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따라 강 따라 ②단양 선암골생태유람길

바위 따라 느릿느릿 봄과 발맞춤

선암골생태유람길은 단양 느림보유람길의 1구간으로, 선암계곡을 따라 걷는 14.8㎞의 산책코스다. 느림보유람길은 4개(선암골생태유람길, 방곡고개넘어길, 사인암숲소리길, 대강농촌풍경길, 총 42.4㎞)의 코스로 구성된 순환형 길인데, 이 가운데 1구간인 선암골생태유람길은 난이도가 쉬운 편이다. 자연휴양림과 펜션, 오토캠핑장 등 다채로운 숙박시설과 편의시설을 갖춘 점도 장점이다. 

선암골생태유람길은 남한강의 지류인 단양천을 따라 화강암과 사암이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고, 단양팔경으로 꼽히는 하선암, 중선암, 상선암이 차례로 등장한다. 신선이 이 세 곳 암반지대의 절경에 취해 노닐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명소들이다.

신선이 노닐던 곳

단양팔경의 다른 곳들이 기암괴석으로 각자의 모습을 자랑하지만, 사람들이 들어가서 온전히 앉아볼 곳은 이 세 곳뿐이다. 이 밖에도 소선암, 은선암, 특선암 등 길 따라 만나는 절경에 지루할 틈이 없다. 특히 봄에는 새색시의 발그레한 뺨처럼 아름다운 진달래와 철쭉이 풍성한 데다, 출발 지점부터 길 양옆으로 벚나무가 펼쳐져 봄을 만끽하기에 충분하다.

출발점은 단성생활체육공원이다. 우회교를 지나 소선암오토캠핑장과 백두대간녹색테마체험장서 숲길을 따라 걸으면 된다. 코스 내내 흙길, 아스팔트, 임도길 등 다양한 길이 나타난다. 선암계곡은 다른 계곡과는 다르게 부대시설, 상업적인 시설이 거의 없어 깨끗한 대자연 속 트레킹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단성생활체육공원서 한 시간 반 정도(5.9㎞) 걸으면 삼선구곡의 첫 경승지, 하선암을 만난다. 조약돌 탑이 즐비한 하선암 계곡의 느릿한 물 흐름을 바라보는 여행자가 마냥 여유롭다. 너럭바위가 층암을 이루고, 그 위에 커다란 바위가 얹혀 있다.


이곳을 다녀간 문인들은 시를 읊으며 절경에 화답했다. 퇴계 이황은 단양 군수로 재임하면서 단양팔경을 선정했는데, 하선암을 두고 “속세를 떠난 듯한 신선이 노닐던 곳”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이어진 숲속 오솔길을 한참 걷다 보면 단성면 가산리 마을이 나오는데, 이곳 쉼터에 화장실과 편의시설이 마련돼있다. 마을을 지나 다시 숲길로 이어진다. 상선암을 향해 오를수록 소나무와 기암절벽이 많아지는데, 절벽의 기암은 때론 붉고 때론 검은빛을 띠기도 한다. 

세차게 흐르는 물소리와 탁 트인 계곡이 나오면 중선암에 다다른 때다. 봄꽃에 한눈을 팔았는데, 바위 사이를 뚫고 흐르는 폭포 소리에 저절로 시선이 옮겨진다. 이 작은 폭포는 쌍룡이 승천했다 해서 ‘쌍룡폭’이라고 부른다. 중선암에 앉아보려면 출렁다리를 건너 도락산장 매점 뒤편으로 걸어 들어가면 된다.

깨끗한 대자연 속에서의 트레킹

옥렴대(玉簾臺)라 부르는 바위에 새겨진 글씨를 들여다보니 ‘사군강산(四郡江山) 삼선수석(三仙水石)’이라 써 있다. 사군(四郡)은 조선 시대 단양, 영춘, 제천, 청풍 4개의 군으로, 이 가운데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의 물과 돌이 가장 아름답다는 뜻이다. 

중선암서 약 1㎞ 남짓 걸으면 단양의 명산 도락산과 월악산국립공원 단양분소가 나온다. 국립공원 정보도 얻고 잠시 쉬어갈 장소로 제격이다. 우암 송시열 선생이 ‘깨달음을 얻는 데는 나름대로 길이 있어야 하고, 거기에는 반드시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는 뜻에서 지은 도락산 등산코스도 여기서 시작한다.

단양분소 주차장을 가로질러 지난 3월 단장을 마친 상선암숲쉼터를 지나면 삼선구곡의 마지막 경승지인 상선암에 다다른다. 옛 선인들은 상선암을 두고 학처럼 맑고 깨끗한 사람이 유람하기에 좋은 장소라고 노래하기도 했다. 


상선암출렁다리를 건너 상선암교를 지나 약 1.3㎞를 걸으면 특선암이 위용을 자랑한다. 수직으로 벽을 이룬 기암절벽이 마치 호위무사 같다. 선암골생태유람길은 벌천삼거리서 끝나고, 2구간인 고개넘어길로 이어진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발점으로 돌아오면 수몰의 아픔을 간직한 단성면을 만난다.

