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미술사학계 원로’ 박영숙 런던대학 소아스 한국미술사 명예교수의 일침

“한국미술사학회 민낯이 드러났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모두가 입을 다물면 없던 일이 된다고 생각한 걸까? 3개월짜리 시한부 공지를 홈페이지에 걸어놓고 ‘할 일을 다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통렬한 반성도,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도 전무하다. 보다 못한 미술사학계 원로 교수가 나섰다. 

지난해 12월 김모 교수는 한국미술사학회에 표절 의혹을 제기했다. 박모 박사가 한국미술사학회 <미술사학연구>에 발표한 학술논문이 김 교수의 박사논문을 표절했다는 내용이다.(<일요시사> 1446호 ‘<단독> 한국미술사학회 표절 방관 의혹’)

깜깜이 회의

한국미술사학회가 구성한 연구윤리위원회는 표절 의혹에 대해 ‘연구부정 행위에 해당할 수 있으나 경미한 정도로 판단된다’는 최종 심의 결과를 내놨다. 그러면서 해당 내용을 <미술사학연구>에 명시하고, 10월31일부터 12월31일까지 3개월 간 홈페이지에 게시한다고 밝혔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박 박사의 학술논문에 우수논문상을 수여한 전 집행부나 학술논문을 피어 리뷰(동료 평가)한 3명의 교수, 박 박사가 학술논문을 작성하는 데 참고한 서울대 박사논문의 지도교수 등 책임론을 피할 수 없는 이들에 대한 제재 조치는 없었다.

심지어 연구윤리위원회는 현재까지도 심의를 총괄한 위원장이나 위원을 알 수 없는 ‘유령 집단’으로 남아 있다. 


박영숙 런던대학 소아스 한국미술사 명예교수는 이 같은 한국미술사학회의 태도에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박 교수는 한국미술사학회 종신회원이면서 김 교수의 박사논문을 지도했다. 김 교수가 표절 의혹을 처음 제기했을 때부터 한국미술사학회 회장, 박 박사의 박사논문 지도교수 등에 이메일을 보내 문제 해결을 촉구한 바 있다. 

“<일요시사> 보도 이후 한국미술사학회서 표절 문제에 대해 공식적으로 언급하거나 학회장 등 관련자가 직을 내려놓는 등 어떤 움직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적어도 학회 관계자 가운데 한 사람 정도는 제게 연락할 줄 알았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던 이유입니다.”

하지만 한국미술사학회의 태도는 박 교수의 예상과 달랐다. 마치 폭풍이 지나가길 기다리듯 평소와 같은 태도를 고수한 것이다. 박 교수는 한국미술사학회의 태도서 반성이나 자책, 책임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표절 의혹, 한국미술사학회의 대처 등을 가감없이 비판했다. 다음은 박 교수와의 일문일답.

-김 교수의 박사논문과 박 박사의 학술논문 간의 유사성에 대해 어떻게 보시는지.

▲김 교수와 박 박사는 모두 조선시대 감로탱을 주제로 논문을 썼습니다. 김 교수의 논문은 학계서 널리 인정을 받아 관련 분야 연구자라면 무시할 수 없는 연구물입니다. 하지만 박 박사는 논문 주제인 ‘감로도와 시식’에 관련된 논문은 모두 열거하면서 가장 중요한 선행 연구인 김 교수의 박사논문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두 논문을 읽어본 학자라면 주제, 도상해석, 방법론, 참고문헌까지 그 유사성을 결코 부인할 수 없을 뿐더러 박 박사의 명백한 표절을 부정할 수도 없을 겁니다.

-한국미술사학회 연구윤리위원회가 내놓은 최종 심사 결과에 대해 말씀해주신다면?

▲한국미술사학회 연구윤리위원회는 박 박사가 김 교수의 논문을 알고 있었지만 전혀 인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연구윤리의 위반 정도가 ‘경미’하다고 판명했습니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학문적 규범과 규준에서 일탈한 발언을 할 수 있다는 데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것이 국제화를 기대하는 학계서 나올 수 있는 발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김 교수의 표절 의혹 제기 이후 한국미술사학회 관계자에 이메일을 보내셨는데?

