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대담> 떠난 이상민 마지막 쓴소리

“민주당 이젠 개딸당” 마침내 헤어질 결심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내년 총선이 다가올수록 더불어민주당 내 비명(비 이재명)계의 입지가 줄어드는 형국이다. 비주류 의원들의 불만 섞인 목소리가 곳곳서 터져나온다. 지난 3일, 민주당 이상민 전 의원이 탈당의 시작점을 끊었다. 이날을 기점으로 ‘도미노 탈당’이 이어질 것이란 관측도 적지 않다.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떠나는 이 전 의원의 다음 스텝이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상민 전 의원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향해 직격탄을 날리면서도 비명계 모임인 ‘원칙과 상식’에는 합류하지 않았다. 국민의힘 인요한 혁신위원장과 만남을 가졌지만 “어떤 선택이든 열려 있다”는 모호한 답변만 냈다. 마침내 ‘유쾌한 결별’을 시사한  그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후회 없는 마지막 쓴소리를 내뱉었다. 다음은 이 의원과의 일문일답.

-12월 초 거취를 정하겠다고 밝혔다. 이때를 마지노선으로 정한 이유는?

▲당내서 뜻을 같이 모아온 의원이 몇 명 있다. 지금은 소위 ‘원칙과 상식’이라고 하는데 모임의 구성원들과 결이 다르고 의견 차이도 있었다. 더는 당내서 민주주의를 논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오히려 논의가 늦어질수록 ‘공천 흥정’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어서 빨리 입장을 정리하고 싶었다.

반면 다른 의원들은 당에 남는 쪽으로 기울었다. 사실 11월에라도 결정하려 했는데 예산국회 등 여러 모로 어수선해서 이 시기를 마지노선으로 정했다.

-민주당과 결별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이 많다. 내가 속한 당이 1당이 돼야 하는 이유다. 그래서 민주당이 잘되라고 그렇게 쓴소리를 했는데, 이제 그 꿈을 접은 거다. 다른 곳에서 그 꿈을 펼치려고 한다. 더는 내가 설 자리가 없다고 판단해 무력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앞서 이 대표는 체포동의안 표결을 두고 노골적으로 부결을 호소한 적이 있다. 이전에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겠다고 선언까지 했는데 약속을 뒤집은 셈이다.

이후 영장이 기각되고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서 민주당 진교훈 후보가 압승하면서 기세등등해졌다. 나 같은 사람이 당을 비판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 계속 민주당에 있어야 하는지 많은 고민이 들었다.

민주당이 강성 지지층인 개딸(개혁의 딸)에게 점령당한 것도 이유 중 하나다. 민주당은 더 이상 민주당이 아니다. ‘이재명 사당’이고 ‘개딸당’이다. 당의 모든 게 이 대표를 방어하기 위해 돌아간다. 정당이라는 건 당원의 당비만이 아니라 국민 세금으로 꾸려가는 공조직인데 특정인의 비리를 보호하고 감싸는 데 급급하다.

-민주당서 5선을 지낸 중진 의원이다. 떠나는 데 아쉬움은 없나?

▲물론 아쉽고 안타깝기도 하다. 나는 2004년 열린우리당으로 시작했다. 그때 슬로건이 ‘깨끗한 정치, 골고루 잘 사는 나라’였다. 그 슬로건을 생각하면 아직도 설렌다. 그런데 오죽하면 더는 이곳에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했겠는가? 소모적인 논쟁을 하는 것보다 빨리 나가서 정치인으로서의 목적을 이루는 게 낫다고 본다. 내 시간과 에너지가 아깝고, 상대방도 그럴 것이다. 더는 경력을 낭비할 시간이 없다.

-민주당 지도부로부터 연락은 없었는지?

▲없다. 물론 연락이 없다고 해서 특별히 섭섭하지는 않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당 대표가 리더십을 발휘하는 데 있어 결과가 어떻든 당내 구성원들을 추스르고 또 통합적으로 끌고 나가는 모습이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그런 점에서는 상당히 인색하다.


-과거의 민주당과 지금을 비교한다면 어느 점이 가장 아쉬운가?

▲그때 당시에는 실험정신이 강했다. 치열하기도 했고 또 초선 의원은 부조리나 불의에 맞서 싸우기도 했다. 한국 정치를 개혁하겠다는 의지도 있었다. 정당이라는 것은 다양성과 다원성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주의다. 당명도 더불어민주당이다. ‘더불어’라는 것은 차이가 있음을 전제로 하고 차이가 있어도 어울릴 기회를 제공한다.

