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힘 당권주자를 만나다> 윤심·민심 연결고리 윤상현 후보

“‘동훈이’ 대통령이 그렇게 아꼈는데…”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국민의힘 수장은 세기도 어려울 만큼 많이 바뀌었다. 그만큼 갈등이 심했지만, 여전히 정리되지 않고 있다. 이제는 어수선한 시간을 끝낼 때다. 윤석열정부의 성공을 위해 힘을 실어줄 당 대표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번 전당대회에 나선 4명의 후보는 저마다 자신의 목표를 밝히며 자신이 당 대표가 돼야 하는 이유를 나열하고 있다. 국민의힘의 차기 당 대표에 당선될 인물이 누구일지 주목된다. 

국민의힘 소속 의원 중 지난 총선서 수도권 선거를 승리로 이끈 인물은 많지 않다. 이들 중 인천서 당당하게 승리를 쟁취한 인물이 있다. 지난달 21일, 당권 도전을 선언했던 윤상현 당 대표 후보다. 윤 후보는 국민의힘의 수도권 위기론을 제시한 인물이다. 

그는 “차기 당 대표라면 당 중앙을 폭파시킬 정도의 전면적인 재창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요시사>는 윤 후보에게 당권 도전에 나선 이유 등을 물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당 대표 선거에 뛰어들었다. 본인이 당 대표가 돼야 하는 이유는?

▲우리 당은 지난 총선서 괴멸적 참패를 당했다. 이미 지난해 여름부터 수도권 위기론을 제기하며 선거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는데 당은 비겁하게 침묵으로 일관했다. 참패 이후에도 ‘공동묘지의 평화’같이 조용하다.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 윤석열정부도 마찬가지다. 수도권 위기는 나를 비롯해 국민의힘의 정치적 생존에도 큰 영향을 끼치는 일이다. 이런 현상에 우리 당원이 다 같이 분노해서 당 중앙을 폭파시킬 정도의 전면적인 재창조와 창조적 파괴를 해야 한다. 

-본인만의 강점이 있다면?


▲민주당하고 싸워 이긴 사람이다. 차기 당 대표는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과 싸워 이길 수 있어야 하고, 당원의 자존심을 지켜줄 수 있는 리더가 필요하다. 나는 탄핵 정국서도 당을 떠나지 않았던 인물이다. 난 윤심이 당심, 민심이 되는 당이 아닌, 민심이 당심이자 윤심이 민심이 되는 당을 만들 능력을 갖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신뢰를 통해 민심을 고스란히 전해야만 민심을 당심으로 만들 수 있다. 

-당 대표 후보로서 각오는?

▲당내에 만연한 패배주의와 뺄셈의 DNA를 혁파하고 오로지 민생과 국익을 위해 일하는 서비스 정당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하도록 노력하겠다. 역대급 참패를 겪고도 성찰과 각오를 멀리하는 패배주의를 불식시킬 것이며, 뼈를 깎는 변화와 혁신으로 유능한 정책정당이자 수도권서 사랑받는 전국정당을 만드는 게 목표다.

극단의 여소야대 상황으로 당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 집권여당으로서 국정과제를 충실히 이행하고 야당에게 무조건 끌려가지 않고, 민생 이슈에 대한 주도권을 확보해 혁신 경쟁을 선도하는 유능한 여당이 되겠다. 특히 여의도 연구원을 혁신할 계획이다. 당대 최고의 이론가를 원장으로 모셔 민생, 국익에 도움이 되는 정책과 법안을 발굴하겠다. 민생에 홀릭하는 ‘민홀위원회’와 약자를 지키고 보호하는 ‘약지위원회’ 등을 신설해 실질적인 민생 대책을 강구하겠다. 

-전국을 순회 중이다. 민심과 당심을 청취할 텐데 어떤 이야기들을 들었나?

▲괴멸적 참패에 대해 당이 성찰하고 그 토대 위에서 변화와 혁신이 필요하다는 당부의 말씀을 많이 들었다. 예견된 참패를 막지 못한 안타까움과 당정관계의 문제점 등에 대해 하루 속히 정상화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는 말씀도 많이 주셨다. 지금이 당의 재건을 위한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는 절박감을 호소하는 분들이 많았다.

