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일,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서 8인 전원 일치로 파면을 결정했다.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파면 결정이 나온 직후 국회서 "무엇보다 먼저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여당으로서 역할을 다하지 못한 데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사태로 많은 국민이 느꼈을 분노와 아픔에 대해서도 무겁게 인식한다"며 "국민 여러분께서 주시는 비판과 질책을 모두 달게 받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권성동 원내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서 “2개월 후면 대선이다. 시간은 촉박하지만 절대로 물러설 수 없고, 져서는 안 될 선거”라면서 “승리를 위해 우리부터 하나로 뭉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원내대표는 “피와 땀과 눈물로 지키고 가꿔온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험천만한 세력에게 맡길 수 없다”며 “단결된 힘으로 자유민주주의와 헌정 질서를 지키려는 모든 시민, 안정과 통합을 바라는 모든 국민과 함께 힘을 합쳐야 한다”고 말했다.
파면 당사자인 윤 전 대통령도 이날 법률대리인단을 통해 낸 메시지서 "많이 부족한 저를 지지해 주시고 응원해 주신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고 밝혔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그동안 대한민국을 위해 일할 수 있어서 큰 영광이었다"며 "사랑하는 대한민국과 국민 여러분을 위해 늘 기도하겠다"고 덧붙였다.
권 비대위원장은 국민을 향해 사죄하며 승복 발언을 했다. 그러나 권 원내대표와 윤 전 대통령은 국민이 아닌 국민의힘 의원들과 지지자들에게 각각 조기 대선과 죄송하다는 말만 했다. 승복 선언도 하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 파면 선고 후 국민의힘 잠룡들도 한마디씩 했다.
유승민 전 의원은 “보수 재건에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고, 한동훈 전 대표는 "끝이 아니다"라며 "함께 고통을 나누고 함께 극복하자"고 했고, 안철수 의원은 “오늘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존중한다”며 탄핵 심판 결과에 승복한다고 했고, 오세훈 서울시장은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며 서울 시내 집회 안전 관리를 당부했다.
이들 모두 대선 출마는 언급도 하지 않았다.
일찍이 윤 전 대통령의 탄핵이 인용될 시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밝혔던 홍준표 대구시장도 어제 "다음 주 책 두 권을 차례로 출간하고 순차적으로 사퇴 절차를 밟을 것"이라는 채널A 보도에 대해 “사실무근”이라며 “당혹스럽다”고 밝혔다. 대선 출마 선언에 대한 부담을 표출한 셈이다.
여권 잠룡들도 대선 출마를 저울질하는 분위기다. 그런데 국민의힘 일부 지도부는 자기 당에서 배출한 대통령이 두 명이나 파면된 것을 망각하고 윤 전 대통령 파면 직후 조기 대선에 대해 언급했다.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 같다. 윤 전 대통령도 어제 오후 위로 차 방문한 권 비대위원장과 권 원내대표에게 대선서 꼭 승리하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 파면 후 정권을 빼앗긴 경험이 있는 국민의힘이 이번엔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어도 탄핵 정국 내내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지층이 탄탄했다는 이유로 다음 대선서 승산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국민의힘은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직후 열린 국민의힘 비공개 의원총회서 ‘조기 대선에 당 소속 후보를 출마시키지 말자’는 취지의 주장도 나왔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국민의힘이 박 전 대통령에 이어 연속 두 번이나 대통령이 탄핵된 당으로선 절대 대선서 승리할 수 없다.
국민의힘 당규엔 ‘선출직 공직자의 공직선거법 위반 등으로 인해 재보궐선거가 발생한 경우 당해 선거구의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을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
그런데 2023년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서 유죄 판결로 구청장직을 상실해 보궐선거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김태우 전 구청장)가 다시 후보로 공천됐다. 윤 전 대통령의 사면·복권과 함께 국민의힘이 그를 후보로 선출했지만 결과는 참패였다.
국민의힘이 당규를 ‘않는다’가 아니라 ‘않을 수 있다’로 만들었기 때문에 문구 적용에 따라 김태우 전 구청장이 보궐선거에 나갈 수 있었지만, 유권자들은 냉혹하게 심판했다. 국민의힘이 이런 사실을 가볍게 봐선 안 된다. 지난해 1월, 당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자당의 귀책사유로 재보궐선거가 진행될 경우 후보자를 내지 않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이참에 “대통령이 탄핵돼 조기 대선을 치르게 될 경우 후보를 내지 않는다”는 당규를 만들어서라도 국민의힘이 대선후보를 내지 말아야 한다.
국민의힘은 더불어민주당이 “귀책사유가 자신들에게 있으면 후보를 안 낸다”는 당규를 개정해 박원순 서울시장과 오거돈 부산시장의 성 추행 문제로 치러진 2021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냈다가 참패한 사실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민주당은 당시 모든 선거서 선전했지만, 보궐선거서 진 이후 대선·지방선거까지 참패했다.
필자는 비상계엄 정국 때부터 국민의힘이 플랜B를 가동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그런데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된 현 상황서 조기 대선 승리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윤 전 대통령의 탄핵은 국민의힘의 탄핵이나 마찬가지다. 국민의힘은 탄핵당한 당이 대선후보를 낼 경우 국민은 절대 그 당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망각해선 안 된다.
국민의힘이 차라리 이번 대선에 후보를 내지 말고 보수 재건을 위해 노력하면서 특히 선출 기준을 만들어 당이 배출한 대통령의 탄핵이 더 이상 발생되지 않도록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래야 국민의힘이 2026년 지방선거와 2028년 총선서 국민적 지지를 받아 탄핵으로 실추된 명예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