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61년 억울한 인생 최말자

1964년 채워진 족쇄 풀었다

[일요시사 취재 1팀] 안예리 기자 = 성폭행에 저항하다가 가해 남성의 혀를 깨물었다는 이유로 중상해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최말자씨가 61년 만에 검찰로부터 무죄를 구형받았다. 최근 검찰은 “정당방위에 해당한다”며 무죄를 구형했고, 피해자였던 최씨에게 “마땅히 보호받았어야 했음에도 가늠할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을 드렸다”며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부산지방법원 형사5부(부장판사 김현순)는 지난 23일 오전 11시, 부산지법 352호 법정에서 최말자씨의 재심 첫 공판과 결심공판을 동시에 진행했다. 보통 재심 사건은 수차례에 걸쳐 공판 준비기일, 본안 심리, 결심공판을 진행하지만 이번 재판은 두 차례 공판 준비기일을 거쳐 당사자 간 쟁점을 좁힌 뒤 곧바로 본안 심리와 구형 절차까지 함께 진행했다.

오랜 기다림
이제야 무죄

이날 공판에서 검찰은 무죄 구형과 함께 공개적으로 최씨에게 사과했다. 피고인 최씨에 대한 형사 책임이 없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수사와 공소 과정에서 피해자를 가해자로 몰아간 사법 당국의 책임을 검찰이 직접 인정한 것이다. 구형은 정명원 부산지검 공판부 부장검사가 맡았다.

정 검사는 검찰석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고개를 숙인 뒤 “이 사건은 생면부지의 남성으로부터, 인적이 드문 장소에서 갑자기 가해진 성폭력 범죄에 대해 피해자가 즉각적으로 대응한 상황”이라며 “피고인이 행한 방어 행위는 정당방위로서 과하지도, 위법하지도 않다고 판단되며 이에 무죄를 선고해주시기를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 검찰 조직의 잘못된 판단에 대한 책임을 언급했다.


그는 “검찰은 피해자를 단순히 범죄 피해자로만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따른 사회적 편견과 2차 피해로부터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면서도 “그러나 과거 이 사건에서는 검찰이 그 역할을 다하지 못했고, 오히려 피해자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는 방향으로 작용했다”고 사과했다.

그러면서 “그 결과, 성폭력 피해자로서 마땅히 보호받았어야 할 최말자님께 가늠할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을 드렸다. 이 자리를 빌려 깊이 사죄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정 검사는 발언을 마친 뒤 다시 한번 피고인을 향해 몸을 숙이며 직접 사과의 뜻을 전했다. 공판은 피고인 심문 절차를 생략한 채 곧바로 결심 단계로 이어졌다. 피고인 최씨에 대한 심문 없이 형사 절차의 마지막 단계인 검찰 구형이 곧바로 진행된 것은, 검찰이 사건의 성격을 정당방위로 명확히 판단했기 때문이다.

변호인 측은 이날 결심 의견에서 “이 사건은 1964년이라는 시대 상황 때문이 아니라, 그 당시에도 법리상 무죄가 나와야 했던 사건”이라며 “검찰과 법원의 초기 판단 착오로 60년이 지난 지금에야 비로소 바로잡히는 사법적 오류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법원이 응답할 차례”라며 무죄 선고를 재판부에 촉구했다.

재판 말미에 재판장이 피고인에게 마지막으로 진술 기회를 부여하자, 최씨는 조용히 손에 쥐고 있던 A4용지 한 장을 펼쳤다. 그 안에는 직접 작성한 최후 진술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국가는 1964년, 생사를 오가는 악마 같은 그날의 사건을 어떤 대가로도 책임질 수 없다. 피해자 가족의 피를 토하는 심정을 끝까지 잊지 말고, 꼭 기억해주시길 바란다”고 운을 뗀 최씨는 “지난 61년간 죄인으로 살아왔다. 이제 나의 소망은 하나뿐”이라고 말했다.

