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세의 골프인문학> 골프 기원에 대한 논쟁

“그렇게 따지자면 잉글랜드가 네덜란드보다 골프 비슷한 놀이는 더 먼저 있었다고 해야죠.” 바닷가를 등지고 다시 박물관 건물로 향하면서 엔젤라 관장은 금발 머리를 쓸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그녀는 네덜란드서 골프가 시작됐다는 얘기를 일축하면서 잉글랜드의 골프에 대해 힘주어 말했다. 잉글랜드서도 독자적으로 행해진 ‘캄부카’라는 놀이가 있었다.

런던 인근의 서쪽에 위치한 글로스터 성당은 앵글로색슨족이 서기 7세기경에 세웠는데 그 성당의 뒤뜰에서는 사람들이 모여 공치기를 하곤 했다. 일종의 필드 하키 형식으로 진행된 놀이였고 주로 상류 사회나 귀족, 왕실서 즐긴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사람들은 그 성당의 동쪽 뒤뜰에 위치한 거대한 창문을 가리켜 ‘위대한 동쪽 창문’이라고 불렀다. 그 창문은 성 요한, 성 마리아등 성당과 관계된 인물이 대형의 스테인드글래스로 새겨져 있었다.

시작은 어디?

수많은 창문 그림 중 아래쪽에는 둥그런 모양의 창문에 막대기를 들고 공을 치려는 사람이 새겨진 스테인드글래스가 특이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 주변의 전투 장면이 새겨진 스테인드글래스는 1350년 제작됐고, ‘크레시 전투의 창문’으로 불렸다.

골프와 비슷한 형상을 묘사한 창문의 그림과 크레시 전투 간 연관성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체 창문은 크레시 전투를 상징하고 있었다.


크레시 전쟁이란 1347년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영토 싸움으로, 프랑스의 영토인 크레시서 전투가 벌어졌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이 전쟁서 잉글랜드군은 신무기로 새로운 활을 제조했고, 프랑스군은 예전의 전통적인 기사들의 기병이 선발대였다.

전투에 참여한 잉글랜드군은 1만2000여명으로, 프랑스군(3만5000여명)의 1/3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잉글랜드가 만든 2m가 넘는 길이의 활은 프랑스 기사의 갑옷을 뚫었고, 수많은 기사와 말이 죽었다. 결국 사기가 오른 잉글랜드군이 대승을 거뒀다.

이 전투 이후 중세시대의 군 전략은 새로운 형태로 바뀌게 됐고, 위풍당당했던 기사의 시대가 몰락하는 계기가 된다. 이 전투는 백년전쟁 초기에 벌어졌고 1337년에 시작한 백년전쟁은 1453년까지 116년간 계속됐다.

“잉글랜드는 기원설에 대해 별반 이의나 주장을 제기하지 않았나 보죠?” 제임스가 엔젤라의 얼굴을 쳐다봤다. 전방을 향해 눈을 떼지 않은 채 엔젤라는 “캄부카라는 이름이 엄연히 있었고 또 스코틀랜드건 잉글랜드건 그레이트브리튼은 하나의 나라였다”고 답변했다.

다시 박물관 카페로 들어간 두 사람은 좀 전에 바닷가가 보이는 창가의 일인용 의자에 각각 앉았다. 다시 커피를 주문하면서 그녀의 부연 설명은 계속됐다.

구전에 따르면 로마군이 골프 비슷한 놀이를 즐긴 시기는 기원전 300년경으로 알려졌다. 기원전 1세기 카이사르가 통치하던 로마제국은 전 유럽을 발밑에 뒀고, 5세기경 스코틀랜드도 예외는 아니었다. 로마 군인들이 스코틀랜드를 점령하고 야영지서 행했던 파가니카라는 놀이가 있었다.

두 편으로 갈라서 공을 몰아 상대방의 진영에 있는 목표물을 맞히거나 집어넣으면 이기는 경기였다.


당시 공은 새의 깃털을 짐승 가죽에다 집어넣어 꿰맨 뒤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로마군은 이 경기를 전쟁만큼이나 재밌어했고, 이 경기를 하고 나면 스트레스가 풀려 정복 사업에도 힘이 절로 났었다는 전설도 있었다는 것이다.

증거가 될만한 역사적인 기록이나 고증에 대해서는 엔젤라도 말끝을 흐렸다. 골프와의 연관성을 찾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 차이가 있다는 의미였다.

스코틀랜드를 침략해 400년 이상 켈트족을 점령하고 스코틀랜드의 야영지 한쪽에서 그렇게 행해졌던 로마군들의 놀이가 20 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조용히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다는 신화적인 전설에 그친다는 의미였다.