특히 국회가 민생을 내팽개치고 있는데 집권여당이 무기력하게 거야에 끌려다녀서는 안 된다는 질책을 많이 주셨다. 당이 분열하거나 당정 갈등이 재현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 달라고 하신다. 이 부분은 당 대표에 출마한 모든 후보가 귀 기울여 들어야 할 부분이다. 


-채 상병 특검법과 관련한 입장은?

▲채 상병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해 그 전모를 밝히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자는 취지에는 누구도 반대할 사람은 없다. 국민적인 의혹이 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독립적이고 공정한 수사가 필요하다는 점에 일견 공감하지만 이 과정서 법리적 절차와 공정성이 보장돼야 한다.

“당 폭파시킬 정도로 재창조해야”
“잇단 특검법은 옥상옥 상황 야기”

당의 기본적인 입장은 법리적 타당성을 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공수처가 수사를 진행 중인 상황서 야당이 일방적으로 특검법을 처리하면 공수처는 모든 수사권을 특검에 넘겨야 한다. 

-제3자 추천법에 관한 의견은?

▲특검을 하게 된다면 공수처 위에 또 다른 특검이 생기는 ‘옥상옥’의 상황이 될 수밖에 없다. 한동훈 후보가 제3자 추천 특검이 새로운 선택지라고 이야기하는데, 대부분의 민심은 정부와 대통령실의 입장과 배치된다. 윤 대통령과 차별화시키고 대척점에 서겠다는 선전포고로 여긴다. 여당의 대표라면 국정운영의 혼란을 최소화하고 법리에 따라 합리적인 방안을 강구하는 게 온당한 처사다. 

-북한과의 관계가 점차 악화되고 있다.

▲국제정세가 복합 위기의 국면에 놓이면서 남북관계도 예측불허의 관계로 가고 있다. 북한과 러시아의 밀착이 심화되는 가운데 북한이 지속적인 도발을 감행해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북·러조약을 체결하면서 우리의 대북정책이 강화돼야 하고, 안보 강화 차원서 자체 핵무장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는 중이다. 

-외교 전문가로서 해결할 방법을 제시한다면?

▲문제는 우리가 핵무장하게 되면 북한에 면죄부를 주게 되고 통상 국가인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서 경제적·외교적 제재를 피하기 어려워 득보다 실이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한·미동맹의 핵우산이나 확장 억제, 핵 협의 그룹과 같은 유효한 억제책을 확보하는 게 오히려 실효적이다.

아울러 미국의 핵 자산을 한반도 주변에 상시 배치하는 등의 확장 억제에 대한 제도화를 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윤석열정부는 글로벌 중추 국가를 지향하며 ‘평화적인 방법으로 북한을 비핵화시켜야 한다’는 목표를 견지하고 있다. 지금까지 북한은 우리나라의 선의에 기대 이를 악용해 왔다.

앞으로 우리나라는 국민의 생명과 안보를 위해 동맹국과의 물샐 틈 없는 공조로 북한의 위협에 철두철미한 대비 태세를 갖출 필요성이 제기된다. 한편으로는 대화의 문을 열어 놓는 유연성을 발휘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 


-여론조사에서 밀리는 상황이다. 지지율 상승을 위해 생각한 전략은?

▲선거는 끝까지 가봐야 안다. 그동안 박근혜 전 대통령을 잘못 모신 죗값으로 중앙정치서 한참 멀어져 있었다. 지구당 위원장 박탈, 공천 탈락, 당원권 정지 등으로 제대로 활동하지 못했다. 윤 대통령이 입당한 이후에 복당하다 보니 인지도서 다른 후보들에게 뒤진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좌고우면하지 않고 오로지 당의 쇄신과 민생 회복에 집중하겠다. 당내 줄 세우기와 같은 낡은 관행을 타파하고, 당의 가치와 정체성을 확립하는 방안을 제시하려고 한다. 이를 통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당의 혁신을 이끌어내겠다.

