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도 푸릇하게 ①서울식물원

서울식물원은 서울지하철 9호선·공항철도 마곡나루역과 맞닿아 있는, 지하철역서 가장 가까운 도심 속 식물원이다. 2000년 초 서울의 마지막 농경지였던 마곡지구에 빌딩들이 들어서고, 그 빌딩숲 한가운데 공원과 식물원이 꾸며지면서 도심은 초록으로 채색되기 시작했다.

축구장 70개 크기인 서울식물원은 크게 4개 구역으로 나뉜다. 넓은 잔디가 깔린 열린숲과 호젓한 산책로 호수원, 조류의 보금자리 습지원은 24시간 무료로 개방된다. 주제정원과 온실로 이뤄진 주제원은 유료로 입장할 수 있으며, 그중 온실은 겨울에 특히 사랑받는 공간이다.

겨울에 사랑받는 곳

대부분 식물원의 온실은 볼록한 모양인데, 서울식물원의 온실은 오목한 접시 모양이다. 오목한 접시 부분에 빗물을 모아 관수(농사 짓는 데 필요한 물을 논밭에 댐)로 활용한다. 서울식물원의 온실은 살아 있는 세계 식물대백과사전이다. 서울식물원의 온실로 들어서면 지구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식물들이 한데 모여 새로운 가족을 이룬 듯하다. 열대와 지중해에 있는 12개 도시의 식물 1000여종이 자란다.

하지만 발걸음을 재촉하면 그저 초록의 뭉치로만 기억될 것이다. 식물 하나하나 이름을 불러보자. 식물의 과거와 미래를 알아가는 것은 그 누군가와 친해지는 과정과 비슷할 테니. 식물에 관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오디오 가이드를 대여하거나 서울식물원 홈페이지서 해설 프로그램을 예약하면 된다.

온실 입구에 들어서자 무덥고 습한 공기가 훅 덮친다. 얼었던 손끝이 금세 녹을 만큼 반가운 온도다. 입구에는 공기로 채워진 말랑한 조각 작품이 반긴다. 스튜디오 1750의 ‘평행정원’이란 작품으로 환경, 유전, 변종 등으로 생겨난 상상의 식물을 표현, 온실을 찾은 관람객에게 반가운 첫인사를 건넨다.


현재 식물원 곳곳에 구성된 ‘리듬: 둘로 존재하는 것으로’ 기획전시가 3월 초까지 이어진다. 각자의 박자와 호흡에 맞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존재들의 조화를 작품으로 나타냈다.

열대관에 들어서자 큰 키로 압도하는 야자수들이 짙은 초록의 향기를 낸다. 인도네시아서 콜롬비아까지 각 나라의 특색에 맞는 식물들이 촘촘하게 심겨 있는데, 코코넛 야자와 망고, 바나나 등 익숙한 과일의 나무들도 볼 수 있다. 개관했던 2019년 이후 약 5년이 지났으니 나무들도 한 뼘 정도는 더 자랐으리라.

최대 높이 25m에 달하는 온실이지만 큰 키를 감당할 수 없어 한 그루의 야자수를 교체하기도 했다.

지중해관은 연중 온화한 기후를 가진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에서 식생하는 식물들로 꾸며져 있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 레몬과 올리브, 코르크 등의 다양한 식물이 자란다. 온실 곳곳에는 나라별 특색을 보여주는 정원과 포토존이 있어 이를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기 좋다. 

역에서 가장 가까운 도심 속 생태원
한가로이 쉬기 좋은 곳

지중해관에서는 사막서 잘 자라는 여러 다육식물도 볼 수 있다. 초록 다육식물 사이, 하얀 선인장인 ‘화이트 고스트’가 눈에 띈다. 하얀 몸체는 뜨거운 햇볕을 반사해 살아남기 위한 생의 방법인 것이다.