제임스는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기원설의 마지막이며 최근 들어 인터넷에 올라있는 중국의 골프 기원설에 대한 주장을 엔젤라가 아는지 궁금했다.

어디서부터?…수많은 가설
전파 루트와 관련 설왕설래  

“중국서 실크로드를 타고 전래된 놀이라는 설은 일축해도 되죠?” 단정적이듯이 던지며 제임스는 엔젤라의 반응을 살폈다. 엔젤라는 재론의 여지는 없다는 듯 제임스의 말에 어깨를 으쓱거렸다. “글쎄요. 주장은 아무나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들의 자유 의사니까 말이죠.”

인터넷에 떠 있는 중국의 주장은 이랬다. 궁궐서 막대기로 공을 때리던 놀이가 있었는데 여자 혹은 남자끼리 함께 걸어가면서 공을 쳤으며 하나의 지점에 있는 작은 구멍에 그 공을 집어넣는 놀이라는 것이었다. 그 시기는 서기 900년경의 당나라 말, 혹은 남당 시절부터 명나라 초기인 서기 1300여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 놀이가 중국 상인이나 아라비아 상인에 의해 유럽으로 전해졌다는 얘기였다. 만약 700년 전 그 무역상이 이 놀이를 유럽으로 가져왔다면 그들은 틀림없이 실크로드를 타고 티베트 고원지대와 네팔의 험준한 히말라야까지를 넘어야 한다는 전제하에 가능한 이야기였다.

스코틀랜드보다 최소한 500년 앞섰다는 것이 중국인의 주장이었다.

그들은 당나라가 멸망하던 서기 900여년경 ‘추환도 벽화’라는 당시의 그림에서 골프치는 모습이 있다는 설을 증거로 제시하고 있다. 또 12세기부터는 ‘추이환’이라는 이름으로 골프경기가 성행했으며 ‘환경’이라는 골프 규칙 책자도 만들어져 전해왔다는 설을 근거로 제시했다.

그들의 문헌인 환경에 따르면 공이 놓여져 있는 평지는 ‘평’, 비탈은 ‘요’ ‘철’, 아웃 오브 바운스는 ‘외’ 등으로 나눴다.

나무로 만든 공은 ‘권’, 클럽은 ‘구봉’, 그리고 티샷은 모래 등에 볼을 올려놓고 티를 할 수 있는 ‘초봉’이라 불렸고 두 번째 샷은 ‘이봉’이었다. 한 홀은 파 3이고 버디를 할 경우 ‘일주’, 홀인원은 ‘이주’라 불렸다. 무승부이면 오늘날의 연장전이나 서던 데스처럼 다음날 재경기를 했다고 한다.


엔젤라는 별 관심없다는 투의 반응을 보였다. 기원만 주장하고 그 이후 수백년 동안 골프에 대한 연결고리가 없는 상황서 말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투였다.

영국이 19세기 후반 아시아 여러 식민지에 골프를 전파했는데 그러다 보니 심지어는 캄보디아서 골프가 기원됐다는 말도 있다면서 엔젤라는 그런 근거를 가지고 수백년을 더 거슬러 가면서 그럴듯하게 포장하면 가능하다고 말했다.

제임스를 쳐다보는 엔젤라의 눈빛이 중국의 기원설에 대해서는 대수롭지 않은 말이라는 뜻을 내포했다. 내친김에 제임스는 골프가 전파되던 19세기의 아시아 국가 중 한국도 포함돼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물었다.

“물론 알고는 있죠. 홍콩과 일본을 위시해서 한국에도 19세기 말에 골프장이 생긴걸로 알고 있지만 상세한 내용에 대해선 별로.”

미안하다는 투로 엔젤라는 말끝을 흐렸다. 하긴 골프 역사에 대한 저서를 수십권 이상 들여다 본 제임스 역시 영어로 된 골프 역사책에는 한국에 전래된 골프에 대한 내용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단지 한두 권의 책에 “1889년 원산항에 영국인들이 세관을 건설하면서 6개 홀을 지어 골프를 쳤다”는 짤막한 내용만이 적혀 있었다.

다양한 해석


다시 주문한 스코틀랜드 커피의 향이 은은하게 피어 올라오고 있었다. “우리는 완벽한 증거를 가지고 있죠. 바로 600여년 전 스코틀랜드 제임스2세 국왕의 골프금지령이 문서로 기록된 엄연한 증거죠.”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며 엔젤라는 골프금지령으로 오늘 아침의 만남에 마무리를 지으려는 듯 보였다. 그녀는 다시 600년 전 목동 헨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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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