-국민의힘의 이념적인 동지 의식이 약하다고 언급한 적이 있는데… 

▲당의 이념적 기반이 약해지면서, 당원들 간의 이념적 일체감이 감소하고, 이익집단의 성격을 띠기 시작했다. 각종 정책에 대한 이념적 백그라운드를 제공함으로써 당원들의 이념교육을 강화하겠다. 이를 통해 당의 이념적 일체감을 회복하고, 당원들 간의 동지 의식을 강화하려고 한다. 우리 당은 당내 권력 다툼과 줄 세우기 문화가 문제다.

당의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과정서 특정 계파나 인물이 지나치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당원들 간의 불만과 갈등이 커졌다. 당내 화합을 저해하는 주요 요인 중 하나다. 


-당내 분란이 발생한 원인과 이를 잠재울 방법은?

▲당원들이 국회의원이나 당협위원장을 소환할 수 있는 ‘당원소환제도’와 당내 부조리를 척결하는 ‘신문고 제도’를 도입하는 당내 민주주의 활성화를 목표로 삼고 있다. 당정 관계의 불균형도 큰 문제다. 당과 정부 사이의 수직적인 관계가 지속되면서, 당이 독립적으로 정책을 추진하거나, 대통령의 정책에 대해 건설적인 비판을 제기하기 어려워진 게 작금의 국민의힘이다.

당내 자율성과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갈등을 야기할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반드시 수평적 당정 관계를 구축하고, 당의 독립성을 유지해 정부와의 건설적인 협력을 도모하도록 노력하겠다. 

-애드먼 버크의 보수주의를 언급하며 개혁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국민의힘의 가장 시급한 개혁과 당 대표가 된다면 그릴 밑그림은?

▲애드먼 버크의 보수주의는 전통과 질서를 중시하면서도, 변화와 개혁을 통해 사회를 개선해야 한다는 게 주요한 내용이다. 이런 관점서 볼 때 가장 시급한 개혁 과제는 이념적 정체성 확립과 당내 민주주의 강화다. 이와 함께 2004년 영국 보수당의 마이클 하워드가 추진한 신보수주의 16가지 강령이 좋은 예시라고 생각한다.

“핵 확장 억제에 대한 제도화 필요”
“탄핵 청문회는 정치적 목적 도구”

당시 하워드는 보수당의 이념적 정체성을 명확히 하고, 당의 방향성을 재정립하는 데 집중해 왔다. 그 결과 2010년부터 14년째 집권을 이어나가고 있다. 당내 개혁과 혁신을 주도할 보수혁명 TF팀도 만들겠다. 이 팀은 최고의 우파 이념가와 정치 전략가들로 구성해 당의 이념적 정체성을 재정립뿐 아니라 혁신적인 정책 개발을 추진할 계획이다.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에게 보낸 김건희 여사 문자가 공개됐는데…

▲당이 더 큰 혼란으로 빠져들기 전에 한 후보 본인이 나서서 논란이 커진 측면이 있는데, 이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고 관련 내용을 소상히 밝히면서 일단락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속단하기는 어렵지만, 한 후보가 김 여사 문자에 답을 하지 않은 것은 정무적 판단을 제대로 못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당시로서는 김 여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당 비대위원장의 시급한 현안이었다고 본다. 당사자가 대국민 사과를 하거나 더한 것도 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그 문자를 소위 말해서 ‘읽씹’하고 무시한 것인데 선거를 앞둔 상황서 한 후보가 진정으로 당의 승리를 원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 정도다. 

-한 전 비대위원장이 답장을 하지 않았는데…

▲이 사건은 단순한 개인 간 소통의 부재를 넘어, 대통령과의 신뢰관계가 완전히 깨졌다는 방증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김 여사의 대국민 사과 의지는 선거의 중요한 상황을 뒤집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를 무시했다는 것은 당원들의 기대나 눈높이에도 미치지 못하는 일이다. 이번 문제를 총선 백서에 담아 반드시 진위를 밝혀야 한다는 여론에 당이 귀 기울여야 한다.