성폭행범 혀 깨물어 ‘유죄’
가해자와 결혼까지 종용당해


이어 “후손들이 성폭력 없는 세상에서, 자신의 인권을 지키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대한민국의 법이 만들어지기를, 두 손 모아 빌겠다”고 마무리했다. 최후 진술을 마친 최씨는 고개를 숙여 재판부를 향해 깊이 인사했다.

최씨 사건은 1964년 5월6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남 김해군 대동면 예안리의 한 조용한 농촌 마을에서 벌어진 일이다. 그날 오후, 당시 만 19세였던 최씨는 친구 몇 명과 함께 자신의 집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한가로운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오후 4시께, 인근 마을에 사는 노모씨가 최씨의 집 앞에 불쑥 나타났다. 평소 알고 지내던 사이도 아니었던 노씨는 ‘할 말이 있으니 꼭 만나자’며 집 앞에서 기다렸다.

당황한 최씨는 “할 말이 없으니 돌아가라”며 거절했지만, 노씨는 지속해서 보자고 고집을 부렸다. 집요한 태도에 불쾌감을 느끼면서도, 친구들에게 불필요한 위협이 가지 않도록 상황을 정리하려던 최씨는 그를 큰길까지 데려다주기로 했다. 마을 안쪽의 좁은 골목이 아닌, 사람들이 다니는 큰길이면 곧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씨의 생각과는 달리, 두 사람이 큰길을 향해 걷는 도중 노씨는 갑자기 황당한 말을 꺼냈다. 그는 “키스만이라도 하자”며 애원했고, 이를 단호히 거절하는 최씨에게 끈질기게 달라붙었다. 길가에서 벌어진 실랑이는 20여분 가까이 이어졌다. 노씨는 급기야 최씨를 억지로 붙잡고 바닥에 넘어뜨려 강제로 입을 맞추려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몸싸움이 벌어졌고, 세 차례나 최씨를 땅에 쓰러뜨렸다. 위기감을 느낀 최씨는 노씨가 억지로 자신의 입에 혀를 넣은 순간, 강하게 이를 깨물었다. 혀 끝 약 1.5㎝가량이 절단되며 노씨는 고통에 비명을 질렀고, 피를 쏟으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 틈을 타 최씨는 필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집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사건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피투성이가 된 노씨가 최씨의 집까지 뒤따라왔다. 그는 문 앞에서 “내 혀를 찾아달라”며 울부짖었고, 최씨는 무섭고 당황스러운 상황에서도 남동생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스스로를
지켰는데…

두 남매는 바닥을 뒤져 잘려나간 혀 조각을 찾아냈고, 노씨는 그것을 들고 2㎞가량 떨어진 병원으로 달려가 봉합 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성공적이었지만 노씨는 당분간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해 입원 치료를 받아야 했다.

사건 발생 직후 마을 사람들은 이 일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피해자인 최씨는 성폭행의 위협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저항했지만, 마을 사람들 중 일부는 “혓바닥을 잘랐다”는 부분에 집중하며 최씨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문제는 이후 노씨의 행동이다.

병원 치료를 마치고 돌아온 노씨는 최씨의 집을 찾아와 “이런 일도 인연이니 결혼하자”고 제안했다. 자신을 폭행하려 했던 가해자로부터 ‘혼인’을 제안받은 최씨는 이를 거부했고, 그 순간부터 노씨는 돌연 최씨를 협박하며 돌변하기 시작했다.

그는 “나를 불구로 만든 책임을 져야 한다” “치료비와 위자료를 내놔라”라며 위협했다. 심지어 노씨는 흉기를 들고 최씨의 집에 침입해 협박까지 벌이는 등 폭력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최씨는 결국 경찰에 노씨를 강간미수 혐의로 고소했다. 노씨는 되려 최씨를 중상해죄로 맞고소했고, 당시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의 정황과 최씨의 진술, 혀를 깨물게 된 경위 등을 종합해 최씨의 행위가 정당방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최씨는 혀 절단에 대한 처벌을 받지 않았고, 노씨만 강간미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하지만 검찰에 사건이 넘어가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검찰은 오히려 최씨에게 중상해 혐의를 적용해 구속 수사에 착수했다. 최씨는 아버지와 함께 검찰의 출석 요청에 응해 조사를 받으러 검찰청을 찾았다. 하지만 도착한 당일, 검사는 사전 설명도 없이 그녀에게 수갑을 채웠고, 철문이 설치된 좁은 공간에 가둔 채 조사를 진행했다.

