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사업에 낀 김건희 측근들 막전막후

“돈만 되면 무속·브로커 꼬였다”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은 개발도상국을 상대로 수차례 원조를 진행했다. 이 계획은 윤 전 대통령이 임기 전부터 언급했던 내용이다. 실제 윤석열정부 초부터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에 대외경제협력기금 지원이 시작됐다. 용산 참모들과 주무 부처 등은 자금 회수 불투명을 우려했다. 지원이 강행된 내막에는 ‘김건희의 입김’이 존재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황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 일가. 이른바 김건희 일가의 비리에는 사이비 종교, 무속이 자주 등장한다. 해외 원조 사업에도 개입한 의혹은 최근 드러났다. 공적개발원조(ODA)에 통일교가 언급되기 시작한 것이다. 주무 부처 안팎에서는 시작부터 수상했다는 의심의 눈초리가 많았다.

시작부터
의심 눈초리

윤석열정부는 ODA 공여국 세계 10위를 약속했다.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지원을 통해 개발도상국 간 신뢰 회복에 나서겠다는 목표였다. EDCF는 개발도상국에 저리로 장기간 자금을 빌려주는 원조 제도다. 지원금을 받은 개발도상국은 항구, 다리, 도로, 댐, 병원 등 시설을 짓게 된다.

이 같은 지원은 국가 간 약속이자 사업인 만큼 철저한 심의가 요구된다.

EDCF 운용위원회는 대외경제협력기금법 제7조를 바탕으로 지원 효율성과 한국과의 경제 교류에 도움이 되는지 등을 평가한다. 하지만 윤정부의 EDCF 사업은 심의 과정 자체가 불공정했다는 비판이 거셌다. 대표적으로 캄보디아와 우크라이나 EDCF는 이권 청탁, 주가조작 의혹 등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한국이 캄보디아에 제공한 EDCF 차관은 김건희 특검팀(특별검사 민중기) 수사로 불공정성이 알려졌다. 캄보디아 EDCF 사업이 통일교의 로비로 인한 특혜성 지원이라는 혐의가 제기된 것이다.

통일교 2인자로 알려졌던 윤영호 전 세계본부장은 지난 2022년 3월22일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의 소개로 당선자 신분이던 윤 전 대통령을 만나 통일교가 메콩강 핵심 부지에 종교시설을 건립하기 위해 캄보디아에 공적원조를 늘려 달라고 요청했다.

윤 전 본부장은 2022년 7월 6000만원대 그라프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샤넬 가방 2개 등을 김건희씨에게 전달했다는 게 특검의 수사 결과다. 실제 윤정부는 캄보디아 EDCF 지원 한도액을 기존 7억달러(약 9730억원)에서 두 차례에 걸쳐 30억달러(2022~2030년)로 증액했다.

윤정부 때 EDCF 사업을 수주했거나 수주를 시도했던 희림종합건축사사무소(이하 희림)도 특혜 논란의 주인공이다. 희림은 김씨가 대표인 코바나컨텐츠의 전시회를 후원했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 때 설계·감리를 맡았던 만큼 정권과 유착관계가 깊은 것으로 의심받은 기업이다.

윤 전 본부장이 통일교와 김씨를 연결한 것으로 알려진 건진법사 전성배씨에게 메시지를 보냈는데, 이 메시지에 “희림 대표도 같이 한번 뵙겠다”고 언급했을 정도다.

우크라이나·캄보디아 사업 불투명한데도 추진
정부 논의 전 주가조작범·사이비 종교인 설쳐

<한겨레21> 단독 보도에 따르면 희림은 EDCF로 지원한 캄보디아 국립의과대학 부속병원 건립 사업에 컨설턴트로 참여했다. 참여 시점은 2021년이다.


희림은 윤정부에서 2023년 7월 탄자니아 잔지바르의 컨벤션센터 건립 사업에 참여한다고 발표했다. 잔지바르에 60㏊ 규모의 기업 회의·관광·컨벤션·전시 단지를 조성한다는 게 골자다. 그런데 희림이 탄자니아와 이 사업을 약속하고 2년이 지난 뒤 EDCF 지원이 논의된다.

수출입은행은 이 사업에 EDCF 지원을 하기 위한 타당성 조사를 지난 7월31일 발주했다.