하지만 지금의 민주당은 그와 정반대의 모습을 보인다. 민주적이지도 않고 합리적이지도 않다. 다른 의견을 허용치 않고 그저 ‘일색’이어야 한다. 그래서 지금 초선 의원에게 아쉬움이 많다. 이견을 제시하는 과정서 자기 검열을 많이 한다.

탈당 도발에도 이 묵묵부답
“미련 없다” 다음 행보 주목

아무래도 당 대표를 맹종하는 데서 비롯된 문제라고 생각한다. 문재인 대표 때도 똑같았다. 지금은 정도가 더 심해졌을 뿐이다. 맹종 이후에는 성역화, 다음에는 신격화가 된다. 당의 역동성이나 도덕성이 뚝 떨어지는 이유다. 당이 둔감해졌다.

-어떤 방면서 당이 둔감하다고 느꼈나?

▲도덕적 둔감성이다. ‘2021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이 대표적인 예시다. 돈봉투가 오고 간 것이 사실이다시피 하는데도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없다. 우기고 버티고 “식사비다” “검찰 탄압이다”라는 말로 치부해 버린다. 검찰 탄압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모든 게 정당화된다. 그런 도덕적 감수성이 둔감해진 것을 볼 때면 퇴행했다고 느껴진다.

-이전부터 탈당 후 국민의힘에 입당할 것이란 이야기가 기정사실로 돌았다. 당시 국민의힘 의원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나를 좋게 생각하는 분들은 덕담도 해줬다. 당시에는 내가 활동할 수 있는 공간도 받아줄 곳도 없었다. 그런데 국민의힘 쪽에서 “이쪽으로 와라”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니 당연히 따뜻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에 입당하면 그쪽에서도 ‘쓴소리 담당’을 맡게 될까?

▲쓴소리를 하는 게 내 인생의 목표는 아니다. 처음부터 내 민의만 표출하면 또다시 갈등이 생긴다. 만일 쓴소리를 하더라도 여러 가지를 고려하고 완급 조절을 해야 한다. 그쪽은 그쪽 나름의 문화와 분위기가 있는 만큼 전략적으로 잘 배치해야 한다.

-민주당에 오랜 기간 머물렀던 만큼 국민의힘 의원과 섞이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와 관련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한데?


▲국민의힘 의원이 우주나 화성서 온 사람도 아니고, 민주당과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고 본다. 이념의 스펙트럼이 넓어지면 ‘완전 보수’ ‘완전 진보’가 없는 것과 비슷하다. 어쩌면 행태나 방식은 똑같을 수도 있다. 앞서 언급한 민주당의 일색, 맹종은 국민의힘 내부에도 존재한다. 그쪽도 윤심(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이면 ‘깨갱’하지 않는가?

-지난 9월 ‘유쾌한 결별’ 발언으로 상당한 이목을 끌었다. 왜 유쾌하다고 표현을 했는지 궁금하다.

▲가수 에일리가 부른 ‘보여줄게’ 노래서 영감을 얻었다. 떠나는 상대방을 보며 눈물을 흘리지 않고 오히려 새로워진 자신을 보여준다는 점이 너무 통쾌했다. 상황을 회피할 수도 있지만 가사를 보면 꺾이지 않고 상대를 향해 환하게 웃어주기까지 한다. 그래서 지금 당장 “유쾌한 결별을 하자”가 아니라 “유쾌한 결별을 할 각오로 선을 분명히 정리해야 한다”는 뜻에서 말한 것이다.

그런데 지도부에서는 이 발언을 분당으로 받아들였는지 오히려 놀란 반응을 보였다. 이후 이 대표가 나에게 ‘엄중 경고’를 했다. 경고는 받아봤는데 엄중 경고는 또 처음이다.

-신당을 창당할 계획은 없었는지?

▲하고 싶은 마음은 꿀뚝 같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세가 부족하다. 인적 네트워크도 필요하고 자금력도 있어야 하는데 총선을 앞두고 혼자 하려니 준비가 안 됐다. 진행형이지만 충청권을 기반으로 도전해보자는 이야기도 나온다. 한번 시도는 해보려고 하는데 아직 용기와 패기가 솟구치지는 않는다.


-본격적으로 정치 현안 관련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이상민 의원의 정치관은 무엇인가?