이후 조사 절차가 끝나자, 최씨는 다른 피의자들과 함께 포승줄에 묶인 채 곧바로 구치소로 이송됐다.

이 과정에서 구속영장 제시나 구속 사유에 대한 고지, 변호인 선임권이나 진술 거부권 같은 기본적인 권리 안내는 전혀 없었다. 예고 없는 조치에 아버지는 딸과 생이별한 채 홀로 귀가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최씨는 그렇게 구속된 상태에서 재판이 끝날 때까지 약 6개월 동안 구금생활을 이어가야 했다.

재판 과정에서는 피해자인 최씨에게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 반복됐다.

당시 검찰 수사관은 “남자를 불구로 만들었으면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냐”며 최씨를 몰아세웠고, 담당 검사는 “둘이 결혼하면 간단히 해결될 일”이라며 사실상 결혼을 종용했다. 심지어 법정에서도 판사는 “결혼할 생각은 없느냐”고 물었고, 최씨의 국선 변호인조차 “둘은 이미 다른 사람과 결혼하기 어려운 처지이니 내가 직접 중매를 서겠다”는 변론을 펼쳤다.

최종 판결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법원은 결국 최씨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노씨가 최씨를 강제로 끌고 간 정황은 없다”며 “사춘기 소녀가 이성에 대한 호기심으로 따라간 것일 수 있다”고 적시했다.


강제로 입을 맞춘 행위에 대해서도 “꼼짝 못하게 제압한 것이 아니므로, 이에 저항해 혀를 깨문 것은 방어의 정도를 넘은 것”이라며 정당방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정당방위
한계점

반면 노씨는 성폭력 시도 혐의가 인정되지 않았고, 대신 특수주거침입과 협박 혐의만 적용돼 최씨보다 형량이 적은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강간미수 혐의는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형 집행이 끝난 뒤에도 최씨는 온전히 일상을 회복하지 못했다. 마을 사람들은 오히려 최씨를 손가락질했다. 이후 최씨는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와이셔츠 공장에 다니고, 포장마차를 운영하며 묵묵히 일상을 이어갔다.

이후 최씨는 교육을 받지 못한 한을 풀기 위해 63세의 나이에 방송통신대학교에 입학했다. ‘여성의 삶과 역사’를 주제로 졸업 논문을 썼고, 여기에 자신이 겪은 사건을 사실 그대로 담았다.

이 논문을 본 주변 동료의 권유로 여성단체에 도움을 청하게 됐고, 최씨는 다시 법정에 서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그는 “억울하게 가해자가 된 삶을, 이대로는 눈을 감을 수 없다”는 마음으로 2020년 5월 중상해 사건에 대해 재심을 청구했다.

여성단체와 함께 2년 넘게 당사자와 주변인들의 증언, 사건 기록, 당시 언론 보도, 형사사건부 및 인명부 등 증거를 모았다. 하지만 부산지법과 부산고법은 “검사의 불법 구금과 자백 강요를 입증할 증거가 없다”며 재심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당시 검사의 불법 구금 주장을 입증할 명확한 자료가 없다”고 판단했다.

최씨와 여성단체는 곧바로 대법원에 재항고했다. 그리고 3년이 넘는 법리 심리 끝에, 대법원은 기존 결정을 뒤집었다. 대법원 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2024년 6월 “1964년 당시 최씨가 구속영장이 발부되기 전까지 두 달 가까이 구금 상태였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며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재판부는 “재심은 확정된 유죄 판결의 중대한 오류를 바로잡아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비상구제 절차”라며 “최씨의 진술은 일관되며 당시 신문 기사, 재소자 인명부, 형사사건부, 집행원부 등 객관적 자료와 부합한다. 이를 탄핵할 만한 증거나 사정도 없다”고 판단했다.