또 희림은 2022년 케냐 나이로비 지능형 교통망 구축 및 교차로 개선 사업과 같은 해 우즈베키스탄 화학 연구개발(R&D) 센터 건립 사업에 컨설턴트 역할로 참여했다. 2023년 탄자니아 잔지바르 빙구니 병원 및 훈련센터 사업, 지난해에는 모잠비크 베이라 및 펨바 국제공항 현대화 사업 등의 타당성 조사 용역을 수주했다.

우크라이나에 약속한 EDCF 지원도 주가조작의 뇌관이 됐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앞서 2023년 윤정부는 우크라이나와 협력해 ▲키이우 교통 마스터플랜 ▲우만시 스마트시티 마스터플랜 ▲보리스필 공항 현대화 ▲부차시 하수처리시설 ▲카호우카 댐 재건 지원 ▲철도 노선 고속화(키이우~폴란드 등) 사업 등을 추진하겠다고 했으나, 현재까지 큰 진전은 없는 상태다.

김씨 주식 계좌 관리인이던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 대표는 2023년 5월14일, 해병대 예비역 단체 대화방인 ‘멋쟁해병’에 “삼부 체크하고”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이틀 뒤 윤석열 부부는 우크라이나 대통령 배우자와 만났다. 이때부터 웰바이오텍 주가가 뛰기 시작했다.

통일교 개입
동남아 지원

이어진 윤정부의 EDCF 논의는 지속해서 관련 주가 상승에 호재로 작용한다. 2023년 5월17일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는 우크라이나 제1부총리 겸 경제부 장관과 만나 EDCF 추가 지원을 약속하는 방안에 가서명했다.

같은 해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은 삼부토건 인사와 함께 폴란드에 가서 ‘우크라이나 재건 포럼’에 참석했다. 삼부토건과 웰바이오텍 주가는 이 시기에 상승했다.

윤정부는 지난해 4월19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에 21억달러의 차관을 제공하겠다는 약정도 했다. 약 3조원에 육박하는 금액이다. 이 차관 협정 직전인 4월9일 삼부토건은 우크라이나 건설사와 우크라이나 내 주택사업 협력에 대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역시 발표 당일 주가가 17%가량 올랐다.

특검팀은 지난 10일 도주했던 이기훈 삼부토건 부회장(겸 웰바이오텍 회장)을 검거했다. 이 부회장이 이끈 웰바이오텍은 삼부토건과 함께 2023년 5월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에 참여할 것처럼 투자자들을 속여 시세를 조종한 혐의를 받는다.

우크라이나 재건주로 묶여 주가가 급등하던 무렵 전환사채(CB) 발행·매각으로 투자자들이 약 400억원의 시세차익을 얻은 것으로 드러났다. 특검팀은 이날 언론 공지를 통해 “서울경찰청 형사기동대와 공조해 오후 6시14분께 이 부회장을 체포영장에 의해 체포했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이 7월17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지 않고 도주한 지 55일 만이다. 그는 차량으로 압송돼 서울구치소에 수용됐다. 이 부회장은 2023년 5∼9월 삼부토건 주가조작에 가담해 수백억원 상당의 부당이익을 취한 혐의(자본시장법)를 받는다.


이 부회장을 비롯한 삼부토건 측은 2023년 5월 폴란드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재건 포럼을 계기로 현지 지방자치단체와 각종 업무협약(MOU)을 맺었다는 보도자료를 뿌려 재건사업을 추진할 것처럼 투자자를 속였다는 게 특검팀의 판단이다.

주가조작과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 재건주로 분류된 삼부토건은 2023년 5월 1000원대였던 주가가 2개월 뒤 장중 5500원까지 급등했다.

특검팀은 7월14일 이 부회장과 함께 삼부토건 이일준 회장, 이응근 전 대표, 조성옥 전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법원은 증거를 인멸하고 도망할 염려가 있다는 이유로 이 회장과 이 전 대표의 구속영장은 발부했다.

다만 조 전 회장에 대해선 혐의 소명이 부족하다는 이유 등으로 기각했다. 이 회장과 이 전 대표는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고 조 회장은 추가 수사를 받고 있다.

주가조작의 기획자이자 주범으로 지목된 이 부회장은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지 않고 여태 잠적해 왔다. 그가 밀항을 시도한다는 정보도 나돈 바 있다.