옛 단양의 군청 소재지이자 최대 번화가였던 단성면 일대는 댐의 건설로 마을의 90%가 수몰돼 주민 대부분이 삶의 터전을 잃고 고향을 떠났다. 하지만 도시재생사업을 펼쳐 ‘단성벽화마을’로 단장해 알록달록 옷을 입었으니 함께 둘러봐도 좋다.

단양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은 만천하스카이워크에 오르면 단양 읍내, 남한강, 소백산, 금수산, 월악산까지 눈에 넣을 수 있다. 해발 320m의 만학천봉 산꼭대기까지 셔틀버스로 이동한 뒤, 말발굽처럼 생긴 시설물을 빙글빙글 걸어 오르면 한눈에 단양 풍광이 들어온다. 짚와이어와 알파인코스터, 만천하슬라이드 등 레포츠도 함께 즐겨보자. 

단양의 다누리아쿠아리움은 국내외 민물고기 234종, 총 2만3000여마리를 보유한 국내 최대 규모의 민물고기생태관이다. 높이 8m, 수량 650t 규모에 달하는 대형수족관과 도담삼봉, 선암계곡, 석문 등 단양의 비경을 수조의 배경으로 꾸민 것도 인상적이다.

천연기념물인 수달의 재롱도 보고, ‘남한강의 귀족’으로 불리는 황쏘가리, 행운을 불러온다는 중국의 보호 어종 홍룡, 아마존의 거대어 피라루크 등 희귀한 민물고기를 만날 수 있다. 

고수동굴

고수대교를 지나면 바로 고수동굴(천연기념물)이 나온다. 4억5000만년 전에 만들어진 이 동굴은 총 길이가 1395m로, 고수동굴의 수호신인 사자바위를 비롯해 만물상, 독수리상, 용바위 등 기묘한 종유석이 감탄을 자아낸다. ‘천년의 사랑’이라고 불리는 종유석과 석순은 곧 닿을 듯하지만 둘이 만나려면 최소 천년이 걸린단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코스

단성면벽화마을 → 선암골생태유람길(하선암, 중선암, 상선암) → 월악산국립공원단양분소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단성면벽화마을 → 선암골생태유람길 → 월악산국립공원단양분소 → 수양개선사유물전시관 
-둘째 날 만천하스카이워크 → 단양구경시장 → 다누리아쿠아리움 →고수동굴

관련 웹 사이트 주소
-단양군 문화관광 www.danyang.go.kr/tour
-만천하스카이워크 www.dytc.or.kr/mancheonha/89
-다누리아쿠아리움 www.danyang.go.kr/aquarium/1383
-고수동굴 www.gosucave.co.kr
-수양개선사유물전시관 https://www.danyang.go.kr/su yanggae/1385

문의 전화
-단양군청 관광기획팀 043)420-2903
-만천하스카이워크 043)421-0014~5
-수양개선사유물전시관 043)423-8502
-월악산국립공원단양분소 043)422-5062
-다누리아쿠아리움 043)423-4235
-고수동굴 043)422-3072

대중교통
-버스 서울-단양, 동서울종합터미널서 하루 9회(07:00∼18:00) 운행, 약 2시간30분 소요. 다누리센터앞정류장서 531, 405, 801, 416, 403, 412번 버스 승차, 하방정류장 하차. 약 30분 소요. 300m 도보 이동, 선암골생태유람길 시작표지판서 출발.


*문의: 동서울종합터미널 1688-5979, 시외버스통합예매시스템 https://txbus.t-money.co.kr, 단양시외버스공영터미널 043)421-8801

-기차 청량리역-단양역, KTX·무궁화호·새마을호 하루 12회(05:38~20:32) 운행, 1시간20분~2시간10분 소요 단양역정류장서 415, 531번 버스 승차, 하방정류장 하차. 약 20분 소요. 300m 도보 이동, 선암골생태유람길 시작표지판서 출발.

*문의: 레츠코레일 1544-7788, www.letskorail.com

자가운전
중앙고속도로→북단양 IC 단양 방면 우회전→평동사거리 산업단지 방면 우회전→각시봉터널 진입→우덕사거리 단양 방면 좌회전→우덕삼거리 단양 방면 우회전→단양삼거리 영주, 단양IC 방면 지하차도→북하삼거리 문경, 충주방면 우회전→단성생활체육공원

숙박 정보
-한국관광 품질인증업소 단촌서원고택: 단성면 북상하리길, 010-7230-5415, hanokpension.modoo.at
-대명리조트단양: 단양읍 삼봉로, 1588-4888, https://www.sonohotelsresorts.com/dy/
-단양관광호텔: 단양읍 삼봉로, 043)423-7070, www.danyanghotel.com
-소선암자연휴양림: 단성면 대잠2길, 043)422-7839, https://www.foresttrip.go.kr/indvz/main.do?hmpgId=ID02030041

식당 정보
-부엉이식당(백반): 단양읍 중앙2로, 043)421-7188
-박쏘가리(쏘가리매운탕): 단양읍 수변로, 043)421-8825
-서울식당(수제떡갈비): 단양읍 고수동굴길, 043)422-2808
-경주식당(올갱이해장국): 단양읍 도전6길, 043)421-0504


주변 볼거리
단양강 잔도, 도담삼봉, 사인암, 온달관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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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