이후 2022년 부산고법에서 열린 심문기일에 검찰은 “대법원의 취지를 존중해 재심 개시가 타당하다”는 의견을 재판부에 전달했다. 재판부는 이에 따라 최씨 사건에 대해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고, 본안 심리에 착수했다.

최씨는 사건 발생 60년 만에 다시 피고인으로 법정에 서게 됐고, 검찰은 기존 공소 내용을 유지하면서도 사건의 경위를 전면 재검토했다. 이후 마침내 지난 23일 열린 재심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기존과는 전혀 다른 입장을 밝히며 무죄를 구형했다.

“과거 역할을 다하지 못해”
61년 만에 고개 숙인 검찰

이 사건은 국내뿐만 아니라 외신의 주목도 받았다. 미국 <CNN>은 지난 4월 ‘60년 전 성폭행에 저항해 남성의 혀를 깨문 여성, 이제 그녀는 유죄 판결을 뒤집으려 한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최씨의 재심 과정을 상세히 보도했다.

<CNN>은 “1960년대 한국 사회는 남성의 폭력이 관습처럼 용인되던 시기였고, 최씨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 오히려 가해자로 몰렸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당시 최씨는 단순히 길을 안내해달라는 남성을 따라나섰다가 갑작스럽게 성폭력 위협에 직면했고, 몸싸움 끝에 상대의 혀를 깨무는 방식으로 위기를 벗어났다. 이후 그는 강간미수 혐의로 상대를 고소했지만, 검찰은 오히려 최씨에게 중상해 혐의를 적용해 처벌했다는 점도 상세히 다뤘다.

매체는 또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최씨가 수갑을 찬 채 조사를 받고, ‘순결 검증’이라는 이름의 신체 검사를 강요당했으며, 그 결과가 공개되기까지 했다고 전하며 당시 사법기관의 태도를 “지금의 기준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수준의 2차 가해”라고 지적했다.

특히 재판부와 검찰이 최씨에게 “가해자와 결혼하면 일이 간단히 끝날 수 있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는 점도 문제로 꼽았다.

한국여성변호사회 관계자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판결은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 부족과 여성에 대한 편견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라고 이 사건을 평가했다. <CNN>은 이번 재심이 “정당방위의 기준을 다시 정립하고, 향후 성폭력 피해자의 방어권 인정 여부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최씨 사건은 당시 사법부가 정당방위의 범위를 어떻게 해석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법학도들이 판례를 통해 형법의 적용 범위와 한계를 공부할 때, 정당방위로 보기 어려운 사례로 자주 인용되던 사건이다. 실제로 최씨 사건은 이후 형법 교과서에 ‘정당방위의 한계를 보여주는 대표적 판례’로 소개됐다.

대법원이 1995년 법원 100년사를 정리해 발간한 <법원사>에도 ‘강제 키스 혀 절단 사건’으로 공식 소개됐다.

한편, 공판을 마치고 법정을 나온 최씨는 “이겼습니다”라고 외쳤다. 이어 “아직 실감은 나지 않지만, 지금이라도 잘못을 인정하니 대한민국 정의는 살아 있다고 생각한다”며 “모두 국민 여러분 덕분”이라고 말했다.

관습의 시대
뒤늦은 사과

재판을 지켜본 여성단체 관계자들과 방청객 일부는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법정 내 전광판에는 ‘최말자는 무죄!’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재판부는 이날 재심 공판을 마무리하며, 오는 9월10일 오후 2시를 최종 선고기일로 지정했다. 검찰이 직접 무죄를 구형한 만큼, 사실상 무죄 판결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법조계의 중론이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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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캄보디아 ‘셀허브’ 추적

