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시사 취재2팀] 김준혁 기자 = 지난 26일, 스토킹 피해로 신변 보호를 받고 있던 50대 여성이 근무 중 흉기에 찔려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해 논란이 일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이날 오후 5시경, 경기도 의정부시의 한 노인보호센터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던 50대 여성 A씨가 흉기에 찔려 쓰러져 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A씨는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끝내 숨졌다.
경찰은 살해 용의자로 과거 직장 동료였던 60대 남성 B씨를 지목했으나 그는 사건 다음 날인 지난 27일, 서울 노원구 수락산 등산로 중턱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하고, A씨의 휴대전화 포렌식 등을 통해 정확한 범행 경위를 조사 중이다.
이날 이상엽 의정부경찰서장은 “안타까운 사고로 운명을 달리하신 고인의 명복을 빈다”며 “피의자는 사망했으나 본 사건에 대해서는 철저히 수사해 사실관계를 명확히 확인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B씨는 A씨에게서 세 차례 스토킹 혐의로 신고당했던 바 있다. 지난 3월엔 행패를 부리다 A씨 딸의 신고로 경찰의 경고 조치를 받았고, 5월엔 반복적인 문자메시지를 보내 경고장을 발부받기도 했다. 지난 20일엔 A씨 주거지에 찾아갔다가 현행범으로 체포됐지만, “재발되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하는 등 혐의를 반성하고 있다”는 이유로 석방됐다.
경찰은 당시 A씨에 대해 100m 이내 접근 및 연락 금지 등 긴급 응급 조치를 시행했다. 또 전자장치 부착 또는 구금 등의 잠정 조치도 법원에 신청했지만 이는 “스토킹 행위의 지속성과 반복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기각됐다.
이에 일각에선 스토킹 피해자 보호를 위한 현행 법률이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현행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 처벌법)’은 경찰이 내릴 수 있는 긴급 응급 조치 외에도, 법원이 사안의 중대성에 따라 1~4호의 잠정 조치를 결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중 가장 강력한 4호 조치가 발동되면 피의자를 영장 없이 유치장이나 구치소에 최장 1개월간 구금할 수 있으나, 법원은 정식 재판 없이 피의자의 신체 자유를 제한하는 데 대해 매우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승기 리엘파트너스 대표변호사는 지난달 27일 경인방송 라디오 <굿모닝 인천>에서 “정식 재판을 거치지 않은 경우, 법원이 피의자의 신체나 자유를 구속하는 데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며 “사실상 가해자의 양심에 의존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스토킹 범죄의 핵심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완전한 분리”라며 “피해자를 선제적으로 보호하고, 가해자가 피해자의 생활 반경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적극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재범 위험성이 높고 죄질이 불량한 스토킹 범죄에 대해서는 잠정 처분 단계에서 유치장이나 구치소에 유치하는 적극적 처분을 확대할 필요가 있고, 법원도 구속영장 발부 기준을 일정 부분 완화할 필요가 분명히 있다”며 “현재 미국의 약 30개주에서 시행 중인 GPS 위치추적장치 도입도 이제는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국회도서관이 지난 2023년 간행한 <데이터로 보는 스토킹범죄>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3년 7월까지 법원에 신청된 잠정 조치 4호 1800건 중 집행률은 49.6%(894건)에 그쳤다.
이번 사건은 최근 잇따른 스토킹 살인 사건들과 유사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10일 대구에서도 스토킹으로 신변 보호를 받고 있던 50대 여성이 자택에서 살해당했다.
피해자는 스마트워치와 현관 AI CCTV, 순찰 강화 등의 보호 조치를 제공받았지만, 배관을 통해 침입해 무력화됐다. 당시 피의자는 불구속 상태로 수사 중이었으며, 법원이 “증거자료와 피의자가 수사에 임하는 태도, 10년 이상 동종 전과가 없는 점 등을 종합했을 때 구속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지난 5월엔 경기도 화성 동탄에서 전 연인에게 스토킹을 당하던 30대 여성이 납치·살해됐다. 죽기 직전까지 피해자는 무려 9차례 경찰에 신고했으나, 경찰 내부 절차 지연 등으로 보호 조치 및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한편 경찰은 스토킹 등 추가 피해 위험이 높은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올해 3월부터 ‘민간 경호원 제도’를 전국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해당 제도는 민간 경호업체가 최대 14일간 출퇴근 시간대를 중심으로 피해자를 근접 보호하며, 비용은 전액 국가가 부담하는 방식이다. 또 오는 12월까지 ‘위험성 평가제도’를 시범 운영해 맞춤형 신변 보호 조치의 정밀도와 실효성을 높인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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