▲경험치에 근거해서 대답하자면 세 가지 요소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민의를 대변하는 것이다. 공천이나 정치생명 연장에 굽히지 않고 주저 없이 민의를 대변하는 게 기본이다. 둘째는 상충하는 여러 가지 이해관계를 해결해나가는 능력이다. 부딪히는 걸 조정해내고 지혜를 모아서 조금씩 풀어가는 것이다.

새 보금자리 찾아 떠나는 이유는…
“정치 인생 최종 목표는 국회의장”

셋째는 앞서 말한 두 가지가 축적돼야 한다. 기반이 쌓이면 유권자한테 ‘오늘이 고돼도 나아진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지금의 정치는 거짓말이 많다. “내가 정치인이 되면” “내가 대통령이 되면” 이런 식이다.

-21대 국회는 유독 혐오로 얼룩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끝없는 진영 논리와 이념 싸움에 피로감을 느낀 국민도 적지 않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는지?

▲상대방을 보고 정치를 하는 게 아니라 자기 당의 강성 지지자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상대를 얼마나 적대적으로 대하고 상처 입히는지가 평가의 지표가 된다. 반대편을 악마화하고 같은 말이라도 험한 단어를 쓰는 일이 일반화됐다. 양쪽 모두 그런 현상을 보이는데 특히 민주당은 그게 심하다.

개딸이 박수를 쳐주면 보상이 있고 그게 악순환으로 번지게 된다. 그들의 지지를 받을수록 당의 최고위원이 되고 당 대표도 될 수 있다. 더 나아가면 대선후보도 노려볼만하고 후원금도 많이 들어온다. 만일 이런 보상이 없었다면 상대방한테 욕을 먹어가면서까지 덤비는 일은 없을 거다.

-현재 민생과 관련해 관심 있게 보는 법안이 있다면?

▲경제가 어려운 때일수록 인재를 육성하는 쪽에 방점을 두고 끈기를 가져야 한다. 내가 발의한 법안 중에 ‘사회적 특별연대세법’이 있다. 코로나19로 이득을 본 빅테크 기업으로부터 세금을 더 걷고 이를 청년을 위한 생활자금이나 학자금, 또는 교육 프로그램에 사용하자는 내용이다.

-세금 관련 이야기가 나왔는데 최근 정부가 국가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을 주장했다. 관련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섬세함 없이 막무가내로 진행하다 보니 불거진 문제라고 본다. 연구비의 배정이나 지원에 있어서 분명히 잘못 쓰이는 부분이 있다는 건 다 공감한다. 이런 부분을 핀셋으로 골라서 고쳐야 하는데 일률적으로 총액을 삭감해버렸다.

연구위원 재정은 회계연도가 1년씩이지만 연구비는 3년 또는 5년이다. 도중에 연구비를 잘라버리면 인건비가 필요한 포스트닥터나 대학원생이 완전히 일자리를 잃어버리게 된다. 연구비를 사용한 사람을 불법 카르텔로 규정하는 것 역시 이들에게 있어 굉장히 자존심 긁히는 일이다.

-정치인으로서 이루고 싶은 최종 목적이 무엇인가?

▲국회의장이 돼서 국회 개혁을 이루고 싶다. 의원들의 특권 폐지와 민심에 부합하는 유능하고 효율적인 국회를 꾸리는 것이다. 의회 수장으로서 집행부의 수장인 대통령과 대칭되는 리더십을 발휘하고 견제와 협업을 동시에 이뤄나가고 싶다.

두 번째는 의원의 국제적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개별적인 지식을 얻는 것에 불과하고 어학도 부족하다. 매번 한미동맹을 강조하지만 미국 의원과의 네트워크가 없는 게 현실이다. 이런 점에서 현재 국회가 아쉽게 느껴진다.

각 나라에 특화된 정치인 육성은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다. 이를 위해서라도 글로벌 경쟁력을 쌓기 위한 토대와 기초를 만들고 싶다.

-끝으로 국민에게 어떤 정치인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민의를 대변하고 더 나은 사회 조건을 개선하는, 그래서 이상민이 하는 일이라면 믿고 맡길 수 있는 정치인으로 남고 싶다. 기대에 많이 미치지 못하겠지만 노력해왔다. 내년 총선서 지역구인 대전유성을에 출마할 계획이다. 지금은 첨단 과학기술이 좌지우지하는 시대인데, 이곳은 과학기술의 메카로 꼽히는 곳이다. 과학기술이 국정의 중심이 될 수 있도록 뒷받침하고 연구자가 재능을 발휘해 몰입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고 싶다.

<hypak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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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