프랑스서 수입한 올리브 나무는 신비롭다. 더는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들을 선별해 생장점을 잘라내면서 생육을 조절한다. 그래서인지 잘린 나무줄기는 거칠고 투박한 질감이다. 반면 부드럽게 흔들리는 자잘한 잎들은 햇살에 비춰 다채로운 초록색을 낸다. 


소설 <어린왕자>에 등장한 바오바브나무도 발견한다. 바오바브나무는 2000년 이상 자라는 나무로 굵은 줄기에는 무려 3톤가량의 물을 품고 있다고 한다. 물을 뺀 빈 줄기는 옛 아프리카 주민들이 무덤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바오바브나무는 겨울인 지금, 가장 무성한 잎을 볼 수 있다.

지중해관 끝에는 온실의 백미, 스카이워크가 이어진다. 약 8m 높이로 열대관 위에 설치된 스카이워크는 식물을 눈높이에서 감상할 수 있다. 바나나 나무 꼭대기에 매달린 꽃봉오리와 열매도 눈을 크게 뜨고 찾아보자. 2025년 2월까지 이어지는 ‘윈터페스티벌’로 온실은 더 생기가 넘친다. 열대관 곳곳에는 알록달록 생기를 불어넣는 열대 난초 60여종, 지중해관 곳곳에는 나뭇가지를 활용해 만든 겨울요정들로 꾸며져 있다. 

식물원에는 식물과 친근해질 수 있는 몇몇 공간이 있다. 작물의 생육·환경 정보 데이터를 기반으로 생산성을 높이는 기술을 접목한 스마트팜에서는 아삭하고 단맛 나는 채소가 자란다. 이 채소는 강서구 내 복지관에 기부된다. 식물의 자라는 과정을 관찰하고 싶다면, 씨앗도서관을 활용해보자. 씨앗을 대출받아 식물을 키운 후, 그 씨앗을 반납하는 절차지만, 의무사항은 아니다.

식물 관련 전문서적 9000여권을 보유하고 있는 식물전문도서관, 식물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정원지원실, 식물원을 조망할 수 있는 카페와 식당 등도 자리한다. 또 작은 화분에 담긴 식물을 구입하고 싶다면 기프트숍에 들러보자.

서울식물원서 도보로 10분이면 겸재정선미술관에 닿는다. 양천현령(현재 강서구청장)을 맡고, 진경산수화의 폭을 넓힌 화가 겸재 정선(1676~1759)의 작품이 전시돼있다. 당시 겸재 정선은 양천현의 아름다운 풍경을 그리면서 완숙한 화풍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구암 허준

강서구의 또 다른 인물이라면 조선 중기 구암 허준을 빼놓을 수 없다. 강서구서 태어난 허준 선생은 <동의보감>을 통해 우리나라 고유의 의학기술을 전수했다. <동의보감>은 단일 의학서로는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 허준박물관에서는 그의 업적과 다양한 한의학 고서를 만날 수 있다.

김포국제공항 옆에 있는 국립항공박물관은 항공과 관련된 정보는 물론 체험이 가득한 곳이다. 항공기 비상상황 시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기내훈련체험, 관제사가 되어 보는 조종관제체험, 보잉 747 여객기의 부조종석에서 비행 조종을 해보는 조종사체험도 가능하다. 김포국제공항 활주로로 이착륙하는 항공기를 볼 수 있는 야외 전망대는 잊지 못할 풍경을 선사한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코스

국립항공박물관→서울식물원→겸재정선미술관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서울식물원→겸재정선미술관→허준박물관
-둘째 날 국립항공박물관→코엑스 마곡 르웨스트→LG아트센터서울→스페이스K

관련 웹 사이트 주소
-강서문화관광 https://www.gangseo.seoul.kr/munhwa/index
-서울식물원 https://botanicpark.seoul.go.kr/front/main.do
-겸재정선미술관 https://culture.gangseo.seoul.kr/gsfc/main/contents.do?menuNo=800054
-허준박물관 https://culture.gangseo.seoul.kr/gsfc/main/contents.do?menuNo=800119
-국립항공박물관 www.aviation.or.kr 

