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까지…’ 한일시멘트 사정 칼바람 내막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3.11.30 13:35:38
  • 호수 14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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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에 국세청도 달려들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한일시멘트가 ‘오너가 주가조작’ 의혹과 서울지방국세청 특별세무조사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주로 비자금 조성 등에 관한 혐의가 있을 시 투입되는 조사4국이 나섰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주식 시세조종으로 재판 중인 허기호 한일홀딩스 회장 때문이라는 시각이 다분하다. 다만, 국세청은 “상세히 들여다보기 위함”이라며 말을 아꼈다.

시멘트업계에 따르면 국세청이 한일시멘트를 상대로 세무조사에 착수,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세청은 지난달 말, 국세청 조사4국 요원들을 서울 서초구 한일시멘트 본사 등에 투입해 관련 자료 등을 확보했다. 국세청은 2018년부터 2022년까지의 회계연도를 대상으로 세무조사를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엎친 데 
덮쳤다 

조사 대상 시기를 놓고 봤을 때 2018년 한일시멘트 지배구조 개편 전후 과정 등을 살펴볼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한일시멘트는 2018년 인적 분할 이후 존속법인인 한일홀딩스(구 한일시멘트)와 한일시멘트로 나뉜다. 당시 지배구조 개편을 통해 지주사가 한일시멘트서 한일홀딩스로 전환한 것이다.

이번 세무조사 대상에는 한일시멘트의 주요 계열사와 거래처 등도 포함됐다. 업계에선 내부거래 과정서 발생할 수 있는 탈세 여부를 들여다볼 것으로 바라봤다. 세무조사 대상에는 한일시멘트뿐 아니라 지주사인 한일홀딩스, 한일인터내셔널, 한일L&C(구 한일건재) 등이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한일시멘트 그룹의 거래처로 알려진 J사, S사 등 관련사도 함께 세무조사에 들어간 것으로 파악됐다. 


국세청이 거래처인 J사와 S사를 특정해 동시 세무조사에 나선 배경도 이목을 끌었다.

일각에선 국세청이 한일시멘트 그룹과 거래처 간 부당거래 정황을 파악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유통·도소매 업체인 J사는 지난해 10월 기준 사원 수 1명, 2021년 매출액은 81억원, 당기순이익은 6억원 규모다. 2008년 4월 한일산업 대리점권 계약을 맺는 등 한일그룹의 거래처 중 하나다.

한일홀딩스(구 한일시멘트) 공시자료에 따르면 허 회장은 지난 2017년 3월31일 J사가 보유한 한일시멘트 주식 3만7727주를 시간외거래로 매입해 회사 지분율을 늘린 바 있다.

2002년 1월 설립된 S사는 화물자동차 운송주선업체다. 특이점은 현 한일시멘트 감사인 장모씨가 2014년부터 2018년까지 S사 대표를 지냈다는 점이다. 한일시멘트 계열사의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세무조사 대상 계열사는 특수관계자 거래 비중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회사 전체 매출 중 특수관계자 비중은 최소 40%대서 최대 90%대에 육박했다.

한일홀딩스의 지난해 매출 400억7137만원 중 특수관계자로부터 벌어들인 매출은 382억8574만원으로 95.5%에 달했다. 이 중 261억원은 계열사로부터 벌어들인 배당수익으로 파악됐다.

탈세? 비자금? 내부거래?
조사4국 투입 탈탈 털어 

한일홀딩스는 계열사 등에서 벌어들인 배당이익의 상당 부분을 허 회장과 친족 등 주주에게 배당 명목으로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허 회장과 친족 지분 비중을 볼 때 지난해에만 150억원이 넘는 배당금이 허 회장과 그 일가에 지급된 것으로 추정된다.


허 회장의 지분은 지배구조 개편 직전인 2017년 말 10%서 지배구조 개편 후인 2018년 말 30%로 3배가량 급증했다. 지배구조 개편 후 허 회장이 그룹 승계 자금 마련을 위한 안정적 수익구조가 만들어졌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한일홀딩스의 배당액은 지배구조 개편 직전인 2017년 124억8600만원에 불과했다. 그러다 2018년 지배구조 개편 후 증가세를 보였다. 지난해 배당액은 246억6500만원으로 지주사 전환 전보다 배로 급증했다. 한일홀딩스는 2019년 별도 기준 614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는데 배당액은 오히려 늘어나 137억8700만원이 주주에게 돌아갔다.