-한 전 위원장을 배신자라고 생각하나? 그렇다면 근거는?

▲한 후보는 우리 당의 소중한 자산이자 당의 미래를 밝게 하는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입장서 보면 배신자라고 생각할 만하다. 윤 대통령 측근들의 말에 따르면, 검사 시절부터 윤 대통령은 한 후보를 특별히 아꼈다. 다른 검사를 부를 때와는 달리, 한 후보를 ‘우리 동훈이’라는 애칭으로 부를 정도로 각별한 후배였다. 이는 윤 대통령이 한 후보를 얼마나 신뢰하고 중시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 여사와의 관계도 각별했다고 들었다. 

▲해외출장을 다녀오면 항상 넥타이를 두 개를 사와 하나는 대통령, 하나는 한 후보에게 줄 정도로 특별한 관계였다. 이런 상황서도 한 후보는 본인의 정치적 위상을 우선시하며 관계를 배신했다고 볼 수 있다. 그의 행동은 윤 대통령과의 신뢰관계를 깨뜨리는 일이었고, 이는 당정 관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최근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청원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많다.

▲민주당의 탄핵 청문회 검토는 정치적 쇼에 불과하다. 민주당이 탄핵 청문회를 검토한 부분은 국민 여론을 등에 업고 정치적 이득을 얻으려는 시도다. 실제로 청문회를 통해 밝혀질 수 있는 것이 제한적이며,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 청문회를 열어봐야 실질적인 결과를 도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탄핵소추안의 정치적 목적성과 민주당이 탄핵 청문회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윤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강화하려는 것뿐이다.

-탄핵 청문회의 한계는 무엇인가?

▲단순히 법적 절차를 밟기 위한 것이 아닌, 정치적 대립을 극대화하려는 의도가 명백하다. 탄핵소추안 청원이 많은 국민의 동의를 얻었다고는 하지만, 이는 단순히 여론을 반영하는 것에 그칠 뿐이다. 실제로 법적, 제도적으로 실현되기에는 많은 한계가 존재한다. 민주당의 탄핵 청문회는 실질적인 문제 해결보다는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이는 국민의 신뢰를 얻기보다는 오히려 정치적 불안을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 

-윤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하고 있는데 반응은? 윤 대통령이 어떤 부분에 대해 변화를 꾀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지난해 윤 대통령에게 수도권 위기의 심각성을 전하면서 민심의 따가움을 전달했다. 특히 서울시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가능성을 경고했을 때, 윤 대통령은 이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실제 선거서 패배가 현실화되자 윤 대통령은 충격을 받았다.

주변 측근의 잘못된 정보와 조언으로 인해 대통령의 현실 인식이 부족함을 지적했다. 이런 지적에 대해 대통령은 때로는 수용하고 때로는 의아해하는 반응을 보였다. 윤 대통령은 민심을 더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를 정책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정기적인 여론조사와 국민과의 직접 소통 기회를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 