운영 정보
-서울식물원(온실·주제정원) *운영시간: 11~2월 09:30~17:00 (16:00 매표 마감), 3~10월 09:30~18:00(17:00 매표 마감) *휴무: 매주 월요일 *요금: 성인 5000원, 청소년 3000원, 어린이 2000원 서울식물원(열린숲·호수원·습지원) *운영시간: 24시간 *휴무: 연중무휴 *요금: 무료


-겸재정선미술관 *운영시간: 3~10월(화~금요일) 10:00~18:00(입장 마감 17:00), 주말·공휴일·11~2월 10:00~17:00(입장 마감 16:00)  *휴무: 매주 월요일, 1월1일, 설날·추석 당일 *요금: 성인 1000원, 청소년 및 군경 500원/통합관람권(허준박물관과 겸재정선미술관) 성인 1300원, 학생 및 군경 700원

-허준박물관 *운영시간: 평일(화~금요일) 11~2월 10:00~17:00, 3~10월 10:00~18:00 주말·공휴일 10:00~17:00 *휴무: 매주 월요일, 1월1일, 설날·추석 당일 *요금: 성인 1000원, 학생 및 군경 500원/통합관람권(허준박물관과 겸재정선미술관) 성인 1300원, 학생 및 군경 700원 국립항공박물관 *운영시간: 화~일요일 10:00~18:00(입장마감 17:30) *휴무: 매주 월요일, 1월1일, 설날·추석 당일 *요금: 무료(체험에 따라 유료) 

문의 전화
-서울식물원 02)2104-9716
-겸재정선미술관 02)2659-2206
-허준박물관 02)3661-8686
-국립항공박물관 02)6940-3198
-강서구청 체육관광과 02)2600-6082

대중교통
지하철 서울지하철 9호선·공항철도 마곡나루역 3·4번 출구 연결 서울지하철 9호선 양천향교역 8번 출구 도보 10분

*문의: 서울시메트로9호선 02)2656-0009, https://www.metro9.co.kr/ 공항철도 1599-7788 https://www.arex.or.kr/main.do 

자가운전
서울특별시청→세종대로20길 방면 좌회전→세종대로 방면 우회전→세종대로사거리서 유턴→시청서 신촌로터리 방면으로 우회전→서소문고가서 신촌로터리, 이대입구 방면으로 왼쪽 고가차도 진입→충정로사거리서 양화대교, 마포대교 방면 좌회전→마포대교서 국회의사당, 올림픽대로 방면 우회전→김포공항 방면 우회전→여의하류IC서 김포공항 방면으로 오른쪽 도시고속도로 진입→발산역 방면 오른쪽 도시고속도로 출구→양천로49길 방면 좌회전→양천로 방면 우회전→서울식물원 방면 좌회전→서울식물원


숙박 정보
-코트야드 서울 보타닉파크: 강서구 마곡중앙12로, 02)6946-7000, https://www.marriott.com/ko/hotels/selcs-courtyard-seoul-botanic-park/overview/ 
-머큐어 서울 마곡: 강서구 마곡중앙로, 02)2261-6000, http://mercure-magok.co.kr/ 
-롯데시티호텔 김포공항: 강서구 하늘길, 02)6116-1000, https ://www.lottehotel.com/gimpo-city/ko.html 

식당 정보
-소곤면옥(평양냉면·곰탕·돼지갈비): 강서구 양천로47길, 0507-1459-8329
-모담다이닝 마곡엘지아트센터점(솥밥정식·전복 수제떡갈비 정식): 강서구 마곡중앙로, 070-4647-1075
-비바나폴리(마르게리타·칼라마리): 강서구 마곡중앙로, 070-4070-4670, https://sparta20.mycafe24.com/ 

주변 볼거리
궁산땅굴역사전시관, 양천향교, 강서별빛우주과학관, 롯데몰 김포공항점 등

<webmast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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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