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서 가장 큰 명절은 추석이다. 명절날 전후까지 3일간 법정공휴일인 명절은 설날과 추석뿐이다. 특히 추석은 고향을 찾아 성묘하는 명절로, 춥지도 덥지도 않은 연휴 기간 동안 사람들의 마음이 훈훈해진다.
공권력도 약해져 웬만한 법규 위반은 처벌도 하지 않는다. 사랑이 넘치는 추석명절이 확실하다. 필자는 오래전, 추석연휴와 추운 겨울에 일어났던 두 사건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먼저 추석연휴 때 발생한 사건은 34세 아버지와 12세 아들이 마트서 우유와 사과 6개 등 식료품을 훔치다가 마트 직원에게 적발돼, 마트 사장의 신고로 경찰 조사를 받게 됐다.
그런데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며 훔치게 된 사정을 설명하며 잘못을 뉘우치자 경찰은 이들을 처벌하지 않고 식당으로 데려가 설렁탕까지 사줬다.
아버지는 당뇨와 갑상선 질환 등 지병이 악화되면서 택시기사를 그만두고 임대주택서 6개월간 요양하며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중 추석인데도 돈이 없어 고향에 가지 못하고 굶주림을 참지 못해 범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생계형 범죄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 이후 많은 사람들이 돈이나 물품으로 온정의 손길을 보냈고, 행정복지센터서도 무료급식 카드를 지원하고 아버지에게는 일자리를 소개해주기도 했다.
다른 사건은 같은 해 추운 겨울 중소도시서 막노동하며 사는 30대 중반의 아버지가 4학년 딸을 데리고 가게서 라면과 과자를 훔치다 걸려 주인 신고로 경찰에 붙잡혀 조사를 받았는데, 아버지는 구속되고 딸은 학교서 정학처분을 받았다.
위 두 사건은 생계형 범죄로 유사한 사건인데도, 한 가정은 죄 용서와 함께 사랑의 손길로 많은 혜택을 받았고, 한 가정은 법적인 잣대에 의한 공의(公義) 차원서 엄중한 처벌을 받았다.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유사 사건을 놓고 공권력이 다르게 작동했다는 건 말도 안 된다.
성경서 하나님이 아무 대가 없이 인류의 죄를 용서하고 구원해도 되지만, 굳이 예수를 대신 죽이고 인류를 구원한 이유가 바로 공의가 있는 완전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함이다.
마찬가지로 경찰도 추석연휴 때 아버지와 아들의 죄를 사랑으로 용서해야 했다면, 이들 스스로가 죄의 대가를 치르던지 아니면 누군가 그 죄를 대신해 대가를 치르는 전제조건이 필요했다.
누구보다 공의를 실천해야 할 경찰이 똑같은 상황서 한 가정은 공의 없는 사랑만 적용해 용서해줬고, 한 가정은 사랑 없는 공의만 적용해 처벌했다는 점을 우리 국민은 어떻게 생각할까?
아무리 추석연휴 기간 동안 사람들의 마음이 훈훈해져도 공의 없는 사랑이 더 이상 우리 사회서 허용돼선 안 된다는 게 필자 생각이다. 만약 설렁탕을 사줬던 경찰이 아버지와 아들에게 벌금형으로 처벌하고 난 후, 이들을 대신해 벌금을 내주고 마트에 보상까지 해줬어야 이때 공의가 전제된 완전한 사랑이 성립되는 것이다.
죄 지은 자가 스스로가 죄 값을 치르던지, 아니면 누군가가 대신 치뤄준 후 이들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우리 사회가 완전한 사랑으로 인해 더 성숙한 사회가 될 수 있다.
노래 가사에도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사랑은 언제나 온유하며, 시기하지 않으며 자랑도 교만도 않으며, 무례히 행치 않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성내지 않으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네”가 있는데, 여기서 ‘진리와 함께’는 바로 공의가 전제된 사랑이 완전한 사랑임을 시사하고 있다.
공의는 공의 자체로 그 가치가 충분히 인정되지만, 사랑은 사랑 자체만으로 그 가치가 충분히 인정될 수 없다. 사랑은 공의가 전제돼야 그 가치가 완성될 수 있다. 공의를 실천하는 것보다 사랑을 실천하는 게 더 어렵다는 의미다.
대선이나 총선을 앞두고 국민에게 하는 정치인의 공약도 공의가 전제된 공약이어야 한다. 정치인의 공약은 개인이나 특정 집단에 유익을 주는 공약이어선 안 되고 국민 모두에게 유익이 되는 공약이어야 하는데, 공의가 빠진 공약은 지켜진다 해도 나중에 공의의 잣대에 의해 무효가 될 수 있다.
특히 정부와 여당은 공의보다 사랑의 잣대가 통하는 추석을 앞두고 공의가 빠진 약속을 하는 우를 범하기 쉽다.
올해도 추석을 앞두고 국민의힘은 국군의날 임시공휴일 지정, 중소기업 명절자금 40조원 지원,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 등을 약속했다. 그러나 이런 약속들이 추석민심을 잡겠다는 명분으로 공의가 빠진 배품이나 사랑 차원의 선물이 돼선 안 된다.
더불어민주당이 계속 주장하고 있는 ‘전 국민 25만원 지원법’도 공의가 전제된 공약이어야 한다. 그걸 설명하지 못하면 수혜자인 국민들조차 반대하고 말 것이다. 복지라는 명분을 내세울지라도 공의를 전제하지 않는 법은 우리 국민에게 혼란만 줄 뿐이다.
이번 추석 연휴에 공의 없는 사랑보다 공의 있는 사랑이 많아져 우리 사회가 보름달처럼 환해지길 바란다.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