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작가 안데르센의 동화 <성냥팔이 소녀>.
성냥팔이 소녀는 길거리서 성냥을 팔던 어느날, 추위를 녹이고자 성냥에 불을 붙입니다.
그런나 시간이 흘러도 소녀의 성냥은 한 갑도 팔리지 않았으며, 계속해서 성냥불에 의지해 추위를 피하던 소녀에게 헛것까지 보이기 시작합니다.
추위를 피할 벽난로, 배고픔을 없애줄 만찬, 그리고 자신이 사랑했던 할머니.
그렇게 짧은 행복도 잠시.
다음날 소녀는 다 타버린 성냥 한 갑과 함께 동사로 발견됩니다.
작고 어린 소녀가 추위에 떨며 성냥을 파는데 어떻게 모두가 지나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가난한 소녀는 왜 하필 성냥을 팔게 된 걸까요?
당시의 시대상을 알아봅시다.
19세기 유럽은 산업혁명의 초기 단계였습니다.
그 때문에 사회와 경제면에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우선 공업화가 빠르게 확대되면서 농촌서 도시로 일자리를 찾으러 가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급격한 공업화는 공장 노동자에게 혹독한 노동 조건과 낮은 임금을 불러오게 됩니다.
일부 공장에서는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을 고려하지 않는 채 생산성만 극대화하기에 혈안이었습니다.
성냥공장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성냥 제조는 큰 힘이 필요한 작업이 아니었고, 인건비를 낮추기 위해 어린 여자아이들이 주된 노동자로 고용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성냥개비의 두약(성냥머리) 부위에 백린이라는 물질을 이용했는데요.
백린은 인(P)의 종류 중 하나로, 안전하면서도 빠르게 불을 붙일 수 있는 속성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인의 종류 중 유일하게 인체에 치명적인 맹독 성질을 갖고 있기도 한데요.
백린 성냥 완제품은 백린의 독성 물질을 안전하게 봉피로 덮여있는 형태인데요.
그래서 직접적인 접촉을 방지해 안전하게 사용됩니다.
하지만 백린 성냥을 제조하는 과정에서 백린 카르보네이트와 같은 화합물을 다루기 때문에 유독 가스가 발생하는데요.
어떤 안전 장비도 없이 일하던 노동자들은 백린의 독성에 그대로 노출되어 턱뼈가 괴사하는 인악(Phossy jaw_)이라는 병에 걸리게 됩니다.
인악은 턱뼈의 인산칼슘이 인과 반응해 턱뼈가 괴사하는 질병인데요.
턱이 뭉개지고 살이 곪아 악취를 풍기며 고름이 흘렀고, 장시간 현장에 있던 노동자들은 백린 중독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성냥회사는 이 같은 상황을 알고 있었지만, 작업을 중단하고 치료를 지원하기는커녕, 다른 노동자들에게 백린의 부작용을 숨기기에 급급해 전조증상을 보이는 직원들을 해고했습니다.
게다가 해고할 때 퇴직금 대신 성냥을 제공했다는 가설도 있습니다.
그 당시 성냥은 생필품이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성냥공장이 있고, 그에 따른 피해자가 얼마나 많았을지 상상해 보세요.
그 엄청난 수는 거리 위 성냥팔이 소녀(match girl)들을 아주 흔한 존재로 보이게 하지 않았을까요?
더불어 죽어가는 성냥팔이 소녀가 성냥을 켜며 본 환상은 백린 중독에 의한 환각 현상이라는 이의도 제기됩니다.
왜 불우한 소녀가 하필 성냥을 팔고 있으며, 추위에 떨며 성냥을 파는 어린 소녀를 사람들이 무신경하게 지나치게 되었는지에 대한 가설이 완성됩니다.
성냥공장의 처참한 현실은 1888년 언론인 애니 베전트의 고발 기사로 대중에게 알려지게 됩니다.
대중들의 지지와 성냥공장의 노동자들이 단체 파업에 돌입하게 되며 백린성냥의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됩니다.
시간이 흘러 백린은 군에서 쓰여집니다.
‘백린탄’
백린은 발화점이 약 60℃로 낮아 쉽게 발화되지만, 발화되면 5000℃까지 폭발적으로 온도가 상승하는데요.
또한 인화성이 강해 산소가 고갈되지 않는 한 끝없이 타오르며 이때 7분가량 흰 연기를 만들어냅니다.
그 때문에 현존하는 화합물 중 부피 대비 가장 넓은 연막을 만들어내 연막탄으로도 많이 이용되고 있습니다.
백린탄은 살에 닿으면 촛농처럼 피부에 눌어붙으며 타오릅니다.
이때 함부로 물을 붓는다면 오히려 물이 백린의 열로 인해 끓어올라 끓는 물에 의한 2차 화상까지 입을 수 있습니다.
그 때문에, 물에 적신 패드로 공기를 차단하고 물의 온도가 오르지 않게 계속해서 찬물로 식혀줘야 합니다.
하지만 전쟁 현장서 이런 조치를 취하기는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데요.
그래서 백린탄에 맞으면 해당 부위를 칼로 살점을 도려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번 터지면 불지옥처럼 사람을 고통스럽게 태워 죽이는 백린탄.
현재는 제네바협약으로 민간인에 대한 사용은 금지돼있습니다.
그러나 2009년 가자지구 전쟁에서 이스라엘군이 민간인을 대상으로 백린탄을 사용해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았습니다.
앞으로는 이 같은 상황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길 바랍니다.
구성&편집 : 김미나
일러스트 : 정두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