허기호 회장은 한일홀딩스 최대주주로 지분 31.23%를 보유, 그룹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허 회장은 허정섭 한일시멘트 명예회장의 장남이자, 고 허채경 선대회장의 장손이다. 허 명예회장은 16.33%의 지분을 갖고 있다. 다른 친족인 허정미 3.08%, 허동섭 2.74%, 허남섭 2.68%, 허기준 1.57%, 허기수 1.15%, 허서연·허서희 0.94% 등 허 회장 일가가 60% 이상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상태다.

특히 그룹 최상위 지배사인 한일홀딩스는 전체 매출의 90% 이상을 계열사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일홀딩스는 한일시멘트 60.9%, 한일인터내셔널·한일L&C 100%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먼저 한일인터내셔널의 지난해 매출은 4478억원이다. 이 중 특수관계자 거래가 2459억원으로 54.9%에 달했다.

심각한
이중고

한일시멘트와 한일현대시멘트로부터 각각 1389억원, 1070억원의 매출이 발생한 것이다. 

한일L&C는 지난해 매출 954억원 중 41.7%인 398억원이 한일시멘트 등 특수관계자로부터 발생했다. 한일시멘트, 한일현대시멘트로부터 각각 386억원, 11억원이 발생했다. 지난해 한일L&C는 한일시멘트 206억원, 한일현대시멘트 22억원, 한일홀딩스 3억원 등 특수관계자로부터 총 232억원의 매입거래도 있었다.

이번 세무조사가 탈세, 비자금 조성 등에 관한 기획 세무조사라는 의혹이 제기된 이유는 다양하다. 허 회장과 임원 등이 주가조작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는 점도 거론됐다. 허 회장은 한일시멘트와 HLK홀딩스의 합병 과정서 주가를 인위적으로 조작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앞서 한일시멘트는 2018년 1월 한일시멘트를 분할존속회사인 한일홀딩스(투자사업 부문)와 분할 신설회사인 한일시멘트(시멘트, 레미콘, 레미탈 사업 부문 등)로 인적분할을 결정했다. 같은 해 7월 인적분할이 이뤄졌다. 

이어 2020년 5월14일 한일현대시멘트의 모회사인 HLK홀딩스와 한일시멘트의 합병 과정서 합병 법인의 지분율을 높이기 위해 한일시멘트 주가를 인위적으로 낮춘 혐의를 받는다. 2018년 8월 12만원대였던 한일시멘트 주가가 합병 당시인 5월 8만원대로 30% 넘게 빠졌다.

주가 하락으로 한일시멘트 합병 비율은 실제 기업가치보다 하락했다.

합병된 HLK홀딩스는 한일홀딩스의 100% 자회사로, 허 회장 소유다. 한일시멘트 기업가치가 낮아질수록 합병이 성사된 이후 허 회장이 수장으로 있는 한일홀딩스의 지분율이 커지는 것이다.


앞서 허 회장은 한일홀딩스 산하의 두 회사를 합쳐 수직계열화하겠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합병 비율은 한일시멘트 1대 HLK홀딩스 0.5024632였다. 검찰은 당시 지주회사인 한일홀딩스가 이 과정을 통해 한일시멘트 최대주주로 올라서게 된 것으로 봤다.

수사당국은 한일시멘트 주가가 떨어짐에 따라 주주들에게 막대한 손해를 끼친 점도 지적했다.

거래처도 조사
부당거래 파악

업계에선 한일시멘트 재무 상태 악화를 무시하고 합병을 추진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허 회장이 주가조작을 한 것이 사실로 밝혀지면 사적 목적을 위해 회사의 재무 건전성을 내팽개친 꼴이다. 

이번 재판 관련 수사는 금융감독원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특사경)이 2020년 7월 한일시멘트, 한일홀딩스, 허 회장 자택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특사경은 K증권사 지점에서 한일시멘트 관계자의 거래 내역 등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사 과정서 허 회장은 초등학교 동창생 안모씨의 계좌로 한일시멘트 주식을 차명거래한 것으로 확인됐다. 명의를 빌려준 안씨는 수사기관에 “지주회사 전환 과정서의 경영권 확보”라는 거래 목적을 구체적으로 진술했다가, 법정에서는 “추정한 것을 사실처럼 말했다”며 번복했다.


서울남부지법 형사14부(재판장 장성훈 부장판사)는 지난 8월24일 오후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허 회장 등 6명에 대한 속행공판을 열고, 안씨에 대한 증인 신문을 진행했다. 의료보건 관련 제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의 대표 안씨는 사석서 만난 허 회장으로부터 부탁을 받아 계좌를 개설해줬다고 증언했다.