▲김 교수가 요구한 바는 박 박사가 표절을 인정하고, 학회가 이 사실을 공표하면서 우수논문상을 취소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저 역시 당연한 절차라고 생각해 박 박사의 박사논문 지도교수인 서울대 이모 교수에게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심의 결과 게시로 끝?
누구 하나 언급 없다

하지만 ‘윤리위원회 판결을 기다려보겠다’는 내용의 답장만 한 뒤 일체 연락이 없었습니다. 장모 학회장은 ‘제3자는 더 이상 관여하지 말라’는 내용의 메일을 보내왔습니다. 박사논문 지도교수조차 제3자로 치부한 셈입니다.

-표절 의혹을 심의한 한국미술사학회의 대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보를 공개하고 지식을 공유하는 것이 학계의 근본인데 한국미술사학회는 소수의 이사들이 감투를 쓰고 ‘보안’이라는 이름으로 정보를 독식한 채 심의를 진행했습니다. 누가 박 박사의 학술논문을 피어 리뷰했는지, 연구윤리위원회 위원이 누구였는지 발표도 없었고 문의해봐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결정권을 누가 어떻게 행사했는지 과정과 절차도 알 수 없었습니다. 애초에 김 교수의 요청을 기각했을 때부터 학회가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정해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미술사학회가 내놓은 최종 심의 결과에 ‘카르텔’이 영향을 미쳤다는 의혹이 있습니다. 

▲표절 시비가 제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그동안 이런 표절 사건이 가끔 있던 모양입니다. 한 익명의 학자는 표절을 당하고도 울며 겨자 먹기로 울분을 감추고 가까운 동료에게만 호소했다고 합니다. 표절에 대한 공식적인 문제 제기를 할 수 없는 이유는 학회지 논문 게재나 취업에 불리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학회장에 선출되려면 학연이 가장 중요하고 학연에 따라 편을 나눠 자신들과 ‘일’을 도모하기 용이한 사람들을 선출하려고 학회 회원들에게 거듭 연락해서 종용한다는 소문도 들었습니다. 한국미술사학회가 이 정도로 정치화됐다는 것은 종신회원인 저로서는 상상도 못할 슬픈 일입니다. 카르텔이라니, 어느 학계든 상상도 할 수 없는 이런 정치용어가 허용되는 조직체가 한국학회에 존재하는 겁니까? 

-이번 논란 과정서 한국미술사학회의 민낯이 드러났다는 의견이 나옵니다. 

▲<일요시사> 기사에서 한국미술사학회 회장이 “다른 학회도 이런 문제가 많은데 왜 우리 학회만 취재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한 부분을 봤습니다. 학회장의 발언은 연구자의 학문적 성과를 인정하지 않은 것은 물론 학자로서 윤리적, 도덕적 책임관이 상실된 언급이며 표절을 당한 학자에게 고통과 피해를 가중시키는 표현입니다. 


표절을 인정하면서도 표절 논문의 우수논문상 수여를 그대로 유지하는 한국미술사학회에 학회로서의 존재가치 여부를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다른 학회’라는 표현은 한국 학계 전체를 싸잡아 매도하는 그릇된 표현이기도 합니다. 학회장에게 학문이라는 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 진리 추구가 과연 무엇인지는 알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한국미술사학회 새 집행부에 당부할 말씀이 있으시다면?

▲학문적 업적과 인격으로 존경받았던 창립위원 학자들(황수영, 진홍섭, 김원용, 최순우)과 그분들께서 세운 한국미술사학회 창립 이념을 다시금 되새기고 학문의 진실성을 회복할 것을 간곡히 요청합니다. 타인의 연구성과를 도용하는 연구 부정행위는 학계서 근절돼야 합니다. 

카르텔 흔적

학자로서의 양심을 잃어버린 채 쓴 논문은 세계학회에 발표한다 해도 명예를 획득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할 겁니다. 한국 학회서 종종 일어나는 표절 논란은 외국 학회에서는 절대 용납받지 못하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표절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근절해야 할 것인가’를 주제로 학회를 개최해 표절에 대한 학회의 태도가 엄중하다는 사실을 알려야 합니다.

<jsjang@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