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세의 골프인문학> 골프 기원에 대한 논쟁

“그렇게 따지자면 잉글랜드가 네덜란드보다 골프 비슷한 놀이는 더 먼저 있었다고 해야죠.” 바닷가를 등지고 다시 박물관 건물로 향하면서 엔젤라 관장은 금발 머리를 쓸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그녀는 네덜란드서 골프가 시작됐다는 얘기를 일축하면서 잉글랜드의 골프에 대해 힘주어 말했다. 잉글랜드서도 독자적으로 행해진 ‘캄부카’라는 놀이가 있었다.

런던 인근의 서쪽에 위치한 글로스터 성당은 앵글로색슨족이 서기 7세기경에 세웠는데 그 성당의 뒤뜰에서는 사람들이 모여 공치기를 하곤 했다. 일종의 필드 하키 형식으로 진행된 놀이였고 주로 상류 사회나 귀족, 왕실서 즐긴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사람들은 그 성당의 동쪽 뒤뜰에 위치한 거대한 창문을 가리켜 ‘위대한 동쪽 창문’이라고 불렀다. 그 창문은 성 요한, 성 마리아등 성당과 관계된 인물이 대형의 스테인드글래스로 새겨져 있었다.

시작은 어디?

수많은 창문 그림 중 아래쪽에는 둥그런 모양의 창문에 막대기를 들고 공을 치려는 사람이 새겨진 스테인드글래스가 특이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 주변의 전투 장면이 새겨진 스테인드글래스는 1350년 제작됐고, ‘크레시 전투의 창문’으로 불렸다.

골프와 비슷한 형상을 묘사한 창문의 그림과 크레시 전투 간 연관성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체 창문은 크레시 전투를 상징하고 있었다.


크레시 전쟁이란 1347년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영토 싸움으로, 프랑스의 영토인 크레시서 전투가 벌어졌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이 전쟁서 잉글랜드군은 신무기로 새로운 활을 제조했고, 프랑스군은 예전의 전통적인 기사들의 기병이 선발대였다.

전투에 참여한 잉글랜드군은 1만2000여명으로, 프랑스군(3만5000여명)의 1/3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잉글랜드가 만든 2m가 넘는 길이의 활은 프랑스 기사의 갑옷을 뚫었고, 수많은 기사와 말이 죽었다. 결국 사기가 오른 잉글랜드군이 대승을 거뒀다.

이 전투 이후 중세시대의 군 전략은 새로운 형태로 바뀌게 됐고, 위풍당당했던 기사의 시대가 몰락하는 계기가 된다. 이 전투는 백년전쟁 초기에 벌어졌고 1337년에 시작한 백년전쟁은 1453년까지 116년간 계속됐다.

“잉글랜드는 기원설에 대해 별반 이의나 주장을 제기하지 않았나 보죠?” 제임스가 엔젤라의 얼굴을 쳐다봤다. 전방을 향해 눈을 떼지 않은 채 엔젤라는 “캄부카라는 이름이 엄연히 있었고 또 스코틀랜드건 잉글랜드건 그레이트브리튼은 하나의 나라였다”고 답변했다.

다시 박물관 카페로 들어간 두 사람은 좀 전에 바닷가가 보이는 창가의 일인용 의자에 각각 앉았다. 다시 커피를 주문하면서 그녀의 부연 설명은 계속됐다.

구전에 따르면 로마군이 골프 비슷한 놀이를 즐긴 시기는 기원전 300년경으로 알려졌다. 기원전 1세기 카이사르가 통치하던 로마제국은 전 유럽을 발밑에 뒀고, 5세기경 스코틀랜드도 예외는 아니었다. 로마 군인들이 스코틀랜드를 점령하고 야영지서 행했던 파가니카라는 놀이가 있었다.

두 편으로 갈라서 공을 몰아 상대방의 진영에 있는 목표물을 맞히거나 집어넣으면 이기는 경기였다.


당시 공은 새의 깃털을 짐승 가죽에다 집어넣어 꿰맨 뒤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로마군은 이 경기를 전쟁만큼이나 재밌어했고, 이 경기를 하고 나면 스트레스가 풀려 정복 사업에도 힘이 절로 났었다는 전설도 있었다는 것이다.

증거가 될만한 역사적인 기록이나 고증에 대해서는 엔젤라도 말끝을 흐렸다. 골프와의 연관성을 찾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 차이가 있다는 의미였다.

스코틀랜드를 침략해 400년 이상 켈트족을 점령하고 스코틀랜드의 야영지 한쪽에서 그렇게 행해졌던 로마군들의 놀이가 20 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조용히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다는 신화적인 전설에 그친다는 의미였다.