안씨는 “증인은 허기호 피고인이 ‘믿을만한 차명계좌가 필요하다. 아무나 할 수는 없고 재산 규모도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 명의를 빌려줬다고 수사기관에 진술했는가”라는 검찰의 물음에 “네”라고 답했다.

그는 “뭔가 말 못할 사정이 있는 돈이라고 추정했다. 회사 측에서 계좌개설에 필요한 서류나 정보를 요청해왔고 제가 들어줘 계좌를 개설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계좌개설 이후 통장, 카드, 인증서, 비밀번호 등을 회사 측에서 관리했다. 발생한 세금은 회사 관계자가 사후에 정산해줬다”고 말했다.

검찰에 따르면, 안씨의 차명계좌에는 2010년 3월23일부터 6월17일까지 28회에 걸쳐 3억2000여만원이 입금됐다. “어떤 주식이 거래됐는가”라는 검찰의 물음에 안씨는 “한일시멘트 주식만 사는 것으로 봤다”며 “구체적인 거래 과정을 눈여겨보지는 못했다”고 답했다.

허기호 회장 시세조종 의혹 수사
초등 동창과 주식 차명거래 포착

검찰은 “증인은 수사기관서 ‘한일시멘트 주식을 사는 것을 보고 경영권을 위한 지분 문제인가 보다. 자금의 출처를 증명하지 못하니 차명으로 하는구나 생각했다’고 진술했는데 맞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안씨는 “대기업 경영자는 자신의 지분을 늘리거나 우호 지분을 확보하는 게 일반적이다 보니 그런 취지라고 상식적으로 추론해 진술한 것”이라고 말했다.

안씨는 사후에 회사로부터 차명계좌를 돌려받은 뒤 직접 한일시멘트 주식을 거래하기도 했다. 그가 2018년 8월21일부터 9월7일까지 거래한 한일시멘트 주식은 6250주로, 거래액은 9억1400여만원이었다. 안씨는 2019년 5월22일 6250주를 8억3000여만원에 블록딜 매도(일괄매각)했다.

안씨는 “허기호로부터 ‘네가(차명계좌를) 관리하는 게 좋겠다’고 들었고 수용했다. 주식을 매수한 경위는 (공동피고인인)김모씨로부터 ‘갖고 있는 돈으로 한일시멘트 주식을 매수해달라’는 요청을 듣고서”라고 말했다. 

안씨가 언급한 김씨는 한일홀딩스 전무이자 계열사인 한일인터내셔널의 대표다. 안씨는 “한일시멘트 측에서 안내해주는 대로 집행만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안씨는 한일시멘트 주식거래 사실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던 것과 달리 배경 설명은 모호하게 답변했다.

안씨의 진술 번복에 검찰은 진술조서를 직접 제시하며 캐묻기도 했다. 안씨의 금융감독원 진술조서에는 ‘지분구조는 모르지만 아버지(허정섭 명예회장) 성격이 유해요. 삼촌(허동섭·허남섭 명예회장) 등 아버지 형제간 지분 정리가 안됐다. 아버지 지분을 받는 것도 돈이 들어가니 홀딩스로 투자받아 정리한다’고 적혀 있었다.

이에 안씨는 “그때는 그렇게 답변한 게 맞지만 제 생각을 말한 것 같다”며 “숙부님들 지분이 많아서(경영권 확보가) 어려울 수 있겠구나 짐작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다음 기일 또 다른 증인 김씨에 대한 증인 신문을 끝으로 본격적인 피고인 신문에 돌입한다. 2021년 11월 시작된 조 회장의 형사재판은 올해를 넘길 전망이다. 공판기일이 3주서 1달을 주기로 열리는 데다, 검찰이 피고인별 약 2시간의 신문 시간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앞서 2021년 4월 수사를 마무리한 특사경은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송치했다. 검찰은 같은 해 11월 이들을 재판에 넘겼다. 한일시멘트 측은 재판서 관련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뭔가 말 못할
사정 있는 돈?

허 회장은 주식 보고 의무 위반 관련 혐의만 인정하고 시세조종 혐의는 부인했다. 당시 허 회장 측 변호인은 “주식 보고 의무 위반과 관련한 혐의만 인정하고 나머지는 모두 부인한다”고 밝혔다.

한일시멘트 측은 이번 세무조사에 관한 확대 해석을 삼가달라고 했다. 한일시멘트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통화서 “세무조사는 맞다. 조사에 성실히 응할 것”이라며 “재판과 세무조사를 결부시키는 언론 보도는 흠집 내기를 위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서는 자세한 내용을 파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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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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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