<ckcjfdo@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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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트럼프발’ 통상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앞서 못 박은 시한은 끝났다. 우리나라는 유예 기간이 끝나기 전날 타결했다. 이제 협상 결과를 두고 계산기를 두드려야 할 때다. 일본과 유럽연합(EU), 그리고 한국. <일요시사>가 세부 내용을 들여다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각국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미국을 상대로 돈을 번, 즉 대미 무역 흑자를 거둔 나라들이 표적이 됐다.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부터 전 세계는 ‘트럼프발’ 통상 전쟁에 휘말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숫자를 외칠 때마다 세계 경제가 요동쳤다. 하루 전 극적 타결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다소 늦게 통상 협상을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지난 6월 조기 대선이 치러질 때까지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탄핵심판 등 대형 정치 이슈가 거듭되면서 미국과 협상을 하고 싶어도 테이블에 앉을 사람이 마땅치 않은 상태였다. 실제 한덕수 전 국무총리나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등이 협상에 나섰지만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제동을 걸었다. 또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 선언, 최 전 부총리 탄핵안 상정 등의 상황이 겹치면서 미국과의 협상은 큰 진전 없이 시간만 흘렀다. 이후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우리나라는 좀처럼 미국 실무진과 접점을 찾지 못했다. 그 사이 트럼프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모든 한국산 제품에 대해 산업별 관세와는 별도로 25%의 일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시한은 지난 1일로 못 박았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FTA 체결로 사실상 무관세 수준이었기에 관세 부과가 현실화하면 경제 전반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자동차나 반도체 등 핵심 수출 품목에 붙는 관세 외에도 비관세 장벽(관세 이외의 수단으로 무역을 제한하는 조치)을 허물라는 압박도 가해졌다. 쌀이나 소고기 등 농·축산물 시장 개방, 정밀 지도 반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이 협상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예상됐다. 국내 상황과 맞물려 쉽게 내주기 어려운 조건들이었다. 일·EU와 같은 15%로 막아 대미 투자는 3500억달러로 협상도 난항을 겪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 통상 협상을 하루 앞두고 출국하려다 미국 측의 취소로 불발하는 일이 일어났다. 앞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방한을 닷새 앞두고 일정을 취소하기도 했다. 미국 고위급 인사들과의 만남이 잇따라 무산되면서 ‘한미 관계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일본과 유럽연합(EU)이 차례로 미국과 협상을 타결하면서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특히 일본의 협상 결과가 공개되면서 우리나라가 최소한으로 맞춰야 할 기준이 생겨버렸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자동차 등 수출 품목이 일부 겹치기에 일본보다 관세가 높아지면 수출 경쟁력이 망가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일본과 무역 협상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일본산 수입품에 부과하는 상호관세는 15%다. 기존 25%에서 10%포인트 줄어들었다. 일본이 미국에 5500억달러(약 759조원)를 투자할 것이고 이 중 90%의 수익을 미국이 받게 된다고도 했다. 동시에 자동차와 농산물을 일부 개방한다는 조건도 달렸다. 지난달 27일에는 미국과 EU가 관세 협상을 타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EU로부터 수입되는 모든 품목에 대해 일괄적으로 1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산 에너지 7500억달러(약 1030조원) 구매 및 대미 투자 6000억달러(약 820조원) 확대 방안을 담은 ‘무역협정 틀’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일본과 EU의 협상 타결로 미국의 협상 전략이 윤곽을 드러냈다. 관세를 낮추는 조건으로 무엇을, 얼마나 내놓느냐가 관건이 된 것이다. 관심이 집중된 부분은 대미 투자액이었다. 애당초 통상 전쟁 자체가 타국이 얻는 대미 무역 흑자를 줄이겠다는 명목으로 시작된 터라 트럼프 대통령은 상대국에 대미 투자라는 일종의 ‘청구서’를 요구한 셈이다. 일본이 5500억달러, EU가 6000억달러를 미국에 각각 투자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리나라에 날아올 청구액에 관심이 쏠렸다. 협상 시한이 다가오면서 언론보도 등을 통해 3000억달러, 4000억달러 등의 추측이 난무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제멋대로’ 외교에 우리나라 협상팀이 휘둘리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 쌀 소고기 지켰다는데 우리나라는 협상 시한을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 한국산 제품에 대한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을 골자로 협상을 타결했다. 일단 일본, EU와 동일한 수준으로 관세 인하를 이끌어낸 것이다. 관심을 모았던 자동차 관세율은 15%, 철강·알루미늄·구리는 기존 관세율(50%)을 유지하기로 했다. 또 반도체와 의약품 관세 부과 시 최혜국 대우도 약속받았다. 