[단독]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캄보디아 ‘셀허브’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민낯이 드러났다. 주로 수도인 프놈펜 인근과 시아누크빌 범죄 단지가 그들의 주둔지였다. 국내 조직폭력배가 중국 갱단과 결탁해 만든 ‘셀허브’의 경우 피해자만 수십명이다. 이들은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가장했다. 사이트에는 유명인의 사진이 수차례 도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는 사라진 셀허브 엔터테인먼트의 홈페이지. 지난해 7월 <일요시사>가 취재한 이후 대표이사의 이름과 사진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표창장을 받았다며 문서를 위조하기도 했다. 이 기업의 정체는 로맨스 스캠 조직이다. 확인된 피해액만 약 40억원, 피해자는 수십명이다. 한 언론사는 보도자료까지 작성하며 홍보하기도 했다. 조직적 준비 경찰 수사 중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지난 24일, 셀허브 조직원 3명을 각각 구속·불구속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이들은 조건 만남 사이트를 운영한 로맨스 스캠 조직이다. 여성 관련 데이트 상품을 판매하거나 연애 빙자 사기를 일삼았다. 셀허브 조직원이던 A씨는 “연예인 지망생이나 모델과 연락하게 해 준다며 50만원에서 100만원까지 대포통장 계좌에 돈을 입금하게 한 뒤 텔래그램 아이디를 알려주고 연락하게 하는 시스템”이라며 “연결된 여자는 실제 남성이고 한국에서 조직폭력배로 활동하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이 조직은 지난해 3월 캄보디아 범죄 밀집 지역인 태자 단지에서 인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같은 해 5월 사이트를 개설해 조직원들에게 민간인 협박, 중국어 통역 등의 역할을 맡기고 수십명으로부터 약 40억원을 뜯어냈다. 같은 해 7월 <일요시사> 취재가 시작되자 이 조직은 셀허브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의 이름을 ‘김현숙’에서 ‘박소희’로 변경하고 유명인의 사진을 수차례 도용했다. 유 전 장관에게 표창장까지 수여받았다며 피해자들의 의심을 피하려는 꼼수도 서슴지 않았다. A씨는 “조직에서 탈출하려는 사람은 밤새 맞거나 강제로 마약을 투약당하기도 했다. 조직폭력배 출신 한국 사람들이 간부고 일반 조직원은 교민 사이트를 통해 ‘한 달에 500만~1000만원을 벌 수 있다’는 거짓말에 속아 일하게 된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건은 서울경찰청이 수사하기 이전인 지난해 7월부터 강서·영등포·구로경찰서 등에 여러 고소장이 접수됐었다. 하지만 수사는 원활하지 않았다. 주요 혐의자가 해외에 거주 중이거나 피의자 특정이 어려운 게 난관이었다. 수사를 담당했던 한 경찰 관계자는 “캄보디아 프놈펜에 주요 혐의자들이 거주한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지난해부터 공조를 요청했으나 캄보디아 당국이 비협조로 일관했다”며 “고소인분들이 ‘왜 안 잡냐’ ‘내 돈 어떻게 하냐’는 등 불만이 많으셨다. 매번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캄보디아가 협조하지 않으면 조치가 불가능했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3월부터 조직원 모집…태자 단지서 모의 ‘유인촌 표창장’ 걸어 놓고 ‘정상 기업’ 홍보 막막했던 수사는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면서 풀리기 시작했다. 이재명정부가 캄보디아를 압박했고 현지에 구금된 한국인 범죄자 겸 피해자 수십명을 국내로 송환했다. 송환된 인원 중 일부는 셀허브 사건과도 연관된 것으로 파악됐다. 