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2팀] 박정원 기자 =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이 14일 윤석열 대통령의 자기 방어권 행사를 보장해 줄 것을 경찰 등 수사기관에 호소했다.
정 실장은 이날 오전 ‘대국민 호소문’을 통해 “경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윤 대통령을 남미 마약 갱단 다루듯 몰아붙이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윤 대통령에게 특례를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의 시민이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자기 방어권을 보장해 달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리 헌법은 모든 형사 피의자가 유죄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무죄로 추정한다고 천명하고 있다”며 “형사소송법은 모든 피의자가 불구속 상태서 수사받는 것을 원칙으로 명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야당의 유력 정치인은 이런 사법체계를 교묘히 이용해서 재판을 한없이 지연시키고 있다”며 “왜 윤 대통령만 우리의 사법체계 밖으로 추방돼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정 실장은 “윤 대통령이 수갑을 차고, 수사관에 끌려 한남동 관저를 나서는 것이, 2025년 대한민국에 어울리는 모습인가”라며 “공수처와 경찰의 목적이 정말 수사인가, 아니면 대통령 망신주기인가”라고도 되물었다.
그는 국가기관 간, 경찰과 시민 간 충돌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수천명의 시민들이 관저 앞에서 대통령을 지키겠다며 밤을 새고 있다”면서 “경찰과 시민이 충돌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비극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이 충돌 과정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뿐이라는 그는 “경찰과 경호처는 행정부의 수반인 최 권한대행의 지침과 지휘를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대통령실은 경찰 및 공수처와 협의할 준비가 돼있다며 “대통령에 대한 제3의 장소서의 조사 또는 방문조사 등을 모두 검토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또 정 실장은 “이른바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에 연루된 민주당 국회의원들은 1년이 넘도록 소환에 불응하고 있다”며 “우리 수사기관들은 그 의원들에게 무슨 조치를 했느냐”고 지적하기도 했다.
아울러 “우리는 현직 대통령을 체포하겠다는 경찰과 이를 막으려는 경호처의 충돌이 국가적 위난 사태에 이르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며 “국민 여러분께서도 이 난국을 슬기롭게 해결될 수 있도록 뜻을 모아주시길 간곡히 호소드린다”고 당부했다.
이날 대국민 호소문은 원고지 14매 분량으로 작성됐으며, 호소문에서 정 실장은 거듭 수사기관인 공수처와 경찰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체포영장 재집행을 거의 목전에 두고 표면적으로는 보수 지지층의 결집을 유도해 관저 앞을 더 견고하게 하기 위함인 것으로 보이지만, 윤 대통령을 향한 수사기관의 행보를 지적함으로써 체포영장 집행 자체가 불합리하다는 여론을 형성하기 위한 저의가 깔려있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특히 호소문에서 정 실장은 윤 대통령의 처지를 ‘고성낙일’에 비유하며 “외딴 성에 해가 기울고 있다. 도와줄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고 적었다. 마치 체포영장을 집행하는 수사기관이 ‘적’이 쳐들어오는 것처럼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앞서 검찰과 공수처는 체포영장 발부 이전에 이미 3회에 걸쳐 정식으로 소환을 요구했다. 형사소송법 200조의2는 정당한 이유 없이 출석요구에 응하지 않거나 응하지 않을 우려가 있을 때는 검사가 관할 지방법원 판사에게 청구해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피의자를 체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수사기관은 출석요구에 3회 이상 불응할 시 체포영장을 청구한다. 그 대상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어느 누구도 예외없이 적용될 수 있다. 윤 대통령이 검찰의 한 차례 출석요구와 공수처의 두 차례 출석요구에도 모두 불응했으므로 수사기관의 체포영장 집행은 너무도 자연스러우며 당연한 수순인 셈이다.
야권에서도 이날 정 실장의 대국민 호소문에 대해 ‘궤변’이라며 일제히 비판의 화살을 날렸다.
조승래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SBS 라디오 인터뷰서 “마약 갱단같이 행위를 한 게 누구냐”며 “정당한 법 집행을 거부하면서 소위 ‘석열산성’을 쌓고 물리력을 동원해 농성하는 게 마약 갱단 같은 행위”라고 맹폭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면 대통령비서실은 직무 정지된 대통령의 식사 등을 챙기는 것 말고는 그 어떤 보조를 할 수 없다”며 정 실장의 행보에 대해서도 꼬집었다.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위원이기도한 김승원 민주당 의원은 MBC 라디오에 출연해 “체포영장 집행 전 마지막 카드, 혹은 마지막 몸부림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제3의 장소서의 조사 방안 검토 가능성을 언급한 정 실장에 대해 “마치 중앙지검 검사들이 김건희씨한테 소환당해 핸드폰 뺏기고 조사당한 때와 똑같이 하겠단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김보협 조국혁신당 수석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일고의 가치도 없는 헛소리”라며 “계엄군을 투입해 민주공화국의 시민을 향해 총부리를 겨눴던 자들이 자유민주공화국 시민의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재임 중 대부분의 범죄 혐의에 대해 불소추특권을 인정받지만 내란과 외환죄만을 예외로 두고 있는 이유는 민주공화국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중대범죄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한편, 공수처는 정 실장이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한 것을 두고 “(윤 대통령 측 변호인)선임계만 들어온 상태”라며 “아직 다른 요청이나 의견이 전달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일각에서는 정 실장이 대통령 변호인단이 아닌 만큼 수사와 관련해서는 협의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우회적으로 밝힌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jungwon933@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