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시사 취재2팀] 김준혁 기자 = 혈세 낭비 논란의 중심에 섰던 용인경전철 손해배상소송에서 대법원이 지난 16일 주민들의 손을 들어줬다. 12년에 걸친 법적 다툼 끝에 내려진 이번 판결은 민간투자사업에서 공무원의 책임을 인정한 첫 사례다.
특히 선출직 공직자의 무책임한 정책 남발에 대해 사법부가 최초로 경종을 울렸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이날 주민소송단 안홍택 공동대표는 대법 확정 판결 후 기자들에게 “오랫동안 (소송해 온) 주민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게 된 것에 대해 감사하다. (이번 판결이) 지방자치단체들이 허투루 예산을 부풀려 편성하지 않도록 하는 좋은 사례가 됐으면 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안 공동대표는 “용인경전철 사업은 지자체가 잘못된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거액의 세금을 특정 사업자에게 준 대표적인 방만 경영 사례”라며 “‘애먼 돈’이라는 오명을 썼던 혈세 낭비에 대한 감시와 견제가 주민 손으로도 가능함을 보여준 역사적 판결”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대법원 2부(주심 엄상필 대법관)는 용인경전철 사업에 대한 손해배상청구를 위해 주민소송단이 낸 재상고심에서 이정문 전 용인시장과 한국교통연구원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하급심 판단을 확정했다. 무리한 사업 추진으로 인해 시민들이 입은 손해를 지자체장과 관계기관이 직접 배상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다만 용역을 진행했던 개별 연구원 3명에 대해선 ‘독자적 불법 행위 요건’ 등 추가 심리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재차 파기환송했다.
재판부는 “연구원들 개인의 행위가 용인시에 대한 독자적인 불법 행위에 해당하려면 사회상규에 어긋나는 위법한 행위임이 인정돼야 한다”며 “원심은 이를 개별적·구체적으로 심리하지 않은 채 이들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이날 대법 확정 판결에 따라 이 전 시장과 한국교통연구원은 용인시에 손해배상을 해야 할 처지가 됐다. 일각에선 구체적인 비율 산정을 위해 용인시와 재차 민사소송을 진행해야 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용인시는 절차대로 진행하겠다는 입장인 반면, 한국교통연구원은 논의 중인 관계로 입장 표명을 미뤘다.
17일, 용인시 관계자는 후속 조치 등 향후 계획을 묻는 <일요시사> 질의에 “손해배상 비율 조정 등에 대한 부분은 관련 법을 검토해 절차대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국교통연구원 관계자는 “현재 내부 논의 중이며 구체적인 입장은 나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용인경전철 손해배상소송의 발단은 지난 2010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1조원이 넘는 민간자본 투자로 건설된 용인경전철은 운영사 캐나다 봄바디어와 최소 운영수입 보장(MRG, Minimum Revenue Guarantee) 비율 등의 문제로 국제중재재판까지 갔으나, 용인시가 패소하면서 3년간 운행이 중단됐다.
이후 지난 2013년 4월에 개통됐으나 하루 평균 이용 승객이 약 9000명 수준에 그쳤다. 이는 당초 한국교통연구원이 예상했던 16~20만명에 크게 미치지 못해 ‘혈세 낭비’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언 공동대표 등 용인시민 8명은 지난 2013년 10월, 이정문·서정석·김학규 전 시장과 한국교통연구원 및 용역에 참여한 연구원 등 총 34명을 상대로 총 1조232억원 규모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주민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당시 부풀려진 수요 예측과 과도한 공사비 및 운영사 한 곳만을 우선협상 대상으로 선정한 점 등을 지적하며 “지자체와 시행사 사이 계약 방식이 시민 세금에 부담을 준 불법 행위”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1·2심 법원은 이들의 주장을 “주민감사 청구와의 연계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를 들어 대부분 각하했다. 재판부는 전직 시장과 한국교통연구원 등은 소송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으며 김 전 시장의 보좌관 등 일부에 대해 10억원대의 배상 책임만 인정했다.
재판은 상고심으로 이어져 지난 2020년 7월, 대법원에서 주민소송 대상 범위를 넓혀 대부분의 책임자가 손해배상청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이후 지난 2024년 2월, 서울고등법원 환송심에선 “교통연구원이 수요 예측의 타당성을 검증하지 않고 협약 내용을 추진한 것은 시장에게 최소한의 주의 의무를 위반한 행위”라며 이 전 시장, 한국교통연구원 및 연구원들에게 약 214억6000만원을 용인시에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번 판결은 지자체의 과도한 사업 추진에 대한 책임을 물은 첫 사례라는 점에서 타 지자체의 민자사업에도 상당한 파장을 일으킬 전망이다. 부풀리기식 수요 예측으로 인한 구조적 적자를 안고 있는 의정부경전철(연 200억), 부산김해경전철(연 800억), 인천 월미바다열차(연 50억) 등도 시민 부담이 계속되고 있는 만큼, 책임 추궁의 움직임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
법조계에선 이번 판결이 선거철마다 반복된 무책임한 개발 공약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용인경전철 사업’은 이 전 시장의 선거공약에서 출발한 것으로, 표심을 얻기 위해 실현 가능성을 뒷전으로 한 포퓰리즘 정치가 결국 시민들의 재정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남았기 때문이다.
한편 이 전 시장은 최근 3년간 용인시 처인구 보평역 지역주택조합 주택사업에서 방음벽 공사 수주에 편의를 제공하고 건설업체 대표로부터 1억6000만원가량을 수수한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 위반)로 지난 2일 구속 기소됐다. 이 전 시장에 대한 재판은 추후 수원지법에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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