정성학 충남경찰청 수사부장은 지난 20일 청내 프레스센터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들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사기) 및 범죄단체 가입 및 활동 혐의로 전원 구속했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부건(총책 가명, 40대 초반, 한국말을 쓰는 외국인 추정) 조직으로부터 확인된 피해 건수는 110건, 피해액은 93억여원에 달했다. 약 100명의 조직원을 거느린 부건은 지난해 중순부터 올해 7월까지 주로 프놈펜 웬치(범죄 단지) 및 태국 방콕 등지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범행을 벌여왔다. 부건 조직은 지난 2018년 중국에서부터 활동을 시작해 그동안 단속을 피하려 태국, 캄보디아 등지로 거주지를 옮겨가며 범행을 계속해 왔다. 이들은 데이터베이스, 입출금 등을 지원·관리하는 CS팀과 광고를 보고 접근한 피해자를 기망하는 로맨스팀, 검찰 사칭 보이스피싱팀, 코인투자리딩 사기팀, 공무원 사칭 노쇼 사기팀 등 총 5개 팀으로 이뤄진 조직체계를 갖췄다. 이들은 가구판매업을 하러 캄보디아에 갔다고 진술했으나 이후 지역 선·후배 권유, 고액 아르바이트 인터넷 광고 등을 접하고 범죄에 연루된다는 걸 알면서도 조직에 가입해 활동한 것으로 조사됐다. 속아서 조직에 들어갔다고 진술하지 않은 이들의 유입 경로는 ▲지인 포섭 29명 ▲인터넷 광고 등 포섭 8명 ▲현지 카지노 포섭 6명 ▲기타 2명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남성 42명과 여성 3명으로 연인도 있었다. 대부분은 20~30대 연령으로 최소 2개월부터 최대 16개월까지 범행에 가담해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조건 만남 사이트 경기북구경찰청 형사기동대도 전기통신금융사기특별법 위반 등 혐의로 피의자 15명 중 11명을 구속 송치했다. 이들은 지난해 8월부터 한 달간 캄보디아 범죄 단지에서 여성을 사칭, 조건 만남 등을 명목으로 피해자들로부터 돈을 가로챘다. 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성 만남 광고를 낸 후 이를 보고 연락해 온 피해자에게 여성인 척 채팅으로 유인했다. 여성을 소개받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개발한 조건 만남 사이트에 회원 가입과 인증을 받아야 한다고 속여 인증을 위한 돈을 요구했다. 3차례에 걸친 인증 절차 과정에서 여러 게임에 성공하면 가입비를 돌려준다고 속여 피해자로부터 1인당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을 받아 챙겼다. 피해자들이 믿을 수 있도록 별도의 만남 인증과 후기글을 남기는 ‘화력방’도 운영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 규모는 피해자 36명, 피해금 16억원 상당이며, 1인당 최대 피해 금액은 2억1000만원이다. 이들은 대부분 20~30대 남녀다. 최초 범죄집단을 구성한 캄보디아 프놈펜 지역 명칭 ‘툴콕’을 의미하는 ‘TK’파로 스스로를 부르며 총책을 정점으로 한 지휘·통솔 체계를 갖췄다. 조직 운영을 총괄하는 총책, 이를 보좌하며 실무 전반과 인력 공급 등을 담당하는 총관리자, 각 파트 팀원의 근태를 관리하고 지시하는 팀장으로 구성됐다. 또 자체적인 조건 만남 홈페이지를 제작하는 개발자, SNS에 광고 글을 게시하는 홍보팀과 광고를 보고 접근한 피해자를 기망하는 로맨스 2개팀으로 역할을 분담했다. ▲상호 가명 사용 ▲근무 중 휴대전화 금지 ▲사진 촬영 금지 ▲야간에는 커튼으로 외부 차단 ▲다른 부서와의 업무 내용 공유 금지 등의 규칙에 따라 생활하기도 했다. 중국 국적 100명 뒷배 이들은 총책이 마련한 건물에서 2인1조로 합숙했는데 프놈펜 툴콕 지역의 13층 건물을 사용하다가 지난 8월, 현지 단속을 피해 센소크 지역 7층 건물로 이전해 범행을 이어오던 중 현지 수사 당국에 의해 검거됐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SNS 구직 광고나 조직원을 통해 범죄단체에 가입했다고 진술했으며 사기임을 알고도 범행을 지속한 것으로 조사됐다. 피의자 대부분은 현지에서 구금된 중에도 총책이 이른바 관작업을 통해 자신들을 석방시켜 줄 것이라는 말만 믿고 대사관의 도움을 거절하고 귀국하지 않았다. 셀허브 사건 간부들은 타 사건에도 연루됐다. 