특검팀이 이 부회장 조사를 토대로 삼부토건 주가조작과 김씨의 연관성을 규명해낼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에서 김씨의 계좌 관리를 맡기도 한 그는 삼부토건 측과 김씨 간 연결고리로 지목됐다. 하지만 특검팀은 별다른 단서를 찾지 못하고 이 전 대표를 별도의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만 재판에 넘겼다.

필리핀 지원은 기획재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권 의원의 압력으로 재개됐다. 필리핀 재무부는 2023년 11월 한국 정부에 EDCF 차관을 요청하는 신청서를 제출했다. 필리핀 전역에 산재한 350곳에 모듈형 교량을 짓는 5억1000만달러(약 7100억원) 규모의 건설 사업인데, 필리핀 정부는 이 가운데 4억3900만달러(약 6117억원)의 차관을 한국 정부에 요청했다.

이 사업은 봉봉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 이름이 들어갔을 정도로 필리핀 정부에 절실한 사업이었다. 필리핀 농촌 지역 350곳에 강철 모듈형 교량을 건설해 농민과 농산물이 이동할 수 있는 농로의 접근성을 개선하는 사업으로 2028년까지 루손섬에 210개, 비사야스섬에 88개, 민다나오섬에 53개의 다리를 놓는다는 계획이다.

기재부, 부실·부패 가능성에 필리핀 "지원 불가" 결론
권성동, 최상목에 압력 행사해 판단 여러 번 뒤집어

필리핀 정부는 이 사업을 추진하면서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차관 신청서를 한국 정부에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필리핀 정부는 차관을 신청하고 한 달 뒤인 2023년 12월 직접 농업개혁부 장관과 차관을 한국에 보냈다. 이들은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와 면담하고, 같은 달 7일 국민의힘 김학용 의원(당시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과 EDCF 기금을 운용하는 수출입은행 관계자도 면담했다.

이 사업에는 필리핀 LCS그룹이 참여할 예정인 것으로도 알려졌다.

기재부는 필리핀의 요청을 받고 해당 사업의 EDCF 지원 여부를 수개월 동안 심의했으나 참여하려는 기업이 없었다. 기재부는 사업 성공 가능성이 작다는 이유 등으로 2024년 2월 “EDCF 지원이 곤란하다”고 결론 냈다. 특히 기재부가 사업 지원을 거절한 결정적인 이유는 부실·부패 가능성 때문이다.

해당 사업에 현지 컨설턴트로 참여한 필리핀 현지 기업 A사는 과거 비슷한 교량 건설사업에서 부실공사를 했고 부정부패 의혹이 있었다. 이 회사는 1996년 200개 교량을 설치하는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고가 납품 논란을 일으켰고, 도로와 연결되지 않아 사용할 수 없는 교량을 설치하는 등 부실공사 문제로 말썽이 됐다.

그러나 권 의원은 당시 최상목 전 기재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에게 “지원을 다시 검토해달라”며 “필리핀 농촌 모듈형 교량 사업에 EDCF를 지원하면, 그 대가로 필리핀 정부로부터 니켈 광산 채굴권을 확보할 수 있다”고 압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업에 참여하려는 국내 기업이 별로 없다는 점과 관련해서는 권 의원이 직접 “대우건설과 삼부토건 등이 참여 의향이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고 한다.

권 의원의 압박에 결국 EDCF 기금을 운용하는 수출입은행의 필리핀 사무소가 5월 필리핀 농업개혁부 차관과 면담을 했다. 필리핀은 이 사업이 필리핀 정부의 최우선 사업이며, 권 의원이 언급한 대우건설이 참여 의사를 보였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선정한 사업 대상지 350곳은 엄격한 검토를 거쳐 선정한 곳이라 사업 진행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도 밝혔다. 그러나 수출입은행이 재확인한 결과 대우건설은 사업지가 너무 많아 관리 측면에서 사업 참여가 어렵다는 입장이었다.

우려에도
압박·강행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해당 사업에 대해 즉시 절차를 중지할 것을 명령했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다행스러운 점은 사업이 아직 착수되지 않은 단계여서 대외경제협력기금 지원 등의 사업비는 지출되지 않았다는 점”이라며 “자그마치 7000억원 규모의 혈세를 불필요하게 낭비하지 않고, 부실과 부패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을 사전에 차단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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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