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이 난처한 상황에 직면했다. 6년 넘게 계속된 투자자와의 분쟁이 사실상 투자자에게 유리하게 결론이 난 형국이다. 백기사를 확보해 1조원대 자금을 끌어들여야 한다는 관측이 나온다. 조속히 해결하지 못한다면 숙원사업인 금융지주사 전환 작업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지난 19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국제상업회의소(ICC)는 신창재 교보생명 이사회 회장에게 어피니티컨소시엄(이하 컨소시엄)이 보유한 주식매수청구권(풋옵션)의 가격을 재산정하라고 결론 냈다. 컨소시엄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시작된 2차 국제중재재판에서 ICC가 컨소시엄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첨예한 대립
컨소시엄과 신 회장 간 갈등은 6년 전부터 표면화됐다. 재무적투자자(FI)인 컨소시엄은 2012년 대우조선해양이 내놓은 교보생명 지분 24%를 1조2000억원(1주당 24만5000원)에 인수하는 과정에서 단서를 달았다. 교보생명이 2015년 9월까지 기업공개(IPO)를 성사시키지 못하면, 컨소시엄이 보유한 교보생명 주식을 신 회장이 매입하는 조건이었다.
결과적으로 교보생명 IPO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렇게 되자 ▲어피니티 ▲IMM프라이빗에쿼티 ▲EQT파트너스 ▲싱가포르투자청 등으로 구성된 컨소시엄은 2018년 10월 보유 중이던 교보생명 주식을 대상으로 풋옵션(1주당 41만원)을 행사했다.
그러나 신 회장은 이를 실행에 옮기지 않았고, 컨소시엄은 2019년 3월 ICC에 중재를 제기했다. 1차 중재 판정부는 신 회장과 컨소시엄 간 풋옵션이 유효하다고 인정했다.
다만 신 회장이 컨소시엄의 요구대로 41만원에 주식을 매수할 의무는 없다고 판정했다. 이에 불복한 컨소시엄은 2022년 2월 ICC에 2차 중재를 제기했고, 이번 판결을 계기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게 됐다.
ICC가 낸 결론에 따라 신 회장과 컨소시엄은 이달 중순까지 주식 가격 산출을 위한 ‘감정평가인’을 선임하고 감정평가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기한을 넘길 시 신 회장은 1일당 20만달러(2억9000만원)를 간접 강제금으로 내야 한다.
6년 버텼지만…예고된 결말
백기사·주담대 카드 만지작
풋옵션 규모는 신 회장이 평가기관을 통해 산정한 가격과 컨소시엄이 요구하는 가격 간 격차가 10% 이내면 평균값을 산정해 행사 가격으로 정한다. 10% 이상 격차가 발생하면 컨소시엄이 제3의 평가기관 3곳을 제시하고, 이 가운데 신 회장이 지목한 곳에서 정한 가격이 최종가가 된다.
풋옵션 적정가를 찾는 과정에서는 난항이 예상된다. 교보생명이 IPO를 추진할 당시 공모 예정가가 18만~21만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신 회장 측이 책정한 풋옵션 가격은 최대 1주당 24만5000원 수준이다. 앞서 컨소시엄이 요구했던 조건(1주당 41만원)과 현격한 차이가 존재하는 셈이다.
풋옵션 가격이 최대한 우호적인 방향으로 정해지더라도, 신 회장은 최소 1조원대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부담을 피하긴 어려워졌다. 일단 지분을 매각해 현금을 확보하는 시나리오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신 회장 측이 이번 판정을 대비해 약 1조원의 자금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진 데다, 주식 매각은 경영권 방어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현 시점에서 가장 실현 가능성이 높은 카드는 주식담보대출이다. 신 회장은 올해 3분기 교보생명 지분 36.78%(3462만7370주)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신 회장이 풋옵션 가격으로 내세운 20만원을 기준으로 교보생명 주식 가치를 평가하면, 신 회장이 보유한 지분의 가치는 약 1조7000억원이다.
백기사를 끌어들이는 방안도 생각해 봄 직하다. 우호적인 대체 투자자를 찾아 자금을 빌려 컨소시엄이 보유한 지분을 사들이고, 교보생명이 상장하는 과정에서 기존 보유 주식 일부를 매각해 빌린 자금을 갚는 수순이 뒤따를 수 있다. 새 투자자를 유치할 경우 얼마나 매력적 조건을 제시하느냐가 관건이다.
난관 봉착
IB 업계에서는 이번 판결이 교보생명의 금융지주사 전환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교보생명은 2005년부터 지주사 전환을 검토했고 올해를 목표로 지주사 전환을 준비해 왔다. 금융지주사 체제가 사업 다각화를 위한 필수 조건으로 자리 잡으면서 교보생명은 IPO를 추진할 때마다 중장기 계획으로 지주사 전환을 최종 목표로 추진했다.
지주사 전환을 위해서는 이사회·주주 동의, 금융위원회 인가 등 법적 절차를 거쳐야 한다. 컨소시엄과의 분쟁이 단시일 내 완료되지 않는다면 향후 컨소시엄이 지주사 전환 작업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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