제임스는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기원설의 마지막이며 최근 들어 인터넷에 올라있는 중국의 골프 기원설에 대한 주장을 엔젤라가 아는지 궁금했다.

어디서부터?…수많은 가설
전파 루트와 관련 설왕설래  

“중국서 실크로드를 타고 전래된 놀이라는 설은 일축해도 되죠?” 단정적이듯이 던지며 제임스는 엔젤라의 반응을 살폈다. 엔젤라는 재론의 여지는 없다는 듯 제임스의 말에 어깨를 으쓱거렸다. “글쎄요. 주장은 아무나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들의 자유 의사니까 말이죠.”

인터넷에 떠 있는 중국의 주장은 이랬다. 궁궐서 막대기로 공을 때리던 놀이가 있었는데 여자 혹은 남자끼리 함께 걸어가면서 공을 쳤으며 하나의 지점에 있는 작은 구멍에 그 공을 집어넣는 놀이라는 것이었다. 그 시기는 서기 900년경의 당나라 말, 혹은 남당 시절부터 명나라 초기인 서기 1300여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 놀이가 중국 상인이나 아라비아 상인에 의해 유럽으로 전해졌다는 얘기였다. 만약 700년 전 그 무역상이 이 놀이를 유럽으로 가져왔다면 그들은 틀림없이 실크로드를 타고 티베트 고원지대와 네팔의 험준한 히말라야까지를 넘어야 한다는 전제하에 가능한 이야기였다.

스코틀랜드보다 최소한 500년 앞섰다는 것이 중국인의 주장이었다.

그들은 당나라가 멸망하던 서기 900여년경 ‘추환도 벽화’라는 당시의 그림에서 골프치는 모습이 있다는 설을 증거로 제시하고 있다. 또 12세기부터는 ‘추이환’이라는 이름으로 골프경기가 성행했으며 ‘환경’이라는 골프 규칙 책자도 만들어져 전해왔다는 설을 근거로 제시했다.

그들의 문헌인 환경에 따르면 공이 놓여져 있는 평지는 ‘평’, 비탈은 ‘요’ ‘철’, 아웃 오브 바운스는 ‘외’ 등으로 나눴다.

나무로 만든 공은 ‘권’, 클럽은 ‘구봉’, 그리고 티샷은 모래 등에 볼을 올려놓고 티를 할 수 있는 ‘초봉’이라 불렸고 두 번째 샷은 ‘이봉’이었다. 한 홀은 파 3이고 버디를 할 경우 ‘일주’, 홀인원은 ‘이주’라 불렸다. 무승부이면 오늘날의 연장전이나 서던 데스처럼 다음날 재경기를 했다고 한다.


엔젤라는 별 관심없다는 투의 반응을 보였다. 기원만 주장하고 그 이후 수백년 동안 골프에 대한 연결고리가 없는 상황서 말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투였다.

영국이 19세기 후반 아시아 여러 식민지에 골프를 전파했는데 그러다 보니 심지어는 캄보디아서 골프가 기원됐다는 말도 있다면서 엔젤라는 그런 근거를 가지고 수백년을 더 거슬러 가면서 그럴듯하게 포장하면 가능하다고 말했다.

제임스를 쳐다보는 엔젤라의 눈빛이 중국의 기원설에 대해서는 대수롭지 않은 말이라는 뜻을 내포했다. 내친김에 제임스는 골프가 전파되던 19세기의 아시아 국가 중 한국도 포함돼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물었다.

“물론 알고는 있죠. 홍콩과 일본을 위시해서 한국에도 19세기 말에 골프장이 생긴걸로 알고 있지만 상세한 내용에 대해선 별로.”

미안하다는 투로 엔젤라는 말끝을 흐렸다. 하긴 골프 역사에 대한 저서를 수십권 이상 들여다 본 제임스 역시 영어로 된 골프 역사책에는 한국에 전래된 골프에 대한 내용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단지 한두 권의 책에 “1889년 원산항에 영국인들이 세관을 건설하면서 6개 홀을 지어 골프를 쳤다”는 짤막한 내용만이 적혀 있었다.

다양한 해석


다시 주문한 스코틀랜드 커피의 향이 은은하게 피어 올라오고 있었다. “우리는 완벽한 증거를 가지고 있죠. 바로 600여년 전 스코틀랜드 제임스2세 국왕의 골프금지령이 문서로 기록된 엄연한 증거죠.”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며 엔젤라는 골프금지령으로 오늘 아침의 만남에 마무리를 지으려는 듯 보였다. 그녀는 다시 600년 전 목동 헨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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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