지난 7일 캄보디아 바벳에 인접한 베트남 떠이닌 지역 국경 검문소 인근에서 30대 여성 B씨가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는데, 숨지기 직전까지 셀허브 간부와 같이 있었다. B씨의 사인은 마약 과다 투약이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B씨가 셀허브에서 한국인 명의의 대포통장을 공급해 왔다고 보고 있다. A씨는 “셀허브에서 일할 사람을 모집하는 역할을 했던 B씨인데 통장을 팔려고 캄보디아에 도착한 한국인들을 유인해 범죄 단지로 팔아넘기고 유인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정보·수사기관도 B씨에 의해 범죄 단지에 넘겨지는 피해를 입거나 유흥업소 일을 강요당한 사례를 확인하고 조사 중이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사실상 마약을 강제로 과다하게 투약당한 살인사건이라는 첩보는 아직 확인 중”이라며 “특정 조직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건 현지 경찰도 수사 중인 내용”이라고 말했다. 대개 조직폭력배 출신…지휘는 중국 조직이 맡아 40억 피해액 환수 불가능 “자금 세탁 끝났다” 첫 데이트하던 연인을 치어 여교사를 숨지게 했던 이른바 ‘대전 머스탱 교통사고’의 피의자도 셀허브 조직원으로 확인됐다. 피의자 전모씨는 2019년 2월10일 오전 10시14분 대전 중구 대흥동에서 면허도 없이 외제차를 운전하던 중 인도를 걷던 조모씨와 박모씨를 들이받아 박씨를 숨지게 하고, 조씨에게 중상을 입혔다. 전씨가 대여한 외제차는 불법 대여 차량이었다. 이 차량은 애초 대구에 사는 C씨가 자신 명의로 캐피털에서 월 115만원씩 주는 조건으로 60개월간 대여한 것이다. C씨는 사촌 안모씨와 함께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나모씨가 올린 ‘외제차 저렴하게 빌려줄 사람을 찾는다”는 글을 보고 접근, 한 달에 136만원씩 받기로 하고 대여한 머스탱 차량을 재임대했다. 나씨는 이렇게 빌린 머스탱 차량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활용해 “외제차를 빌려준다”고 광고하며 또다시 대여업을 했다. 전씨는 나씨가 올린 이 글을 보고 일주일에 90만원씩 주기로 약속하고 머스탱을 빌려 운전했다. 매년 확정되는 범죄수익 추징금은 30조원을 넘지만 환수 금액은 1%에도 미치지 않는다. 법무부가 캄보디아에서 보이스피싱과 로맨스 스캠 등의 범죄로 발생한 현지 범죄수익을 국내로 환수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선 법무부는 “캄보디아 내에서 벌어진 범죄 가운데 현재 국내에서 수사 중이거나 재판 중인 사건이 1차 현지 수사 의뢰 대상”이라며 “이후 국내에서 유죄 선고를 받으면 최종적으로 환수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에 따르면 해외에서 발생한 범죄라 하더라도 피해자가 국내에 있고 피해액이 특정될 경우, 우리 정부가 해외에 범죄수익 환수를 요청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2019년 캄보디아와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을 체결해 2021년 정식 발효됐다. 주요 간부들 타 사건 연루 정보기관 관계자는 “범죄자 개인이 아닌 조직을 대상으로 한 범죄수익 환수 사례는 거의 없다. 특히 국내에서 수사와 재판이 끝나야 한다”며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건 좋지만 이미 늦었다. 범죄조직 특성상 이미 코인이나 대포 통장으로 제3국에 은닉하거나 세탁을 하고도 남았을 시간”이라고 지적했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도 “수사가 끝나고 유죄 판결이 나기까지 수년이 걸리는데 환수 절차는 이 모든 사법절차가 종료돼야 가능하다. 특히 조세회피처로 범죄수익을 옮겨놨다면 환수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봤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