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우리나라 헌정사에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서 가결된 사례는 3건이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그리고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이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대 위에 섰다. 흥미로운 대목은 대통령마다 달랐던 국민 반응이다.

헌법재판소(이하 헌재)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 결과를 3월경에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한두 차례 변론기일이 더 진행된다고 해도 윤 대통령의 파면 여부가 결정되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으리라고 전망하고 있다.
두 쪽 난 민심
현행법상 헌재는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서를 받은 뒤 180일 이내에 결론을 내려야 한다. 윤 대통령의 탄핵 심판 사건 절차는 지난해 12월14일부터 시작됐다. 현행법대로면 오는 6월11일 전에만 결론이 나오면 된다. 하지만 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의 퇴임 시기가 4월18일로 예정돼있는 상황이라 그 전에 판결이 나올 게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노 전 대통령 때는 63일, 박 전 대통령 때는 91일 만에 판결이 나왔다. 결과는 엇갈렸다. 노 전 대통령은 탄핵안이 기각돼 바로 직무에 복귀했고 박 전 대통령은 인용돼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파면의 기로에 서 있는 윤 대통령은 탄핵소추의 배경이 된 12·3 비상계엄의 위법‧위헌성을 부인하고 있다.
눈여겨볼 만한 부분은 현재 탄핵 정국이 이전, 특히 박 전 대통령 때와는 그 분위기서 차이를 보인다는 사실이다. 불과 8년 사이에 보수진영서 탄생한 대통령이 탄핵소추되는 초유의 일이 반복됐지만 그 양상은 다르게 흐르는 모양새다. 탄핵 반대 여론이 과거에 비해 거세진 점이 특히 눈에 띈다.
여론조사 업체인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등 4개 회사가 진행한 2월2주차(지난 10~12일) 조사 결과에 따르면 윤 대통령의 탄핵 심판 사건에 대해 ‘파면해야 한다’는 의견이 58%, ‘직무에 복귀시켜야 한다’가 38%로 나타났다. 탄핵 인용 의견은 2월1주차(3~5일 조사)에 비해 3%p 높아졌고 기각 의견은 2%p 떨어졌다.
최근 탄핵 인용 비율이 낮아지고 기각 비율이 높아지는 추세였지만 이번 조사로 해당 흐름은 일단 멈췄다. 1월2주차 탄핵 인용 의견이 62%였지만 3주차에는 59%, 직전 조사인 1월4주차 조사에서는 57%까지 떨어졌다. 반대로 탄핵 기각 의견은 1월2주차 33%에서 40%까지 7%p 늘었다(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 ±3.1%p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박 전 대통령 때는 탄핵 찬성 비율이 ‘압도적’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반대 의견에 비해 높았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헌재의 박 전 대통령 탄핵 심판 사건 판결 직전인 2017년 3월8일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탄핵 찬성 여론은 76.9%에 이르렀다. 반대는 20.3%에 그쳤다. 거의 모든 지역과 연령, 지지 정당, 이념 성향서 박 전 대통령을 ‘파면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다(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 ±4.3%p).
실제 2017년 3월10일 헌재는 재판관 전원(8명)의 일치된 의견으로 박 전 대통령을 파면했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직위를 상실한 중차대한 사건이었고 후폭풍도 만만찮았지만, 헌재 판결 자체에 대한 반발은 크지 않았다. 탄핵 심판 결과가 나오기까지 국민 여론이 크게 분열되는 양상도 드러나지 않은 편이었다.
하지만 윤 대통령 탄핵 심판 사건에서는 찬반 집회의 크기가 양쪽 다 눈에 보일 정도로 확인되고 있다. ‘박근혜 탄핵’을 외치며 1300만명(누적)이 거리로 나왔던 2016~2017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당시에도 박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가 있긴 했지만 상황 변화에 두드러진 영향을 끼치진 않았다.
지난 8일 동대구역서 윤 대통령의 탄핵을 반대하는 집회가 열렸다. 개신교 단체 ‘세이브코리아’가 주최한 국가비상기도회에는 2만5000여명(경찰 추산)의 인파가 몰렸다. 대구·경북의 국민의힘 국회의원, 이철우 경북도지사 등도 참석했다. 최근 탄핵 반대 발언으로 화제가 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도 모습을 보였다.
동대구역 2만5000명, 천안 3000명
개신교 단체 주최+2030남성=폭발?
전씨는 이날 집회서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계몽령’에 빗대며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탄핵하고 행정부와 국가 시스템을 마비시키려는 민주당이 바로 내란의 주체”라고 주장했다. 이어 “감춰졌던 언론의 행보, 법치와 공정, 상식을 무너뜨린 공수처와 (서울)서부지법, 편파 재판부로 구성된 헌법재판소의 실체를 알려준 계몽령”이라고 재차 주장했다.
지난 11일 충남 천안서 열린 윤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도 3000여명(경찰 추산)이 운집했다. 동대구역과 마찬가지로 개신교 단체 세이브코리아가 천안시 동남구 신부동 천안종합터미널 앞 광장서 주최한 ‘충남 국가비상기도회 및 도민대회’였다. 전씨는 이날 집회서도 무대에 올라 헌재의 탄핵 심판 사건 심리 과정을 강하게 비판했다.

집권여당의 움직임도 박 전 대통령 때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박 전 대통령 때는 탄핵안 가결 자체가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의 주도로 이뤄졌다. 이후 새누리당은 물리적 분당까지 이뤄질 정도로 친박(친 박근혜)계와 반박(반 박근혜)계 간 갈등의 골이 깊었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보수가 궤멸됐다’는 표현이 나온 것도 이 시기다.
반면 국민의힘은 ‘나름의’ 단일대오를 꾸리는 모양새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국회서 탄핵안이 가결되기까지 내부 분열의 모습이 나타나긴 했지만 박 전 대통령 때처럼 분당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의 그림은 보이지 않고 있다. ‘비상계엄을 옹호한다’는 비판을 들으면서도 국민의힘 일부 의원들은 윤 대통령과 계속 접촉하는 등 ‘마이웨이’를 고수 중이다.
이 같은 배경에 탄핵 반대 여론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진행된 여론조사 결과에서 정당 지지율이 크게 떨어지지 않은 점,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사태 전으로 일정 정도 회복된 점 등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결국 강성지지층을 등에 업고 나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정당 지지율 격차가 좁혀질 시기 전문가들은 ‘보수층의 결집’을 그 원인으로 꼽았다. 보수층이 적극적으로 여론조사에 응하면서 일종의 ‘과표집’ 현상이 나타났다는 분석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 조사상으로만 드러났던 현상이 광장으로도 이어지면서 정치권의 분위기가 미묘해지고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특히 20~30대 남성의 움직임이 탄핵 반대 집회서 포착되고 있다. 지난달 19일 윤 대통령의 구속영장이 발부된 서울서부지법을 습격한 인원 가운데 절반가량이 20~30대 남성으로 확인되면서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일부 민주당 관계자가 20~30대 남성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면서 탄핵 정국 자체가 성별 갈등으로 번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학습한 보수?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인은 “보수진영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보면서 나름의 학습이 된 것으로 보인다. 그때처럼 마냥 당하고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보수층이 거리로 나오고 있는 듯하다”고 설명했다.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 손현보 부산세계로교회 목사 등을 주축으로 탄핵 반대를 외치는 세력은 전국 단위의 대규모 집회를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탄핵 찬반 여론이 지금처럼 팽팽하게 갈릴 경우 헌재 판결에 따른 후폭풍이 어마어마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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