 BTL이 아닌 기타 분야 사업에서도 2000억원대 보증을 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기준 공우이엔씨 기타 사업 보증액 규모는 835억원 규모였다. 이 중 시설관리용역 관련 보증액을 제외한 기타 사업 분야 보증액 규모는 394억원이었다. 2년 사이 기타 사업 관련 보증액이 1222억원 불어났다. 2년 사이 보증액이 약 335% 폭증한 셈이다. 이로 인해 자금난 얘기가 고개를 든 것으로 파악됐다. 공우이엔씨 상황은 2024년 들어 악화일로에 접어든 것으로 전해진다. 2023년 기준 공우이엔씨 매출액은 1066억5280만원 규모였다. 그러나 23억2986만원 규모 영업손실을 봤다. 내부적으론 2024년 손실액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내부 불안감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공우이엔씨 적자 허덕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박 대표 인사 사이의 직접적인 개입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군인공제회와 산하 기업 인사 구조상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제기되는 상황이다. 군인들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공공성 기관에서 정치권 인맥 중심 인사가 반복될 경우 제도적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