다른 나라보다 불리한 관세를 적용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부분도 일본, EU와 같은 합의 내용이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민감한 품목으로 분류됐던 쌀과 쇠고기 등의 개방은 하지 않는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농산물 전면 개방을 언급해 향후 변동 가능성을 지켜봐야 한다. 대미 투자액은 3500억달러(약 490조원)로 결정됐고 1000억달러(약 140조원) 상당의 액화천연가스(LNG) 또는 기타 에너지 제품을 수입하기로 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한국과 일본의 대미 무역 상황은 지난해 기준 각각 660억달러 흑자, 685억달러 흑자로 규모가 유사한 상황에서 일본보다 작은 규모인 3500억 달러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며 “기업이 주도하는 조선펀드 1500억달러를 제외하면 우리 펀드 규모는 2000억달러로 일본의 36%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합의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미국과 조선업 분야 협력을 확대하기로 한 것”이라며 “한미 조선협력펀드 1500억달러는 선박 건조, MRO(유지·보수·정비), 조선 기자재 등 조선업 생태계 전반을 포괄한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협상팀은 조선 협력을 내세운 게 협상 타결의 ‘키’였다고 자평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브리핑을 하며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가 협상 타결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밝혔다.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구호인 ‘매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에서 따온 표현이다. 자동차는 관철 못 해 아쉬운 부분으로는 자동차 관세를 꼽았다. 이전까지 우리나라 자동차는 관세가 0%였다. 2.5%였던 일본과 비교해 근소하게 가격 경쟁력을 가졌다. 하지만 이번 협상 타결로 일본과 똑같은 15% 관세가 결정되면서 자동차 업계는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됐다. 우리나라 협상팀이 끝까지 자동차 관세 12.5%를 요구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 15%’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큰 고비를 하나 넘었다”며 “이번 협상으로 정부는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을 없애고 미국 관세를 주요 대미 수출 경쟁국보다 낮거나 같은 수준으로 맞춤으로써 주요국들과 동등하거나 우월한 조건으로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고 평했다. 협상 결과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 일단 ‘최악은 면했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협상 타결이 이뤄지기 전까지 유예 기간을 놓쳐 관세 25%를 맞을 수도 있다고 우려한 것에 비하면 나름 ‘선방했다’는 의견이다. 동시에 미국이 내민 청구서의 구체적인 부분을 더 살펴야 한다는 신중론도 존재한다. 일본 등은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타결 발표와 실제 합의 내용이 다르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결정된 사항을 즉흥적으로 바꾸는 등 외교 과정에서 ‘오락가락’하는 면모를 보인 적이 여러 차례 있다.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불확실성을 극대화하는 협상 기술을 사용한다는 평이다. 정밀 지도·국방비 등 안보 이슈 백악관서 만나 대통령끼리 담판?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와의 협상 타결 내용을 발표하면서 언급한 정상회담이 ‘진짜’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는 “한국이 투자 목적으로 상당한 금액을 추가 투자하기로 합의했다”면서 2주 내로 이재명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투자액이 발표될 것이라고 했다. 추가 청구서가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 통상 협상에서 논의되지 않은 정밀 지도 반출 문제가 협상 테이블에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지도 반출 등 안보 사안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별도로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지도 반출과 관련해) 우리가 계속 방어해왔다. 추가 양보는 없다”고 말했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3월 <2025 국가별 무역 장벽 보고서>에서 정밀 지도 반출 제한을 한국과의 디지털 무역 장벽 중 하나로 지목했다. 우리나라 정부는 군사기밀 유출을 우려해 정밀 지도의 국외 반출을 막아왔다. 정밀 지도에 해외 기업이 가진 위성사진을 결합하면 국가 안보와 직결된 지도 정보로 완성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정계와 IT업계는 정밀 지도를 반출해야 한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협상에서는 다뤄지지 않았지만 정상회담의 의제로 오를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주한미군 주둔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문제도 거론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들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5% 이상을 국방비 예산으로 잡으라고 압박했다. 우리나라에도 대선 후보 시절부터 방위비 분담금으로 100억달러를 내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하는 등 전방위로 요구한 바 있다. 추가 청구 나올까? 한미 정상회담은 이 대통령의 ‘외교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G7 정상회의에 참석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다. 나토 회의에는 이 대통령 대신 위성락 안보실장이 참석했다. 이번 정상회담이 ‘안보’ 회담이 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딜을 벌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